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포효하는 삶
----싸움에 대하여
반 경 환
‘도덕적 선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들은 선 다음에 악이 등장했다고 말하고, 대부분의 저주받은 시인들은 그 반대 방향에서, 악 다음에 선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악마의 등장으로 지상낙원인 에덴동산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대부분의 저주받은 시인들은 악의 개념이 정립된 이후에야만 선의 개념이 정립될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과 악이란 그처럼 분리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단계적인 어떤 것도 아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선과 악이란 동일한 것의 양면일 뿐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다. 가령, 예컨대, 냉전 체제 아래서는 ‘반공법’이 최고의 선이었지만, 이제는 ‘반공법’ 자체가 남북통일의 최대의 걸림돌(악)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간통죄’가 남성들의 발목을 잡고 여성들의 권리를 지켜주던 최고의 선(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그 법이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옛날의 간통죄는 남성들의 불륜을 단죄하고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간통죄는 여성들의 불륜----수많은 여성들이 혼외정사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을 단죄하고, 단 한 푼의 위자료도 챙기지 못한 채,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성들이 간통죄를 옹호하고, 여성들이 그것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한 것이다. 가난할 때에는 부자를 욕하고, 부자가 되었을 때는 가난한 자를 욕한다. 이처럼 선과 악은 동일한 것의 양면일 뿐이며, 그 선과 악의 판단은 시대, 환경, 위치, 상황에 따라서 그때 그때마다 매우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선과 악의 판단이 매우 불분명하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정당과 정당,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들 간의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그 싸움 자체가 우리 인간들의 삶이 되고 역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계급투쟁의 역사이고, 신성모독의 역사이다. 나는 그 어떤 역사적 진술조차도 우리 인간들의 ‘싸움’을 빼어놓고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싸움을 기피한다는 것은 삶 자체를 기피한다는 것과도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敵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敵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惡漢이 아니다
그들은 善良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民主主義者를 假裝하고
자기들이 良民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善良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會社員이라고도 하고
電車를 타고 自動車를 타고
料理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雜談하고
同情하고 眞摯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原稿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海邊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散步도 하고
映畵館에도 가고
愛嬌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戰線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延禧高地도 아니다
우리들의 戰線은 地圖冊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職場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洞里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焦土作戰이나
「건 힐의 血鬪」 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歡談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土木工事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市場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戀愛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授業을 할 때도 退勤時에도
싸일렌소리에 時計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 있다
民主主義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民主主義式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民主主義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김수영, 「하...... 그림자가 없다」 전문
니체는 그의 ꡔ도덕의 계보ꡕ에서, “우리의 선악(善惡)이란, 진실로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라는 의문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은, 악의 기원의 문제는 이미 13살 소년 시절에도 나를 따라 다녔다. ‘가슴 속에 반은 어린이를, 반은 신을’(괴테의 ꡔ파우스트ꡕ 3781행) 품고 있었을 시절에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나의 최초의 문학적인 유치한 장난, 나의 최초의 철학적 습작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그때 제기한 문제의 해결에 대해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신에게 영예를 돌려 신을 악의 아버지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선천성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일까? 저 새롭고 부도덕한, 혹은 적어도 비 도덕적인 ‘선천성’과 그 ‘선천성’이 말하는, 아아! 그처럼 반(反) 칸트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정언명령’(定言命令) 때문에 그랬단 말인가? (......) 다행히도 나는 일찍이 신학적 편견과 도덕적 편견을 가늠할 수 있었고, 또한 악의 기원을 이 세계의 배후에서 찾는 것도 그만 두었다”라고 말하고 있는 데, 그 말처럼 어처구니가 없고 중대한 오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1: 23). 첫째는 신은 하나의 상징 개념이지, 실재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신을 ‘악의 아버지’로 단정할 수가 없는 것이며, 둘째는 선과 악이 그처럼 대립적인 개념이 아닌 것이고, 셋째는 선과 악의 개념이 그처럼 분리가 가능하고 어떤 단계적인 선후의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우리 인간들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신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동일한 것의 양면이며, 따라서 선의 기원이 악이고 악의 기원이 선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오랜 관습과 실제 사고의 편의 상, 선과 악의 개념을 분리하고, ‘선은 좋은 것이고, 악은 나쁜 것이다’라는 가치판단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시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은 좋은 것이고 악은 나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선이라고 부르고, 또 무엇을 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도덕이나 법률 제정 이전의 근본적인 질문이며, 매우 중대한 질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인간들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선이라고 부르고, 그 욕망에 반하는 모든 것을 악이라고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선호하는 모든 것은 선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 필요하지 않은 것, 너무나도 흔하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악이다. 욕망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쫓아가는 것이며, 그 욕망의 대상들은 모두가 선이 된다. 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의 이익을 쫓아가고, 페르시아는 페르시아의 이익을 쫓아간다. 너는 너의 이익을 쫓아가고 나는 나의 이익을 쫓아간다. 그리고, 그 이익, 즉 상호간의 욕망이 충돌할 때, 우리는 생사를 넘어서서 사생결단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수영의 「하...... 그림자가 없다」에서처럼, 그 싸움의 양상들은 너무나도 다종다양하고, 그 싸움들이 반드시 피 비린내를 풍기고, 총과 칼에 의한 전쟁으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도 않고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고, 오히려 ‘선량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의 가면을 쓰고 다니며, 때때로 ‘양민’, ‘선량’, ‘회사원’으로 그 얼굴과 표정을 바꾸면서 살아간다. 또한 그들은 요리집엘 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을 하고, 불쌍한 이웃들에게 동정의 손길을 보내고, 때때로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거나 사나웁지는 않지만, 언제나 늘 우리들 곁에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연희고지도’ 아니고, 어떤 지도책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전선은 ‘집안 안’이나 ‘직장’, 그리고 우리들의 ‘동리’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 전선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싸움은 그 모든 것을 검은 재로 만들어 버리는 ‘초토작전’일 뿐이고, 그 싸움은 또한 「건 힐의 혈투」 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歡談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土木工事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市場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戀愛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授業을 할 때도 退勤時에도/ 싸일렌소리에 時計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그 주체자의 지식과 지식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상호 교전의 관계이며, 우리 인간들의 사소한 논쟁과 웃음과 농담과 정담 등에서도 그들의 전략과 전술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것을 우리는 아주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셰익스피어가 묘사하고 있는 포올스태프와 헨리 왕자의 관계이다. 헨리왕자는 民政의 밑바닥을 살펴보기 위해 잠시 방탕한 생활에 젖어보기도 하지만, “시간이 술이고, 분초가 통닭이고, 시계문자판이 매음옥 간판”인 포올스태프----그는 영국 클레멘트 법학원 출신이다-----는 헨리왕자와의 관계를 악용하여 온갖 나쁜 짓을 다 한다. 그리고, 어느 덧, 헨리왕자가 ‘헨리5세’로 등극하게 되었을 때, 포올스태프는 “잉글란드 의 법률은 나의 수중에 있다”라고 날뛰었지만, 그러나 헨리5세는 그를 ‘플리트 감옥’에 수감시켜 버린다. 이밖에도 아버지와 아들, 아내와 남편, 형제와 형제,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들의 관계에도, 저마다의 전략과 전술이 첨예하게 맞부딪치게 되고, 그들의 아름다운 덕담과 정교하고 화려한 논리, 그리고 온갖 음담과 험담과 쌍욕과 농담과 비아냥의 말들까지도 그 전략과 전술의 자장 안에서, 우리들의 인간 관계를 긴장의 관계로 몰아넣는다. 대부분의 일상 생활에서는 총과 칼에 의한 무력보다는 그들의 말(지식)을 무기로 삼아 타투게 되고, 그 싸움을 토대로 하여, 자기 자신의 존재론적 기반과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게 된다.
우리 인간들의 욕망 앞에서 법이란 하나의 장애물이며, 그것은 만인의 이익보다는 강자의 이익(욕망)을 수호하는 어떤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법률의 준수를 강조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인사들이며, 그들은 반동적 인물들, 즉 피지배계급의 인사들에 의하여 그 모든 것을 잃게 될까봐, 자나깨나 마음을 놓지 못한다. 아무튼 인간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쫓아서 살고, 욕망은 그의 삶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집착이 생겨나고 그 집착에 의해서 만악의 근원인 권모술수가 지혜로서 창출된다. 지혜는 사기치는 기술이며, 그 기술은 학교라는 ‘대 교육제도’에 의해서 가장 강력한 힘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최고급의 지혜란 아주 화려하고 정교하며, 또한 그만큼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첫째는 사기를 당하는 자가 그것을 모르면서도 그 행위의 주체자가 되고 있는 것이며, 둘째는 그 사기를 이해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사기를 당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령,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 통신망이 그것인데, 오늘날 인터넷의 이용자 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는데도, 오히려, 거꾸로, 그 사용료는 전혀 줄어들지(引下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IBM 컴퓨터나 맥도날드 햄버거, 그리고 코카콜라와도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다국적 자본가들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나가면서, 타인들과 제3세계인들의 욕망을 짓밟아 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기치는 기술을 지혜로 설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급문화로 높이 높이 끌어 올린다. 바로 이때에, 칸트의 도덕법칙은 시골목사의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나는 여기서 선의 기원은 자기 자신의 욕망(이익)이며, 악의 기원은 타인의 욕망(이익)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나와 너의 관계를 떠나서 그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선의 기원은 악이고 악의 기원은 선이지만, 그 분쟁의 당사자로서 바라보면 선은 자기 자신의 욕망이고, 악은 타인의 욕망이다. 이 말은 니체의 ‘도덕의 개념’을 또다시 전면적으로 뒤집어 버린 것이고, 그만큼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말이기도 한 것이다. 니체는 그의 ꡔ도덕의 계보ꡕ에서 그 선악의 개념을
“귀족적 인간은 ‘좋은’이라는 기본 개념을 우선 자기 자신에게서 자발적으로 생각해내어, 거기에서 비로소 스스로를 위하여 ‘나쁜’이라는 관념을 만들어 낸다. 귀족적 인간의 이 ‘나쁜’과 한없는 증오의 도가니 속에서 생겨난 저 ‘나쁜’을 대비해 보면, 전자가 하나의 부산물이며 보색임에 반해서 후자는 원형이며, 시원이며, 노예도덕에 있어서 특징적인 행위이다.”(1: 47)
라고, ‘주인(귀족) 대 노예(천민)’라는 계급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 계급적인 관점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무리가 형성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어떤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니체의 주인과 노예의 개념은 선과 악의 개념 규정 이후에 탄생된 말에 지나지 않으며, 그 선과 악의 개념 규정은 우리 인간들의 욕망에 의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태초에는 인간 위에 인간이 없었고, 모든 인간들이 평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욕망의 충족 여부에 따라 주인과 노예의 계급이 생겨나고, 폭력적인 서열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니체의 선악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욕망에 그 기원을 두지 않고, 계급의 욕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근본적인 오류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는 선악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의 도덕 개념은 계급적 관점에서 “모든 귀족 도덕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에서 발전되는 반면에,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외부적인 것, 다른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그야말로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성찰의 결과일 뿐, 그는 선악의 기원과 그 개념들을 정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1: 43). 모든 싸움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쫓아가고, 그 욕망을 최고의 선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한 싸움이다. 사상, 이념, 고급문화, 영원한 제국, 이 모든 것들은 그 싸움들을 미화하고 합리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모든 싸움의 근본목적은 도덕적으로 선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며, 정치 경제적으로는 더 넓은 국토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도덕적 선의 고지는 사실 그대로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자의 입장에서 도덕적 선을 규정하고 그 규정에 따라서 타인들과 이웃 국가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힘에 지나지 않는다. 정복자는 이웃 민족국가의 영토를 빼앗고 그 원주민들을 노예로 거느리게 되고, 피정복자는 자기 영토를 빼앗기고 이민족을 하나님과도 같은 주인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 힘이 있으면 그것은 선이 되고, 힘이 없으면 그것은 악이 된다. 이것이 모든 유기체들의 생존이라는 게임의 법칙인 것이다. 힘을 잃고 약화된 민족은 반드시 소멸하게 되어 있는 반면, 힘에 힘을 더하고 강력해진 민족은 그 물리적인 힘의 토대 위에서 그것을 은폐한 채, 고급문화인으로서의 미소를 띠고, 제법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다. 모든 싸움은 ‘도덕적 선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싸움이며,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이 대부분의 인간들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이 그 싸움의 전제 조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자의 미소와 약자의 분노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문화적 영웅 중의 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기원전 356년에 태어나 323년에 그의 생애를 마감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룩한 업적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다고 할 수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는 그에 대한 태몽으로 ‘번개의 불덩이’가 사방으로 널리 펴져 나가는 꿈을 꾸었고, 그의 아버지는 왕비의 몸에서 ‘사자의 모양이 그려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사자의 기상을 지닌 용감하고 슬기로운 영웅으로 잉태되었고, 그 결과, 그가 태어났을 때는 세 가지 기쁜 소식이 겹쳐지게 되었다고 한다. 첫째는 마케도니아 군이 일리리아 군과 싸워서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필리포스 왕의 말들이 올림피아의 전차 경주에서 우승을 했다는 것이며, 셋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알렉산더 대왕이 탄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왕은 “너에게는 마케도니아가 좁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너는 이룰 수가 있겠구나. 알렉산더, 너는 세계의 왕이 되거라”라고 중얼거리면서, 제일급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그의 스승으로 모셔왔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 훌륭한 스승 밑에서 도덕과 정치는 물론이고, 문학, 역사, 철학, 예술, 지리, 천문, 과학, 의학 등을 배우고, 장차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대왕으로서의 모든 학문적 기초와 그 덕목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호머의 ꡔ일리어드ꡕ와 ꡔ오딧세우스ꡕ를 늘 갖고 다니며, 그의 호신용 단검과 함께, 언제나 머리 맡에 두었다고 한다. 교육자로서의 필리포스 왕도 뛰어난 인물이고, 아리스토텔레스 도 뛰어난 인물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버지로부터는 훌륭한 스승을 소개받았던 것이고, 그의 스승으로부터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배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의 아버지 못지 않게 그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하고 숭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훌륭한 스승 밑에 못난 제자가 없고, 훌륭한 제자 앞에 못난 스승은 있을 수가 없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왕이 암살을 당하자, 약관의 20세의 나이로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등극을 하게 되고, 화살 한 대 날리지 않고 ‘데살리아의 반란’을 평정한 것은 물론, ‘카로네아 전투’에서 아테네와 테베가 중심이 된 그리스 도시 국가의 연합군을 크게 물리치고 대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36년, 약관의 2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모두들 들으시오. 나는 마케도니아를 세계 제일의 나라로 만들 것이오. 나라의 근본은 국민이오. 내 명예를 걸고 나는 국민이 바라는 일이라면 모두 이루어 줄 것이오. 또한 나는 이제 전국의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모두 석방할 것이오. 나의 뜻을 저버리지 말고 선량한 국민이 되어, 조국 마케도니아를 위해 충성을 다하길 바라오. 그리고 부왕에게 물려받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국민들에게, 나머지 절반은 공을 세운 모든 대신들과 장군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겠소. 이것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막고자 함이며, 동시에 큰 공에 대한 보답이오. 부왕께서 돌아가신 것을 알고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이 분명하니, 군사력을 기르기에 힘쓰고 무기도 갖추도록 하시오.”(2: 97)
알렉산더 대왕의 사나이답고 대범하고 호탕한 성격은 그의 첫 담화에 그 무엇보다도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마자,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정복운동의 꿈’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의 모든 재산들을 마케도니아의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그의 꿈과 목표는 마케도니아의 국민들을 세계 제일의 국민들로 인도해 가겠다는 것을 뜻하고, 모든 죄수들을 석방한 것은 전국민의 화합을 뜻하며, 그의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준 것은 부의 공정한 분배와 함께, 모든 관리들의 부정부패의 척결을 뜻한다. “대왕이시여, 모든 재산을 다 나누어 주시면 대왕 폐하께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라는 신하의 질문에, 알렉산더 대왕은 사나이답고 대범하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내 꿈은 세계 통일이오. 먼저 그리스를 통일한 후,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평정할 것이오. 세계가 모두 내 것인데, 어찌 내가 가진 것이 없소”(2: 98)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인물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그는 그리스를 평정하자마자,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보병 3만 명과 기병 5천 명이라는 매우 적은 숫자의 병력으로 페르시아의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는 헬레스폰투스 해협과 그라니쿠스강을 단숨에 건너가 페르시아왕 다리우스의 백만대군을 물리치고, 페르시아와 소아시아와 이집트를 또한 단숨에 정복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침내 인도 정벌에 나선 그는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를 정복하게 된다. 플루타크 ꡔ영웅전ꡕ은 그리스인의 입장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지나치게 미화시킨 부분도 없지 않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진정한 면목은 그의 세계정복운동이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명분은 언제, 어느 때나 다양하고, 그 명분이 없어서 세계정복운동을 하지 못하는 법은 없다. 그는 모든 전쟁터마다 수많은 학자와 기술자와 예술가와 의사와 점성술사들을 데리고 다니며, 그 나라의 전통과 풍습을 연구하게 하고, 실제로 자기 자신이 동방풍의 옷을 입고, 그 나라의 전통과 풍습을 보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한편, 그는 그 나라의 원주민들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마케도니아의 전통과 풍습을 가르쳐 주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동서 문화의 결합은 알렉산더 대왕의 학문적 깊이와 그 문화 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그 결과, “먼 나라 이집트 바닷가의 한 섬 파로스, 물결치는 그곳”에, 자기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는 문화의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짐은 지상의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된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놀라운 기념물을 세우려 한다. 그것은 거대한 도시이다. 그 도시에는 짐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붙일 것이다. 그 도시를, 이집트의 나일강물이 지중해에 흘러드는 지점에 건설하여 전 세계의 모든 나라의 수도로 삼으리라!”(3: 37)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23년에 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무서운 열병에 걸려, 서른 세 살이라는 매우 젊은 나이에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뒤, 그의 부하였던 클레오메네스에 의해 완성되었고, 서기 390년의 기독교의 폭도들과 그후의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불살라지고 파괴될 때까지, 약 850년 간이나 세계의 행정, 무역,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과 도서관의 기능까지 갖춘 ‘무세이온’(mouseion)은 서방과학의 중심지가 되었고, ‘뮤즈의 궁전’이라는 뜻의 그 말은 오늘날 ‘뮤지엄’(museum)의 어원이 되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 즉 거대한 문화의 제국을 꿈 꾸었던 것이고, 그 꿈을 위해 모든 쾌락을 억제하고, 그토록 무섭고 성실하게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처럼 운이 좋아서
누군가가 보고 싶어지면
그가 바로 저쪽에서 걸어오고
바다를 건너려 하면
사나웠던 바다가 내 앞에서 잔잔해진다. ----메난데르
저 샛별이 바다에 몸을 씻고
그 숭고한 얼굴을 하늘에 쳐들어 밤 안개를 거둘 때
비너스는 유독 이 별을 사랑하노니 ----베르길리우스
그 어느 누구도 다룰 수 없었던 야생마 부케팔로스를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명마로 길들였던 알렉산더 대왕, 모든 재물과 그 쾌락을 거절하고 지혜, 용기, 성실만을 추구했던 알렉산더 대왕, 아버지 필리포스 왕의 승전 소식에 “부왕께서 이 세상을 다 정복해 버리면 내가 할 일은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탄식했던 알렉산더 대왕,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하는 데 그가 배운 모든 것을 책으로 묶어냈다고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께 화를 냈던 알렉산더 대왕, 필리포스 왕의 방탕과 엽색행각에 과감하고 의연하게 맞섰던 알렉산더 대왕, 어떤 권력 앞에서도 그 기개를 꺾지 않고 한줄기 햇볕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그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했던 알렉산더 대왕, 페르시아로 출정 전, ‘나의 재산은 희망이다’라고 말하면서, 또다시 그의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었던 알렉산더 대왕, ‘살아서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어서는 호머를 친구’로 두었던 그리스 최고의 명장 아킬레스를 부러워했던 알렉산더 대왕,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 칼에 풀어버린 알렉산더 대왕, ‘다리우스 왕에게 매수되어 대왕을 독살하려 한다’는 편지를 받고서도 그 궁중의사 필리포스의 약사발을 들이마신 알렉산더 대왕, 페르시아 병사들을 10만 명 이상이나 죽이고서도, 다리우스 왕의 가족들은 왕족의 예우로서 정중하게 대해 주었던 알렉산더 대왕, 한 밤중의 기습작전보다는 ‘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매우 적은 병력으로 페르시아의 백만대군을 물리치는 알렉산더 대왕, 그리스 도시 국가들 중, 시범케이스로 테베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알렉산더 대왕, 평화조약을 맺고도 기습작전으로 인도의 민병대를 무자비하게 살해해 버린 알렉산더 대왕, 크세르크세스의 궁전을 불태우고 다리우스 왕의 보석함에 호머의 시집을 넣어 두었던 알렉산더 대왕, 술에 취해 친구인 클리투스를 살해하고 그 양심의 가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렸던 알렉산더 대왕, 마침내 인도의 일부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로 돌아와 무서운 열병에 걸려 죽는 알렉산더 대왕----.
나는 ‘알렉산드리아’는 모든 인류의 최초의 수도이며, 영원한 문화의 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영원한 전제군주이자 정복자이며 정치철학자였던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라면 어느 누가 감히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와 영원한 문화의 제국을 꿈꿀 수가 있었겠는가? 알렉산더 대왕의 ‘포효하는 삶’은 ‘알렉산드리아’라는 문화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싸움이며, 그는 그 싸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많은 이민족들을 단 칼에 베어버리고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를 그 명분으로 내세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리아라는 문화의 도시는 그의 가장 무거운 짐, 즉 ‘도덕적 선의 고지’이고, 그것은 그의 자기 영역의 확대와 세계 영역의 확대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그는 그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마저도 ‘문화의 제국’이라는 도덕적 선으로 미화시키고, 제법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인류의 평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쟁은 모든 명분마저도 신성하게 만들고, 승자의 미소는 김기택의 「호랑이」처럼 언제나 넉넉하고 여유가 있으며, 그 모든 것에 대하여 관용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고급문화인의 표정인 것이다.
푹신한 털 위에서 뒹굴며 노는 크고 작은 먹이들
넓은 잎사귀를 흔들며 넘실거리는 밀림
그러나 멀지 않아 텅 빈 위장은 졸린 눈에서 광채를 발산시키리라
다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하리라
느린 걸음은 잔잔한 털 속에 굵은 뼈의 움직임을 가린 채
한 번에 모아야 할 힘의 짧은 위치를 가늠하리라
빠른 다리와 예민한 더듬이를 뻣뻣하고 둔하게 만들
힘은 오로지 한 순간만 필요하다
앙칼진 마지막 안간힘을 순한 먹이로 만드는 일은
무거운 몸을 한 줄 가벼운 곡선으로 만드는 동작으로 족하다
굶주린 눈초리와 발빠른 먹이들의 뾰족한 귀가
바스락거리는 풀잎마다 팽팽하게 맞닿아 있는
무더운 한낮 평화롭고 조용한 정글 ----김기택, 「호랑이」 에서
호랑이는 사자와 함께, 백수의 제왕이며, 그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이 육화되어 있는 동물이다. 그의 지혜는 모든 동물들의 총명함을 뛰어넘고, 그의 용기는 그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각인되어 있으며, 그의 성실함은 한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게 된다. 호랑이는 모든 대상을 사용가치와 삶의 향유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언제나 평화와 휴식을 사랑한다. 또한 그는 배가 부를 때에는 “푹신한 털 위에서 뒹굴며 노는 크고 작은 먹이들”이라는 시구에서처럼, 단 한 마리의 토끼도 건드리지 않지만, 그러나 배가 고플 때에는 “앙칼진 마지막 안간힘을 순한 먹이로 만드는 일은/ 무거운 몸을 한 줄 가벼운 곡선으로 만드는 동작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호랑이의 미소는 강자의 미소이며 고급문화인의 미소이다. 아아, 이처럼 정복자, 약탈자, 살인마만이 ‘도덕적 선의 고지’를 점령할 수가 있고, 고급문화인으로서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이 세상의 삶을 향유할 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에너지 보존법칙’은 자연과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소멸할 수도 없고, 새로 태어날 수도 없다고 한다. 에너지는 질량이고 질량은 에너지이다. 따라서 無에서 有가 생겨날 수도 없고 有가 無로 소멸될 수도 없다. 나는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사상이 이 ‘에너지 보존법칙의 기원’에 맞닿아 있다고 믿고 있으며, 모든 유기체들은 그 개체의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을 뿐, 전체의 에너지와 그 질량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또한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이라는 두 가지 본능이 있으며, 공격본능은 자기의 영역과 세계의 영역을 확대하고, 방어본능은 외부의 적을 맞이하여 자기 자신의 생명과 그 영역을 지키는 데 사용하게 된다. 공격본능이 강화되면 그가 속한 민족이나 국가나 개인은 끊임없이 세계의 영역을 확대하고 그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가 있지만, 그 공격본능이 퇴화되고 방어본능만이 있는 민족이나 국가나 개인은 끊임없이 몰락과 쇠퇴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오늘날 제국주의자들은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하고, 대외적으로는 식민주의를 선호한다. 민주주의는 그들이 속한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만인 평등과 언제나 국가의 주권이 그들에게 있다는 믿음을 상기시켜주고, 그리고 그 국민들의 단결과 민심의 결집을 이끌어 내는 힘으로 작용을 하게 된다. 다른 한편, 그들의 제국주의는 그 일체화된 국력을 기초로 하여, 제3세계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무차별적으로 짓밟아 버리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고, 그들의 제국주의적인 마수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장치들----민주주의와 만인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그것이다-----을 암암리에 설치하게 된다. 이 이데올로기적인 장치들, 즉 민주주의와 만인 평등사상은 그들의 제국주의적인 마수를 보지 못하게 하는 ‘오인의 메카니즘’으로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따라서 제3세계의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만인 평등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을 수용하게 되고, 거꾸로 제국주의자들의 입김이나 그들의 하수인에 불과한 독재자들에게 짓밟히게 된다. 제국주의자들은 오늘날의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로 그들의 방어본능을 강화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로 그들의 공격본능을 강화시켜 나간다. 이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이 제대로 균형 있게 작용을 하고 있는 국가나 그 국민은 주체성의 확립이 타자성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자기 영역의 확대가 세계영역의 확대로 이어진다. 그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기사도적인 모험정신과 성자의 영웅주의가 육화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공격본능이 퇴화되고 방어본능만이 있는 국가나 그 국민은 치명적인 부패와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로 인하여, ‘집 지키는 개’처럼 무차별적인 사색당파와도 같은 정쟁의 소용들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오늘날 제3세계인들의 몰 주체성과 자기 영역의 축소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공격본능이 퇴화되거나 소멸되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 보존법칙’에 위배되는 말이며, 밖으로 발산되지 못하는 본능은 안으로 내면화되어 서림의 「이서국은 술취한, 칼춤을 추고」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저 불구대천의 원수와도 같고 무자비한 정복자와 약탈자와 살인마와도 같은 이민족에게는 그 힘을 행사하지 못하고, 자기가 속한 국가와 정당과 직장과 사회와 가족들을 물어 뜯는 데, 그 천재적인 힘(공격본능)을 사용하게 된다. 이처럼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이 제대로 균형 있게 작용을 하고 있으면 고급문화인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제3세계의 야만인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 한국인들은 고급문화인이 아니고, 제3세계의 야만인에 불과하다.
연작시 하나 더 쓰려고
이서국 수도 백곡에 조심스레 들어갔다
시간의 이빨에 찢어발겨진 土城 밑에
조용히 주차시키고 갤로퍼 막 내리는 순간,
토성처럼 허물어진 검붉은 농부가
대뜸 갈지자로 다가와 얼굴에다
썩어 문드러진 어둠을 훅훅 토해내었다
어둠에 눌려 회오리치는 들판 바라보다, 느닷없이
허공에다 헛손질 해댔다
씨이팔, 교수고 시인이고 다아 필요읍따!
우루과인지 나발인지
개새끼들, 다아 가라!
1994년 1월, 이서국은
김영찬씨 메마른 손끝에서
술취한 칼춤을 추고 있었다
----서림, 「이서국은 술취한, 칼춤을 추고」 에서
서림의 「이서국은 술취한, 칼춤을 추고」에서의 ‘이서국’은 경상북도 청도의 고대 부족국가의 지명이며,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이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착을 남달리 갖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연작시를 씀으로써,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와 그 희망을 모색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서국’이 대부분의 우리 한국인들의 기억과 의식 속에서 사라져가 버렸듯이, 오늘날의 청도 역시도 ‘찢어발겨진 토성’처럼, 그 존재의 기반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서국에 대한 연작시를 하나 더 쓰려고 ‘갤로퍼’에서 내렸을 때, 그가 마주쳤던 것은 따뜻한 옛고향의 인정이 아니라, “씨이팔, 교수고 시인이고 다아 필요읍따!/ 우르과인지 나발인지/ 개새끼들 다아 가라!”는 김영찬씨의 배타적이면서도 그만큼의 단말마적인 절규일 뿐이었던 것이다. 우르과이는 GATT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 체제를 다자간 무역기구로 발전시킨 곳이며, 그 협상안에 따르면, 국제경쟁력이 없는 우리 한국의 농업 기반은 모조리 붕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촌공동체의 생존 기반이 “시간의 이빨에 찢어발겨진 土城”처럼, 무너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씨이팔, 교수고 시인이고 다아 필요읍따!/ 우르과인지 나발인지/ 개새끼들 다아 가라!”는 김영찬씨의 단말마적인 절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서림의 ‘이서국’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오늘날의 농촌공동체의 현실을 이야기해 보자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서국은 술취한, 칼춤을 추고」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공격본능이 내면화되어, 내재적으로는 무사인일 속의 사색당파를 낳고, 외재적으로는 무조건의 충성과 찬양으로 이어지는 事大主義를 낳는다는 사실일 뿐인 것이다.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아래서, 서구의 선진국들은 무차별적인 시장 개방 압력으로 그들의 공격본능을 드러내고, 제3세계의 후진국들은 그들의 공격본능 앞에 낮게 낮게 엎드린 채, 노예적인 복종태도로써 그들의 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서구의 선진국들의 자본 앞에서 무조건의 충성과 찬양을 해대고,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그것을 은폐한 채, ‘쌀 시장만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막아 보겠다’, ‘금융시장만은 결코 안 된다’, ‘교육시장만은 결코 안 된다’라고, 마치 천하 제일의 애국자들인 양, 끝끝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구의 선진국 앞에서는 마냥 숨겨두었던 공격본능의 발톱을 꺼내들고, 온갖 부정부패로 제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한다. “전임자리 얻으려” “먹어보지도 못한 갈비짝 3개 돌렸다/ 만원짜리 넥타이 사면서도 마누라 한테 애걸복걸하다가/ 4만원짜리로 3개 상납했다”, “제 살을 파서 상납하는 자를 노래하라/ 제 목을 쳐서 제사 지내는 자를 노래하라/ 이 모든 것을 노래하는 자를 노래하라”라는 서림의 「현실 감각」이 그것이다. 나는 제4장, 「넓어지는 지평선」에서 “그렇다면 우리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모험이란 무엇이며, 그들은 어떠한 목표를 갖고 그들의 모험을 시작했단 말인가? 또한 그들의 주체성의 확립이 타자성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그들의 자아 영역의 확대는 세계 영역의 확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류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문화적 영웅들을 탄생시켰단 말인가? 그러나 지극히 애석하게도 미리부터 말해본다면, 우리 한국인들의 모험은 무사안일 속의 ‘반 모험’이고, 다른 한편, 우리 한국인들의 영웅주의는 끊임없는 자기 영역의 축소와 함께, 몰 주체성에 사로잡혀 있는 ‘반 영웅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반 모험’과 ‘반 영웅주의’는 무목표, 무의지, 무책임이라는 ‘三無 政策’과 함께, 내재적으로는 무사안일 속의 사색당파를 낳고, 외재적으로는 끊임없는 충성과 무조건의 찬양으로 이어지는 사대주의를 낳는다”라고 역설한 바가 있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무조건의 충성과 찬양은 그들의 방어본능이고, 안으로 안으로 무사안일 속의 사색당파는 그들의 공격본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구인들의 전략과 전술은 ‘백전 백승’의 신화로 이어지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전략과 전술은 ‘백전 백패’의 치욕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치욕 속에서는 강자의 미소는 찾아볼 수가 없고, 약자의 분노만이 박남철의 「獅子」처럼 자라나게 된다.
내 앞발에 박힌
이 깊숙한 가시를
핥다가 나는 이따금
부릅뜬 눈을 들어, 핥
야 이 개애새끼들아아
내 머리, 오 이 구름 같은 불
내 머리 내 이 머리에 온통 뒤덮힌
이 저주받은 이 성난 갈기, 핥
야 이 개애자식들아아아
----박남철, 「獅子-- 모교의 교정에서」 전문
알렉산더 대왕의 포효하는 삶은 ‘문화제국의 건설’이었고, 부처의 포효하는 삶은 브라만 계급의 가치관을 전복하고 민중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 목표이었다. 리쿠르고스의 포효하는 삶은 그의 법령으로 스파르타의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고, 나폴레옹의 포효하는 삶은 ‘나폴레옹의 법전’을 통하여 ‘유럽 연방’을 건설하는 것이 그 목표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 무거운 짐(목표)을 짊어지고, 그 모든 인식론적 장애물들과의 인류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웅대하며, 피 비린내 나는 ‘혈투’를 벌여야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의 ‘事大主義’ 속에는 무목표, 무의지, 무책임이라는 ‘三無 政策’만이 들어 있을 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삶’----포효하는 삶----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만일, 그렇다면 박남철의 ‘사자’의 앞발에 깊숙히 가시를 박은 자들은 어떤 자들이며, 그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박남철의 ‘사자’의 앞발에 박힌 ‘가시’는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것이며, 다른 한편, 그들에 대한 ‘사대주의’ 속에서 최고의 이익----국가의 이익이 아닌, 자기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창출해 내고 있는 이 땅의 지배 계급의 인사들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제국주의(공격본능)가 없는 민주주의(방어본능)는 모래 사막 속의 신기루에 불과하고, 민주주의(방어본능)가 없는 제국주의(공격본능)는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제국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그 날카롭고 예리한 ‘공격본능’을 ‘사대주의’라는 함정에 빠져서 거세시키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한편, 백수의 왕처럼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가 그처럼 무섭고 두려운 이 땅의 지배 계급의 인사들은 무조건의 충성과 찬양이라는 사대주의와 그 長幼有序의 예법으로, 이처럼 사자의 ‘공격본능’을 거세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의 앞발에 깊숙히 박힌 ‘가시’를 핥는 ‘사자’는 이미 거세된 사자이며, 종이 그림 속의 사자에 지나지 않는다. “내 머리, 오 이 구름같은 불”, “야 이 개애새끼들아아”라고 제 아무리 거칠고 사납게 울부짖어 보았자, 그 어느 누구도 들어 줄 사람이 없으며, 또 자기 자신의 “저주받은” “성난 갈기”를 제 아무리 핥아보았자, 그 앞발에 깊숙히 박힌 가시가 빠질 리가 없는 것이다. ‘백전 백승’의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서구인들은 ‘도덕적 선의 고지’를 점령하고 고급문화인의 미소를 지을 수가 있지만, ‘백전 백패’의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제3세계인’이라는 ‘도덕적 악의 고지’를 점령하고, 기껏해야 박남철의 「獅子」처럼 그 저주받은 운명을 울부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목표’, ‘무의지’, ‘무책임’, 이 ‘三無 政策’ 앞에서 우리 한국인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기껏해야 이처럼 저주받은 사자(약자)의 분노일는지도 모른다.
부처, 칸트의 싸움에 대하여
부처는 우리 인간들의 네 가지 고통을 발견하였는 데,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삶과 죽음, 병듦과 늙음이 모두 그에게는 고통스러웠던 것이며, 이밖에도 그는 원증회(怨憎會), 애별리(愛別離), 소구부득(所求不得)의 세 가지 고통을 첨가하였다고도 한다. 원수는 만나서 괴롭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져서 괴롭고, 욕망하는 것은 얻지 못해서 괴롭다는 것이 그의 위대한 성찰이었던 셈이다. 무욕망, 무집착, 탁발걸식과 출가수행은 그가 역설하고 있는 가장 행복한 삶의 양식이며, 그의 실천 철학이 된다. 그러나 부처의 철학은 지극히 애석하게도 이 세상의 삶과 유리된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로병사가 고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즐겁게 웃거나 슬프게 울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 ‘고통’이라는 삶의 징검다리와 그 인식론적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삶 자체는 기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원수를 만나면 괴롭겠지만, 그러나 그 원수와의 싸움(시련 극복)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의 학문, 지혜,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가 어떻게 발전할 수가 있겠으며, 미리부터 이별의 슬픔이 두려워서 그 사랑을 포기한다면, 인간이라는 종의 보존과 우리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부처의 ‘번뇌의 화염을 지혜로써 불어끄라’는 가르침은----그 한줄기 서광과도 같은 명언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삶과 자기 자신의 생명, 그리고 물질적 욕망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욕망을 씻어주는 정화기능으로서의 그것이지, 그러한 생명 부정에의 철학으로서는 우리 인간들의 생명과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어떠한 윤기와 활력도 불어넣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동양의 사유는 정적인 사유이며, 고통과 싸우지를 않고 고통을 기피하는 사유이다. 고멸(苦滅)을 위한 ‘중도행법’(中道行法)을 ‘팔정도’(八正道)라고 부른다.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이 그것인 데(4: 60), 그러나 그 ‘八正道’ 속에는 무엇을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사유하는 것인지, 또 무엇이 ‘올바른 언어’, ‘올바른 직업’, ‘올바른 생명’, ‘올바른 정진’, ‘올바른 정념’, ‘올바른 정정’인지는 구체적으로 그 사례를 들어서 제시해 놓은 것이 없다. 이것이 선문답적인 동양의 신비주의이며 그 정적인 사유의 실체인 것이다. 무욕망, 무집착, 탁발걸식과 출가수행만을 하면 모든 고통이 해소되고 행복한 삶이 이루어질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천재성과 창의성을 갉아먹는 것에 불과하고, 이 세상에서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생명부정에의 의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삶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장애물 중의 하나가 부처의 사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그 사상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욕망을 비워내고, 최고의 도덕적 선인 열반과 해탈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던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부처는 왜 그처럼 무거운 짐(중생제도 즉, 열반과 해탈의 길)을 짊어졌던 것이며, 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싸움을 싸워왔단 말인가? 주지하다시피 부처는 생로병사, 원증회, 애별리, 소구부득에 시달리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발견했던 것이고, 따라서 그 민중들의 삶을 짓밟고 수많은 억압과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브라만 계급의 가치관을 새롭게 인식하고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힌두교는 근본적으로 세속 종교이며,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창출해낸 지배계급의 종교이다. 그 근본사상은 모든 유기체들의 생성과 소멸을 설명해 주고 있는 윤회사상이며, 그 윤회사상으로 인하여, 이 21세기까지도 지극히 비인간적이며 야만적인 카스트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네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브라만계급(사제계급), 귀족 계급(코샤트리아), 평민계급(바이샤), 노예계급(수드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브라만 계급은 모든 제사와 교육을 독점하고 있는 ‘인도문화의 담당자들’이며, 그들은 세속적인 왕을 선출하고 임명할 수도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브라만 계급의 재산이며, 브라만 계급은 그들의 사형죄마저도 단순 추방으로 그치고 만다고 한다. 브라만 계급은 자기 계급 이외에 3명의 아내를 더 취할 수 있으며, 브라만 계급을 조금만 위협하거나 모욕을 가해도 백년 지옥을 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불평등한 제도에 기초한 브라만 계급이 수천 년 동안이나 그 특전과 특권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비결은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 온다는 윤회사상이며, 그 사상에 대한 믿음이 노예계급에게 자기 자신들의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마저도 참고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에 반하여, 부처는 그가 비록, 네팔의 정반왕(淨飯王)의 장남이기는 하지만, 생로병사에 시달리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열반과 해탈의 길을 제시한 데서 그 위대성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만물이 유전하고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 온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은 힌두교(지배계급의 종교)의 윤회사상을 계승한 것이며, 부처의 카스트 제도의 부정은 브라만 계급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뒤집어 엎어 버린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처, 혹은 불교의 윤회사상은 김향 시인의
완성되지 못한 한 죽음이
무덤 안에서 익고 있다
바람과 햇빛과 간간히 찾아와 뿌리고 가는
가족들의 눈물이 생장을 돕는다
간위산처럼 두 손이 묶인 죽음은
‘우뚝 멈추어 움직이지 않는다’
썩고 문드러지는 악취와 도취 속에서
뚝뚝 단물 흘리며 죽음은 무르익는다
마침내 봉분, 무화된 자리
살붙지 않은 말간 실핏줄
돈독하게 내비친다 ----김향, 「마침내 봉분, 무화된 자리」 전문
라는, 「마침내 봉분, 무화된 자리」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오늘날 한국 현대시의 한 경향(禪詩的인 경향)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명원 시인이 “죽음 역시 삶처럼 성장을 한다. 시간의 속성 안에서 숙성(熟成)하고 완성을 꿈꾼다. 무덤이라는 또 하나의 삶의 공간 안에서 완전히 썩기를 열망하며, 바람과 햇빛과 가족들의 눈물로 완전한 죽음을 향해 무르익어 간다. 완벽한 생의 대단원, 죽음은 마침내 없어짐으로써 완결된다. 죽음이 사라지고 남겨진 “무화된 자리”라는 것은 얼마나 아득함인가. 불가에서 목도되는 ‘없음’이야말로 존재의 비정한 절정이 아니던가. 죽음이 무르익음으로써 죽음이 무화되었다면 이미 이는 열반에 든 것이다. 법열의 진정한 깨우침으로써 생명력이 획득되었기 때문에 “살붙지 않은 말간 실핏줄”이라는 명징함이 드러났으리라. “실핏줄”의 투명하고도 붉은 빛이 “돈독하게 내비”쳐져 죽음은 다시 새 생명의 잉태라는 설법의 아우라가 형성된다. 죽음으로써, 깨끗한 사라짐으로써 다시금 실핏줄의 생명이 시작되는 절대적 무화의 자리, 이 얼마나 따뜻한 불교적 사유의 언저리인가”라고, 그의 「존재의 발원을 향한 시적 상상」에서 썼을 때, 나는 그 글 이외에 「마침내 봉분, 무화된 자리」를 더 이상 분석하고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5). 이처럼 윤회사상은 심오하면서도 그 깊이가 있고, 우리 인간들의 최고급의 지혜(사상)로써 그 정점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치는 모든 사람의 안락과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며, 더욱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정치는 국민에 대한 국왕의 채무를 반환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아쇼카왕은 언제나 그 국민들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 채무의 반환으로써 모든 국민들을 그의 친족처럼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처가 그 민중의 눈으로 다른 국왕들을 바라보았을 때, 국왕은 국가와 동일시되고 있었으며, 국왕이라는 자는 그 전제적인 힘에 의지함으로써 모든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는 가능하면 국왕의 절대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그의 신도들을 은거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남녀 평등주의와 만인 평등주의를 온몸으로 실천해 보였던 것이다. 불교도들의 서열은 출가수행 년수와 그 법력의 크기에 따라서 정해졌고, 또 그들은 어디까지나 철두철미하게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공화정치 제도를 실시하고 그것을 정착시켜 나갔던 것이다. “세상에 이름과 성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단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혈통, 재산, 가문을 자랑해서는 안 되며, 바라문도 덕행이 높아야만 비로소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4: 65) 힌두교는 카스트 제도 위에 군림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종교이고, 불교는 그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고 있는 노예계급의 종교이다. 부처가 그 노예계급의 입장에서, 힌두교와 브라만 계급의 모든 가치관들을 전복시켰을 때, 과연 그는 어떠한 처지에 몰렸었고, 그 결과, 그는 그의 최종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부처의 入山俗離는 박해받은 자의 표지이며, 그는 현실적으로는 백전 백패의 전략과 전술을 통해서 지배계급의 모든 가치관들을 거부하고 전복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싸움이 그러했듯이, 힌두교와 불교의 싸움 역시도 주인(지배계급)과 노예(피지배계급) 간의 계급 투쟁의 역사 속에서 그 싸움의 성격을 정리하고 설명할 수가 있다. 나는 일찍이 「외디프스 신화의 수용 양상과 재해석」이라는 글에서 그 계급 투쟁의 본질적인 국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설명을 한 바가 있다.
“모든 주인의 도덕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기양양한 긍정에서 비롯된 반면, 모든 노예의 도덕은 처음부터 외부적인 것, 다른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주인은 “나는 선하다, 그러므로 너는 나쁘다”라고 말하지만, 노예는 “너는 나쁘다, 그러므로 나는 선하다”라고 말한다(6: 200). 왜냐하면 주인은 타인의 의견을 경청함이 없이 그의 행복과 선을 긍정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즐거워할 수가 있지만, 노예는 그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기에는 너무도 약하며, 그는 주인에 의해서 지배적인 방법으로 설정된 가치들을 전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니체의 ꡔ도덕의 계보ꡕ에서도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좀더 폭넓게 변주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인(아버지)은 채권자이고, 노예(아들)는 채무자이다. 하지만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단순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만도 아닌 데, 그것은 주인의 의도대로 변제가 가능한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은 오로지 자신의 ‘희생과 업적 덕택’으로 노예의 삶이 가능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노예의 입장에서 그것은 ‘괴물과 같이 무섭고 거대한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인은 채권자의 입장에서 노예의 ‘법률적 의무’를 강요하는 신의 자리로 올라 서려고 하고, 노예는 채무자의 입장에서 주인의 명령을 거역함으로써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주인의 희생과 업적이 절대적이고 강력할 때는 그 주인에 대한 성화, 축제, 찬가, 의례 등의 복종의 형식이 융성하게 되지만, 주인의 유덕이 한계를 드러낼 때는 “종족 창시자의 정신에 두려움을 감소시키고, 또한 그 창시자의 영민한 통찰력과 그 힘을 경시하게” 된다(1: 97).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말이 시사해 주고 있듯이, 권력은 삶의 본능의 옹호이며, 무자비한 폭력, 혹은 투쟁의 전략을 낳게 하는 대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7: 219)
힌두교와 불교의 싸움은 이처럼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서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며, 인류의 역사 상, 가장 처절하고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처는 그 어렵고 힘든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입산속리’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은 민주주의의 시대이며, 노예계급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가 있다. 즉, 사회적 천민들이 모든 귀족계급들을 몰아내고, 부처의 ‘백전 백패의 전술’이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처럼, ‘백전 백승의 전술’로 변모된 것이다. 이 브라만 계급과의 가장 아름답고 웅대하며 피 비린내 나는 ‘혈투’를 벌였던 것이 부처의 위대성이며, 그가 오늘날 그 시련을 극복하고 모든 인류의 스승으로서 폭넓게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 역시도 그의 조국인 인도에서는 그 영향력이 1% 미만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불교마저도 힌두교의 한 분파 정도로만 알고 있다고 한다. 부처와 보살을 믿고 귀의하면 더 많은 부와 행복을 얻을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는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일 수 있는 자’만이 그 최종적인 승리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은 부처와 예수와도 같은 영원한 이단자들----나는 부처와 예수의 신봉자가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최초’이며 ‘최후의 존재’로서 단 하나 뿐인 그들을 존경하고 있을 뿐이다----이고, 나는 그들의 최종적인 승리를 찬양하기 위해서 이 「포효하는 삶」을 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지난 천년 동안 마르크스의 뒤를 이어서, 두 번째로, 그 사상적 업적을 남긴 인물로 회자되곤 한다. 그의 ꡔ순수이성비판ꡕ과 ꡔ실천이성비판ꡕ, 그리고 ꡔ판단력비판ꡕ은 중세의 암흑기를 헤쳐나와 모든 학문의 예비학인 ‘비판철학’을 정립한 불후의 고전들로 손 꼽히고 있으며, 인류의 역사가 종식되지 않는 한 영원히 그 빛을 발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칸트의 도전적이고 야심만만했던 과제들은 무엇이었으며, 그의 ‘포효하는 삶’은 그 과제들과의 싸움을 통해서 무엇을 획득하게 되었던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그는 ‘종교와 철학’, ‘사제와 철학자’들의 구분이 없어지고, 기껏해야 신학자들의 시녀 노릇을 하던 철학자의 입장에서, 그 암울한 역경을 딛고 다음과 같이 그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바가 있었다.
“현대는 바로 비판의 시대이며 모든 것이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종교는 그 신성에 의하여, 그리고 입법은 그 존엄에 의하여 비판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종교이든 입법이든 자기 자신에 대한 의혹을 당연히 초래할 것이며, 또한 이성이 그의 공명 정대한 비판을 견디어 낸 것에만 허용하는 진정한 존경을 요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8: 9)
중세의 암흑기란 고대 그리스 이후, 기독교가 지배했던 시기를 뜻하며, 기독교의 교리에 반하는 그 어떤 것도 진리로 통용될 수가 없었던 시기를 뜻한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 갈릴레오의 종교재판, 데카르트의 인간 이성의 발견,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등의 르네상스 시대와 영국의 로크, 프랑스의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 등의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서, 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주의 사상의 완성자로서 그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과학이란 인간의 경험에 의하여 성립된 학문이고, 형이상학이란 전적으로 인간의 경험을 무시하고 그 개념에 의해서만 성립된 학문이다. 따라서 칸트는 모든 학문의 여왕으로 군림을 하고 있었던 형이상학을 향하여 “요컨대 사변적 이성(경험을 초월한 사변적 이성)으로부터 인식하려는 지나친 생각을 제거하지 않는 한, 나는 ‘신’, ‘자유’, ‘영원한 삶’을 나의 이성의 실천적 사용을 위해 상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그 비판철학의 칼날을 들이대게 되었고(8: 27), 그것으로 인하여 형이상학이 죽지는 않았지만, 매우 치명적인 중상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감성의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며, 오성의 형식은 범주이다. 감성은 ‘인식의 감수성’에 기초하고, 오성은 ‘사고의 자발성’에 기초한다. 칸트가 규정하고 명명한 네 개의 범주----‘오성의 기능’에 대한----가 있는 데, ‘양의 범주’와 ‘질의 범주’와 ‘관계의 범주’와 ‘양상의 범주’가 바로 그것이다. 양의 범주에는 ‘전칭(全稱)판단’, ‘특칭(特稱)판단’, ‘단칭(單稱)판단’이, 질의 범주에는 ‘긍정판단’, ‘부정판단’, ‘무한판단’이 있고, 관계의 범주에는 ‘정언(定言)판단’, ‘가언(假言)판단’, ‘선언(選言)판단’이, 양상의 범주에는 ‘개연(蓋然)판단’, ‘실연(實然)판단’, ‘필연(必然)판단’이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가?’ 칸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경험에 의거하지 않고 진리임이 분명한 판단이며, 그 단적인 예가 ‘모든 사건은 원인을 갖는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는 칸트의 ꡔ순수이성비판ꡕ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감성과 오성의 형식을 규정하고 그 범주표를 작성함으로써 ‘형이상학의 독단론’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고, 독일철학(관념철학)의 기초를 마련한 데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다.
칸트는 그의 ꡔ실천이성비판ꡕ에서 “자유는 도덕의 존재 근거이며 도덕은 자유의 인식 근거”----이 말은 내가 제2장 「상승주의의 미학」에서 가장 날카롭고 예리하게 비판을 가한 바가 있지만----라는 전제 아래, 우리 인간들의 선악을 규정하고 또 그것을 논하고 있다(9: 2). “선악의 개념은 도덕(법) 이전에 규정되지 않고, 오직 도덕법 이후에, 또 도덕법을 통해서 규정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그것이다(9: 69). 나는 이미 앞에서, 도덕법 이전의 선악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 바가 있지만, 도덕법 이후의 선악에 대한 개념 규정은 칸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인간들은 사회적 동물로서 도덕법을 제정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 도덕법이 정면으로 공격을 당하거나 훼손을 당하게 되면 그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도덕법은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의 ‘정언명령’으로 되어 있고, 그 도덕법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와 강제성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기 행복의 원리라면, 그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 사이에는 매우 심각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개인의 행복보다는 공동체 사회의 행복을 수호하는 것이 도덕법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는 도덕법은 ‘선 의지’가 그 동기라고 단언하고, 또 그것의 책임과 의무와 강제성을 말하기보다는 우리 인간들의 개 개인의 자유의 의지를 강조한다. 요컨대 도덕왕국의 입법적 국민으로서, ‘네 스스로 보편적 입법 원리로써 행위하라’----“너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법칙의 수립이라는 원리로써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9: 33)라는 번역자의 문장을 나는 내 나름대로 이렇게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 그의 도덕철학의 근본명제인 셈이다. 헤겔이 그의 도덕철학으로써 ‘국민 도의’를 절대시했다면 도덕군자로서의 칸트는 ‘윤리적 휴머니즘’을 중요시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도덕의 주체요, 도덕법은 인간의 자유가 가지는 자율로 인해서 신성한 것이다”(9: 97)라는 칸트의 ‘윤리적 휴머니즘’은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조랑말은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무슨 착오라도 일으킨 게 아니냐는 듯
말은 목방울을 흔들어 본다.
방울 소리 외에는 솔솔부는 바람과
솜처럼 부드럽게 눈 내리는 소리 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 자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 한다.
잠 자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 한다.
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서서」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도 같다. 시인은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서서, 그 아름다운 풍경 자체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그러나 그는 도덕왕국의 입법적인 국민으로서 그 신성한 사명감을 부단히 의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 자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 한다/ 잠 자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 한다”. 자기 자신의 행복의 원리와 도덕법이 일치할 때, 우리는 칸트처럼 ‘윤리적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세계에 무한한 감동과 찬사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임마누엘 칸트는 도덕적 선만을 강조하고 있지, 그 도덕적 선을 떠나서 부도덕의 미학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자기 책망, 자기 질책, 즉 후회”는 도덕적 심정이 낳은 괴로운 감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잘못이 낳은 괴로운 감정이다(9: 109). 성공과 실패----그것이 비록, 하찮은 도둑질일지라도----, 승리와 패배----그것이 비록, 더러운 政爭일지라도----에서, 후자의 입장(실패와 패배)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바보같은 잘못을 탓하고 있지, 그 부도덕성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한, 인간에 대한 “존경이 도덕적 근거 이외에는 다른 근거를 가질 수 없는 것도” 아니다(9: 90). 예컨대 강자의 힘과 그의 승리, 그리고 대 도둑이나 대 악당들(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마피아의 두목 같은 자들)에 대한 수많은 인간들의 추종을 생각해볼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악을 넘어선 것에 대한 존경이지, 도덕적 존경이 아닌 것이다.
칸트가 그의 ꡔ실천이성비판ꡕ에서, 그의 도덕철학을 정립하고자 했다면, 그의 마지막 비판서인 ꡔ판단력 비판ꡕ에서는 그의 미학을 완성했다고 할 수가 있다. 자연의 개념에 대한 입법은 오성에 의해서 수행되고, 자유의 개념에 대한 입법은 이성에 의해서 수행된다. 오성은 인식 능력과 관계가 있고, 이성은 욕구 능력과 관계가 있다. 전자는 이론적이며(ꡔ순수이성비판ꡕ이 그것이다), 후자는 실천적이다(ꡔ실천이성비판ꡕ이 그것이다). 오성과 이성 사이에는 판단력이 작용을 하고, 언제나 특수한 것을 보편적(객관적)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을 우리는 ‘판단력’이라고 부른다. 지면 관계상, 칸트의 ꡔ판단력비판ꡕ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본다면, 그는 그 책에서 ‘순수미’와 ‘고착미’, 혹은 ‘취미판단’과 ‘도덕판단’을 대비하고, 그 대비를 통하여, 그의 미학을 정립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취미판단은 그 대상에 관심이 없는 판단이며, 도덕판단은 그 목적에 종속되어 있는 판단이다. ‘목적 없는 합목적성’은 순수미이며, ‘목적 있는 합목적성’은 고착미이다. 순수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으로 도덕적 선과는 관계가 없지만, 고착미는 일정한 목적에 종속되어 있는 만큼, 도덕적 선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모든 예술작품은 순수미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것은 언제,어느 때나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가 주게 된다. 이처럼, 예술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게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가 준다는 것이 칸트 미학의 가장 핵심적인 전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큼 중대한 오류도 또 없을 것이다. 예술은 수많은 저명 인사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에게 돈과 명예와 권력을 안겨준다. 또한 예술은 대 교육제도 속에 편입되어 삼류 작가들의 사소한 업적들마저도 신비화시키고, 티없이 맑고 순수한 학생들마저도 그 예술가들의 아류로 만들어 버린다. 예술은 더없이 커다란 상품 시장을 갖고 있고, 언제, 어느 때나 가장 뛰어난 예술가들의 지혜와 그 기법으로 새로운 대상들과 그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도록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대상과 그 현상들을 명명하고, 가치평가하고, 그리고 대 교육제도와 상품시장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예술이 어떻게 취미판단, 즉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소산일 수가 있겠으며, 그 순수미를 또한, 고착미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어떻게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순수미와 고착미, 그리고 취미판단과 도덕판단을 인위적으로 분할하고, 예술의 이름으로 고착미와 도덕판단을 단죄한 오류는 아마도 칸트의 오류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오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수미가 고착미이고, 고착미가 순수미이다. 취미판단이 도덕판단이고, 도덕판단이 취미판단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해서, 예술의 유용성과 그 사회적 기능은 ‘목적 있는 합목적성의 정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튼 칸트는 그의 ‘비판철학’을 통하여, “오성의 격률”과 “이성의 격률”, 그리고 “판단력의 격률”을 무모순의 원리로써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정립할 수가 있었다(10: 171). 그것은 그의 ‘포효하는 삶’의 소산이며, 계몽주의 사상의 완성이다. 그가 가장 처절하고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떠한 비판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던 ‘형이상학의 독단론’이지만, 그러나 그는 그 ‘비판철학’의 칼날을 들고 수많은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동시대의 모든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베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싸움은 부처와 예수처럼, 또는 알렉산더 대왕처럼 가장 처절하고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이면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대한 싸움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오, 수많은 시련과 그 시련들 속에서도 더욱 더 아름답고 웅대해질 수 있는 포효하는 삶이여! 오오! ‘포효하는 삶’은 이 세상을 더욱 더 아름답고 넓고 풍요롭게 바라볼 줄 아는 낙천주의자들의 삶(싸움)의 양식인 것이다.
가장 사악한 싸움의 예들: ‘플라톤/ 트라시마코프’, ‘뉴턴/ 라이프니츠’, ‘유종호/ 엘리어트’, ‘김윤식/ 가라타니 고진’
미셸 푸코는 역사라는 공공의 경기장에서 지식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권력에의 의지’라고 말하고, 권력과 지식의 상관 관계를 밝혀놓은 바가 있다. 권력이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해 낸다는 것은 니체의 뒤를 이어서, 푸코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의 권력에의 의지는 무정부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색채 속에서 그 싹을 틔워보지도 못한다. 그는 권력을 지배와 복종이라는 닫힌 체계로 보며, 그 권력의 책략이나 이중효과를 역설하기에 여념이 없다. 권력은 그 닫힌 체계로써 최고의 통치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억압하기 때문에 나쁘고, 따라서 다양한 투쟁 전략 속에서 항상 역전이 가능한 지점을 만들어 준다고 그는 역설한다. 그러나 푸코가 그처럼 공공연히 역설하고 있는 것은 이전투구와도 같은 권력일 뿐, 그 권력의 절대적이고 긍정적인 기능은 아니다. 권력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본능의 옹호라고 나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다. 무리를 짓고, 또, 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들이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통해서 공동체 사회를 구성하고 모든 사회적 제도와 법률은 물론, 합법적인 위계 질서를 갖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권력은 외부의 침입자나 자연의 재앙, 그리고 폭력, 사기, 강도, 강간, 살해 등으로부터 우리 인간들을 보호해 주기도 하고, 또, 가난한 자나 상처입은 자, 그리고 깊고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한줄기의 서광과도 같은 미래의 희망을 던져주기도 한다. 더욱이 권력은 더 넓은 국토와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그 영원한 제국을 통하여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와 그밖의 모든 인간들에게 영광의 무대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학교, 군대, 정당, 단체, 직장, 가정, 회사 등, 이 모든 것들은 그 권력의 토대 위에서만 꽃 피어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자들은 고귀하고 위대한 것을 한없이 깎아내리고 우리 인간들의 삶을 생기없게 만들고 있지만, 권력을 부정한다는 것은 삶을 부정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생명부정에의 의지’에 지나지 않는다. 지배하는 자, 명령하는 자, 그리고 모든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들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 프로이트, 보드리야르, 미셸 푸코, 들뢰즈/ 가타리, 데리다, 부르디외 등은 인간 쓰레기와도 같은 지배자 혐오주의자들이며, 현대 민주주의의 광신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권력은 삶의 본능의 옹호이며, 수많은 권력 투쟁과 다양한 투쟁 전략이 끊임없이 생성-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인간 사회’라는 유기체가 매우 싱싱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역설한 바가 있지만, “정복자는 이웃 민족국가의 영토를 빼앗고 그 원주민들을 노예로 거느리게 되고, 피정복자는 자기 영토를 빼앗기고 이민족을 하나님과도 같은 주인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 힘이 있으면 그것은 선이 되고, 힘이 없으면 그것은 악이 된다. 이것이 모든 유기체들의 생존이라는 게임의 법칙인 것이다. 힘을 잃고 약화된 민족은 반드시 소멸하게 되어 있는 반면, 힘에 힘을 더하고 강력해진 민족은 그 물리적인 힘의 토대 위에서 그것을 은폐한 채, 고급문화인으로서의 미소를 띠고, 제법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다. 모든 싸움은 ‘도덕적 선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싸움이며,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이 대부분의 인간들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이 그 싸움의 전제 조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상, 이념, 고급문화, 영원한 제국, 이 모든 것들은 그 권력자들의 ‘포효하는 삶’이 미화하고 합리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철학 예술가로서 나는 이 세상의 삶을 향유하는 데 그 무엇보다도 관심이 있고, 또, 그것은 낙천주의자로서의 나의 행복론으로 나타난 바가 있다. 따라서 나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절대 긍정을 위한 비판이다. 나는 가능하면 가장 어렵고 힘들고, 그 어느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것, 그러나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하는 일에 관심을 보여왔고, 그것으로 인하여 염세주의, 기독교, 불교, 공산주의, 현대 민주주의, 그리고 그 어중이 떠중이들과는 상반되는 길을 걸어왔던 셈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어중이 떠중이들을 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만인 대 일인의 싸움’을 자청하게 된 것이며, 단 한 명의 원군이나 우군도 없이 가장 강력한 적들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만인 대 일인의 싸움’을 걸만큼 충분히 강하고, 생사의 문제를 헐리우드의 전쟁 영화처럼 가볍게 여길 줄도 알고 있다. 싸움은 인간을 비정하고 잔인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은 인간을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만든다. 싸움은 싸움의 목적을 분명하게 만들고, 그 싸움의 결과가 승리일 때는 최고의 희열을, 그렇지 않을 때는 목숨까지도 빼앗기게 되는 비참한 상실감을 미리부터 맛보게 한다. 어떤 싸움이든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승리이며, 그 승리의 축배는 돈, 명예, 권력, 그밖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전적이고 전투적이지만, 나는 나의 싸움에 관한 실천 원칙을 갖고 있다. 나의 싸움은 ‘만인 대 일인의 싸움’이며, 이제까지의 그 싸움이 만인들의 횡포에 견디지 못한 일인의 싸움에 불과했다면, 나는 그 ‘원한 맺힌 저주 감정’ 없이 만인들의 어리석음을 문제삼고, 그들 모두가 자기 자신들도 모르게, 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도록 몰아 부쳤던 것이 그 특징적이다. 나의 욕망은 상승 욕망이며, 그 상승 욕망은 니체의 권력 욕망이나 프로이트의 성적 욕망을 하위 개념으로, 혹은 종속 개념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보다 나은 인간, 보다 완전한 인간, 그 신적인 인간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우리 인간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내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 즉, 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 학자들은 신문과 대중매체, 넋 잃은 독자와 그 옹호자들에 둘러싸여 매우 보잘 것 없고 아주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있기가 십상이지만, 나의 승리는 가장 처절하고 비참한 패배에 둘러싸여 그 승리의 의미도 퇴색해 버리고, 이내 그 몸 둘 곳을 몰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면적인 양상일 뿐, 그 깊은 곳에서는 언젠가는 새로운 태양처럼 떠오르게 될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것이다. 높이 높이 날아오른 새가 잘 보이지 않듯이, 깊이 깊이 내면으로 스며든 나의 승리가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에게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만인 대 일인의 싸움’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궁극적인 목표는 낙천주의자의 신전의 건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은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명예이며, 삶의 완성이며, 보다 완전한 인간의 표지이다.
이제까지는 싸움의 궁극적인 목표와 그 의미를 천착하고, 또 그것을 가장 위대한 인간들의 ‘포효하는 삶’에서 살펴보았다면, 나는 지금부터 가장 사악한 싸움의 예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