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행복한 날
오전 내내 해순이는 마음이 몹시
설레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디 가서 사야지
꼭 마음에 드는 명당자리여야 하는데
몇 장을 사지
돈은 얼마나 준비하지
번호는 자동으로 할까
아니면 내가 숫자를 조합해 볼까‘
어제밤 꿈속에서 해순이방은
돼지 천지였다
거실에도 꿀꿀이
욕실에도 욕조는 꿀꿀이죽이
넘쳐흐르고 먹는 돼지들이
더 많이 먹을려고 싸우고 있었다
해순이가 자는 침대에도
양옆에 아기 돼지 한 마리
발정난 수퇘지 한 마리가 있었고
해순이는 무슨 보물인양 양팔에 끼고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밤새 꿀꿀이와 어울리다
깨어나니 이른 새벽이었고
너무나 생생했다
흥분된 기분을 가라안치러
좀처럼 먹지 않는 찐한 블랙커피를
타서 마시며 생각해 보아도
분명 행운을 가져다 줄 길몽
길몽 중에 길몽이다
선만 보았다 하면 여기서도 뻰찌
저기서도 뻰찌를 당한
서른 중반의 못난이 해순이
부자될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난 남자복은 없지만 재물복은
있을거야
해리포터 작가도 처음에는 아기
분유 한 병 살 돈도 연료비도
없었다고 하잖아
그런데 끄적거려 쓴 소설이 유명세를
타면서 거부가 되었잖아‘
해순이는 인터넷으로 복권이 많이
당첨된 판매소를 검색해
정한 다음 회사 과장에게는
생리통이 있어 오늘 오후 근무는
힘들다며 우거지상을 써 승낙을 받고
근처 은행으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가
예금한 돈 100만원을 인출해서
깨알같이 빽빽이 적은 수첩을 열어
적힌 1등내지 2등 당첨이 나온
로또복권 판매소로 부리나케 달린다
영등포 2곳, 구로구 3곳, 종로구 4곳,
은평구 5곳, 송파구 3곳 등등등
모두 합해서 50여군데
어떤 판매소에서는 자동
어떤 판매소에서는 떠오르는 숫자를 조합
어떤 판매소에서는 자기 주민번호 전화번호
짝사랑 남친 핸펀 번호를
조합해서 사고
완전 귀신들린 여자같다
버스, 택시, 전철 등을 번갈아 타며
지갑에 든 거금 백만원으로
로또복권을 다 사니
그렇게 길던 태양도 지고 밤이다
마지막 남은 만원으로
집근처 김가네 김밥집에 들어가
보통김밥 한줄, 라면 한 개를
주문해 우걱우걱 걸신들린 것처럼
먹으면서 연실 ‘실실 헤헤’거린다
쌍판데기는 땀이 흘러 번지르르
옷은 구겨져 수세미
신발은 흙이 묻어 지저분
그래도 좋긴 좋은 모양이다
난 분명 엄청 부자가 될거야
요번 1등 당첨금이 70억이랬지
그거 다 내꺼야
그거 타면 번듯한 수입명품 옷사고
신발도 수입명품
빤스는 이태리산 샤론스톤이 입었던 것
거들은 한예슬이 입었던 것
브라자는 한고은이 입었던 것
모두 다 사서 멋진녀로 바꿔야지
참 빠진 것 있어
차는 멋진 벤츠 450으로 사야지
‘히히히히’
실성한 여자처럼 웃는다
집에 와서도 6-49의 매력
로또복권 1등 당첨되어 돈 타는
장면이 현실처럼 생생하다
빨랑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지금이 화요일이니 눈 딱 감고
5일만 기다리면 된다
치사빤스한 직장은 낼부터 안
나갈거다
더런 과장놈 스트레스성 신경질
안 보아서 다행
바로위 상관 나이 40도 훨씬 넘은
독신녀의 화풀이 상대가 안 되어 다행
나쁜 독신녀 디런년 팀장
나이도 많은게 개꼴깝이다
해순이보다 10년위인 것이 온갖 개폼
다 잡고 다니고
엉덩이를 흔들고 다닐때는 죽고싶은 심정
구역질이 나온 날도 많았다
모든 회사남자는 내 껀데 지년이
직급이 높다고 늘 먼저 새치기
그냥 ‘확’ 머리채를 잡고 쪼인트를
까버려야 하는데
그 생각하니 시원스럽게 방구가
절로 나온다
‘뿡뿡 뿌우우우웅 우지지직직 쑤와’
상상의 즐거운 시간이 지나가고
드뎌 일요일 로또복권 추첨날이다
해순이는 티비앞에서 소변도 참고
화면이 뚫어져라 본다
추첨기가 돌아가며 6개의 구슬이
나오고 번호가 차례차례 번호판에
적히고 해순이는 손에 가득 든
번호표를 보고 맞추어 보지만
보는 것마다 ‘꽝 꽝 꽝’
맞는다 하면 3개 숫자
해순이는 얼굴이 험악해지고 울그락
불그락해지며 금방 울 것 같다
아니 돼지가 줄줄이 있는 꿈인데
우찌해 모두 꽝이고 겨우 본전치기
10장인가
환장해 죽을 지경이다
멋진 명품꿈은 물건너 날라 갔지
저축한 돈 바닥났지
회사에는 앞으로 안 나간다고 큰소리 쳤지
앞으론 무얼 먹고 살지
노처녀 주제에 누가 보살펴 줄
사람 있겠는가
앞길이 캄캄하다
하늘에 별이 하나도 안 보인다
내가 미친년이야 하면서
머리를 쥐어잡아 뜯어 보았지만
해골만 아프고 머리가죽만 고생한다
정말 못생긴 해순이다
비엉신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해순이는 울다가 웃다가
방바닥을 돌처럼 구르다가
머리는 중구난방 사방으로 뻗치고
눈은 울어서 퉁퉁 붓는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갈려다 패가망신
팬티에 저린 똥까지 묻히고
찌린내가 진동하는 기분 디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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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솔한 삶의 내부가 들여다 보이는 예쁜글 잘 읽고 갑니다
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즐거운 날 되시길요
너무 너무 재밌어 한참을 웃었고, 눈물도 찔끔 나옵니다. 우리말의 우수성이 진하게 배어 있네요.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들 되십시오
작가님의 경험담일거야 아마도 ㅎㅎㅎㅎㅎ
점심시간도 다가오는데 아~ 어쩌죠?
냄새가 전국을 진동하네요~~작가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ㅎㅎㅎㅎㅎ
작가와는 상관이 없답니다
편지지에 울고 있는 여자
해순이의 일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길요
추운 날씨 감기조심하시고 행복 하시길..
고맙습니다
모모수계님도 즐거운
시간들이 되십시오
짤막한 단막극하나 보고간 기분이네요. 넘 재미나게 보고 갑니다.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잼나는 글
박장대소 하는데 울 아들 슬그머니 다가와
어느새 읽었는지
모자지간에 실컷 웃어봅니다
건강 사랑 행복이 가득한 주말 되십시오 모네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