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아까시나무

[화린(花吝)]

아까시나무의 꽃(Robinia Pseudoacacia)

 햇살이 마냥 따스하기만 한 늦은 봄날, 바람결에 실려 오는 아까시나무의 향기는 달콤하기만 하다. 아까시나무는 주렁주렁 포도 송이처럼 달린 하얀 꽃송이들마다 향기로 또는 그 부드럽게 하얀 꽃 빛으로 그리고 신록의 싱그러움으로 찬란한 5월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지은이가 이렇게 꽃 향기 운운하니 분명 ‘아카시아’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싶은데 왜 ‘아까시나무’라고 부를까 하고 의아해 하는 이들이 있을것이다. 사실 우리와 친숙한 이 나무를 두고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 이유는 아카시아라는 나무는 열대 지방에 자라는 엄연히 다른 나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이 나무의 학명은 로비니아 수도아카시아(Robinia Pseudoacacia)로 로비니아속에 속하는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이다. 이 나무가 우리 나라로 들어와 진짜 아카시아로 되어 버렸는데 이 나무는 아까시나무이다.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주는, 세련되면서도 아름다운 그 느낌이 못내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틀린 것은 틀런 것이니까.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콩과의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이며 아주 크게 자랄 수 있는 나무이다. 지금은 우리의 어느 땅에서나 볼 수 있는 가까운 나무가 되었다. 잎은 아홉 내지 열아홉 개의 작은 잎들이 깃털처럼 줄줄이 달려 있는데 이런 잎들을 우상복엽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같은 숫자의 작은 잎들을 가진 복엽을 골라 따서는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기면 하나씩 잎을 따며 지내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5월에 피는 유백색 꽃송이는 작은 흰 나비를 닮았다. 멀리서 바라보면 희게만 보이지만 꿀이라도 빨아 보려고 떼어 내 보면 꿀샘이 있는 근처에는 좀더 진한 색소를 내보내어 벌들이 금세 꿀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콩과 식물인 만큼 긴 갈색 꼬투리가 달려 오래 남아 있다.

 아까시나무를 대하는 우리네 심정은 사람마다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산을 망쳐 버리는 아주 몹쓸 나무가 되는가 하면 꿀이 많고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좋고 용도가 많은 추억 속의 아름다운 나무가 되기도 한다.

 아까시나무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 말로는 목재가 쓸모 없고, 이 나무가 자라는 숲은 으레 나쁜 숲이며, 도저히 보아 넘길 수 없는 나쁜점은 조상의 묘자리에까지 뿌리를 뻗어가며 때문에 없애려고 무진 애를 써도 도저히 어떻게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까시나무가 우거진 숲은 대개 잡풀이 적다. 워낙 생장이 왕성하여 스스로 자라는 데 많은 양분이 필요하므로 다른 식물이 나누어 쓰지 못하도록 일종의 독성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생태계의 다양성 측면에서 본다면 나쁜 점수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아까시나무가 우리에게 나쁜 선입견을 주는 요인에는 일제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아까시나무가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 중국을 거쳐 일본인의 손을 통해 인천으로 들어왔으며 특히 일제 시대에 황폐한 산을 긴급히 녹화하기 위해 전국에 심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우리 나라 망치려고 좋은 나무 다 베어 내고 산에 몹쓸 나무만 잔뜩 심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빨리 자라고 또 땔감을 공급해야 하는 목적 때문에 전쟁 후에도 많이 심었으며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한창 치산 녹화 사업에 열을 올리고 산림 보호에 힘을 쓸 때도 이 나무의 가시가 입산을 통제하는 효과가 있어 권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까시나무는 그 청량한 꽃 향기가 아니더라도 장점이 얼마든지 있다. 먼저 이 나무는 약으로 쓴다. 잎은 특히 이뇨 작용이 뛰어나고 신장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약재로 이용하는 부분은 주로 뿌리의 껍질인데 봄이나 가을에 채취하여 잘게 썰어 건조시켜 놓고 달여 마시면 이뇨, 수종,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봄철에 어린 잎을 나무로 무쳐 먹으며, 샐러드를 해먹어도 풋풋하니 그 맛이 좋다고 한다. 꽃이 피면 꽃과 어린 잎을 섞어 튀기거나 무침 등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 다 자란 잎은 살짝 찐 다음, 손으로 비비면서 말려 차로도 마신다. 풀 냄새 같은 것이 나긴 하지만 이뇨 효과도 있고 좋다.

 아까시나무는 양분도 많아 사료로 아주 좋은데 문제는 그 가지에 있다. 가지째 자른 다음 말려서 잎이 떨어지면 그때 사료로 쓰곤 하였는데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가시 없는 아까시나무도 만들어 보급되었다. 그러나 이제 꼴을 베어 사료를 하던 시대가 다 지나가서 이마저 흐지부지된 상태이다.

 사람들은 아까시나무를 두고 목재로는 아주 쓸모 없는 잡목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 나무를 땔감으로 쓰려고 계속 베어 내었고 그 후로는 없앨 궁리를 했으니 아까시나무는 제대로 자기의 수형(樹型) 한번 만들어 보지 못한 채 못생긴 잡목이 되어 버린 까닭이다. 아주 드물지만 제대로 길러 놓은 아까시나무 숲에서는 듬직하게 자란 그 줄기를 본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아졌다. 아까시나무의 목재는 강도가 높고 비중이 커서 내구성이 강한데다가 무늬와 색상이 아주 독특하다. 게다가 일반 목재보다는 다소 비싸지만 고급 특수 목재로 수입하는 다른 나무보다는 값이 싼 편이어서 앞으로 많은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까시나무는 꿀의 생산량을 따져 보더라도 어쩌면 가장 높은 수익을 주는 나무일지도 모른다. 잘 자란 나무 한 그루에서 딸 수 있는 아까시나무 꿀의 양과 그 가격을 생각해 보면, 한 나무에서 그것도 매년 그만큼의 수익을 주는 나무가 또 어디에 있을까? 꿀 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 수입 개방을 앞두고 큰 위기해 처한 이 마당에 아까시나무는 많이 심어도 시원치 않을 지경이다. 꽃이 피는 시절의 아까시나무 숲은 좋은 수입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헝가리 같은 나라에서는 수없이 많은 아까시나무 품종을 만들어 개화기를 늘리고 아름다운 가로수를 조성하여 크게 덕을 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 곳에나 모두 아까시나무를 심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잘 자란 우리의 숲에 굳이 아까시나무를 들여놓을 필요는 없다. 그 왕성한 생명력은 분명 생태계를 교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말고도 다른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 버려진 땅에 아까시나무를 제대로 심어 가꾼다면 아까시나무는 스스로 아무도 이용하지못하는 땅속의 질소를 고정하여 양분으로 삼아서 잘 자라 우리에게 몇 갑절의 보은을 할 것이다.

내용출처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 / 이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