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로마 교황청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왔다.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가 나가사키에서‘구멍 매달기’고문을 받고 배교를
맹세했다는 것이다. 이 페레이라 신부는 일본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잠복 선교를
계속해 왔는데, 교황청에 보고해 온 신부의 편지에는 언제나 불굴의 신념이
넘쳤었다. 히데도시가 종래의 정책을 바꾸어 가톨릭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사제들과 가톨릭 신도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고문을 받고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에서 세 명의 젊은 사제들이 일본 잠복을 꾀하고 있었다. 이들은 옛
수도원에서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들이었다. 가르페 신부와 마르타 신부 그리고
세바스티앙 신부 세 명에게는, 자신들의 은사인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일본에 건너가서 이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자
1638년 오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중에 일본은 포르투갈과의 통상교역을 완전히
단절하고 모든 포르투갈 선박의 도항을 금지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들었다.
절망적인 기분으로 마카오까지 도착한 그들은 순찰사 발리냐노 신부를 만난다.
힘든 여행으로 마르타 신부는 말라리아에 걸렸기 때문에 가르페와 세바스티앙
사제만이 밀항을 하게 된다. 밀항을 도울수 있는 일본인을 찾는 과정에서 이들은
히젠 지방의 어부‘기치지로’를 만난다. 다행히 도모기라는-가구가 200호에도
못 미치는 작은 어촌에 정착하게 된다. 이 마을은 대부분이 세례를 받은 적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발각이 되면 곧 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어민들은 부락 뒤에 있는 작은 숯 창고에 신부들을 숨어 지내게 한다. 사제들은
어민들의 고해를 듣고 기도와 교리를 들려주었다. 그런던 중에 이들은 100Km
떨어져 있는 고토섬에서 힘들게 찾아온 두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기치지로가
한 번 배교한 경험이 있는 가톨릭 신도라고 신부들에게 말해준다.
두 남자는 오도마리라는 부락민이었는데 마을 전체가 지금도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사제들이 없었기 때문에 멀리서 위험을
무릅쓰고 신부들을 찾아온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두 신부는 고토의
농민들을 만나기 위해 밤중에 마을로 찾아간다. 고토의 농민에게 세례를 주고
고해를 듣는 일로 신부들은 잠잘 틈도 없었다. 엿새가 지나 도모기 마을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관리들의 갑작스런 탐색을 받은 부락을 보아야했다.
관리들은 아무런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이 관원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신앙이 투철했던 모키치와 이치소우는 자발적으로
출두하게 된다. 관헌에 출두한 모키치와 이치소우,그리고 등 떠밀려 간 기치지로는
옥사에 갇혔다가 관리들의 취조를 받았다. 사악한 관리들은 성화에 침을 뱉고
성모는 남자들에게 몸을 맡겨 온 매음녀라고 말해 보라고 했다. 이러한 방법은
이노우에라는 관리가 고안해낸 것이었다. 기치지로만이 명령대로 굴욕의 침을
뱉았다. 취조가 끝나고 모키치와 이치소우는 감옥에 감금되었다가 해안으로 가
물 속에 목까지 잠겨 담대하게 주님을 찬양하며 죽었다.
관리들이 숨어 있는 신도들을 찾아내기 위해 산을 뒤진다는 것을 알게 된 신부들은
따로따로 헤어진다. 도모기를 출발해서 생선 썩는 듯한 냄새가 나는 마을 입구에
세바스티앙 신부는 다다랐다.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모르는 신부는 무작정 산을 넘었다.
여기서 신부는 배교자인 기치지로를 만나게 된다.
관헌에서 신부에게 현상금을 걸고 찾고 있다는 사실을 기치지로에게 듣고 신부는
의심을 하면서도 배고픔에 기치지로와 타협을 하게 된다. 주님을 팔았던 유다와 같이
의심하면서도 신부는 기치지로와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기치지로는 신부를 배반한다.
관리들은 신부를 네 명의 신도가 감금되어 있는 오두막집에 함께 감금을 시킨다.
관리들은 신부에게 배교하지 않으면 그들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신부는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해 나가사키에 거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며칠이
지나 오무라에서 만났던 수감자들을 재회하게 된다. 파수꾼의 허락을 받아 신부는
신도들의 옥사에 가서 기도를 외우고 그들의 고해를 들었다. 어느 날, 악명높은
이노우에 지쿠고노가미에게 취조를 받게 된다. 신부가 배교하기를 거절하자
며칠후에 신도 중의 한 명이 무참하게 칼로 죽임을 당한다. 신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두 번째로 이노우에를 만난 신부는 이노우에와 열띤 논쟁을 벌인다. 교활하고
간교한 이노우에는 전과 다른 대우로 신부를 유혹했다. 그로부터 열흘 가량 지난 날,
신부는 바닷가에서 신도들의 죽음과 그들을 살리려 바닷속에 뛰어든 가르페 신부를
보게 된다. 가르페 신부는 신도들과 함께 바닷속에 수장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세바스티앙 신부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9월이 되어 신부는 고대하던 페레이라 신부를 절에서 마주하게 된다. 이름을‘사와노
추우안’으로 개명하고 이노우에의 지시로 책을 번안하고 있었다. 페레이라 신부는
세바스티앙 신부에게 배교를 권면한다. 신부는 분명히 농민들이 순교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거절한다.
며칠이 지나 신부는 처형되기 전날, 묶인 채로 나귀에 태워져 고지마조오 마을을 통과했다.
어두운 밤이 되어 신부는 캄캄한 마루방 같은 좁은 감옥에 수감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신부는 라틴어로‘찬양하라.주를’이라는 새겨 둔 글자를 읽게 된다. 이
글자로 인해 신부는 굳은 믿음을 지킨 이름 모를 선교사에게 감동되었다. 갖은 상념에
빠져있던 신부는 개짖는 소리 같은, 누군가가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그러다가 다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온 신부는
벽을 두드렸다. 그러자 관리와 페레이라 신부가 급하게 달려왔다. 시끄러운 소리를
말하자 그것은 코 고는 소리가 아닌‘구멍 매달기’고문을 받는 세 명의 신도들이 내는
신음소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페레이라는‘찬양하라,주를’이라는 글자가 자신이 새긴
것임을 알려준다. 충격을 받은 세바스티앙 신부는 분노에 찬다. 페레이라 신부는
세바스티앙 신부가 배교하지 않음으로 세 명의 신도들이 고문을 받는 것이라는
말을 전해준다. 페레이라는 세바스티앙에게 그리스도였다면 고문 받는 신도들을
위해 배교했을 것이라는 말로 신부를 배교하도록 유혹한다. 사랑의 행위는 그들을
살리는 숭고한 행위라고 하면서 세바스티앙에게 부드럽게 말한다. 결국 세바스티앙은
페레이라의 부축을 받으며 성화를 밟고 만다.
나가사키의 소도우라조오에 세바스티앙은 살게 되었지만 성화를 밟던 기억이 신부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매달 한 번 신부는 관헌으로 가 관리들이 감별할 수 없는
물건을 보고 가톨릭교의 물건인지 아닌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페레이라와 자유롭게
만나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다. 페레이라에 대한 세바스티앙의 기분은 모멸과 증오,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연대감과 자기연민을 포함한 가련함이었다.
배교한 후에 세바스티앙은 이노우에가 살던 저택에 머물게 된다. 그리곤 일본명으로
‘오카다 산에몬’이란 이름을 받고, 죽은 남자의 아내도 맞이한다.
2. 감상
‘침묵’제목부터가 범상치가 않았다. 사람의 침묵이 아닌‘하나님의 침묵’이기 때문이다.
역사서나 논픽션의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는 순간부터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으로 들어가지만 결국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존재하신다면 왜 침묵하는가’에 대한 무서운 고뇌와 회의에 주인공은
빠져버린다. 죽음을 각오하고 선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 앞에서 패배해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성화를
밟지 않고 참혹한 죽음의 길을 걸은 순교자들. 반면 자신의 나약함과 비굴함을 내세워
주저 없이 성화를 밟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기치지로. 결코 배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배교해 버린 세바스티앙 신부. 이들을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증오했던
기치지로의 길을 선택한 세바스티앙 신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 배교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사랑의 행위인가? 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가 없다. 성경의 누가복음
12장 8절에서 9절까지의 주님의 말씀에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분명히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입으로
시인하면 주님도 시인하시고 내가 입으로 부인하면 주님도 부인하신다고 말이다. 성격이 선량하고
겁이 많다고 해서 용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용기가 생기지 않아 배교를
정당화했던 기치지로. 자신에게 배교할 믿음과 용기가 없다면 주님께 달라고 간절히 구해야하지
않았을까? 항상 배교를 한 뒤에 세바스티앙 신부에게 매달려 고해를 하겠다고 울부짖는 기치지로.
그를 예수님을 판 유다처럼 경멸하면서도 결국 기치지로와 같은 길을 간 세바스티앙. 그는
페레이라의 배교를 증오하면서도 페레이라의 유혹에 넘어가버렸다. 똑같이 ‘하나님의 침묵’과
‘사랑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성화를 밟았던 것이다. 페레이라는 ‘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 거야!’하며 신부를 괴롭게 했다. 물론 예수님은 유다도 사랑하셨고 모든 인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셨는데 왜 인간들은 주님을
위해 희생하지 못하는가?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하고 핍박하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잔인하게도 붙였다. 예수님이 곧 사랑이고 선이다.
배교후, 이노우에를 만난 세바스티앙은 자신이 싸운 것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였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세바스티앙은 페레이라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침묵’ 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뿐.” 세바스티앙은 마직막에서 성직자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예수님은 배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하나님은 침묵하시진 않으셨다. 그러나 배교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도 않았다.
저자인 엔도 슈사쿠는 배교후 신부가 하나님의 사랑과 존재를 깨닫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모순 그 자체이다. 기치지로도 페레이라 신부도
세바스티앙 신부도 다 배교를 했다. 이들은 입으로 예수님을 부인했기 때문에 분명 예수님도
이들을 부인할 수 밖에 없다. 신부가 배교를 하지 않으면 억울하게 신도들이 대신 죽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사랑자체이시고 선이신 예수님이 그들을 억울하게 죽게 만드실까? 고난은
잠깐이고 영생은 영원하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일본의 간교한 계략에 결국은 페레이라도
세바스티앙도 패배했다. 성경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한다면 결코 배교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인간적으로 ‘사랑의 행위’ 만을 생각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의구심이다. 물론 배교를 처음부터
선택한 건 아니다. 수많은 고뇌와 괴로움에 패배한 것이다. 예수님은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라고 주님의 십자가 승리를 말씀하신다. 만약 신부들이 배교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예수님의 품에 기쁘게 안겨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하여 나름대로 ‘하나님의 침묵’과 핍박받는 선교사들의 고뇌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믿음의 토양을 더욱 굳혀준 책이라 생각된다. 은총교회 성도님들께도 이 책을 추천해 보고 싶다.
그리하여 꼭 세상에서 주님처럼 담대히 승리하기를 바란다.
*출판사:홍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