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갔어요.
친구가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나의 영혼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준 친구.
가식으로 옷을 입을 때 순수의 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세상의 오물로 채워진 나를 정화시키던 친구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영화이다. 황 영화.
그렇다고 그 친구가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거나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영화씨와는 일주일에 한번 잠시 스치는 정도였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내가 보고싶어하는 만큼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 할 지도 모른다.
“갑자기 밖에서 넘어졌다는데 119에 실려 응급실에 다녀와서 배가 많이 아프다고 했어요. 피똥을 싸고 잠을 잤는데 아침 먹으라고 하니 눈을 안 떠요. 119가 왔는데 숨을 안 쉰데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하는 남편의 말에 뭐라 위로할 수도 없었다. 아니 내 감정도 추스르지 못하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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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이기에 죽음에 대한 충격이라기보다, 우리에게 예고도하지 않고 보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사랑을 보내야하는 안타까움에 더 마음이 아팠다.
지적장애(다운증후군)인 영화씨는 사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으로 여러 질명들을 극복하며 다운증후군의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았다
친구는 매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아니 배움이란 게 필요 없고 교양도 없다.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를 한 번 본 사람들은 영화씨에게 빠져들어 간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부요하고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도 그녀의 눈길한번 받기를 바랐고 그녀에게 사랑 받기 원했다.
그녀가 심장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몇 명이 병문안을 간적이 있다.
들어가는데 침대에 앉아있던 영화시가 손가락을 나에게 가리키며“이--뽀--”라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기뻤다. 따라 들어오던 분들이 “영화씨, 저는요?” “나는?” 이라고 하며 영화씨의 반응을 살폈다. 그 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 이쁘네요. 헤어스타일이 멋져요...”라는 칭찬을 들을 때 보다 왜 영화씨가 이쁘다고하니 기분이 좋을까.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그녀의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그녀의 순수함과 자신에게 진실함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는 과장되거나 자기를 잘보이기위해 칭찬을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이익과 좋은 사람 프리즘을 통과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느끼는 데로 반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많이 쓰고, 페르조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이로 돌아가 벌거거벗고도 부끄럽거나 흉보지 않고 마냥 뛰노는 쉼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영화씨의 장례식은 매우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부담스러운 비용 때문에 빈소도 차려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가족들의 연락이 두절되어 사망소식을 전 할 수도 없어 일가친척도 아무도 없었다. 더우기 사망일이 추석이어서 그를 기억하는 몇 몇 분들은 고향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그를 마음에 담고 있는 몇 명만이 참석했을 뿐이었다.
얼마 전 다녀온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사회활동을 많이 하다가 90에 돌아가신 친구 어머니의 빈소는 서울의 큰 병원 특실이었는데 성공한 자녀들의 지인인 조문객이 넘쳐나 자녀들은 슬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듯 했다. 오히려 조문객들은 호상이라며 상주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난 평소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씨처럼 아픔과 가난과 함께 한 사람들의 장례식은 더 많은 위로가 넘치기를 기대했었다.
그의 사랑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의 해 맑은 미소를 기억해주고 그 사랑을 나누기를 바랬다.
이런 기대는 어쩌면 순수한 영화씨의 바람이라기 보다 오늘 이후 언젠가 치러질 나의 장례식에 거는 기대일지도 모른다.
기억된다는 것.
나는 이제라도 바란다,
영화씨에게 사랑을 받았던, 영화씨로 인해 활짝 웃을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영화씨의 웃음을 기억해 주길.
그녀가 없는 빈자리가 공허로 남지 않기를 ,
또한 다시 탐욕과 가식으로 채우지 않기를
그에게 순수하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영화씨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기를......
친구야, 안 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