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발견 (15) 너 발 장대
아내가 전라도로 시집와서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이 말(言)을 통한 문화다. 경기도 사람이 느닷없이 전라도로 시집와서 전라도 말과 살아야 하니 그 문화적 충격이야 오죽 하겠는가?
[지금부터 나는 순수한 내 고장 말(내가 나고 자라고 살면서 쓰는 말)로 쓸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은 문화적인 충격이라 여기고 과히 불평하지 마시길 바란다]
아내가 시집와 각고 시집살이를 헌디 내 친구의 어메 이자 우리 어메의 친구이신 분이 끼니때가 지나서 오셨드라고 그랑깨 아내가
“오셨어요? 어떻게 점심 준비 할까요?”
“아녀.... 아녀... 묵고 왔어... 시상에 서경(석영)이 각시가 말씨도 참말로 얌전시리 허는 그마이....”
“야야 아까 묵던 찌개가 마싯드라... 점심 잡사써도 한 숱 갈 뜨시게 상좀 차리라이....”
“아녀..... 아녀.... 됐어.... 됏땅깨 짬말로... 그래쌌내이~”
결국 아내는 상황파악이 힘들어 쪼르르르 달리와서 어척게 해야 허냐고 묻드만.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여그서는 않무것서도 무것다 허고 무것다고 해도 무그라고 허고 그러는거싱께 그냥 점심상 바다 드리라고 그래가지고 정히 안드시믄 다시 치우믄 댕깨 당신이 수고좀 혀”
그랬드만 얼라 아내가 놀라 자빠저 부따내.... 기엉코 점심을 잡샀다고 허신 양반이 상을 바다 드링께 밥 한 그릇 다 드시고 한 그릇 더 드시더라고....
“아니.... 점심을 안 드셨으면 내가 점심을 아직 안 먹었으니까 수고스럽지만 점심상 좀 바다 주소... 그러시면 되지 복잡하게 겉으로는 무것다 무것다 하시면서 속으로는 밥 상 좀 차려오너라 하신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사셔? 도대체 그런 문화는 어디서 온 거야? 이런 문화는 개선해야 될 문화 아냐?”
성격이라고 헐 수도 있고 문화라고 헐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뭐시라고 헐 수도 있것지 마는 이곳이 좀 그렇다. 상고 이래로 국경지대였고 군사이요충지였던 곳이 이곳 운봉을 지나는 24번 국도고 지리산이다.
군사 이동의 길목이였던 여그는 가야와 백제, 백제와 신라. 후백제와 신라 고려와 왜적 동학란과 외세 625동란과 빨치산으로 대립하였고 가깝게는 80년대 경상도와 전라도로 대립을 허였다.
내가 그때는 나이가 어렸어도 또렷이 그억 헌다. 참말로 무섭게들 싸웠다.
고노무 선거철만 되믄 민정당 사람들 못 자바 무거서 한이고 민정당 사람들 전라도 놈들은 다 빨갱이라고 욕 허고 말도 전라도 사람들은 민족을 잡아무근 죽일 놈들이라고 삿대질을 해 댔지만 사실은 고개 하나 너머 사람들이었고 선거 끊나믄 바로 이웃집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속내를 감추고 겉말과 속말이 달라븐건 당연 지사재, 왜냐하믄 밤과 낮이 다르고 이웃이 곧 적잉께.
그라고 못 묵고 못 입는 세상에 다 가치 산디 머 무굴거시 있다고 넙죽 넙죽 묵는다고 헐 수는 없는 거시고 그러니 이집에 쌀이 없으믄 어쩌끄나 시퍼서 쉽게 밥 달라는 말을 못 허는 거시고 저 냥반이 끼니를 노치고도 우리 집 쌀 생각 혀서 무것다고 헝갑다 시픈께 쉽사리 권 허는 밥상을 물리지 못 허는 거시고 그러는 거신디 경기도에서 나고 자라서 시집온 아내가 여그의 아픔을 알 리가 업는 거슨 당연지사재이......~
“에미야.... 여그 덕석 뭉끄게 사네끼 서너 발 가져 오니라이”
“석영씨 덕석은 머고 뭉끄게는 머고 사네끼는 머고 서너 발은 머야?”
“응 덕석은 멍석이고 뭉그게는 묶는다는 말씀이시고 사네끼는 새끼줄이고 서너 발은 두 팔을 벌려서 잰 길이의 단위인데 한 발이 1미터 50정도 되는 거거든 그런 단위가 서너개 그러니까 세 개에서 네 개정도의 길이 즉 450미터에서 600미터 정도 길이가 되는 새끼줄을 가져오라는 말씀이야...”
지금 나가 글을 씀서도 참말로 아라 듣기 힘든 말이다 싶지만 어쩔 거시여 내 고향 마을에서 나고 내 고향 마을에서 돌아가신 우리 어메가 표준말을 배우고 쓸 수는 없는 거시고 내가 충실한 통역 역할을 허고 아내가 이곳 말을 배우고 문화를 익히는 거시 상책이재.....
근디 우리 어메가 외롭고 곤궁할 때를 말씀 허실 때는 ‘너 발 장대(600m대나무 장대) 휘둘러 걸리적 거리는 놈 하나 없고..... 맨 노무 제비 새끼들만 아가리 벌리고 쪽쪽쪽 거리싼디 하이고 그런 시절을 어띠 께 사라 나왔으까이.... 느그 아부지 의용대로 군대로 끌리 가고 빨갱이는 저녁마다 와 싹고 국방군은 나제만 와서 지랄을 떠러 싹고 참말로.... 피런 허고 뒷산 소나무가 깨대기를 버서각고 겨울에 베서 땔 나무가 업서...’
너발 장대가 얼매나 긴지 몰라도 지금이사 그런 말을 누가 알아 듣간디 하지만 서도 우리 어메가 참말로 유식 헌 말을 혔당깨
‘너발장대 휘둘러도 걸리 적 거린 놈 하나 업고 처먹을 놈들은 제비새끼 마냥 입 벌리 싼디 그런 시월을 어띠께 사라 나왔으가이.’
안그려? 너발 장대라는 말이 나는 참말로 좋단께 그리서 나는 친구가 좋아 너발장대 휘둘르믄 여그 저그 걸리적 거릴놈들 만응깨 말여
그나저나 오늘은 어떤 씨벌놈을 붙들고 술한잔 무글끄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