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 액션과 미국의 대북협상

[인샬라]

 

미국의 대북협상과 헐리웃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

헐리웃(Hollywood) 영화중에는 갱스터나 테러리스트들이 FBI나 미군과 인질을 놓고 협상과 타격을 벌이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많다. 이런 영화들은 양측에서 고도의 심리전과 대중전의 두뇌싸움과 물리적 타격전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로 흥행몰이를 하고는 한다.

이런 류의 영화는 모티브나 감독의 성향 등에 따라 스토리 전개가 하드보일드 액션이 중심이 되기도 하고 심리적 두뇌싸움이 중심이 되기도 한다. 한때는 이런 헐리웃 액션이 꽤나 유행을 했고 나 역시 이런 영화를 좋아했을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뻔한 스토리와 예측 가능한 결말 때문인지 대중들이 그리 즐겨보지 않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뻔한 스토리와 결말.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FBI나 미군 측이다. 영화의 캐릭터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며,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도덕적 룰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선(善)이며 적군은 당연히 악(惡)이고, 선은 죽지 않으며 악은 반드시 징벌 당한다.

영화 속에서는 반드시 영웅적인 주인공이 나와 직접 인질범들과 협상을 벌이거나 인질을 구출하는 등 생사여탈의 극적 상황을 연출한다. 그 속에서는 주인공의 생각과 대립하는 주인공 진영 내의 강경파나 협상파가 나와 강온(强溫)대립이 제기되며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일단 고립된 적군이 근거지에서 인질을 데리고 주인공 진영과 대치상황을 만들면, 적군은 인질을 미끼로 교섭을 요구하고 주인공 진영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심한다.

이때 주인공 진영의 대처방법은 대강 몇가지로 축약된다.

1. 적군 진영의 모든 보급(전기, 통신, 음식 등)을 차단하고, 모든 출로를 차단하여 주위를 완벽히 포위한다.

2. 적군 내부의 통제가능한 선(線)[적군 Controller]와의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며 심리적으로 안정시킨다. 이를 통해 상대방의 정보를 얻기도 하고, 가끔은 “기브 앤 테이크” 식의 인질 한명과 가능한 요구조건 한 개를 들어주기도 한다.

3. 적군의 핵심 요구조건(돈, 헬기, 동지의 석방 등)에 대하여는 가급적 시간을 끌며 지칠 때까지 기다린다.

4. 적군 내부에서 볼 수 있는 TV 뉴스 등을 통해 적군의 가족 소식이나 도덕적 문제성을 부각시켜 여론을 악화시켜 적군 내부를 심리적으로 동요시킨다.

5. 적군 내부 인원과 교묘히 소통하여 내부 분란을 일으킨다.

6. 적군이 절망적 상황에 이르게 되면 주인공을 앞세운 타격대(SWAT나 미해병대)를 투입하여 제압한다.

그리하여 대부분 결말은 범죄자소탕(사살 또는 생포)과 인질구출(일부 또는 전부)로 매듭짓게 되고, 영웅적인 주인공은 격투 끝에 얻은 영광(?)의 상처를 안고 사건이 정리된 현장을 맴돌면서 가족 또는 연인과의 사랑을 확인하는 식으로 끝이 난다.

미국의 대북협상,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이런 헐리웃 영화의 내용은 지금 미국이 북한에 취하는 협상의 방법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즉, 미국의 對북한 협상과정은 갱스터나 테러리스트와 대결하는 헐리웃 액션을 재연하는 듯 하다.

공통점?

북한은 지금 대외적인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 고립되어 있으며 “핵과 미사일” 실험을 통해 미국의 주의를 집중시키게 하고 있고, 이에 대해 미국은 경제제재를 실시하며 동시에 군사적 대응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 속에서 미국의 실질적인 대북조치들은 대강 다음과 같다.

1. 일단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에 대한 지원 및 교류를 차단하고, UN안보리와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한다.

2.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어가길 원한다고 하며, 가끔 인도적인 지원이나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며 달래기도 한다.

3. 평화협정이나 경제제재 해제 등에 대한 핵심 요구조건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하며 가급적 시간을 끈다.

4. 전세계 언론을 통해 북한의 열악한 경제와 인권 등에 대해 보도하며 북한 정권의 비도덕성을 알리고, 국제적 여론악화와 북한 내부를 동요시킨다.

5.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정권의 모순을 대대적으로 알린다.

6. WMD, 대북선제타격 시나리오 등 군사적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등등인데 언뜻봐도 헐리웃 인질극, 대테러극의 주인공들이 대처하는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이런 협상방법은 인질극이나 대테러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실전에서 사용되는 기법이기도 하다.

[헐리웃 인질극, 대테러극과 미국 대북협상의 공통점]

	헐리웃 인질극, 대테러극	미국의 대북협상
1	적진영 포위 및 보급차단	경제제재, UN 및 한반도 주변국과 공조
2	기브 앤 테이크 식 인질교섭	대화무드에서 인도적 지원 등
3	핵심요구안은 시간을 끌며 들어주지 않음	평화협정, 경제제재 등은 해결하지 않음
4	가족소식이나 도덕성 부각, 여론악화 내부 동요 유발	언론을 통해 북한 경제인권문제 등 부각시켜 국제여론 악화와 내부 동요 유발
5	내부자와 은밀한 소통, 내부 분란	탈북자 통해 북한정권 모순 대대적 선전
6	타격대 투입 제압	WMD 등 군사적 대응방안 모색

 

냉전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미국과 북한이 대립해 오면서 미국이 대북한 협상을 진행해온 과정은 헐리웃의 대테러·인질극 영화 식의 진부한 스토리로 전개되어 왔고, 북한도 매번 “벼랑 끝 전술”이라는 극한 대치로 화답해 왔다.

그렇다면 헐리웃 액션대로 미국이 생각하는 대북협상의 라스트 씬은 “북한정권의 소탕 및 북한 인민의 해방(?), 그리고 미국과 주변국들과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가는 이른바 헐리웃 식 <권선징악>의 결말을 기대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찬성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헐리웃 식의 결말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며 실질적 대북협상에서는 유용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차이점?

우선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미국은 완벽한 지원군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통 헐리웃 주인공은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주인공은 적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상자가 생겨도(그가 아군이던, 적군이던, 아니면 인질이던지 간에) 이를 감내한다. 한마디로 인질 1명을 구하고 적군을 섬멸하기 위해서 다른 주변의 민간인들이 희생당하거나 아군 100명쯤 죽더라도 헐리웃 주인공은 반드시 임무를 완수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협상 시나리오 속에 이런 무자비한 액션을 끼어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나리오를 선택하려면 최소한 중국, 러시아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특히 중국) 동의없이 북한과 초강력 액션을 벌이려 한다면 이들(중국, 러시아)과의 격투씬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들과의 격투씬을 추가하게 되면 미국이 이 영화에 들이는 단역배우와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수 있으며, 결국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고 흥행실패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대해(북과의 초강력 액션) 동의할 것인가?!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볼 수 있겠지만, 자신들 앞마당에 있는 셋트장을 시끄럽게 깨부수는 액션씬을 결코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다음으로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미국본토를 위협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제조기술과 미사일(정확히는 ICBM)의 유효사거리에 대한 검증결과는 기관이나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미국에게는 실질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모든 상황들이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통제 가능(적이 핵이나 미사일을 위협하면 아군이 들어가 그들을 제거하는 등의 행위)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딜레마가 있다.

다음으로 영화 속의 적군과 북한은 그 요구조건 자체에 차이점이 있다.

영화 속에서 적군은 보통 돈을 요구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근본조건은 자신들의 안전한 탈출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탈출 못하면 돈이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이런 적군의 뜻은 실현되기 어렵다. 모두 사살이나 생포를 당하게 마련이다. 악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탈출을 위한 퇴로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근거지 사수(체제유지)를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헐리웃 인질극, 대테러 액션영화와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또한 북한은 영화 속의 적군들처럼 내부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상당히 부족하다. 북한사회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어 있기때문에 외신을 통해 국제여론을 알려 대중심리전을 펼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사회 결속력이 튼튼하다는 점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점들로 인해 미국의 대북협상 시나리오는 헐리웃 식 인질협상극이나 대테러극의 초대형 액션블록버스터가 요구하는 일반적인 모티브와 결말도출에서 근본적으로 배치되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대북협상에서 액션 이외의 새로운 장르와 스토리라인을 구성해야 하는 전환적 발상을 요구받게 된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오직 미국 정책당국자들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진부한 소재와 시나리오로 매번 반복되는 뻔한 스토리의 파괴적인 액션영화만을 고집하기를 바라지 않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훈훈한 감동을 주는 휴먼 대서사시로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