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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정결법에 대한 논쟁(마태복음 15:1~20)
* 본문요약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더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다고 지적하시고,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195장(새 261) 이 세상의 모든 죄를
198장(새 264) 정결하게 하는 샘이
* 본문해설
1. 바리새인들과의 정결법 논쟁(1~9절)
1)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그들이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러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유전(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께서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신 5:16)’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훼방(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출 21:7, 레 20:9)라고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내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려야 할 것)을
‘그것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하나님께 바칠 예물이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6)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너희의 유전(전통)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 아니냐?
7) 외식하는 자들아(이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자기들이 만든 사람의 계명을 마치 내 계명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이사야 29:13)라고 하였느니라” 하시고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와(1절) :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으로부터 위임받아 파송된 대표단으로,
본문의 이 논쟁은 지금까지 예수님과 한 논쟁 중에서 가장 첨예화된 논쟁입니다.
당시 권력의 핵심층과 한 논쟁이기 때문입니다.
- 장로들의 전통(2절) : 미쉬나
여기에서의 ‘장로’는 율법에 능통한 유대 랍비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율법 해석의 권위를 인정받아서 오랫동안 율법을 해석해왔는데,
그들이 율법을 해석한 것이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이어져 온 것을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인 레위기,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들을
일반 백성들이 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수많은 조항을 만들어냈습니다.
가령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방법이라든가, 그 씻는 물의 양과 질, 물 붓는 방법,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 손의 자세 등에 관한 규정입니다.
이런 규정이 모두 613개의 조항으로 안식일에 대한 것만 39종이나 됩니다.
이것들은 모두 유대인들이 후대에 하나씩 만들어서 인간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것인데,
바리새인들은 성경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두고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대인 장로들의 전통을 ‘미쉬나’라고 합니다.
-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3절)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장로들의 전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전통을 지키기에는 힘썼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5절) : 고르반
마가복음 7: 11에서는 ‘고르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바친 물건, 하나님의 희생제물’이라는 뜻으로,
고르반으로 선언된 물건은 성전의 제단에 바친 것과 같이 취급되어
하나님의 소유물로 인정되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소유 중에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결정하면
그는 그것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종종 악용되었습니다(묵상 포인트 3번 참조).
- 외식하는 자(7절) : 휘포크리테스
‘외식하는 자’에 해당하는 ‘휘포크리테스’는 ‘배우’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여기에서는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는 신앙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속의 진심은 감추고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가장하는 신앙.
2. 무리에게 주시는 말씀(10~11절)
10) 예수께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3.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12~20절)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것(비위가 상한 것, 분개하고 있는 것)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하여 이르시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뿌리째 뽑힐 것이니,
14) 그냥 내버려두어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 걸림이 된 줄을 아시나이까(12절)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격분을 일으켰다는 뜻으로
어찌하여 저런 권세 있는 자의 심기를 건드리셨느냐고 걱정하며 아뢰는 것입니다.
- 내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13절) :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셨으니 마귀가 심었다는 것으로,
가라지와 악한 자의 아들들은 뽑혀서 심판을 받을 것이니 그냥 두라는 뜻입니다.
-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14절) :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는 것은
자신들도 갈 방향을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직책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정결법 논쟁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음식을 먹을 때
유대인의 전통의 방식대로 손을 씻고 먹어야 죄를 용서받게 되는데
손을 씻지 않고 먹었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정결법에 대한 새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1) 정결법 : 주께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법
➀ 정결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 : 세상 모든 만민이 멸망받을 죄인이므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래로 이 땅에 사는 자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두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새롭게 열어 주신 이 은혜의 길을 걸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➁ 정결법은 죄를 용서받은 자가 그 영을 정결하게 유지하는 법
그러나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자들은
다시 죄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과 신실함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육신도 어제 씻었는데도 또 더러워지니 오늘도 또 씻어야 하는 것처럼,
세례를 받아 주님의 백성이 될 때 그동안 지은 죄를 다 용서받았다 하더라도
또 죄를 짓게 되니 우리의 영을 씻어내야만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의 더러움을 날마다 씻어
깨끗한 영을 유지하기 위한 법을 ‘정결법’이라고 합니다.
➂ 구약의 정결법 : 부정한 것을 접촉하지 않는 방식
구약의 정결법은 어떤 음식은 먹어서는 안 된다든지,
또 부정한 것을 만지면 며칠 동안 부정해진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런 금지의 규정을 어긴 자들은
레위기와 신명기에 나오는 정결법의 규정대로 그 부정을 씻어야 하고,
그 부정을 씻어 정결케 된 후에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2) 정결법을 자기들 임의로 만든 바리새인 : 유대인의 전통(2~3절)
그런 정결법 중의 한 가지가
밖에서 들어올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는 일입니다.
본래 손을 씻는 것은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치기 전에
성전에 있는 물두멍에 담긴 물로 손을 씻는 것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일반 백성들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는 것으로 확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를 집전할 때에 손을 씻는 것만 있고,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는 것은 유대인의 장로들이 임의로 만든 그들만의 전통입니다.
3) 정결법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바리새인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는 행위는 위생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씻는 데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점차 이 규정을 십계명과 같은 계명으로 정하더니,
나중에는 이 계명을 어기면 다른 모든 계명을 지켜도 소용없는 것처럼
그들의 이 전통을 다른 계명보다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은 도저히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손을 씻는 규정을 아주 복잡하고 까다롭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장로들의 전통을 복잡하고 까다롭게 한 이유는
자기들만이 거룩한 자들임을 과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야만 자기들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임을 과시하여
백성의 지도자로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결법을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는 손을 씻는 일을 통해 사람이 거룩해진다고 했고,
손을 씻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처럼 절대적인 규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이 손을 씻는지를 감시하는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4) 바리새인의 허위의식을 지적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이런 허위의식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11절).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입으로 나오는 것이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17~19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거짓된 가짜 거룩에 조심하십시오.
1) 손을 씻는 행위가 당시 유대인에게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이었나?
랍비 요세는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간음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랍비 아키바는 투옥되어 손 씻을 물과 식사와 더불어 마실 물을 받았는데,
그만 잘못하여 씻을 물을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는 마실 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손을 씻으면서 말하기를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하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으니
얼마나 불쾌하게 여겼을까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2) 교회의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분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그 규정을 잘 지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 아니라 자기들이 임의로 만든 규정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할 때 수많은 신앙의 규칙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
인간의 전통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때때로 사람들은
인간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훼손할 수 있으므로
대단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가령 목사님들이 매 주 목사 가운과 함께 목에 걸치는 스툴은
본래 더운 지방에서 땀이 너무 나니까
목에 수건을 걸고 설교를 하던 관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수건이 점점 길어지더니 오늘날의 스툴과 같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 스툴이 마치 목사를 거룩하게 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전통이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인간의 전통을 고집하는 바리새주의에 조심하십시오.
교회가 완고하게 될수록 교회 안에 인간의 전통이 강화됩니다.
그리고 그 전통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감시합니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아닌 단지 인간의 전통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사람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조직이 된다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가까이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떠나시게 될 것입니다.
4) 이런 ‘거짓 거룩’에 걸려 넘어지지 마십시오.
가령 너무 바쁘게 일을 하니 도저히 바리새인들의 복잡한 규정대로
손을 씻고 먹을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을 뿐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을 범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이 단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지옥에나 빠질 중죄인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신령한 영을 가졌음에도
자기는 천하에 못된 죄인이라 여기고 아예 믿음 생활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된 가짜 거룩이 가진 위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은 인간의 전통을 이렇게 강조하면
죄인이 의인으로, 의인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고,
어떤 사람은 좋은 믿음을 가졌음에도 스스로 죄인으로 여겨
아예 믿음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만드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는 인간 전통의 수호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내가 고집하고 있는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인간의 전통인지를 점검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특히 당회원들)은
죄를 범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죄를 범하도록 가르치는 일임을 명심하고,
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계명의 말씀인지
아니면 바리새인들처럼 단지 교회의 전통에 불과한 것인지를 잘 구분하여야 합니다.
3. 말씀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씻지 않고 먹었으니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고 공격한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인간의 전통을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 한 예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르반)’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께 바친 예물을 건드리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바친 사람이 되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이 물건은 고르반입니다(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 된 것입니다)”라고 하면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 됩니다.
고르반을 악용하는 예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입니다.
1) 빚을 갚지 않거나 받으려 할 때
채무 관계에서 빚을 갚지 않기 위해
‘그 돈은 '고르반이 되었다' 즉 '그 돈을 하나님께로 바치기로 했다’라고 하면
그 돈은 하나님께 바쳐진 돈이 되므로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빌려준 그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없게 됩니다.
또 반대로 빚을 받아내기 위해
그 빚을 ‘고르반 되었다’, 즉 ‘그 돈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고 하면
그는 하나님께 빚진 것이 되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만일 채무자가 이 말을 듣고도 빚을 갚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것을 강탈한 것이 되므로 어떻게 해서든 돈을 갚게 됩니다.
이 경우 채권자는 성전에 소액의 금액만 지불하고 그 돈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돈을 받아내기 위해 고르반이라고 선언하고는
아주 적은 돈만 형식적으로 헌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갈취하는 것입니다.
2) 부모를 공양하지 않으려 할 때(4~6절)
또 ‘고르반 되었다’고 하면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보다 하나님 섬기는 것이 우선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봉양하기 싫을 때 ‘고르반이 되었다’고 말하고는
하나님께 바치지도 않는 것입니다.
● 묵상 : 이 외식하는 자들아!(7절)
➀ 욕심을 감추기 위해 계명을 사용하는 허위의식
이처럼 하나님께 바친 물건(고르반)이라고 선언하고는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이런 행태를 가리켜
예수님은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는 외식하는 신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존경하고 마음은 주님께로부터 먼 자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이 사람의 계명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입술로만 이 물건은 고르반이라고 말하고 실제로는 바치지 않으면
그 사람 본인이 바친 물건이 되어 지옥 자식이 됩니다만,
이들은 지금 당장 그 물건을 남에게 주기 싫은 것만 생각할 뿐
나중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➁ 적당히 눈속임으로 신앙생활을 하려하지 마십시오.
적당히 눈속임으로 거룩한 자인 척 하고
실제로는 내 잇속을 챙기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속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십니다.
4.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14절)
제자들이 왜 공연히 권력 핵심층의 심기를 건드렸느냐고 예수님께 힐난하듯 아뢰자
예수께서 그들을 가리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길을 잘 알지 못하는 자가 남을 인도할 직책을 가졌으면
그 자신은 물론 그를 따르는 자들까지 저주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남을 인도하는 직책을 가진 자들은
주께서 인정하시는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늘 연구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또 인도를 받는 일반 성도들은 나를 인도하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신앙의 지혜와 질서를 바로 알게 되기를 기도함으로 후원하여주십시오.
다른 것은 실수할 수 있지만
구원의 길에 있어서는 결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번 심판을 받으면 그것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한 교회의 지도자가 믿음의 길을 바로 가르치는
바른 지혜를 가진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나도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갖도록 구하십시오.
결국 판단은 내가 하고, 내가 내린 판단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5. 걸림이 된 줄을 아시나이까?
1)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격분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12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격분하여 돌아갔습니다.
예수께서 이리 말씀하시면 그들이 격분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들이 구원의 핵심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였으므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진리의 말씀을 하시는데
그 진리의 말씀을 하셨다는 이유로 실족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실족한 본인의 책임입니다.
2) 우리도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일로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했다면 분열과 다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나로 인하여 가족이나 교회나 기다 다른 공동체가 큰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면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분열주의자나 싸움꾼이라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잘못된 선택이나 성품 때문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신 참된 진리의 길을 걷느라고 생긴 일이라면
우리는 그 분열을 각오해야 합니다.
➠ 묵상 : 싸워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구분하십시오.
그러나 때로 나의 잘못된 판단을 진리라고 우기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근본주의자라고 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키며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하나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과 악행들을 저질렀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언제 싸움을 각오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지,
언제 화평을 위하여 내 뜻을 양보해야 하는지,
언제 말을 하고 언제는 침묵해야 하는지,
언제 도와주고 언제 도와주는 일을 중단해야 하는지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 지혜는 오직 주께로부터 만 구할 수 있습니다. 주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3) 걸림이 된 줄을 아시나이까? ➟ 십자가를 향한 첫 걸음
그러나 예수께 시비를 걸고 온 이 무리들이
당시 권력의 실세들이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들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당시 권력의 핵심층이었으므로
예수님이 조금이라도 십자가를 지시는 것에 부담을 가지셨다면
이 사람들과의 대화를 불편한 방향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자들이 “걸림이 된 줄을 아시나이까?‘하고 아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면 승부를 하셨습니다.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격분하여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돌아가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을 아셨습니다.
결국 이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첫 걸음이 된 것입니다.
● 묵상 :
➀ 당장 시작해야 하는지 잠시 기다려야 하는지를 분별하십시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이라면
본문의 예수님처럼 시련과 압박이 예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나 그전에 내가 하려는 일이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인지를
묵상하고 기도하며 잘 따져 보아야 합니다.
자칫하면 싸움만 일으키는 극단적인 분열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➁ 그냥 내버려두어라(13~14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내버려두어라.”
악한 자의 형통함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악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징계가 없이 형통한 것은
그 자체로 저주이고 심판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최종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보셨다면
징계라도 내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런 악을 행하고 있음에도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은
이미 지옥의 자식으로 규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부러워하십시오.
* 기도제목
1.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시고
우리의 영을 정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주님뿐임을 믿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며 살게 하옵소서.
2. 말씀을 이익의 재료로 삼지 말게 하시고
참된 지혜로 바른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3. 내가 속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