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이는 3만 6800㎡이다.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공원으로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묘지공원이다. 본래 애국지사의 묘소는 대명동 시립공원에 있었으나 1955년 대구대학교가 들어서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후 묘지성역화 사업에 의하여 1987년 3월 1일 선열공원(先烈公園)으로
조성되었다. 단충각(丹忠閣)과 관리실·화장실 등의 시설이 있으며 대구 지역 출신 애국지사의 묘소가
마련되어 있다. 현재 독립장 1명·애국장 10명·애족장 29명·대통령표창 2명·공적미달자 4명 등 총
46명이 안장되어 있다. 또 앞으로도 10여 명을 안장할 계획이다.
공원 내에 소나무 등 2000여 본의 나무를 식재하였으며, 의자 등 69점의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단충각에는 선열들의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는 물론 대구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과
학생운동·신간회 활동 등에 관한 기록도 보관하고 있다. 인근 지역 학생들의 역사문화 체험학습장소로
널리 활용된다. 동대구역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위치하며, 인근에 금호강과 동촌유원지 등이 있다.
대명동 일대에서 산재되어있던 것을 1955년 이장하여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1987.3.1. 묘역성역화
사업으로 40위 애국선열을 안장하였다. 조국의 광복과 민족자존을 위해 신명을 바친 지역 출신 애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있다.
약 2천∼2천5백명(주로 어린이. 학원, 유치원 단체 견학) 정도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공원내에
애국지사의 신위를 모신 단충사(丹忠司)가 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의 휴식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신천동.신암동 지명유래
1778년 대구판관 이서가 대구부의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던 강을 제방을 쌓아 현재의 신천이 흐르는 위치로
물줄기를 돌려 놓았다. 이것이 오늘의 신천인데, 신천동은 바로 이러한 신천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붙어진 이름이다. 그리고 신천동 아래 바위가 많은 곳에 마을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의 이 마을을 신암동
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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