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급성 백혈병) 투병 구백서른일곱(937) 번째 날 편지, 3 (사회, 경제) -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4월 1일 토요일이란다.
전우원 '무릎 사죄'에 오월 어머니 "언제든 밥 주세요. 이야기하렴."
전 대통령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27)가 31일 오후 3시에 80년 5월 당시 가족을 잃은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을 (1980년 5월 시민군의 최후 항전치) 복원 지킴이인 오월 어머니회원들을 찾아 용서를 빌며 "저한테 돌을 던지셔도 할 말 없는데, 오히려 더 따뜻하게 말씀해주시고, 너그럽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네.
전씨가 이날 오전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사죄 기자회견을 하고, 국립 5·18민주묘지에 참배를 마치고 온 터라 오월 어머니들은 그를 환하게 맞이했고, 오월 어머니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가족들이 전두환 등 신군부의 계엄군에 희생당한 어머니들로, 우원씨는 도착 직후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절했고, 어머니들은 "우리 큰 박수 한번 보내줍시다."하고 반갑게 맞았다네+.
전씨는 한 줄로 앉아있는 어머니들에게 다가가 차례로 눈을 마주치며 악수했고, 어머니들은 "힘내고, 건강하길 바란다. 망월 묘역에 다녀온 것 봤다, 너무 고생했고, 우린 자네만 믿는다. 너무 고맙다."고 인사했다네.
5·18 시민군이었던 고(故) 권호영씨의 어머니 이근례 여사는 전우원씨를 쳐다보며, 한참을 눈물 흘렸는데, 이 여사의 아들 권호영씨는 1980년 5월 재수생 신분으로 시위를 위해 거리에 나갔다가 행방불명됐고, 지난 2001년 10월 무명열사로 묻힌 주검 중 DNA를 통해 21년 만에 아들의 주검을 수습했다네.
어머니는 할아버지 전두환에 대한 원망을 뒤로 한 채 전우원씨의 손을 맞잡곤 "열심히 진상규명 해서 광주의 한을 풀어달라. 끝까지 잘 해주셔라"고 인사했고,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 이명자 여사도 따뜻한 시선으로 전우원씨를 맞이했고, 이명자 여사는 '광주 내란수괴'로 지목됐던 5·18 사형수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아내라네.
이날 어머니들을 만나기에 앞서 전우원씨가 민주묘지에 참배했을 때, 정동년씨의 묘를 찾아 겉옷으로 묘비를 닦은 바 있는데, 이명자 여사는 "특별히 아까 제 남편 정동년의 묘를 찾아 옷으로 닦아준 것을 봤다. 우리 남편은 80년 당시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로, 내란수괴로 몰릴 정도로 활동했다. 아까 우원씨가 참배하며 묘를 닦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네.
이어 "우원씨 행보에 따라서 앞으로의 5·18이 달라질 것이다. 남은 가해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양심선언 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부탁한다. 너무 많은 짐을 지워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 뒤엔 우리 어머니들이 뒷받침해줄 테니 힘내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5·18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고(故) 박관현 열사의 누나인 박행순 여사는 친어머니처럼 전우원을 끌어안았고, 박행순 여사는 "많은 짐을 지워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앞으로도 이야기 많이 나누자. 우린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 나누자. 배고프면 이리로 와라. 늘 편하게 와서 '어머니 밥 주세요' 하면 내가 밥을 주겠다"고 이야기했구나.
전우원씨는 어머니들의 말씀을 듣곤 "피로가 풀렸다. 이 자리에 나와주신 것 너무 감사드린다. 저한테 돌을 던지셔도 할 말 없는데 여기서 오히려 더 따뜻하게 말씀해주시고, 정말 너그럽게 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네.
만남 행사를 마친 뒤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전우원씨에게 자양강장제 음료를 전했고, 다른 어머니들은 음료를 마시는 전씨 옆에서 "힘내라! 힘내라!"고, 응원의 목소리를 냈고, 전우원씨는 어머니들의 격려를 받으며, 인근인 전일빌딩으로 이동했는데, 전일빌딩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던 곳으로 지목된 공간이구나.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전 관장은 떠나는 전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전두환 손자의 진정성을 보고 마음이 많이 풀렸다. 전일빌딩 가서 헬기 사격 등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긴장해서 왔는데 우릴 만나고 웃는 걸 보니 다행이다. 웃는 게 여간 예쁘다. 손자가 무슨 죄냐"고 말했다네.
31일 오전 행사를 마친 전씨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헌화와 참배로 오월 영령의 넋을 기렸는데, 전씨는 5·18 최초 사망자인 고(故) 김경철 열사, 12살 희생자인 고(故) 전재수 군, 행방불명자와 무명열사 묘역을 차례대로 참배했고, 한 곳도 빠짐없이 묘비 앞에 무릎을 꿇은 전씨는 묘비와 영정 사진을 자신의 검은색 코트로 닦아줬다네.
유족과 시민 등은 전두환 후손이 묘비를 닦아내는 모습에 눈물을 보였고, 주요 참배객을 맞이하는 국립5·18민주묘지 김범태 관리소장마저 얼굴을 붉혔는데, 김 소장은 “전두환의 장남도 아닌 차남의 아들, 어떻게 보면 (5·18과) 무관한 사람인데, 진정한 마음으로 사죄하고 참배를 하는 모습에 울컥했다. 수많은 참배객을 맞이하면서 얼굴을 붉힌 것은 처음”이라고 당시 심정을 설명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오후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기 바라며,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오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
핸드폰에서 들리는 배경음악-[외국곡] Waltzing Matilda-The Seek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