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피카소와 삶은 개구리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양자(楊子)의 가까운 이웃 사람이 양을 잃었습니다. 양의 주인이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양자에게 하인을 청하여 양을 함께 찾도록 청하자 양자가 물었습니다. “아니, 양 한 마리를 잃었는데 어찌 그리 쫓는 사람이 많은가?” 그는 “갈림길이 많아서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윽고 여러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모두 빈손으로 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쫓았는데 어찌 양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렸는가?” 그러자 사람들이 “갈림길 속에 또 갈림길이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단념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양자의 이 고사는 <학문이나 어떤 재주를 배우는 데 있어서 그 본뜻이나 목적을 망각하고 지엽적이고 부수적인 것에 구애를 받게 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뜻으로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중국어 성경에는 오늘 복음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대! 마대! 니위허다적사, 사려번우 단시불가소적지유일건(馬大! 馬大! 你爲許多的事, 思慮煩懮 但是不可少的只有一件)> 그런데 왜 허다(虛多)하다고 하지 않고, 허다(許多)라고 했는지를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마르타가 하는 일이 절대로 헛된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시중들고 손님을 접대하고 이웃에게 봉사하고 하는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두 가지나 더 많은 일을 하다가 모두를 잃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모두 놓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사 때에 신부님이 강론할 때 주보를 뒤적이며 보는 사람이 있고 전화를 꺼놓지 않고, 미사 참례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성지 순례를 갈 때도 피정에 참여해서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지금도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듣는 것도 아주 좋은 기도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고 따라야 합니다. 내 일생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너무 얄팍하게 아주 깊숙이 알기보다 많이 잡학사전처럼 이것저것 손만 댄 것 같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세상에 굴러가는 대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일본의 ‘무라야마 노보루’라는 사람은 ‘피카소와 삶은 개구리’라는 책에서 직장인들의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비유합니다. 이는 직장인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나 우리 신앙인을 분류하는 것 같아서 짧게 소개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변화에 둔감한 <삶은 개구리>형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쇄신과 변화를 두려워해 삶은 개구리처럼 만세를 부르고 꼼짝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우리의 삶도 변화에 대한 모험을 하지 않고 그냥 현재에서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이 같이 지칭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의지할 곳 없이 표류하는 <민들레 홀씨>형입니다. 가벼우니까 멀리 날아갈 수도 있고, 바람결에 따라서 표류하다가 어느 구석에 잔뜩 쌓이는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편승해서 가치관이나 목적도 없이 그냥 물 흐르듯 하는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민들레 홀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유형은 한 분야만을 탐구하는 <다나까>형이 있습니다. 일본의 총리로 유명한 그의 이름으로 그렇게 명명하였는데 어쩌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폭넓게 보고 귀를 열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을 이 사회는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본당 신부님은 오직 교육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하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분도 있고, 전례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한 분야만 열성을 다하여 탐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한 분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도 깨달아야 합니다.
네 번째 유형은 끊임없이 탐구하는 <피카소>형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언니의 말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나 봅니다. 그래서 그분의 발치에 앉아 넋을 잃고 있는 그런 마리아가 참 부럽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님에게 빠져서 그렇게 평생을 살고 싶고 다양한 세상 속에서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고 오직 주님을 찾아서 일생을 살고 싶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셨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1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축일10월 10일 성 다니엘 (Daniel)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 지역 : 모로코(Morocco)
활동 연도 : +1227년
같은 이름 : 대니얼
1227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선교를 위해 파견된 작은 형제회 소속 선교사들이 모로코에서 순교하였는데, 이 선교단은 성 다니엘이 이끌었으며 함께 순교한 선교사들의 이름은 성 사무엘(Samuel), 성 안젤루스(Angelus), 성 레오(Leo), 성 돔누스(Domnus), 성 니콜라우스(Nicolaus) 그리고 성 후골리누스(Hugolinus)이다.
성 다니엘이 이끄는 선교단은 모로코에 도착하여 유럽 상인들이 거주하던 체우타(Ceuta) 근교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에 그들은 서로 고해성사를 받고 서로의 발을 씻겨주면서 기도로써 밤을 지새고, 일요일 아침에 체우타로 들어가서 길거리에 서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출현이 소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들은 '카디' 앞에 끌려갔다. 그는 수도자들의 남루한 옷과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는 미쳤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감옥에 가두었는데, 무어인들은 그들은 마음대로 놀리고 학대하였다.
다음 일요일, 그들은 자신들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 선교사라고 항변하였다. 그러자 무어인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마호메트를 믿으라고 강요하면서 갖은 고문은 자행하였고, 결국은 체우타 성벽 밖에서 그들을 모두 참수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후일 에스파냐로 모셔졌고, 1516년 시성식에서 교황 레오 10세(Leo X)는 성 다니엘과 동료 순교자들의 축일을 성대히 거행토록 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다니엘, 사무엘, 안젤루스, 레오, 돔누스, 후골리누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