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그럼요. 기억하고 말고요.
너는 내 대답들이 심히 의문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렸느냐? 너는 내가 그 문제
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을 거라고 믿기 힘들다는 걸 알아차렸는가?
전 그런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는데요. 그 대답들을 그냥 읽었을 뿐인데요.
그럼에도 너도 알다시피, 나는 언제나 내 대답들을 네 질문의 문맥 속에 놓
곤 했다. 다시 말해 네가 이러저러하게 되거나 하기를 바란다고 할 때, 그렇
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맥 속에. 나는 그런 식으로 네게 그 방
법을 보여주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러셨죠.
나는 지금 여기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신이 그런 걸 말하리라고 믿는 것보다는 이
런 걸 말하리라고 믿는 게 더 어렵군요.
내가 여기서 이야기한 것들에 동의하기가 더 어렵다는 걸 깨달은 건 아니고?
저......
네가 그래서 그런 거라면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상관없다고요?
당연히.
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겁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벌레처럼 짓뭉개기라도 할 것 같으냐?
사실 전 아직 그 정도로 멀리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봐라,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고 난 이후로 계속해서 세상은 내게 동의하지
않아 왔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신의 방식'대로 행동해온 사람은 거의 없
었다.
그건 사실일 겁니다.
너는 그게 사실이라고 장담해도 좋다. 몇천년에 걸쳐서 몇백명이나 되는 스승
들을 통해 너희에게 남겨준 내 가르침들을 사람들이 따랐다면, 세상은 지금과
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가 지금 내 의견에 동의하
고 싶지 않거든, 계속 그대로 밀고 나가라. 게다가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뭐라고요?
게다가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했다. 오, 이런...... 어차피 네가 이 모두를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 않느냐?
당신 말씀은 제가 이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아, 미안. 잠시 그 자리에 멈춰라. 네가 그 중 상당부분을 놓쳐왔다는 뜻이
었다. 다시 한 문단 뒤로 돌아가서 이렇게 바꾸자. 어차피 너는 이 모두를
너 나름으로 편집하고 있지 않느냐?
아, 그거 다행이군요. 사실 저는 한동안 거기에서 어느 정도 실제적인 지침들을
얻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네 감정을 따르라는 것이 네가 얻고 있는 지침이다. 네 영혼에 귀를 기울이
고,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라. 내가 어떤 선택사항이나 견해나 관점을 네
게 제시하더라도, 네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전혀 없
다. 만일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동의하지 마라. 바로 이것이 이 훈련의 유일
한 목적이다. 다른 것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네 의존을 통째로 이 책에 대
한 의존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네가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스스
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이 순간
의 '나(神)'다. 나는 생각하는 너다. 나는 소리내어 생각하는 너다.
이 자료가 '가장 높은 출처'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말씀인가요?
물론 그것은 '가장 높은 출처'에서 왔다. 하지만 네가 아직도 믿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가장 높은 출처'는 바로 너라는 점이다. 그리고 네
가 아직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그 모든 걸,
네 삶의 모든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창조하는 것도 너라는 점이다.
네가...... 바로 '네'가...... 그것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 네가'.
그러니...... 순전히 정치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중에서 네 마음에 들지 않
는게 있는가? 그렇다면 그 대답을 바꿔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네가 그
것을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며, 어떤 것에 대한 네 지금
생각을 네 다음번 생각보다 더 중요하고 더 타당하고 더 질실되다고 단정하
기 전에.
네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언제나 네 새로운 생각임을 잊지 마라. 언제나 그
러함을.
자, 이제 우리의 이 정치 토론에서 네가 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냈
느냐?
저, 아닙니다. 늘상 그랬듯이 전 기본적으로는 당신에게 동의합니다. 다만 이 모
든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던 겁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라. 이해가 안 가느냐? 너희가 삶을 꾸려가는 방식
이 본디 이렇다!
좋습니다. 그래요...... 이해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계속햇으면
하는데요. 그게 어디까지 갈지 보기 위해서라도요.
좋다, 그렇게 해보자.
당신이 말씀하시려던 건.....
내가 말하려던 건 계몽된 사회들에서는 사회 자체의 공동선(善)을 위해 쓰도
록 자신이 받는 것(너희가 '수입'이라 부르는 것) 중에서 일정량을 떼놓는
게 꽤 흔한 관습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너희 사회를 위해 검토해온 그 새
로운 체제 하에서도 사람들은 해마다 벌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벌겠지만, 자신
들이 번 것을 지니는 건 일정 한도로 제한될 것이다.
어떤 한도요?
모두가 동의한 임의적인 한도.
그렇다면 그 한도를 넘는 건요?
세계 자선신탁에 기부자의 이름으로 기부될 것이다. 그래서 온 세상이 기부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 중 60%의 사용처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권을 가질 것
이기에, 그 돈의 상당 부분을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만족을 느낄 것이다.
나머지 40%는 세계연방이 입법화하고, 그것이 관장하는 정책에 배당될 것이다.
사람들이 일정 수입 한도 이상으로 얻는 것은 모두 그들 손을 떠나리라는 걸 알
때, 그 사람들을 계속 일하게 만드는 동기는 어떤겁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이 자
신의 수입 '한도'에 일단 도달하더라도, 도중에 멈추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냐? 그들이 멈추도록
내버려둬라. 세계 자선 신탁에 기부할, 수입 한도를 넘어서는 강제노동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 군수물자의 대량생산을 청산함으로써 절약되는 돈만으
로도 모든 사람의 기본 욕구른 충분히 충족될 테니까. 그 같은 절약에다 전
세계 소득의 10%인 십일조를 더한다면, 선택된 소수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새로운 존엄과 풍요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합의된 한도를 넘
어서는 소득분의 기부는 모두에게 광범한 기회와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기에,
질투라든가 사회적 분노 같은 건 사실상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 일부 사람들은 일하길 그만둘 것이다. 특히 자신의 생명활동을 진짜
노동으로 보는 사람들은. 하지만 자신의 생명활동을 순수한 기쁨으로 보는
사람들은 결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일거리를 가질 순 없죠.
아니다. 모두가 그럴 수 있다.
일터에서의 기쁨은 직무와 전혀 무관하다. 그것이 관련이 있는 건 오로지 목
적뿐이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려고 새벽 4시에 잠이 깨는 어머니들은 이 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녀는 아기에게 콧노래를 불러주고 아기를 어른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는 전혀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을 진정한 기쁨으로 만드는 것은 하는 일에 대한 그녀의 태도이며, 그 일
에 관한 그녀의 의도이며, 그 일을 하는 그녀의 목적이다.
나는 모성에 대한 이같은 예를 예전에도 사용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
랑이야말로 이 책과 이 삼부작에서 이야기하는 개념의 일부를 너희에게 이해
시켜줄 만큼 그것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한 잠재소득'을 없애버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인
간이 가장 위대한 기회 중 하나, 가장 영광스런 모험 중 하나를 체험할 기회를
빼앗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너희는 여전히 어리석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 기회와 그런 모험을 가
질 것이다.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소득의 최고 한도는 아주 높을 것이다. 보
통사람들...... 열명의 보통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액수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벌 수 있는 소득액에는 제한이 없을 것이다. 단지 개
인 소비를 위해 지니는 액수가 제한될 뿐이다. 그 나머지, 예를 들면 연간
2,500만불(이것은 논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사용한 지극히 임의적인 수치이
다)이 넘는 나머지 모두는 인류 전체를 이롭게 할 정책과 사회보장에 쓰일
것이다.
그 이유? 왜 그래야 하느냐고......?
지닐 수 있는 소득의 최고 한도는 이 행성의 의식이 바뀌었음을 말해주리니,
즉 그것은 삶의 가장 고귀한 목적이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하는 데 있지 않고,
가장 많은 선을 행하는 데 있다는 깨달음을 반영할 것이며, 사실 부를 나누
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끈질기고 노골적인 사회 정치적 딜레마들
을 이 세상에 만들어낸 가장 큰 단일요소였다는, 그에 연이은 깨달음을 반영
할 것이다.
부, 다시 말해 무제한의 부를 축적할 기회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초석인데요.
지금껏 세상이 알아왔던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회를 만들어낸 자유기업과 자
유경쟁 체제 말입니다.
문제는 너희가 진짜로 그렇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아니요, 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한 겁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끔찍한 망상에 사로잡혀서 너희 행성의 지금 현실이
어떤지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상위 1.5%가 하위 90%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부를 지니고 있다.
또 제일 잘사는 83만 4천명의 순소득이 제일 못사는 8,400만명의 순소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1조달러에 육박한다.
그래서요. 그 사람들은 그만큼 열심히 일한 것 아닙니까?
너희 미국인들은 계급 지위를 개인이 노력한 결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출
세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걸 보고 너희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그런 식의 관점은 너무 단순하고 유치하다. 그런 관점은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는 걸 전제로 하지만, 사실은 멕시코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움켜잡고 어
떡하든 그것을 더 늘리려고 애쓰고 궁리하는 판이다.
그래서요? 그게 뭐 잘못된 겁니까?
그들은 경쟁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진정한 기회를 제도적으로 최소화하며,
부의 흐름과 성장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그렇게 한다.
그들은 온갖 방안을 짜내 이 일을 해낸다. 전세계의 가난한 대중을 착취하는
불공정 노동행위에서부터, 신참자가 성공 '대열'에 끼어들 기회를 최소화하
는(그리고 거의 없애는) 상류층 인맥이라는 경쟁 관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안을 다 짜내서.
그러고 나면 그들은 대중을 규제받고 통제되고 복종하는 상태로 더 확실히
놓아두기 위해 전세계의 공공정책과 정부정책들을 통제하려고 애쓴다.
전 부자들이 이렇게 한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 대부준은요. 아마 이런 음
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소수일 겁니다. 제 생각에는요......
대개의 경우에 그렇게 하는 것은 부자들 개개인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하는
주체는 그들이 그 대표로 있는 사회체제와 제도들이다. 그런 체제와 제도들
을 만든 사람들이 부유하고 권력있는 자들이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지탱하는
사람들 또한 그들이다.
부자들 개개인은 그런 체제와 제도들 배후에 서 있기에, 부유하고 권력있는
자들 편에 서서 대중을 억압하는 상황에 대한 모든 개인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의료보장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몇백만에 달하는 가난한
미국인들이 예방 차원의 건강 진료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개인 의사를 가리키면서, "이건 당신이 할 일이다, 이건 당신 잘못이다"고
말할 수 없다. 지구상의 가장 부자 나라에 사는 몇백만명의 사람들이 응급실
의 음산한 계단을 통하지 않고는 의사를 만나러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것이다.
어떤 개인 의사도 이 때문에 비난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의사가
이득을 보는 것이 사실이다. 의료직 전체와 관련 산업 전체가 가난한 노동자
층과 실업자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제도화한 의료보험제도로 유례가 없는 이
윤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체제'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
게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는 단지 한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사회구조들을 지탱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모든 실제적
노력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이라는
데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참된 기회와 진정한 존엄을 제공하려는 모든
정치 사회적인 접근을 가로막는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 상당수가 개인으로 놓고 보면, 남들 못지 않은 자
비와 동정심을 가진, 확실히 꽤 괜찮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연간 소득한도처
럼 그들을 위협하는 견해를 제시해보라(설령 연간 2500만불처럼 황당하게 고
액의 한도라 해도). 그러면 그들은 개인 권리의 박탈과 '미국 방식'의 손상
과 '동기의 상실'에 대해 떠들어댈 것이다.
하지만 굶주리지 않을 만큼의 음식과 추위에 떨지 않을 만큼의 의복을 지니
고, 최소한이나마 그럴듯한 환경에서 살 모든 사람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사람들이 어디서나 적절한 진료를 받을 권리, 돈 있는 사람이라면 손가락 하
나 까딱하는 걸로 쉽게 넘어갈, 사소한 합병증으로 고통받거나 죽지 않을 권
리는 어떻게 되는가?
말로 다 못할 만큼 가난한 대중들이 계속해서 체계적으로 착취당하면서 만들
어내는 노동의 과실을 포함하여, 너희 행성의 자원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의 소유이지, 그 같은 착취를 해낼 만큼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만의 소
유가 아니다.
자, 그런 착취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보라. 먼저 너희 부유한 산업
자본가들은 아무 일거리도 없고, 사람들은 궁핍하고, 존재하는 건 적나라한
가난뿐인 국가나 지역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곳에 공장을 세워 가난한 사
람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한다. 대개 하루 10시간, 12시간, 심지어 14시간짜리
일거리를, 인간 이하는 아니라도 기준 이하의 임금으로. 자, 잘 들어라. 이
임금은 그 노동자들을 쥐새끼가 우글대는 자기 마을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큼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먹을 것도 잠자리도 전혀 갖지 못하는 것과는 대
조되는 그런 식으로 살기에는 충분하다.
이런 점을 지적받으면 이 자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봐, 그들은 이전보
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안 그래? 우리가 그 사람들 팔자를 바꿔준 거야!
이제 그 사람들에게는 일거리가 있어. 보라구, 우리가 그들에게 기회를 준
거야! 그리고 우리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있어!"
하지만 한 켤레에 125불씩 받고 팔 운동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시간당
75센트를 지불하는 데, 도대체 얼마나 큰 위험이 있는가?
이런 게 과연 순수한 의미에서 위험 감수이고 개발인가?
이 정도로 추잡한 체제는 오직 탐욕으로 굴러가는 세상, 인간 존엄이 아니라
이윤폭이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인 세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그 농민들은 멋지게 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급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을 던지긴 하지만, 그
사람을 뭍으로 끌어올리려 하진 않는다. 그러고 나서는 돌덩이보다야 밧줄이
나은 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이 '가진 자들'은 사람들을 참된 존엄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
의 '갖지 못한 자들'을 의존상태로 만들기에 딱 좋을 만큼만 준다. 평생 그
들을 진실로 힘 있게 만들기에는 충분치 않을 만큼만. 누구나 참된 경제력을
가졌을 때는 그냥 '체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마련이지만, 그 체제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절대 원하지 않는 게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음모는 계속된다. 대다수의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행동
하는 음모가 아니라 침묵하는 음모이다.
그러니 이제 가라, 너희 길을 가라. 가서 기업 책임자에게 음료수의 판매 증
대에 대한 보너스로 7천만 달러를 지급하더라도, 7천만에 달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음식은 물론이고, 그 음료수를 마셔보는 사치 따위는
허용치 않는 사회경제 체제의 추잡성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어라.
그것의 추잡성을 보지 마라. 세상의 '자유시장 경제'란건 이런 거라고 하면
서, 너희가 그것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모두에게 말해줘라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너는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그는 많은 재산을 가졌기에. ([마태오 19:21-22] - 옮긴이)
* 음악 - 자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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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예..
물질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구조들이 대부분이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