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과 의료사고
최근 신해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아이콘이었던 그의 삶이 조명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원전 콘크리트
구조물보다 더 공고해져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지는 청춘들에게 신해철은 신선한 자유의 바람이었고 감옥 틈새를 비추는
한 가닥 빛이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그의 삶을 반추하는 틈새로 그의 사인(死因)이 의료사고일 가능성에 대한 얘기도 무성하다. 언론에는 의료사고의
진위에 대한 갑론을박부터 사망원인을 따지기보다 애도가 먼저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의료사고의
진위 여부는 앞으로 밝혀내야 하겠지만 이 사고를 어떤 한 개인이나 병원의 책임을 따지는 데서만 끝낼 일은 아니다.
이 기회에 우리 나라 의료 사고의 실태를 제대로 밝혀 국민들이 병원을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병원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응급이나 수술에 있어서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 정도로 국민들의 건강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공로와는 별도로, 의료진의 실수와 시스템 상의 미비로 병원이 국민들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의사협회에서
펴내는 저널 JAMA(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2000년 7월 26일자에 해마다 22만 5천명의 미국인이 의료사고로 죽어가고 있다는 논문을 실었다. 이 통계로
한국의 경우를 추정해 보면 어느 정도일까. 미국과 의료 기술 수준이 같고 의료시스템 또한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인구 대비로 계산하면 해마다 3만7천명의 한국인이
의료사고로 죽는 셈이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승객을 100명
이상 태운 비행기가 매일 한 대씩 추락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결과로서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22만 5천명의 사망자는 오로지 입원한 환자만 계산한
것이고 통원환자는 제외하였으며, 의료사고로 인한 장애 등을 포함하면 의료사고의 수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존스홉킨스 의대의 의사 바바라 스타필드(Dr.Barbara Starfield)는 이 또한 조사 기준을 느슨히 적용하여 그렇지 만약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면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두 배가 넘는 24만명에서 28만 4천명이
될 것이라고까지 밝혔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실 김윤 교수는 한겨레 오피니언에
실린 기사에서 외국 연구를 추정해 볼 때 한국인의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은 4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는
이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연간 사망자 수가 4만명이 된다는 것은 2012년 통계로 가늠해 볼 때, 첫번째 사망원인인 암 73759명보다는 작고 두번째 순위인 뇌혈관질환 26442보다 높은 것으로서, 의료사고가 암 다음으로 가장 큰 사망원인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FDA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처방약 부작용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해마다 200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고 사망자만 10만
명에 달하며 4번째 주요사망원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렇게
처방약 부작용을 알리면서 국민들이 약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통계 자체가 없다.)
마왕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나라에서도 의료 사고 실태에 대해 반드시 조사를 하고 의료 사고를 해마다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의료사고 실태 조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꼭 필요하다.
첫째, 의료사고의 원인을 찾아 개선하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의료
사고 원인으로는 처방약 자체가 갖고 있는 결함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출시될 때는 기적의 약처럼
보이던 처방약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작용이 밝혀져 퇴출된 예는 허다하다. 일례로 2004년 퇴출된 머크사의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는 심장질환 부작용으로
27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원인으로는 부주의, 스트레스, 의사소통 미숙, 직무훈련
미비 등을 들고 있다. 우리 나라의 대형 종합병원은 마치 전쟁터 같다.
응급실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3분
진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바쁜 의사, 말 한마디 물어보기 어려울 정도로 허겁지겁 뛰어다니는 간호원의
모습은 의료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생각하게 한다. 엑스레이 사진의 좌우를 잘못 판독하여
엉뚱한 곳을 수술한다든지, 과로나 의사소통의 잘못으로 엉뚱한 약을 처방한다든지 하는 사소한 실수가 생명을
앗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태 조사가 선결되어야 한다.
둘째, 과도한 병원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면의 부족, 스트레스, 경제적인 위기, 환경의 오염, 그릇된
식생활 등도 병의 중요한 원인이다. 건강 악화의 원인이 병원체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경우에도 무지한
대중은 병원을 찾고 거기서 손 쉬운 해결을 모색한다. 병원 처치가 만능인 것처럼 되어 있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의료 사고 실태 공개는 경미한 질병에도 투약을 하거나 수술을 하는 등의 과도한 병원 의존을 막아줄
것이다. 우리 나라의 국민총생산 대비 의료비 비중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02년 4.9%이던 의료비 비중이 2012년에는 7.6%로 10년
사이 50% 이상 높아졌다. 1인당 국민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은 9.3%로, 4.1%인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 한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증가율이다. 2012년 국민총생산 대비 국방비가 2.6%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자원이 의료비로 지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세대당 건강보험료도 2003년 42270원에서 2013년에는 87670원으로 10년 사이에 배 이상이 상승되었다.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건강보험료의 인상은 가난을 심화시키고, 가난의
심화가 삶의 질을 악화시켜 다시 의료비를 상승케 하는 악순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의료 사고 실태
조사는 국민들의 무분별한 병원 의존을 줄여주어 의료 종사자들이 환자들의 진료와 치료에 좀더 여유를 갖고 대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의료인 자신들도
좀더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할 것이다.
마왕 신해철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의 죽음으로 인한 의료 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제도 개선으로까지 나아가길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