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일상을 보며] 1부.
정병경.
ㅡ개국과 멸망ㅡ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왕릉이 잘 보존되어 있다. 몇년 전 장마 때 왕릉을 돌아본 추억을 새긴다. 서울 주변에 분포되어 있는 40기(2기 제외)를 답사하면서 기록한 일기와 역사서를 참고로 한다.
조선의 역사가 시작 되기 전인 고려말의 행적을 본다. 고려(918년)는 태조 왕건(877~943)이 개국하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다가 34대 공양왕(1392년 7월)을 끝으로 474년의 세월이 역사 속에 묻힌다. 흥망성쇠는 길고 짧을 따름이지 영원한 건 없다.
고려말기에 세력 다툼이 일어난다. 조민수의 도움으로 33대 창왕(1380~1389)이 아홉살에 왕위를 잇는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창왕이 왕씨가 아닌 신돈의 자손이라며 끌어내리고 공양왕(1345~1394)을 앉힌다. 어린 창왕은 천수를 못누리고 눈을 감는다. 고려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징조다.
성공과 실패는 세력에 의해 좌우된다. 왕을 비롯한 측근 인물은 노심초사다. 왕가의 세력이 쇠약해지기 시작이다. 이성계 일파 정적인 조민수를 제거하기에 이른다. 조선 개국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한 4인방이 있다. 정도전과 조준, 남은, 이방원이다. 이성계를 조선 초대 왕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일등공신들이다.
정도전은 고려 우왕(재위 1년) 때 전남 나주로 귀양가게 된다. 북원北元의 사신 접대 거부가 이유다. 이후 이성계와 만나면서 마음이 통하게 된다.
조준과 남은, 정도전은 고려의 공양왕 폐위에 가담한 공신이다. 세 공신의 공통점은 개국 후에 이방원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한다. 출생년도 기록이 없어 추측으로 가름한다. 태종은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기 위한 수단으로 걸림돌 제거에 나선다.
ㅡ태조의 부인ㅡ
태조의 첫부인 신의왕후 한씨가 6남 2녀를 두고 남편이 등극 1년 전에 55세로 세상을 떠난다. 능호는 제릉으로 현재 개성에 누워 있다. 남북의 분단으로 제향은 물론 능을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한다.
태조 둘째비인 신덕神德왕후 강씨康氏(1396)는 조선 개국 후 세상을 떠난다. 탄생 시기는 기록이 없다. 아들 방번이 15세에 죽게 되어 30대 중반 쯤으로 추측한다. 그의 무덤은 태종에 의해 여러 곳으로 이장된다. 250년 후 현종 때 서인 영수 송시열의 주장으로 강씨는 정비에 책봉된다. 능호를 정릉貞陵으로 추존해 현재 강북구 정릉동에서 긴 잠에 들었다.
녹음 짙은 여름에 능길을 걸으며 신덕왕후를 사랑한 태조의 모습을 연상해본다. 돈암동의 흥천사는 신덕왕후의 명복을빌기 위해 세운 능찰陵刹이다. 아침 예불이 끝나는 종소리를 들은 후 수라를 들었다는 태조이다.
조선의 초대 임금인 태조는 강씨가 떠난 12년 뒤 눈을 감는다. 와병으로 이미 둘째 아들 정종에게 10년 전에 양위한 상태다. 조선 개국 초대 왕의 자리를 6년 만에 물려주게 된다.
무안대군 방번(1381~1398)과 조선 최초의 세자 의안대군 방석(1382~1398)은 신덕왕후 아들이다. 두 아들은 배다른 방원(태종)으로부터 17세의 어린 나이에 종말을 맞는다. 형제의 투쟁을 지켜본 아버지 마음은 편할리가 없다. 파란만장을 겪으며 74년간 장수했다는 것은 천운이다.
구리 동구릉(건원릉)에 잠든 태조가 두 부인과 함께 묻히지 못하고 있다. 초대 왕릉이지만 후대의 능과 별다르지 않고 평범하다. 태조의 고향 함흥 억새풀이 봉분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태조와 태종의 능에는 유일하게 신도비가 세워져있다.
ㅡ왕도ㅡ
백성을 아우르기 위해 왕으로 가는 길은 고난이다. 왕王은 三 + ㅣ이다. 하늘과 땅, 사람을 관통(ㅣ)하는 원리다.
임금이 죽으면 묘호와 시호가 붙는다. 왕을 종묘에 모실 때 올리는 존호가 묘호다. 시호는 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이름이다.
묘호에는 조祖와 종宗을 사용한다. 업적이 많으면 조祖를 붙인다. 덕德을 많이 베풀면 종宗이다. 세조를 제외하고 조가 붙은 왕들은 서자 출신이다. 27대 조선 왕 중에 조祖는 7명이고 종宗은 18명이다. 나머지 2명은 군君이다. 세자 때 죽어 후에 왕으로 추존(덕종.원종.진종.장조.문조)한 인물은 5명이다.선친에 대한 배려 차원으로 여긴다.추존 왕이 치세를 했다고 가정해본다. 조선 역사의 흐름이 궁금해진다.
세종은 영토를 넓혔고, 중중 때는 연산군의 학정을 바로 잡았다. 영조와 정조, 순조는 서자 출신이다. 철종과 고종은 서자인데 종宗이다.
처음에는 종을 붙이다가 후대에 조로 바뀐 경우도 있다. 선조는 원래 선종이다. 인조는 열종烈宗인데 호란胡亂을 극복한 공으로 효종 때 인조로 바꾼다. 숙종 때 노산군에서 다시 단종으로 복위된 경우도 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을 지내고도 묘호와 시호가 없다. 치세 기록도 실록이 아닌 일기다. 업적을 남기고도 폐위가 된 광해군이다. 모후 공빈 김씨와 아들 광해군의 묘는 남양주 송능리 능선에 마주하고있다.
ㅡ왕의 계승ㅡ
8세 전후 세자에 책봉되었다가 선왕이 죽게되어 이어받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등 6명이 있다. 21명은 반정 또는 반란 등 다른 형태로 왕위에 오른 왕이다.
태종의 적장자는 양녕대군이었으나 자질 문제로 폐위하고 세종을 세자로 책봉한다.
전왕 생전에 왕위를 물려 받은 왕이 정종과 태종, 세종, 세조, 예종이다. 적자가 없어 서자로 왕위를 이은 경우는 광해군과 순조다.
왕자를 얻지 못해 왕족 중에 양자로 택한 경우 선조와 영조, 철종, 고종이 있다. 세자가 일찍 죽어 세손이 왕위를 이은 경우는 성종과 정조, 헌종이다. 적자가 왕위를 이어받는 경우가 드물다.
고종은 타의에 의해 왕에서 밀려나고 순종이 등극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능력 부족으로 섭정을 받은 왕이 예종, 성종, 선조, 명종, 헌종, 철종, 고종, 순조이다.
외척 세력으로 인해 왕이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숙종(14세)과 단종(12세)은 나이가 어려도 친정을 하게 된다. 섭정은 나이가 어리거나 병약해 측근 세력이 전횡專橫하는 경우가 많다.
왕과 왕비가 묻힌 조선 왕릉 42기 중 2기(태조 부인ㆍ정종과 부인)는 북한에 있고 나머지가 수도권 동ㆍ서ㆍ남에 분포해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 도성에서 제일 먼 거리는 영월 장릉莊陵(단종릉)이다.
서삼릉의 효릉은 유일하게 여러해 째 일반 관람객에 비공개되고 있다. 관리사무소에 문의한바 9월 쯤 개방 예정이라고 한다.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 폐비윤씨의 희묘, 왕자공주묘, 태실, 후궁묘가 있는 묘역이다. 조선 왕 중에 가장 치세 기간이 짧은 9개월의 인종이다. 후사가 없어 중종과 셋째비 문정왕후 사이의 아들인 명종이 왕위를 이어간다.
왕릉을 조성하는 일은 산릉도감이다. 정자각, 비각, 재실, 봉분 조성과 부대 시설에 관한 일을 도맡는다. 인원 1만여 명이 투여되는 대규모 공사다. 세월이 갈수록 세계유산 왕릉은 진가를 더한다.
2023.07.27.
ㅡ2부 계속ㅡ
첫댓글 정병경 작가님
지난 한 해 쉬임없이 왕릉의 발자취를
정말 깊은 마음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역사의 시간이 제 조명 되었다는 감사함이었습니다
후세의 손길이 빠짐없이 가꾸어졌으면 희망입니다
후기 수고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