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니 영성의 집에 여러 자랑거리가 있지만..
영성의 집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은 큰 자랑거리입니다.
영성의 집을 처음 시작했던 조필립보 신부님이
각 처 마다 신자들의 봉헌을 받아 만드신 십자가의 길..
각 처에는 봉헌자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겟세마니에는 내일 피정이 있습니다.
피정 프로그램 중에 공동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봄비에 어느새 풀들이 많이 자라..
꼭 배~암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예초기를 지고 풀을 잘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시퍼런 칼날이 마구 돌아갈 때는 무섭기도 했는데..
조금 익숙해지니까.. 할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멍청하게 풀만 자르지 말고..
십자가의 길 각처의 묵상들을 하면서 풀을 자르면...
기도도 되고.. 지루하지도 않을 듯 했습니다.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풀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생명인데,
사람 보기에 불편하다고 예초기로 열심히 자르고 있습니다.
저로인해 사형선고를 받는 풀들에게 미안하고..
혹시나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연이나 동물, 사람을 해한 일이 없는지 반성해 봅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는 십자가를 지시고 이길을 걸으셨지만,
저는 얘초기를 매고 이길을 걷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과 만물을 살리는 십자가였지만..
저는 풀들을 죽이는 기계를 매고 있네요^^
부디 이 풀들의 희생으로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서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아직은 좀 견딜만 한데.. 예초기 무게 때문에 팔이 좀 아프네요.
저야 좀 쉬면서 갈 수 있지만, 예수님은 이 길을 쉬지도 못하고
걸어 가셨겠네요.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길에 잡초만 있는 게 아니라,
이름 모를 꽃들도 있네요.
십자가의 길에서 성모님은 드러나진 않지만..
예수님께는 그 고된 길에 작은 기쁨을 주는 꽃과 같은 어머니십니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겟세마니 4처와 5처 사이에는 약간으 오르막과 흑과 통나무로 만든 계단이 좀 있습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 굴곡이 심하고 장애물이 많아 예초기로 풀을 자르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자세도 잘 안나오지요.
벌써 한 40여분 자르다 보니... 힘도 들고.. 어려워서..
누가 좀 도와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디 시몬 같은 사람 없나여?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오늘 아침 겟세마니에는 구름이 좀 끼어서 풀깍기에는 좋은 날씨였는데.. 어느새 햇빛이 따갑게 비치고 있네요.
기계로 깍는 것도 일이라고 이미에 제법 땀도 맺히네요.
잘 됐다. 6처에서 땀도 좀 닦도 쉬었다 가야쥐...
베로니카는 없지만... 수건은 있네요.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은 기력이 쇄하셨는데.. 저는 6처에서 좀 쉬고 나니.. 아직 힘이 좀 있네요.
여기서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힘을 주시나 봐요^^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그 힘든 길에서도 예수님은 부인들을 위로하셨지요.
예초기를 매고 이길을 가는 저를 예수님께서는..
시원한 한줄기 바람과 멸리 보이는 푸른 강물결..
그리고 들 꽃들로 위로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이 길이 힘들긴 힘드셨나 봅니다. 세번씩이나 넘어지시니..
저도 이제 좀 힘이드네요. 벌써 한시간하고 반이나 지났으니..
그래도 지나온 길이 말끔해진 것을 보니 힘이 좀 나네요.
예수님도 힘내시고.. 어여 이 구원의 길을 마치셔야죠!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알몸으로 수치를 당하셨네요.
여기 풀들이 잘리고 나니 제법 땅이 드러납니다.
땅도 옷벗김을 당한듯...
예수님이 당하신 알몸의 수치는 나쁜 것만은 아닌듯 하네요.
아담과 하와의 죄의 결과로 인간이 옷이라는 것으로 자신들을 가리게 됐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공로로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창조 때 처럼 알몸으로도 부끌럽지 않게 됐네요.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앗! 실수. 풀을 깍다가 작은 돌을 건드려 돌이 튀어 올라 정강이에 딱!
아프다.. ㅠㅠ
그래도 조심해서 계속해야지.. 얼마 않남았는데..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이 처에서는 무릎을 꿇고 잠시 묵상해야 하는데.. 지금 작업중이라..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초기 엔진이 꺼져버리네요.
호호.. 신기한 일이..
기도 하면서 좀 쉬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알아듣고..
잠시 예초기를 내려 놓고 12처 앞 장궤틀에 꿇어 주모경을 바쳐봅니다.
겟세마니 십자가의 길에서 12처는 백미이지요.
제일 아름답게 꾸며 놓았거든요.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누가 하필 여기다 옥수수 단을 갖다 놓았을까?
풀을 깍다가 잠시 기계를 내려 놓고 옥수수단을 옮겨봅니다.
그리고 예초기 기름도 다시 채웠습니다.
이제 거의 끝나가네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내려지셨으니..
저도 예초기를 내려 놓을 때가 얼마 않남은 듯..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이제 쉬시러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저도 이제 마치막 처 입니다. 저도 쉴 수 있을 듯...
앗! 그러나 겟세마니 십자가의 길은 14처로 끝나지 않습니다.
15처까지 있거든요.. ㅜㅜ
그러나 억울하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덤에서 쉬라고 했던니..
고성소(저승)에 내려가시어.. 이미 죽은 영혼들까지 구원하시려..
일하셨으니.. 저도 남은 일을 계속해야지요^^
다 이루었다.. 3시간... 엔진 소리에 웅~웅~ 거리는 귀!
엔진의 진동에 아직도 찌릿찌릿한 팔..
그리고 맛있는 점심식사....
갑자기 어렸을 때 읽었던 톰소여의 모험이라는 책의 앞부분이 생각나네요. 벌로 집 담장 페인트 칠을 하던 톰이.. 친구들에게 돈까지 받아가며 친구들이 페인트 칠을 하도록 했던 이야기...ㅎㅎ
지루할 것만 같던 십자가의 길 풀깍는 일이..
묵상과 함께 하니까.. 할만한데요^^
역시 기도와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닌듯..
"활동안에 관상"- 가브리엘 신부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우리는 언제나 기도할 수 있고....
모든 것이 기도 거리가 될 수 있지~~~~요!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고....
겟세마니 오시면.. 예초기 빌려드릴 테니까...
꼭! 십자가의 길 풀 깍아보세용~~~~
첫댓글 신부님 잘 읽었습니다... 정말 웃끼기도 하고, 활동안에서 이렇게 묵상과 기도를 할수 있음을 새삼 느껴봅니다.
긴(?) 글을 오랜만에 재밌게 읽었네요. 십자가의 길 하면서 이렇게 재밌어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신부님 무더운 날씨에 수고 많이 하십니다.....예초기 조심해서 사용하시고요.앞으로 잼 있는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식사 많이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