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날드 트럼프 -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돌풍
이름: Trump, Donald 남자
생년월일: 1946년 6월 14일 10시 54분
출생장소: 미국 뉴욕주 Jamaica, 40n41, 73w48
시간대: EDT h4w (섬머타임 적용)
출처: 출생증명서
양 력: 1946년 6월 14일 09:51
음/평: 1946년 5월 15일 09:51 남자
시 일 월 년
己 己 甲 丙
巳 未 午 戌
癸 壬 辛 庚 己 戊 丁 丙 乙 대운: 순행
卯 寅 丑 子 亥 戌 酉 申 未
87 77 67 57 47 37 27 17 7.1
대운 시작: 7세 1월 10일
현재 나이: 70 세
현재 대운: 辛
미국 뉴욕주에서 탄생.... 부친이 부동산 개발업자... 5 형제 중 네째....
1968년 --- 비지니스 학교 졸업....
1975년 --- 운영난에 빠진 호텔인수....이후 사업 번창....
1977년 --- Ivana Zelníčková 와 결혼
1990년 --- 과팽창으로 무너지기 시작함....
1991년 --- 이혼. 13 년간의 결혼생활 청산. 아이 셋 생산(1978, 1982, 1986 에 생산)....
1992년 --- 7월 전처 Ivana Zelníčková 소송 걸어옴...
1993년 --- 12월 21일 Marla Maples와 두 번째 결혼, 후처와의 사이에서 딸 생산...딸 생일 : 1993년 10월 13일....
1999년 --- 6월 8일 후처 Marla Maples와 헤어짐...두 번째 이혼....
1999년 --- 6월 25일 부친 94세로 사망, 10월 엉뚱하게 대통령 대선 지명전에 출마...떨어짐...
2000년 --- 8월 7일 모친 88세로 사망함.
2004년 --- 트럼프호텔 앤 카지노 파산신청. 최고경영자에서 해고됨.
2005년 --- 1월 21일 Melania Knauss-Trump와 세 번째 결혼, 2006년 3월 아들 배런 출생,
2016년 --- 6월 2016년 대선에 대통령 후보로 공화당 경선에 나설 것을 선언하고 9월 현재 돌풍을 일으키고 있음.
자서전 3 번 발간...1987, 1990, 1997년.... 2015년 현재 40억불 정도의 재산.... 240 미터의 맨하탄 아파트...
3천만불짜리 요트....118개의 방이 있는 저택...
트럼프는 지금까지 4개 회사를 파산신고 했는데 전부 방계회사들로 다음과 같다.
1991년 Trump’s Taj Mahal 파산,
1992년 Trump Plaza Hotel 파산
2004년 Trump Hotels and Casino Resorts 파산
2009년 Trump Entertainment Resorts 파산
사업하는 동안 크고 작은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27세에 거의 돈 한푼 안들이고 뉴욕 허드슨강변의 버려진 철도부지 1백에이커에 대한 독점구매권을 따낸 뒤, 뉴욕시에 컨벤션센터부지로 알선하여 83만 달러를 번 것을 시발로 그후 손대는 개발사업마다 수백억 내지 수천억씩 벌어들여 부동산황제로 등극. 최근 인기상품으로 부상한 주상복합 아파트도 알고보면 트럼프가 20년전인 1980년대 초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트럼프타워’에서 유래한다.
트럼프, 이번엔 매케인 딸에 "화나고 역겹다" 악담(종합)
연합뉴스 | 입력 2015.09.06.
가상대결 서 트럼프 45% > 힐러리 40%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미국 대선판에서 '막말 제조기'로 통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에는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의 딸인 메건 매케인을 비판하면서 악담을 퍼부었다.
공화당 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트럼프는 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어제 (폭스 뉴스) '더 파이브'에 나온 메건 매케인은 끔찍했다. 화나고 역겹다. 그녀는 TV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는 또 "폭스뉴스는 (패널 선정에 있어)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며 폭스뉴스의 패널 선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이는 전날 폭스뉴스 시사프로그램 더 파이브에 출연한 매건 매케인이 트럼프의 '외교무지' 논란을 비판하면서 그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데 대한 반격 성격이 짙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 3일 보수 성향의 라디오 프로그램 '휴 휴잇' 인터뷰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외교 현안과 관련한 기본적인 질문에 동문서답으로 일관해 공개 망신을 당했다.
트럼프의 이번 비판은 폭스뉴스 및 매케인 의원 측과 또 다른 갈등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자신의 '멕시코 불법이민자' 발언을 비판한 매케인 의원에 대해 "전쟁영웅이 아니다.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이라는 것인데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며 조롱해 논란에 휩싸였고, 폭스뉴스와는 TV토론에서 자신의 과거 여성비하 발언을 추궁한 여성 간판앵커 메긴 켈리에게 '빔보'(bimbo: 섹시한 외모에 머리 빈 여자를 폄하하는 비속어) 등의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아 갈등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외교무지를 드러내 공개 망신을 당하고 경호원이 시위대와 드잡이를 하는 등 크고 작은 '악재'가 터져 나와도 지지율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오히려 더욱 공고해지는 흐름까지 보이고 있다.
이날 공개된 '서베이유에스에이'의 전국 여론조사(9월2∼3일·1천 명)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는 가상 양자대결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민주당 주자들을 모두 앞질렀다.
트럼프는 클린턴 전 장관과의 맞대결에서 45%대 40%로 앞섰다.
또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은 44%대 40%, 조 바이든 부통령은 44%대 42%로 각각 꺾었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나설 경우에도 44%대 41%로 이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공화당 후보 지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트럼프는 30%를 얻어 당내 1위를 기록했다. 그다음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20%, 신경외과 의사출신 벤 카슨 14%,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 6% 등의 순이었다.
이는 그간의 여론조사 결과와 대조되는 것으로, 트럼프는 30% 안팎의 압도적 지지율로 1위 자리를 고수하면서도 후보 지명 가능성에서는 부시 전 주지사 등에 밀렸었다.
[분수대] 지워지지 않는 과거
[중앙일보]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 입력 2015.09.09
1885년 16세의 독일 청년 프리드리히 드룸프는 배에서 내려 뉴욕항에 발을 디뎠다. 여덟 살에 부친을 여의고 가난에 시달리다 선택한 길이었다. 고향 카를슈타트(독일 서남부 지역)의 어머니에게는 ‘신세계로 간다’는 쪽지를 남겨 놓았다.
독일의 항구에서는 미국에 여행 가는 것처럼 꾸민 서류를 냈다. 미국에서의 첫 직업은 이발소 ‘보조’였다. 6년 뒤 미국 서북부의 시애틀로 가 작은 식당을 열었다.
입국 7년째인 1892년에 시민권을 신청해 미국 시민이 됐다. 그때 성(姓) 드룸프(Drumpf)를 트럼프(Trump)로 바꿨다. 모은 돈으로 싸구려 여인숙 사업을 시작했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무지갯빛 꿈을 안고 서부로 몰려드는 통에 수입이 짭짤했다. 운영하는 여관과 식당의 규모가 커졌다.
미국 생활 15년 만에 재산을 처분하고 독일로 돌아가 고향 여인과 결혼했다. 그런데 병역회피 등의 혐의로 조사받게 됐고, 강제추방 형식으로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다시 왔다. 숙박업으로 더 큰돈을 모았고,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 트럼프의 장남 프레드는 부친의 재력을 기반으로 부동산 투자 사업을 했다. 그의 부인 메리 앤은 스코틀랜드의 어촌 출신인데 1930년대 초반 뉴욕에 왔다가 프레드의 눈에 띄었다.
메리 앤이 뉴욕에 온 것을 트럼프의 집안에서는 ‘잠시 놀러 왔던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기근을 피해 이민을 시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프레드와 메리 앤의 아들이 바로 미국에서 연일 “불법 이민자를 몰아내겠다”고 외치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며 미국에 정착, 다른 이민자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팔아 재산을 일구기 시작한 이의 자손이다.
그의 혈관에는 미국의 주류인 앵글로색슨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 게르만과 켈트가 섞인 혈통이다.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래도 있지만 과거는 역사고, 역사는 없던 일이 되기 힘들다.
한국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한 시리아인은 1994년부터 지난 5월까지 713명이다.
내전 뒤에 부쩍 늘어나 2013년과 지난해의 신청자가 총 500명이 넘는다. 그런데 3명만이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전쟁 때 유엔은 ‘한국재건단’을 꾸려 구호활동을 벌였다. 많은 전쟁고아가 해외로 입양됐다. 당시 40개국이 구호물자 지원에 나섰는데 시리아도 그중 한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