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신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과제 8page 하단에 쓰여진 말이다. 그 말과 관련, 현실에서 우리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해 신이 보여준 고민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고민 역시도 인간 세상에서 인간이자 신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쿤둔`과 비교, 대조 해볼 만 하다는 생각으로 간간이 그 소설의 이야기를 넣어가며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2] 중심잡기
1. 상황
영화 `쿤둔`에서의 시대적 상황은 잿빛 암울이다. 온갖 부패와 음모가 성소(聖所) 에서까지 활개를 치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한 짓 - 전쟁이 일어나려 한다. 중공군들은 티벳을 그들의 손안에 식민지화하려 하고, 조용한 유목민족인 티벳인들은 속수무책으로 괴롭혀지고만 있다. 현실 상황의 고난들을 "현실적으로" 풀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망적으로 깨친 백성들은 수동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적을 바란다. 대대로 환생해오는 `지혜의 바다` 달라이 라마가 바로 그 기적이며 믿음이다. 하지만 그 기적의 대가로 바라는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 삶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일. 나라가 적의 손길 아래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그 기대가 라마의 고민의 출발점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로마의 압제아래 허덕이며 살고 있으니 `사람의 아들`에서 시대적 상황은 더욱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인들은 티벳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정되어진 `메시아`를 목말라 하며 기다리고 있다.
2 (사람들이 원하는) 희생
여기에서 말하는 신의 희생을 단순히 예수가 십자가에 박히는 그런류의 고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신으로서의 순수를 버려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희생. `사람의 아들`에서 예수는 끝까지 그 순수를 고집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 것은 빵과 포도주, 영광의 하늘나라가 아닌 현실에서의 왕좌와 권력, 로마인들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가 광야에서 악마라 지칭한 한 존재의 요구를 물리친 것으로 보아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지키고 십자가에 박혔다. 그러나 남은 人들은 어떠한가?
그런 면에서 라마는 예수와 비교될 수 있었다. 라마는 총을 들었다. 영화에서 내내 말하고 있는 것들은 총을 들기까지 라마의 고통과 갈등이다.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뿐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신은 외교 같은 거 해 볼 경험은 못 가졌을 테니깐...;;)의 신의 고민을 영화 안에서 계속 보여준다.
3. 고민
영화 속에서 라마는 사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나이에, 섭정의 권력욕을 대하게 되고 "난 여기가 싫어요"라고 외친다. `여기`가 과연 사원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가 정말 신이고 신으로서 말했다면 그 `여기`는 자신이 환생한 이 세상일수도 있다. 아마 그가 영화 안에서 말한 대로 " 이 세상의 모든 人들이 깨우침 받을 때 " 가 바로 라마 마음에 차는 날이겠지.
그런데 다시 그 `깨우침`에서 문제가 생긴다. 영화 속에서 라마는 안경을 끼고 있다. 망원경도 가지고 있다. 비록 신이라 하나 한치 앞을 보는 것도, 멀리 내려다보는 것도 세상에서 육체를 지닌 한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어린 라마에게 궁궐 같은 사원 속에서 사성제에 대해 외는 것보다 밖에서 온 몸으로 엎드려 `苦`를 말하는 한 벗은 人을 보는 것이 더욱 더 큰 깨달음을 준다. 백성들 또한 경전만으로 살 순 없다. 이렇게 실제에 대해 알아 가는 어린 라마는 지도로 시대의 정세를 살피면서, 무당이 자기 점 못보는 것처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인간들 속에서 `무엇`에 대한 답을 내린다. "무성한 정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 첫 의무"라는 선언으로.
반면에 예수는 어땠는가. 광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고난 받는 백성들이 그 곳에 있었는가. 예수가 세상에 내려옴은 백성들을 위함이 아니라 신의 예언과 그 나름대로의 목표 때문인가. 예수는 그 때의 현실에서 그 종교의 위치를 하늘 높은 곳 천상까지 끌어올린 것이고, 그 사실이 소설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계산을 해나가는, 예수의 첫 기적인 먹을 포도주를 기뻐해던 `아하스 페르츠`의 비판을 내도록 이끌어 내게 되었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또한 라마는 신으로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신이 피를 인정했다.
4. 하지만.
라마가 중국에 갔을 때 마오쩌둥에게 들은 말이 있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하오. 종교는 독이요. 인민을 약하게 만드는 마약. 티벳인들이 종교에 젖어 있기에 열등 국민이 되었소"
짜증나는 말이었겠지만. 현실에서는 사실이다. 그래서 타협을 거부하는 신은 쫓겨다닌다. 그리고 꿈을 꾼다. 광장 같아 보이는 어떤 장소에 자기 혼자만 서 있다. 옆으로 또 옆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승려들의 모습이 점차 비춰지면서 카메라는 계속 위로 올라가고 승려들의 수는 수십에서 수백으로, 다시 수천으로 늘어난다. 승려들의 장삼은 붉은 색. 수천이 쓰러져 있는 광장은 마치 피바다 같다. 그에 비례해서 라마의 모습은 점처럼 작아진다.
사람 없이 신만이 서 있다면... 그 고독은 신 또한 어떻게 할 수 없다.
"난 국민들과 함께 여기 서 있다고 전하시오. 이제 우리가 변해야 하는 것이 가장 슬픈 일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전쟁을 원치 않소."
중생을 위해 자신의 열반을 미룬 부처, 현실로 유배 가는 신이 당해야 하는 고난. 이게 예수와 라마의 차이점이다. 신 역시 사람의 탈을 쓴 이상 그로 인한 고민들을 가질 수 밖에.
3] 짚어보기
선생님이 내 준 주제를 `현재에서 신의 위치`라고 간단하게 바꿔 말한다 해도 될성싶다. 개인적으로, 고대나 현대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삶의 범위가 넓고 좁아진 것 외에는 본질상에서 차이가 없다고, 지금 신이 와서 살아 준다해도 인간이되 신으로서의 고민을 다시금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인간이기에 신의 희생을 요구한다, 그걸 받아 들이냐 마느냐의 문제는 신의 마음일 따름이다. 영화와 소설, 둘 다 가공의 이야기지만 예수와 라마는 현실을 살았다. 어느 사람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을 살펴볼 수는 있다. 주제에서 선생님이 말한 정체성을 正體性 이 아닌 停滯成으로 풀이해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이 원하는 것은 현실로 귀결되고 그 속에서 인간이 된 신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으니까, `쿤둔과 현대 종교의 停滯成!`
4] 나오기
예수와 라마를 비교하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와 불교는 땅과 하늘만큼보다 더 먼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속에서 라마는 신인줄 자각하고 있지만 인간이기에 신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못해냈고, 소설 속에서 예수는 인간인줄 자각하고 있지만 신이기에 인간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 못해냈다. 하지만 걔네들은 다 같은 신이고 다 같은 인간이다. 그 점에 초점을 맞춰봤다.
5] 정리하기
선생님께서 `자신의 시각을 정리하라`라는 말을 하셨기 때문에 다는 사족이다.
영화에서는 라마편을 많이 들었지만 사실 나는 예수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아무리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지만 신이 신처럼 위엄 부리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은가? 라마가 인간으로서 수행한 역할들은 꼭 라마가 아니더라도 다른 인간들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신은 뛰어다니면서 일하는 것보다는 공중 부양하면서 평화적으로 설법하고 다니는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현대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사람들은 아직 신화를 믿고 있으니. 또는 믿으려 하고 있으니.
*`사람의 아들`에 대한 보충 설명*
-해설에서 부분 발췌-
`주인공 민요섭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 (아하스 페르츠라는 전설적인 인물을 통하여) 근원적인 회의를 제기한다... 신의 은총으로 인간 세계를 구원하려고 온 예수는 거짓 사람의 아들이 되고, 인간의 정의로 인간 세계를 개선하려는 아하츠 페르츠가 참된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회의와 부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적 접근이 아닌 사회학적 입장에서의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첫댓글 야외수업은 정말 고려하고 있는 중이고..술래잡기 정말 좋겠네요. 생각, 인간, 문학이라고 하였고, 사람의 아들에 대해서 말씀하였는지라....예수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라마가 더 마음에 들지 않은지요? 그리고 사실 예수도 뭐 마음대로 한 것은 아니니까요...
오랜만에 봤지? 아프다고... 그래서 더 쓸쓸한 거 같았는데... 학교에서 한 번 다시 만나면 술 사고 싶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