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식당 여자만(汝自灣)
2010년 2월 25일
인사동 경인갤러리에서 사진전을 펼친 지 이틀째다.
봄을 재촉하는 늦겨울 비가 많이도 내린다.
우울한 날씨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시 우울한 소식이 들렸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우리 선수들이 실격처리로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가 놓치고 말았다.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 작품 앞에 선 가족
집에서 그 경기를 보고 난 후에서야 인사동으로 출발했다.
전시장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 아들이 퇴근 후에 근무복 차림으로 며느리/손녀딸과 함께 전시장에 들렸다.
덕담(德談)을 나눈 후, 며느리가 듣기 좋은 소리로 시아버지 기(氣)를 북돋우어 준다.
“아버님! 작년작품보다 이번 출품작이 훨씬 좋아 보이네요!”
비가 그치고 어스름 안개가 깔린 인사동의 저녁거리는 가족들에게 낭만적인 추억을 남기기에 분위기가 그만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취향에 맞추어 남도식당 “여자만(汝自灣)”으로 안내한다.
여자만(汝自灣)은 순천만(順川灣)의 옛 이름이다.
그 이름을 본뜬 여자만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감독을 지낸 이미래씨가 주인이다.
제3해역 사령관과 손재석 장관(1986년 7월 11일)
그녀의 남편이 월간 “사람과 산” 편집국장이다 보니 산 사람들/연예인/방송작가 등등이 단골들이라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차지이 할 수가 없다.
내가 남도 음식을 탐하기는 목포의 제 3해역사령관 근무 때부터다.
지역에 계신 보해/행남자기/남양어망/조선내화의 어르신들이 자주 불러 남도의 음식에 맛 들게 해 주셨다.
그 첫 모임에서 삼합을 먹고 입안 전체가 헤어져 고생을 한 적도 있었고 1986년 7월11일 손재석 문교부 장관이 오셔서 점심을 함께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홍어 애를 날것으로 회를 친, 잊을 수 없는 맛을 경험해 온 터였다.
남도 식당 “여자만”은 종업원들조차 마음에 들었다. 한결같이 예쁘고 친절했다.
첫 접시에 묵은 지와 남도의 그 유명한 삼합이 나왔다.
하얀 탁배기로 잔을 채우고 우선 삼합 한 젖가락을 입에 물었다.
싸아한 맛이 입안에 가득할 때 탁배기를 들이마신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든지 손녀딸이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웃는다.
그 귀여운 모습에 탁배기 맛이 천 년 산삼(山蔘)으로 변했다.
여자만(汝自灣)에서 직송한 꼬막으로 버무린 무침, 매생이 부침개, 도토리묵 등등 하나같이 손맛이 뛰어났다.
남도식당의 가족들
접어 두었든 카메라를 다시 꺼내 들었다.
곰 삭힌 젓갈이 깊은맛을 품는 것처럼, 남도 식당에서 곰 삭고 있는 가족들의 이 행복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역시절, 여자만은 간첩선 출몰이 심하여 전방해역(前方海域)과 다름없는 경계구역이었는데 4반 세기가 지난 지금 그 여자만 갯내음을 가족들과 함께 이 낭만의 거리 인사동에서 즐기고 있으려니 감회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