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산 산행기-시공을 넘어서
석하 정 용 수
2005년 늦은 봄이었던가?
무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해룡님(산구름)과 고실(안인순)님의 권유로
사량도 지리망산을 다녀오고 부터이다
가평의 축령산 기슭에서 태어나 산이라면 몸서리 날 법도 하건만,
산에 심취하는건어쩐 일인가
처음엔 아무런 생각없이 소일거리로 오르던 것이 오르면 오를수록
산의 겉 모습보다는 그곳에는 무언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계절과 그 날의 느낌에 따라 천태만상의 감상을 전해주고 다양한 색갈로
포근히 감싸주는 산!
오늘은 남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이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 달리다
충주호 부근의 월악과 충청의 명산 속리를 어깨동무하고 있는
영남의 관문 조령산을 오르는 날이다
우리에게는 '문경 새재'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곳이다
7:45분!
아차산역을 출발한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검은 구름이 오늘의 일정을
염려스럽게 하지만, 간간이 열린 하늘로 햇빛에 반사되어 검 붉게
물든 구름이 황홀하기만 하다
중부 고속도로를 거쳐 얼마를 더 달려 구곡양장의 이화령 고갯길을
힘겹게 오르는 차창으로 빗 방울이 부딪혀 산발하고 있다
산행을 걱정하는 산우들의 표정이 역력하다
9시 50분!
산행은 예정시간 보다 조금 이르게 시작되었다
조붓한 산허리를 따라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등산로 길 섶엔
들국화의 노란 미소가 살갑다
그런 감상도 잠시, 성치 않은 무릎이 걱정이다
먼 옛날,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면서 힘겹게 넘나들던
선비들의 애환을 느껴 보고 싶어 따라 나서긴 했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그런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20여분 올랐을까?
숨이 차고 등어리가 촉촉이 젖어온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참고 견디며 양손에 쥔 스틱에 체중을 실어가며 오르다 보니 헬기장이다
이제는 잠시 쉬어 갈 만도 하건만, 산우들은 안개 낀 등산로를 따라 걷기를
재촉하고 있다
순간! 산우들이 야속한 생각마져 든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골짜기를 따라 불어와 능선을 넘는 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얼마나 걸었을까?
숨 고를 틈도 없이 산우들의 뒤를 쫒다 보니 하늘이 훤히 트인다
삼거리 길이다
정상까지는 1km라는 이정표의 안내다
삼거리에서 왼쪽능선을 따라 20여 미터 윗쪽엔 은색 파이프를 통해
흐르는 샘물이 산우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준비 되어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에 코를 박고 마시는 그 맛,
힘겹게 오른 산행이어서인지 상쾌한 맛이 한 여름의 아이스크림 보다
더 시원하다
잠시 지쳐있는 몸을 추스려 제법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니
신풍리,이화령,조령산 정상으로 갈리는 두 번째 삼거리다
이정표에 의하면 조령산 정상까지는 약 20분이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이젠 서서히 허기까지 밀려온다
그렇다고 쉬어 갈 수도 없는 일....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좁다란 능선 숲 길 양 옆은 아득한 벼랑이다
벼랑위엔 수령이 100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노송들이 긴 허리를 숙이고
산 아래를 굽어보며 호령하는듯 서 있는가 하면, 하늘을 찌를듯이 치솟은
거목아래, 키 작은 소나무도 보인다.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다
자연의 역사가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간간이 바위가 어우러진 북쪽 사면의 산수화같은 풍광을 따라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 정신없이 걷다보니 조령산 정상이다
잠시 '백두대간 조령산'이라 음각으로 새겨진 자그마한 정상석앞에서
사진촬영을 마치고 사위를 둘러본다
짙은 안개는 주흘산과 멀리 월악산, 속리산의 연봉들의 모습을
감춰 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붉게 물들며 완연한 가을색으로 치장을 서두르는 정상을 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정상에서 주흘산 방향으로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꿀맛같은 식사 즐긴다
5~6명씩 모여 앉아 저마다 준비한 간식을 펼쳐 놓으니 언제나 처럼 진수 성찬이다
찐 고구마, 과일, 오곡 밥, 떡, 각종 과일주 등등.....
발 길을 되돌려 왕건 세트장이 있는 남쪽방향의 가파른 너덜지대로 내려선다
산행 경험에 미루어 언제나 내려가는 길이 무릎에 부담을 주는 법.
가파른 너덜지대를 조심스레 내려서니 다래넝쿨, 산목련, 참나무, 물푸레,
단풍나무가 울창한 숲에는 부채살 모양의 고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흡사 지난 여름, 안개 낀 중원산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다리는 아파오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호젓한 숲속길을 얼마를 더 내려오니 멀리서 졸졸거리는 계곡물소리와
끊어질듯 이어지는 섹스폰 소리가 들려온다
제법 수량이 많아진 작은 소에 도착한 우리는 이희문 산우의 하모니카 연주와
세족으로 피로를 푼다
주변을 돌아보니, 안개에 촉촉히 젖은 돌이며 나무는 흡사 목욕탕에서 갓 나온
여인네의 모습이고 상큼한 공기에는 가을 숲의 진한 향기가 배어 있다
고개를 돌려 계곡 아래 1관문 쪽 낮은 구릉을 보니 한줄기 안개가 피어오른다
마치 숲의 요정이라도 나타날 듯한 분위기다
산행에 지친 피로가 어느듯 말끔히 사라지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특히 계곡물은 그 투명함과 푸르름이 유별났다.
유유자적 노니는 물고기의 유영을 보고 있노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조금 더 내려서니 마사토로 다져진 제법 넓다란 길이 나온다
바로 조령 제 1관문에서 3관문으로 연하는 길이다
무주암(임자없는 돌,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라는 뜻)을 지나니 길 왼편으로
조령원터가 우릴 반긴다
조령 1,2관문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새재를 넘는 옛날 관리들의 숙식터로서
오랜 세월이 흘러 남루해 지긴 했지만 옛 선비들의 모습을 떠 올리며
깊은 감상에 젖게하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 뿐인가
울창한 숲길은 왕건의 의형제이자 고려 건국의 1등공신이었던
신숭겸이 백제군을 토벌하기 위해 넘던 모습, 임진왜란 당시 충주 방향으로
북진하는 왜병도 상상속에서 만날 수 있었으며,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보러가던
영남 선비들의 모습도 시공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감상에 젖어 잘 정비된 신작로를 따라 '태조 왕건' 세트장을 지나
조금 내려오니 조령제1관문인 주흘문이다
성벽안에는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가 한 여름 녹색 베일을 떨구고
그 특유의 붉은빛으로 인간들을 유혹하고 있다
문득, 뒤 돌아서 조령의 준봉들을 바라본다
안개속에 숨어있던 조령의 기품있는 암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충격적인 신비로움이었다
옅은 안개속의 신비로운 봉우리들이 오른 쪽 주흘산과 함께 아스라이 와 닿는듯 하다
사진이나 T,V에서만 보아오던 중국의 계림이나 베트남의 하롱베이는 아닐지라도,
그와 비견되는 황홀한 경관이 시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알량한 나의 필설로는 단 한줄도 읊을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조화로운 대 자연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고 숙연해질 따름이다
16:00!
주차장에 도착해 배추국과 고기볶음으로 식사를 마친 산우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차에 오르니 산행으로 인한 여독이 여지없이 밀려온다
소란스런 분위기임에도 달콤한 수면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또 하루를 마감하는 서쪽 하늘에 커다란 불덩이를 하나 올려 놓고 있었다
20081005
첫댓글 즐거운 시간들이 었네요 사진과 어울려 해설 역시 아주 좋고요 안간 이사람도 다녀온 듯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석하님..무릎 괜찮으세요..? 회원님들과 함께한 산행 즐거워답니다..분위기도 좋고...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정상에서 맛있는 간식과 웃음 즐거움 벌써 그리워집니다 석화님 수고많이 하셨어요 좋은글과 좋은 사진 잘 보고갑니다.....
오랜만에 회원님들 만나서 정말 반가웠구여 즐겁고 행복한 산행 이었습니다~~ 석하님! 무릎 때문에 고생 하셨는데 산행기까지 써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무릎 빨리 나으시길 기도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