경기도지방경찰청에서 도내 각지의 모범 전·의경을 뽑아 2박 3일간 산업현장견학을 가는데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중학생이 된 것 만 같았다. 견학 며칠 전부터 관물대 깊숙이 있던 기동복을 꺼내어 다림질을 하고 기동화도 새로이 닦아 광을 내어두었다.
3일 새벽 5시 30분. 꽤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검문소 밖은 아침햇살이 은은하게 퍼져나와 지난밤 어둠을 조금씩 밀쳐내고 있었고 구름은 높게 떠서 얕은 층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새벽이라 거리는 한산했고 햇살에 밀리는 듯 한 새벽공기가 시원하고 신선하게 와 닿았다. 경찰서 옆에 있는 5중대에서는 4명이 선발되어, 우리 경찰서 인원 2명을 함께 데려가기로 괴어 있었다. 경찰서를 출발한 지 한시간이 조금 넘어서 우리는 수원 월드컵구장에 도착했고 그곳엔 이미 다른 지역의 전·의경도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결장소를 잘못 찾은 것임을 알게되었고 다시금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경기청 직원분들과 버스들, 그리고 많은 수의 전·의경들이 모여 오와 열을 이루며 대기하고 있었다.
2박 3일간 우리를 통솔할 직원분들은 총 여섯분으로 모두 경기청 소속의 직원이었고, 개중에는 검열이나 점검때 뵈었던 낯이 익은 분들도 몇 분 계셨다. 특히 계장님이나 내가 속한 5호차 김부장님은 여러번 본적이 있었다. 인원점검을 마치고 각자 배속된 차량에 탑승하여 번호도 부여받았는데, 총 5대의 버스 중 나는 5호차의 9번이었다. 내 옆자리는 같은 경찰서의 의경인 허문태가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기 전에는 얼굴도 거의 모르는 사이였다.
드디어 버스는 교통순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출발했고 첫 목적지는 전북 군산의 대우자동차공장이었다. 모두들 새벽부터 준비해서 왔으므로 아침식사를 미처 못했는데 다행이 햄버거와 우유가 지급되어 버스 안에서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첫 번째 시찰 장소인 군산의 대우자동차공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30분께 였다. 97∼8%의 자동화 공정을 자랑하는 대우자동차공장은 군산의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부지에서 57초당 1대 꼴로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공장에서는 누비라와 레조 만을 생산하고 있는데, 약 한시간 가량의 견학시간 중 한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계들의 쉼없는 움직임과 부품조각들의 끊임없는 결합으로 불과 57초만에 자동차 한 대가 생산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공장 안이 매우 덥긴 했지만 모두들 별 불만이 없었고 11시 30분쯤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공장을 떠났다. 떠나는 우리들에게 공장을 안내했던 여직원이 따뜻한 손짓을 보내왔다.
점심식사는 군산의 시가지에 있는 한 식당에서 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고 조금 눈에 익은 사람도 몇 있었지만 아직은 서로 너무 어색했고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 180명이 넘는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밥을 먹자니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지만 시장기도 있었을 뿐더러 음식도 꽤 맛있어서 두둑한 식사를 했다.
우리는 다시금 버스에 올라 쉼 없이 달려 15시경에는 두 번째 목적지인 남원의 광한루에 도착해 있었다. 광한루는 1년여 전에 왔었는데 그다지 변한 것은 없었다. 문득 지난 추억이 생각나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 했던 감정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40여분간의 관람이 끝나고, 버스는 다음 목적지인 구례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로 가는 길은 제법 시골냄새가 풍기는 길이어서 주위에는 온통 산의 풍경이었다. 화엄사는 남원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있어서 도착까지는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구례 화엄사는 그 명성과 역사답게 수많은 보물들을 간직한 고찰중의 고찰이라 할 수 있었다. 사찰도 사찰이거니와 주위 형세와 입지 또한 범인인 내가 보기에도 뭔가 범상치 않음을 알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긴 했으나 오랜만에 도시의 공해와 소음으로부터 해방되어 한 여름의 푸른 산골의 공기를 맡으니 몸 속이 정화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화엄사 앞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더운 땀을 좀 식히고 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다음 일정이 또 기다리고 있어서 그럴 여유는 없었다. 은은한 향내와 산? 帽汰?아쉬움에 남겨두고 다시금 버스에 올라 인원점검을 한 후 이번에는 지리산 산자락을 타고 올랐다.
우리 나라에서 차량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는 산자락을 끼고 도는 도로는 가파르고 구불구불 했으며 협소해서 마치 벰이 다니는 길 같았다. 그래서 이름도 뱀사골이 아닌가 싶었다. 아슬아슬하게 올라간 노고단은, 지리산을 지척에 둔 곳에 살았으면서도 이제껏 한번도 와보진 못하고 다만 얘기만 듣고 상상했던 곳보다 훨씬 높고 멋진 곳이었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천왕봉을 등정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날씨가 흐렸고 땅만 보고 다녀서인지 그렇게 높게 올라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산 밑자락까지 훤히 보이는 날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비록 천왕봉보다는 수백 미터 아래에 있었지만 나는 어느새 구름 가까이 까지 와 있었다. 땅에서 봤을땐 하늘 저 높이 있던 태양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했고 구름들은 마치 공장의 굴뚝이 뿜어내는 연기처럼 허옇게 산기슭을 타고 올라왔다. 노고단의 광경에 감탄하며 다시금 그 구불구불하고 아슬아슬한 길을 내려와 관광단지에 있는 온천에서 노곤한 몸을 풀고 숙소의 식당에서 꿀맛 같은 저녁식사를 하며 반주로 막걸리도 한잔 곁들였다. 처음에는 서먹하기만 했던! 동료들도 이제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 여름이긴 했으나 관광단지에는 우리들 외에는 다른 관광객은 별로 없었다. 산 속이라 그런지 날벌레들이 많이 날아들어 자면서도 몇번인가 뒤척였지만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폐 속까지 시원하게 청소 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7시경 세면을 하고 식사를 마친 후 인원점검과 오늘 일정을 위해 숙소 앞에 모였다. 마침 구례 경찰서장님께서 직접 숙소를 찾아 훈시를 하시고 돌아가셨다. 왠지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첫 목적지로 가는 아침 버스 안은 모두가 수면 상태였다. 오전 9시 15분 경에 우리는 어느 한적한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낮은 언덕 위에는 큰 건물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광양시 커뮤니티센터라는 곳으로 광양제철소에서 사회환원차원에서 수익금 중 일부로 지어서 광양시에 기부한 건물이었다. 규모도 내우 컸고 시설도 꽤 좋았다. 광양시민들의 각종 편의를 위해 지은 건물로 건축비용이 3백억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커뮤니티센터에서 POSCO에 관한 홍보 비디오를 보고, 버스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광양제철소로 진입했다. 각 버스마다 안내원이 한 명씩 승차하여 공장을 안내해 주었다. 광양제철소는 중·고등학교때 한번씩은 왔던 곳이라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설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었다. 같은 곳, 같은 설명이었지만 다시 새로웠고 정보도 더 의미 깊게 다가왔다. 공장을 둘러보면서 인류의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TV 광고에서 POSCO광고가 나오면 나는 그것이 외국회사 광고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POSCO가 포항과 광양 두 제철소를 함께 어우르는 회사인 줄은 ? 訣┥?알게 된 것이다. 백운사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고로쇠약수와 밤, 매실 등으로 유명한 광양에서 지난 82년부터 바다 매립을 시작하여 여러 작은 섬들 사이를 매워서 여의도의 5.5배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5개의 용광로와 냉연·열연 공장과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광양제철소는 지난 87년부터 가동을 시작하여 90초당 1개의 제품을 생산해 낸다고 한다. 그 중 우리는 열연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것을 견학했는데 24Cm 정도의 뜨겁게 달구어진 쇠판을 몇번의 공정을 거쳐 책받침 두께의 얇고 긴 철판으로 만들어 화장지처럼 말아 롤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붉게 달궈진 쇠판?무서운 열기를 멀리까지 퍼뜨리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무시무시했다. 한시간이 조금 넘는 견학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조금 더 구경하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는 출발했다. 오전 11시쯤에 우리는 남해대교를 건넜고 남해도에 도착하여, 잠시 바닷가의 작은 항에 정박해서 관람객을 맞던 거북선에 올라 내부를 관람하였다. 거북선은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해전에 출전할 수 있다는 듯 한 용맹을 내뿜고 있었다. 항 근처 동산에는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전을 모셔둔 충렬사가 있었다. 남해와 충렬사는 틈 날 때마다 놀러왔었던 곳이라 그다지 설레진 않았고 다만 오랜만에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바람을 쐬는 기분만은 신선했다. 그곳에서 먼 남쪽바다와 가물가물한 섬들은 보니 왠지 외롭게 느껴졌고 그리운 사람이 떠올랐다. 이미 점심시간이 다 되어 근처 횟집에서 나누어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두 시간 여를 달려 고성에 있는 당항포에 도착하여 산책을 하고 홍보비디오를 보았다. 이순신 장군에 관한 비디오물이었는데 문득 이순신 장군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이곳 당항포 관광단지는 이미 여러 해 전에 가족끼리 소풍처럼 다녀간 적이 있는 곳으로 그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이직 날씨가 다 풀리지 않은 봄이었는데도 그날은 꽤 따스하고 포근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항포에서 오후 3시 30분까지 관람을 하고 다시 통영을 향해 떠났다. 통영은 고2때 반 친구 몇 명과 이곳이 고향인 친구의 초대로 여름 방학동안에 잠시 피서를 왔던 곳이라 그때 추억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지만 통영시내는 도로가 좁고 굽은 길이 많? 티?다니기에 불편했다. 통영의 해저터널은 무척 시원하긴 했지만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다니는 2∼3백미터 가량의 굴길에 불과했다. 다시 거제도로 들어간 우리는 옥포만 근처의 한 모텔에서 저녁식사와 숙박을 했다. 바닷바람이 밤이되자 육풍으로 바뀌었지만 아주 시원했고 간간이 바다 내음도 실려오는 듯 했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점호를 취한 뒤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느라 모두들 그 동안 제법 친해진 동료들과 밤새 얘기를 나누느라 방마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나도 방에서 다른 지역 전경들과 함께 두시가 넘도록 앉아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부터 북상하는 태풍 '라마순'의 영향으로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아침에는 빗줄기가 굵게 쏟아지고 있었다. 어제 밤 푹 자지 못해서 인지 식사를 마친 후에도 계속 졸음은 밀려왔고 마지막날의 첫 일정을 위해 떠나는 차 속에서 바깥의 빗줄기를 커튼처럼 느끼며 아득한 공간에서 얼핏 잠이 들었다.
마지막날의 첫 일정은 거제도 옥포만에 위치한 대우조선소였다. 배 중에서는 가장 비싸다는 LNG선박과 그 외의 큰 선박을 생산하는 조선소는 오로지 주문생산만을 하는데 이미 주문이 몇 년 후 까지도 작업이 예정되어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빗줄기 때문에 야외에서 견학은 하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공장 부지를 돌아보며 설명을 들었다. 가장 비싸다는 LNG선을 비롯하여 군사용 특수선 등이 생산되나 특수선은 국가기밀사항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조선소에서는 잠수함 9정을 구축하여 정부에 납품하기도 했다고 한다. 공장은 여러개의 부품을 생산하는 큰 공장들과 크레인, 그리고 선박을 제작하는 도킹장 및 편의시설, 주차장, 기숙사, 연구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은 척 보기에도 엄청난 무게를 들어올릴 만한 초대형의 노란색 크레인이었다. 크레인이라기 보다는 마치 건물같은, 골리아스라 불리는 그 대형 크레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선박을 제작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30여분의 견학을 마치고 곧장 거제도의 포로수용소를 들러 관람을 하고 세찬 빗줄기를 가르며 드디어 마지막 코스! 인 진주성으로 향했다. 도중에 도로 가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진주에는 오후 1시 30여분에 도착했는데 빗줄기는 더욱 굵고 거세어져 누구하나 선뜻 내려서 관람할 엄두를 못했다. 몇몇은 우산이나 우의를 쓰고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진주에 도착하면서부터 나는 집에 도착한 것같이 설레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집이 경남이나 경북, 전라도 쪽인 사람들을 1차로 해산시켰다. 나는 진주가 집이었기에 진주가 초행길인 동료들에게 지리를 대략 설명해주고 혹은 택시를 잡아 태워 보냈다. 어디에 근무하는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전·의경으로 군 복무중이라는 유대감 때문인지 더 친근했고 헤어지는 것에 아쉬움도 남았다.
집으로 돌아와 남은 여독을 풀면서 생각해보니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동안 일정이 다소 빡빡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게 되어 이번 산업시찰이 무척 보람되고, 참가할 수 있어서 뿌듯 헸다. 남은 군 복무기간 중에 이번 산업시찰 같은 설레인 추억은 점처럼 다시 얻기 힘들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경기청 및 주위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