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의 성사”
2025.3.1.연중 제7주간 토요일 집회17,1-15 마르10,13-16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시편103,17ㄱㄴ)
오늘은 3월 성요셉성월의 첫날 3월1일이자 삼일절입니다. 올해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 1919.3.1.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났으니 삼일절 10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려보며 조용히 불러보는 삼일절 노래입니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미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4대 국경일 노래를 작사한 분은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위당 정인보 선생입니다.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이런 삼일절 역사를 지닌 구체적 대한민국 사람인 우리들입니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아주 예전 어느 수녀의 말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참사람 하나 만나기 힘든 세상입니다. 극단적 이념에 경도된 광기의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밤중 도착한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글입니다.
“연기처럼 사라질 인생이다.
집착하지 마라.
바람처럼 날아갈 인생이다.
욕심부리지 마라.
한줌의 흙이될 인생이다.
가볍게 살아라.”
허무하고 덧없는 무의미한 인생, 공감이 가지만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얼마전 ‘2024.12.20. 밤7:42분 붓을 들어 2025.1.11.무려 3주만에 탈고했다’는 도올의 ‘상식’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상식이 실종된 시대 상식을 일깨우기 위한 심정에 쓴책입니다. 후반부 내용중 공자와의 주고받은 문답입니다.
“인(仁)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아끼는 것이다.”
“선생님,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아는 것이다.”
“늙은이들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친구들에게는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젊은이들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공자야 말로 우리 예수님과 더불어 참사람의 원형입니다. 이어지는 오늘 옛 현자의 말씀은 황금률을 실천함이 바로 참사람임을 깨닫게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기되는 진리는 황금률이다. ‘나 자신을 대하는 것같이 항상 타인을 헤아리라.”<다산>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논어>
제 책상위에 말씀집 3월 주제는 화광동진(和光同塵; 물들이고 싶거든 먼저 물들어라”입니다. 복음선포에 앞서 복음이 되라는 것이며, 사랑하기에 앞서 사랑이 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모상이자 하느님의 성사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인간의 신비를 해명할 길이 없습니다. 질문만 있고 답이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집회서는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에 대한 해명입니다. 아쉽게도 전문이 아닌 일부만을 인용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을 입히시고,
당신 모습으로 그들을 만드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주시고,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게 하시고,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영원히 찬양하게 하셨다.
그들의 길은 언제나 그분 앞에 드러나고,
그분의 눈앞에서 감추어지지 않는다.”
하느님의 은총 선물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의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동시에 평생 과제입니다. 그분앞에 드러나는 모두의 참사람이 되는 공통의 길은 십자가의 길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참사람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어린이처럼’이 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어린이가 상징하는바 남녀노소 상관없이 열려있고 유연하고 신축적이며, 편견이 없는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 가난하고 깨끗한 이들입니다.
십자가 길의 여정에, 비움의 여정에 충실할수록 이런 천진무구의 어린이처럼 됩니다. 이런 어린이들의 접근에 완고한 마음으로 차단하는 제자들에게 몹시 불쾌해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을 물론 하느님의 모상이자 성사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낍니다. 사실 나이에 관계없이 내면의 인간원형은 순수한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주님 안에 머물수록,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성장 성숙하는 각자 내면의 맑고 순수한 영혼의 어린이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의 어린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들을 끌어 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는 따뜻한 스킨십의 달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안으시고 축복해 주시니 우리의 내면은 치유되어 어린이처럼 날로 개방적이고 순수해집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한없는 위로와 치유가 되는, 내면의 야수를 길들이는 주님 사랑의 따뜻한 스킨쉽을 닮도록 합시다. 이런 사랑의 스킨십의 결핍으로 날로 어두워지고 굳어지며 거칠어지고 사나워지는 사람들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보이셨나이다.”(마태11.29).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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