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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다[買花]
서울 장안의 봄이 갈 무렵
덜컹덜컹 소리 내며 마차 지나간다
사람들 모란꽃 시절이라 하고
모두 꽃을 사러 간다
비싸고 싸고 정해진 값이 없고
값은 꽃송이 수로 결정되네
활짝 핀 수많은 붉은 꽃
작은 가지에 흰꽃 다섯 송이
위에는 햇빛 가리는 장막 치고
옆에는 대나무 발을 쳐서 보호한다
물 주고 흙을 쌓아
옮겨 심은 모란꽃 빛은 그대로다
집집마다 풍속에 익숙하고
사람마다 유행에 미혹되어 깨어나지 못하네
한 시골 노인
우연히 꽃 사는 곳에 와 보더니
고개 떨구고 깊이 탄식하는데
그 탄식 이해하는 이 없다
짙은 빛의 모란꽃 한 다발 값은
중류층 열 집 세금인 것을.
*원문 생략
[해설]
권력을 가진 귀족들과 고위층들의 사치를 풍자하고 있다.
조정의 관리들은 탐스럼게 핀 모란꽃을 보고 서로 다투어 집집마다 꽂으려는
수레행차만 할 뿐, 도탄에 빠져있는 백성들의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의 지적대로 그들의 돈이 다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불합리하게 부과하는 세금에서다. 착취하듯 거둔 세금으로 열흘도
못 가 시들어버리는 모란꽃을 사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들의 이런 허영으로 백성들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지고 민심은 흉흉해질 뿐이다.
시인은 격앙된 감정을 억지로 누르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 편집자 주
백거이(772~846)의 字는 樂天으로, 흔히 백낙천으로 불린다.
두보, 이백과 더불어 당나라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왕유와도 같은 반열에 둔다.
백거이는 두보가 죽은지 2년 후, 이백이 죽은지 10년 후에 태어났다. 백거이가 태어났을 때,
그때 시대상황도 이백이나 두보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35살 때 혁신정치의 포부를 강력히 드러내다 모친의 죽음과 함께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 계속되는 좌천과 방랑속에서 인생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된다.
62세 때 모든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한적하게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약 3,800여 수가 전해지는데 170여 수가 풍자시로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거나
백성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고향에 돌아와 지은 시에는
불교, 노장계열의 작품도 많다. 그의 시 특징은 무엇보다 쉬운 언어를 사용하여
사회와 백성의 고통을 성실하게 반영하였다는 점과 문학의 시대적 사명을 강조하여
참여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이 후대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장한가[長恨歌]
한나라 천자는 여색을 좋아하여 경국미인을 얻으려 했으나
치세를 한 지 오래도록 얻지 못했네
양씨 집안의 여자는 이제 장성했는데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네
하늘이 만든 아름다움은 버려지기 어려워
어느날 갑자기 뽑혀 천자 곁에 있게 되었는데
눈을 움직이고 한 번 웃으면 끝없는 매력
한다 하는 후궁도 얼굴빛을 잃었네
추운 봄날 화청궁에서 목욕을 허락하니
온천물은 보드랍고 흰 살결을 씻고 있네
시녀가 부축하여 일으키니 넘치는 교태에 몸은 무너지는 듯
이때부터 천자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였네
구름같은 머리 꽃같은 얼굴에 황금 보요(步搖) 흔들리고
부용꽃 휘장 따뜻하여 봄밤을 보내네
봄밤은 안타깝게 짧은데 해 높이 올라서 일어나니
이때부터 천자는 아침 정무에도 관여치 않았네
연회마다 모시느라 한가할 틈이 없어
봄에는 봄놀이, 밤이면 밤마다 모시네
후궁에는 미인 삼천 명이 있으되
삼천 명에게 갈 총애를 한 몸에 지녔네
금옥에서 아름답게 꾸미고 밤새껏 모시고
옥루에서 주연이 끝나니 취한 자태는 봄빛과 어우러지네
형제 자매는모두 봉지를 받고
아아! 광채가 양씨 가문을 빛냈네
마침내 천하의 부모 마음은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게 되었네
여산 화청궁의 높은 누대는 푸른 구름속에 있고
신선의 음악은 바람을 타고 사방에서 들려오네
느린 노래와 부드러운 춤은 관현악과 어우러지고
천자는 종일 보아도 시간이 모자라네
어양에서 들려오는 말 안장의 북소리에
'예상우의곡'은 중단되네
천자의 궁궐에도 연기와 먼지가 일어나고
천 대 수레와 만 필 말은 서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있네
천자의 깃발은 흔들흔들 가다가 멈추니
장안성 서문을 나선 지 백여 리 만에
군대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 할 수 없네
아름다운 사람은 불쌍하게도 말 앞에서 죽었네
아름다운 비녀가 땅에 떨어졌으나 줍는 자 없고
취교, 금작, 옥소두도 흩어졌네
천자는 얼굴 가릴 뿐 구하지 못하고
뒤돌아보는 눈에는 피눈물 흐르는 듯 하네
누런 먼지 날아오르고 바람도 적막하게 부는데
구름다리 타고 구불구불 검각산에 오르네
아미산 아래 지나가는 사람 드물고
천자의 깃발도 광채를 잃고 태양빛까지 희미하구나
촉의 강물 짙푸르고 촉의 산도 푸르렀는데
천자는 아침저녁으로 양귀비를 그리워하니
행궁에서 보는 달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밤비에 울리는 풍경소리는 간장을 도려내는 듯하네
천하의 형세가 다시 뒤집혀 천자가 수도로 돌아갈 때
이곳에 이르러 머뭇머뭇 떠날 수도 없네
마외 언덕 아래 흙더미 속에
옥 같은 얼굴 보이지 않고 쓸쓸한 무덤뿐이네
임금과 신하 서로 돌아보며 눈물로 옷 적시고
동쪽 장안성 바라보며 말 믿고 돌아가네
돌아오니 연못과 뜰은 모두 그대로이고
태액지의 연꽃 미앙궁의 버드나무
연꽃은 얼굴 같고 버들잎은 눈썹 같으니
이를 보고 어찌 눈물 흘리지 않으리오
--(다음 회에 계속)
*원문 생략
[해설]
'비파행(琵琶行)'과 더불어 백거이의 뛰어난 언어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대표작이며,
천하의 명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唐詩를 말할 때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唐詩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성립된다.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이나 상황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백이나 두보, 왕유의 시에서도 자주 이들을 언급해 왔다.
또 그 당시 대부분 시인들의 소재거리가 이들의 사랑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당시의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백거이는 이들의 사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즉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끈끈하고도 진실성있는, 애틋한 관계로 보았다는 점이다.
'장한가'는 이들 사랑이야기를 가장 정확히 잘 묘사하고 있는 시로 알려져 있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옮겨 보기로 한다.
봄바람에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날이나
가을비에 오동잎 떨어질 때
서쪽 태극궁이나 남쪽 흥경궁에 가을 풀 우거지고
낙엽이 섬돌 위에 붉게 쌓였으나 쓸지 않고
이원 자제들 백발이 성성해지고
초방의 아감이나 궁녀들도 늙었네
저녁 궁전에 반딧불 날면 마음 쓸쓸하고
외로이 등불 심지 돋우느라 잠 못 이루었네
더디 우는 종과 북소리에 초저녁 길더니
반짝이는 은하수, 날이 새려 하네
원앙새 기와에 차가운 서리 하얗게 쌓였고
비취색 이불 차가워 누구와 함께 하려나
아득하리! 삶과 죽음을 달리한 지 여러 해를 넘겼으니
혼백조차 꿈속에 찾아오지 않는구나
임공의 도사로 홍도에 사는 나그네는
정성으로 혼백을 이르게 할 수 있다 하는데
현종이 전전반측하여 그리워함에 마음이 움직여
마침내 방사들에게 영계로 가 찾도록 했네
하늘로 솟아 대기를 타고 번개처럼 달려
하늘 높이 땅 속 깊이 두루 찾고
위로는 벼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뒤졌으나
두 곳 모두 아득할 뿐 만나지 못했거늘
홀연 바다 밖에 신선이 있다고 들리니
선산이 아득한 허공 사이에 있으며
영롱한 누각 오색 구름을 뚫고 일어나
그 안에 아름다운 선녀 많은데
그중 한 사람을 太眞이라 했네
눈같은 피부 꽃같은 얼굴 양귀비 같아
황금 대궐 세상을 찾아 옥 대문 두드리고
시중 드는 소옥을 시켜 쌍성에게 아뢰게 하네
한나라 천자의 사신이라는 말을 듣자
아홉 겹 꽃 장막속에서 자다가 놀라
옷 걸치고 베개 밀어 일어나 서성거리며
진주발, 은병풍 밀고 나오네
구름 머리 비스듬히 잠에서 막 깬 듯하고
화관 바로 하지 않고 뜰로 내려 오네
바람 불어 선녀의 소매를 한들한들 흔드니
'예상우의곡'을 추는 듯 하고
옥같은 얼굴 적막감에 싸여 눈물 쏟아지니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는 듯 하네
사무친 정 가득한 눈빛으로 임금에게 아뢰네
이별하여 목소리와 얼굴 아득했고
소양전에서의 은총 끊겨
봉래 궁전에서 지루한 나날 보내며
고개 돌려 인간세상 내려다보아도
장안 안 보이고 진애만이 보이니
옛 물건으로 깊은 정을 나타내고자
자개함과 금비녀를 드리리라
비녀 한 가닥과 함 한 쪽씩 간직하려고
황금 비녀 자르고 자개함을 나누니
마음이 황금 자개처럼 견고하다면
하늘과 땅 서로 만나게 되리라
헤어질 즈음에 간곡한 부탁의 말 전하니
말 중에 두 마음만이 알 서약 있더라
7월7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했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원문 생략
[해설]
우리들은 지금까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막연히 전해들을 뿐이다.
먼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양귀비가 자살을 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종은 양귀비와의 사랑에 탐닉해 결국은 반란군에게 수도까지 빼앗기고 수많은 백성들은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었다. 나라가 이런 지경에까지 오게 된 것의 모든 원인은 현종을 미혹하게 만든 양귀비 때문이라는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혼란 중에 왕을 처단(?)할 수는 없는 일!
양귀비에게 그 화살을 돌렸던 것이다.
당장 그녀를 처형하기로 결정했으나 이미 힘을 잃은 현종은 이에 대해 아무런 항변도 못했다. 결국
양귀비로 하여금 비단에 목을 매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 앞에서 자살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최후를 목격한 현종은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떠난 사람의 한을 되새기며 피눈물을 흘린다. 이런 일이 있은 후 8년만에 '안사의 난'도 평정이 되고, 피난을 갔던 사람들도 모두 돌아와
일상적인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양귀비와 꿈같은 세월을 보냈던 궁궐로 그 자신은 다시 돌아 갈 수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양귀비 또한 마외 언덕에 묻혀, 쓸쓸히 죽은 지 10년이 지났으나 꿈속에서도 한 번 찾아와 주지 않아
자기를 죽게 내버려둔 것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 있으리라는 회한에 젖는다. 현종은 양귀비를 잃은 슬픔을 자기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도사의 신통력에 의지하기로 한다.
도사와 방사들은 양귀비를 그리워하는 현종의 마음에 감동이 되어 천상과 지상을 번개처럼 왕래하며
그녀를 찾아나선다. 그러다가 바다 밖 仙山에 신선과 선녀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 보니 太眞이라는
이름의 양귀비가 있었다.
그녀는 현종의 사신이라는 말에 놀라 배꽃이 떨어지듯 눈물만 쏟아낸다. 그녀는 마외언덕에서
현종과 헤어진 뒤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 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 자신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생각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찾는 사신을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그 정표로 '황금비녀'와 '자개함'을 둘로 쪼개 하나씩 건넨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한스러워하고 있다.
이 시를 가만히 음미해보면 두 사람의 애정이 어느 정도 깊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이 시의 제목을 '장한가'라 붙인 이유는 양귀비의 자살로 현종과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밤비[夜雨]
초가을 귀뚜라미 울다가 문득 멈추고
새벽의 등불이 꺼질 듯 다시 밝으니
창 너머 밖에 밤비 내리는 줄 알겠네
파초잎의 빗방울 소리 먼저 들리니.
早ㅇ啼復歇 殘燈滅又明 隔窓知夜雨 芭蕉先有聲
[해설]
참으로 예민한 감촉이 닿는 듯한 시다.
기계문명의 소음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소리들이다.
그러나 잠시, 고요한 자리에서 눈 감고 앉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너무도 익숙하게 들려오는 소리들이다.
소슬한 가을밤의 움직임을 섬세히 그려낸 시다.
밤에 내린 눈[夜雪]
금침이 유난히 차갑구나 여기며
창문 바라보니 또한 훤하여라
깊은 밤에 내린 눈이 무거워
대나무 꺾이는 소리 들려오네.
已訝衾枕冷 復見窓戶明 夜深知雪重 時聞折竹聲
[해설]
앞의 '밤비'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시다.
잠을 자다가 유난히 이불이 차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창문이 환하다.
밤새 많은 눈이 내린 것이다.
무거운 눈 때문에 우두둑 ! 대나무 꺾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보다 섬세한 감정을 지닌 백거이답게,
역시 섬세한 감성이 잘 드러난 시다.
처에게[贈內]
산뜻이 뿌린 비로 후미진 곳에 이끼가 번지었고
차츰차츰 차가운 이슬에 가을이 짙어가고저
밝은 가을 달 쳐다보더라도 옛 일 일랑 회상하지 마시오
그대의 얼굴 상하고 그래서 수명 줄을까 두려웁구려.
漠漠闇苔新雨地 微微凉露欲秋天 莫對月明思往事 損君顔色減君年
[해설]
백거이는 아주 자상하고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다.
부모에 대한 효성심은 말할 것도 없고, 형제나 처자식, 이웃에게도 많은 사랑과 인정을 베풀었다.
그는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아내에게 보내는 시를 많이 지었다.
이 시는 어머니의 상을 당하고 나서 혼자 고향을 지키고 있는 아내에게
너무 상심하지 말것을 염려하며 보낸 시다.
벼슬 쫒겨 망진령을 넘어가다[初貶官過望秦嶺]
허둥지둥 집 떠나니 뒷일이 걱정되며
머뭇머뭇 서울 벗어나 앞 길을 물어가네
망진령 올라 마지막 뒤돌아 볼 새
가을 바람 끝없이 흰 수염을 불어 날리네.
草草辭家憂後事 遲遲去國問前途 望秦嶺上回頭立 無限秋風吹白鬚
[해설]
백거이는 왕에게 직간(直諫) 을 했다가 노여움을 사 쫒겨났다. 집과 장안을 뒤에 두고 망진령을
넘어가며 마직막으로 뒤를 돌아다보고 지은 시다. 옛날에는 장안이 바로 秦나라 땅이었다.
그러므로 '진을 바라보는 고개[망진령]'라는 뜻이다.
쫒겨가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배 안에서 시를 읽다[舟中讀元九詩]
그대의 시집을 등불에 대고 읽었네
다 읽었으나 아직도 날 밝지 않고 등불 밝거늘
눈이 아파 불 끄고 어둠에 앉아 있을 새
역풍에 밀린 물결 뱃전 치는 소리 들리네.
把君詩券燈前讀 詩盡燈殘天未明 眼痛滅燈猶闇坐 逆風吹浪打船聲
[해설]
백거이가 가장 아끼던 文友 원진은 당시 강릉으로 쫓겨나 있었다. 거기에다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뒤늦게 백락천도 쫒겨가면서 배 안에서 친구의 시집을 읽고 있었으니, 그의 심정 또한 어떠했겠는가.
뱃전에 철썩철썩 물결치는 소리를 들으니 마치 자기 가슴을 치는 소리로 들려 더 처량함을 느낀다.
이때 원진도 백거이가 강주로 쫒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깊은 밤 꺼질 줄 모르는 등불은 빛을 잃은 채 술렁이거늘
이 밤에 그대가 구강으로 쫒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죽어가는 병든 몸이지만 놀라서 일어나 앉았을 새
어둠을 타고 차가운 창문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나의 뺨을 훌치고 있소.
殘燈無焰影潼潼 此夕聞君謫九江 垂死病中驚起坐 闇風吹面入寒窓
물가에서 밤을 새다[浦中夜泊]
어둠에 강둑에 올라 홀로 우뚝 서 있자니
서리에 엉킨 강바람 밤에 더욱 차갑구나
뒤돌아 오목한 물가에 정박한 배를 바라보니
갈대 꽃술 너머로 한 점 등불이 외롭구나!
闇上江堤還獨立 水風霜氣夜稜稜 回看深浦停舟處 蘆荻花中一點燈
[해설]
이 시 역시 江州로 좆겨가는 배안에서 지은 시다. 배를 타고 좆겨가는 길의 서러움이 가슴에
가득 차 있는데, 때마침 서리가 엉겨 냉랭한 기운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어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저 너머 물가에 대놓은 배에서 등불이 외로운 듯, 갈대 꽃술에 어리어 흐릿하게 보인다.
담백하면서도 많은 여운을 남기는 시다.
강남에서 길손에게 편지를 부탁하다[江南送北客, 因憑寄徐州兄第書]
가로막힌 고향 바다를 바라볼 뿐 어찌할 도리가 없네
초의 강물과 오의 산으로 만 여리나 떨어진 고향
오늘 그대가 내 형제 찾아간다고 하기에
고향 생각 눈물 흘리며 몇 줄 적어 보내노라.
故園望斷欲何如 楚水吳山萬里餘 今日因君訪兄第 數行鄕淚一封書
[해설]
이 시는 15세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는 강남에 있고 북쪽에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고 있었다. 마침 강남에서 고향 가는 길손이 있어 편지를 부탁하고 나서 지은 시다.
앞서도 말했지만 백거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어린 소년이 지은 시답지 않게, 훗날 큰 인물이 될 소질이 충분히 나타난 훌륭한 시다.
낡은 시집[感舊詩券]
밤이 깊어 낡은 시집 다 읽고 길게 탄식하노라
등불 앞에 늙은이 눈물 흘리며 흰수염 적시노라
이십년 전 낡은 시집 함께 쓴 벗들
열 명 중의 아홉은 이미 갔노라!
夜深吟罷一長旴 老淚燈前濕白鬚 二十年前舊詩券 十人酬和九人無
[해설]
20년 전에 함께 어울려 시를 지었던 친구들 열 명 중 아홉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밤늦게까지 등불 앞에서 옛 벗들의 시집을 읽다 보니 흰 수염이 다 젖도록 눈물이 흐른다.
세상에 혼자 남아서 옛 벗들을 그리는 처량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외로운 아낙네[空閨怨]
차가운 달은 밤 깊이 고요한 규방에 비쳐들고
진주 구슬발 밖으로 오동나무 그림자 지네
가을 서리 내리려나? 손끝이 아릇하구나
등불 밑에 바느질 할새 가위 싸늘하여라.
寒月沈沈洞房靜 眞珠簾外梧桐影 秋霜欲下手先知 燈底栽縫剪刀冷
[해설]
차가운 달빛 아래 빈 방에 홀로 앉아 있는 아낙네의 심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이입시켜 쓴 시다.
역시 백거이다운 섬세한 감각이 돗보인다.
곡강에서[曲江有感]
곡강의 서쪽 언덕에 봄바람이 다시 불새
만 그루 꽃나무 앞에 외로운 노인이 혼자
술 마시며 꽃 바라보며 얼큰히 취했노라
슬픈 사연 끝없거늘 새삼 논해 무엇하리.
曲江西岸又春風 萬樹花前一老翁 遇酒逢花還且醉 若論ㅇ愴事何窮
[해설]
곡강에는 봄이 되면 고귀한 사람들이 모여 놀았다 한다.
백거이의 시는 은유와 함축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쉬운 언어로 쓰는 특징이 있다.
이 시도 일상적인 단어의 아주 소탈한 시다. 그도 많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지만,
봄꽃이 활짝 피어나니 잠시나마 술에 취해 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감정은 백거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다 느껴보는 감정일 것이다.
술을 대하고[對酒]
잘났다 못났다 영악하다 어리석다 서로 시비를 가리지만
흠뻑 취하여 속세의 간계를 잊음이 어떠하리
그대 아는가? 천지는 끝없이 넓으면서도 좁아
사나운 보라매나 상스러운 봉황이 저마다 날 수 있다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들 무엇하리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
부귀 빈천 주어진대로 즐겁거늘
입 벌려 웃지 않는 자는 바보로다 .
백세를 살아도 건장할 시절 짧고
봄철인들 맑은 날 며칠이나 되나
모처럼 만났으니 사양 말고 취하고
귀 기울여 양관의 이별가를 듣게나.
巧拙賢愚相是非 何如一醉盡忘機 君知天地中寬窄 雕ㅇ鸞凰各自飛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痴人
百歲無多時壯健 一春能幾日晴明 相逢且莫推辭醉 聽唱陽關第四聲
[해설]
벼슬에 있으면서도 늘 편치 않았던 백락천이다. 잠시나마라도 술에 취해 이것저것 다 잊어보고 싶은
심정은 그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설령 백 살을 산다 해도 즐겨 마실 수 있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아웅다웅 다투며 산다는 것 또한 달팽이 뿔처럼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모처럼 서로 만났으니 취하도록 마셔보자.
언젠가 우리들도 헤어지게 마련인 것을!
늦가을을 교외에서 살다[秋暮郊居書懷]
교외에 사니 사람과 엉기는 일 없고
낮에도 누워서 푸른 산을 쳐다보네
궁핍한 거리에 자주 내리는 비가 싫고
가난한 살림에 빠른 추위 걱정 되네
갈포 걸친 가을에도 갈아 입지 못하고
병든 몸이지만 책만은 여전히 읽네
평생을 어떻게 살 것이냐 묻는다면
앞 시냇물에 낚싯대 드리운다 대답하리.
郊居人事少 晝臥對林巒 窮巷厭多雨 貧家愁早寒
葛衣秋未煥 書卷病仍看 若問生涯計 前溪一釣竿
[해설]
모든 것을 다 떠나 한적한 교외에서 그는 산다. 지금 그는 가난하고 몸마저 병들었다.
그렇지만 하늘도 땅도 원망하지 않고, 그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앞 냇가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살겠다' 대답하는ㅡ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그의 생활태도가 가슴에 젖어든다.
역시 백락천다운 대답이다.
초겨울에 술 익고[冬初酒熟]
서리 잦자 뜰의 버드나무 시들었고
바람 세차 못의 연꽃줄기 꺾이었네
달빛은 새벽에 더욱 창백하고
새소리 겨울에 더욱 시끄럽네
가을의 심정 줄곧 서글프거늘
겨울을 또한 어찌 지나야 할까
새로 담근 한 독의 술 빛이
봄철 물에 뜬 마름같구나.
술은 잘 익었으나 찾아오는 손님 없어
별 수 없이 독작하여 마시며 읊조린다
마치 속세에 사는 하황공과 기리계 같고
또한 지상에 내린 적송자나 왕자교 같다
훌훌히 깨었다가 또다시 취하고
유유히 밤과 낮을 계속 마신다
얼마 남지 않은 앞으로의 여생
술 속에 묻혀 지내리라.
霜繁ㅇ庭柳 風利剪池荷 月色曉彌苦 鳥聲寒更多
秋懷久廖落 冬計又如何 一甕新배色 萍浮春水波
酒熟無來客 因成獨酌謠 人間老黃綺 地上散松喬
忽忽醒還醉 悠悠暮復朝 殘年多少在 盡向此中銷
[해설]
백거이를 醉吟(취음)선생이라고도 하였다.
어수선한 세상을 술로 달래보고자 하는 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런 류의 시가 많다. 그러나 처량한 심정에 비해 시는 대체로 조용하고 차분한 것이
그 만이 가진 특색이기도 하다.
두보처럼 뼈를 저미듯 심각하지도 않고, 이태백처럼 호탕하지도 않다.
잎들이 다 떨어진 초겨울, 꼭 이맘때의 계절인 듯 싶다.
달빛마저 창백한데 실의에 젖은 시인의 가슴은 한층 무겁고 시름에 젖어 있다.
앞으로 다가 올 길고 긴 겨울을 어떻게 지내야할 지 지금부터 걱정이다.
지난 여름에 딴 과일들로 담근 술독을 들여다보니, 말간 술빛이 마치 새봄의 강물처럼 출렁인다.
그런데 찾아오는 사람조차 없으니 같이 대작을 할 사람도 없다.
그러니 혼자서라도 마시는 수 밖에.
사십오세[四十五]
어느듯 나이가 사십오 세로 접어들고
양쪽의 귀밑 털도 반백으로 변했노라
핼쑥히 야윈 주제에 시 쓰는 버릇 있고
억세고 거친 성품 술 마시면 광태 부린다
늙어서 천명에 의탁하게 되었고
조용히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러니
내년 봄에는 여산 기슭에
초당이나 엉성하게 엮을까 한다.
行年四十五 兩髮半蒼蒼 淸瘦詩成癖 粗豪酒放狂
老來尤委命 安處卽爲鄕 或擬廬山下 來春結草堂
[해설]
45세면 그가 강주로 쫒겨난 다음 해다.
거울을 보니 머리도 희끗희끗, 반백이 되어 있다.
원래 맑은 성품을 타고난 그 이지만 왜 울분이 없겠는가!
그래서 때로 술을 실컷 마시면 광기라도 부린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내 '조용히 있는 곳이 고향'이라며 주어진 천명에 모든 것을 맡기고 만다.
백락천의 성품처럼 차분한 시다.
한가로움[閒詠]
맑은 빛이 정다워 달 아래 거닐며
푸른 그늘 사랑하며 솔밭에 자네
어려서는 시 짓느라 고심했고
늙어서는 도 닦는데 몰두했고
밤에는 선을 익히고자 줄곧 정좌하고
가을에는 흥에 끌려 한 수 읊기도 하네
유연히 두 가지만 일삼으며
다른 일엔 마음 쓰지 않는다.
步月憐淸景 眠松愛綠陰 早年詩思苦 晩歲道情深
夜學禪多坐 秋牽興暫吟 悠然兩事外 無處更留心
[해설]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백거이의 모습이 마치 눈에 보는 듯 그려진다.
젊은 시절에는 열정적으로 시를 짓고, 나이 들어서는 오직 자신의 마음 닦는 일에 힘쓰는 일!
인생이라는 다리를 정신없이 건너온 어느 먼 훗날ㅡ
'마음 닦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인생일 것이다.
식후[食後]
식사를 마치고 한바탕 낮잠을 자고
깨어나 두 사발의 차를 마시며
머리를 들어 해 그림자를 바라보니
벌써 서남쪽으로 기울고 있네
즐거운 사람에겐 해가 짧아 애석하고
걱정스런 자에겐 세월 길어 염증 나겠지
나같이 즐거움도 걱정도 없는 자에겐
길거나 짧거나 한평생을 맡기고 살 뿐.
食罷一覺睡 起來兩ㅇ茶 擧頭看日影 已復西南斜
樂人惜日促 憂人厭年ㅇ 無憂無樂者 長短任生涯
[해설]
강주에서 한적하게 지낼 때의 시다.
잠 못드는 사람에겐 긴 밤이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나날의 시간이
눈 깜빡할 새 지나가 버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 '나쁘다', '바쁘다', '지루하다' 며 안달을 해댄다.
그러나 그에겐 지금 주어진 삶, 지금 주어진 시간에 충실할 뿐, 그저 담담할 뿐이다.
어쩌면 그의 이름 낙천과도 잘 어울리는 시다.
감회[詠懷]
본시 천명을 따르고 세상 흐름에 몸담고자 했거늘
점차 늙어가면서 더욱 수양과 효험이 깊어졌노라
얼굴에는 기쁨이나 슬픔의 기색도 지워졌고
가슴속에는 시비를 다지는 극성도 사라졌으며
처자도 모른 체 오직 술을 탐내고
벼슬도 귀찮다고 거문고만 타노라
굴원이가 천명을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고민하고
물가 풀밭을 떠돌며 슬피 울던 꼴이 우습구나
自從委順任浮沈 漸覺年多功用深 面上減除憂喜色 胸中消盡是非心
妻兒不問唯耽酒 冠蓋皆ㅇ只抱琴 長笑靈均不知命 江籬叢畔苦悲吟
[해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 우리는 흔히 그것을 '숙명'이니 '천명'이라고 한다.
너무 지치거나 실의에 빠졌을 때 흔히 '천명'이라는 품에서 안주하고 싶어한다.
無에서 나와 결국 無로 돌아가는 불교의 사상이나 老莊의 사상과 연관지어진 시다.
젊은 시절은 아등바등했지만 이제는 속세의 모든 명리에서 벗어나 거문고를 타며
술로써 인생의 마지막을 즐기고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집착에에서 떠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태도가 바로 백거이가 가진 말년의 은일한 품격이다.
문밖으로 안 나간다[不出門]
문밖으로 안 나간 지 벌써 수십 일이 되었거늘
무엇으로 소일하고 또 누구와 함께 벗하는가?
새장 열고 학을 보면 마치 군자를 대하는 듯
책을 펴고 글을 읽으면 마치 고인을 만나는 듯
스스로 마음을 허정하게 지니면 수명도 길어질 것이고
악착같이 물질을 쫒고 구하지 말아야 정신이 맑고 높아지리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수도이니라
마귀 쫒고 조복한다 야단할 게 없느니라.
不出門來又數旬 長何銷日與誰親 鶴籠開處見君子 書券展時逢古人
自靜其心延壽命 無求於物長精神 能行便是眞修道 何必降魔調伏身
[해설]
이 시를 보면 우리는 백락천의 사상이나 인생관을 다시 한 번 엿보게 된다.
스스로 허심탄회하고 마음을 맑게 지니며 외형적인 물질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신세계를 가꾸면 자연히 수명도 연장되고, 또 그렇게 실천하면 그것이 바로 참다운 수도라 하였다.
"무슨무슨 종교를 믿는다", "도를 닦는다"하며 야단스레 떠들며 행사나 의식을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닦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자신이 바로 중용의 도를 터득한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 시에서 그는 학을 군자로 보았듯이, 실제 그는 학을 가족처럼 동반하고 다닐 정도로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시 [自喜]에서도 보면
'학과 거문고 및 책을 배에 같이 싣고 간다'는 구절이 나온다.
지황을 캐는 농부[采地黃者]
봄에 비가 안 와 보리가 죽고
가을 서리 일찍 내려 농사를 망쳐
세모에도 입에 먹을 것이 없어
밭에서 지황을 캐고 있노라
저것을 캐어 무엇에 쓰나?
양식과 바꾸어 먹으려 하네
꼭두새벽 호미 메고 나가서 캐어도
저녁까지 광주리에 가득 못 차네
붉은 대문 부호에게 가지고 가서
희멀건 도령에게 팔아넘기면
도령은 살찐 말에게 먹이고
땅을 비출듯이 광내게 하네
바라건대 말 먹다 남은 곡식이라도
바꾸어 굶주려 쓰린 창자를 채우고녀.
麥死春不雨 禾損秋早霜 歲晏無口食 田中采地黃
采之將何用 持以易食糧 凌晨荷ㅇ去 薄暮不盈筐
携來朱門家 賣與白面郞 與君啖肥馬 可使照地光
願易馬殘粟 救此苦飢腸
[해설]
봄에는 가물어 농사를 망쳤고, 또 가을에는 이른 서리가 내려 벼농사를 망쳤다.
농부는 호구지책으로 숙지황을 캐다가 부잣집 도령에게 판다. 그러면 얼굴이 히멀건 도령은
그것을 말에게 먹여 말의 털을 기름이 번드레하게 광나게 한다는 것이다.
백락천은 원래 성품이 맑고 人愛사상이 넘치는 사람이다. 벼슬살이를 할 때도 언제나 백성들의
고생을 잊지 않고 그들의 편에 서서 도와주고자 했다.
이 시를 보아도 농민들의 생활을 너무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화주택[傷宅]
어느 누구 갑부의 저택이 섰는고
붉은 대문 큰 길가를 바라보고
우람한 집채들이 빗살같이 늘어섰고
높은 담장을 밖으로 둘러 쳐 놓았네
겹겹이 솟은 여섯 일곱 채의 전당
우람한 대들보가 줄지어 이어졌노라
한 채에 백만 금이 넘을 전당들이
뭉게뭉게 푸른연기가 피어오르네
따뜻하고 시원하게 마련된 방에는
추위나 더위도 침범해 들지 못하네
높은 전당은 앞이 멀리까지 트여
앉으나 누우나 종남산이 보이노라
회랑 둘레에 자등이 시렁에 얹혔고
섬돌 끼고 붉은 작약 울을 이뤘네
가지를 휘어잡고 앵두를 딸 수 있고
꽃 핀 채로 모란을 이식하여 놓았네
이 집 복판에 앉아있는 주인은
십년 동안 고관대작을 지냈으므로
부엌에는 고기 썪는 냄새가 풍기고
창고에는 녹쓸은 돈이 가득 찼네
내 말대로 물어 볼 사람 누구일까?
그대에게 묻노니 골육 일족간에
반드시 곤궁 빈천한 자 있겠거늘
모질게도 그들 가난 구제하지 않고
어이하여 네 한 몸만을 위해
천년 만년 호강 누리고자 하느냐?
그대 보지 못했느냐 마씨 일가도
몰락의 봉성원으로 변해 버렸음을!
誰家起甲第 朱門大道邊 豊屋中ㅇ比 高牆外廻
疊牒六七堂 棟宇相連延 一堂費百萬 鬱鬱起靑煙
洞房溫且淸 寒暑不能干 高堂虛且逈 坐臥見南山
繞廊滋燈架 夾折紅藥欄 攀枝摘櫻桃 帶花移牡丹
主人此中坐 十載爲大官 廚有臭敗肉 庫有貫虧典
誰能將我語 問爾骨肉間 豈無窮賤子 忍不救飢寒
如何奉一身 直欲保千年 不見馬家宅 今作奉誠園
[해설]
큰 저택을 보고 상심하여 지은 시다.
힘든 세상에서 자기 한 몸만을 위하는 사람들에게 반문하고 있다.
두보의 시에도
'붉은 대문 안에는 술과 고기가 썪는 냄새가 나는데, 길가에는 얼어죽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물론 부자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사회든 부자의 책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너나없이 힘든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튼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에 대한 시선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시다.
요릉[繞綾]
요릉 비단을 무엇 같다고나 할까?
엷은색 비단이나 흰 깁무늬 비단같지도 않으며
흡사 천대산 위에 뜬 명월에 비친
사십오 척의 폭포수 같다고나 할까?
기이하고 절묘한 무늬가 있고
흰 연기를 편 바탕에 눈꽃이 엉킨 듯
누구는 짜고 누구는 입는가?
월계의 가난한 여인이 짜고 한나라 궁녀들이 입노라!
지난 해 궁중의 사신이 구두로 칙명을 전하여
궁중의 의양대로 그들에게 짜게 한 것이니
비단의 무늬는 가을 기러기가 구름 밖을 날아가게 그리고
비단의 염색은 봄 든 강남의 강물 빛과도 같게 했으며
저고리 소매 폭 넓게 마르고 치마 길이 길게 만들었으며
금인두로 주름을 펴고 무늬 따라 가위질 하니
이채롭고 기묘한 무늬들이 서로 어울려 빛나고
각도 따라 저마다 색다른 꽃모양으로 보이더라
소양전의 무녀들은 마냥 은총을 받는지라
봄 옷 일습의 값이 천금을 넘는 고가일거늘
땀에 젖고 분에 얼룩지면 두 번 다시 입지 않으며
요릉비단 짜는데 수고 많고
다른 보통 비단과는 비교가 안 되노라
가는 실을 비비 꼬아 짜느라고 직녀들 손이 아프고
찰칵찰칵 베틀을 천 번 울려도 한 자 길이가 못 되노라
소양전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궁녀들이
짜는 고생 볼 것 같으면 의당히 아까운 줄 알리라.
繞綾繞綾何所似 不似羅ㅇ與紈綺 應似天台山上明月前 四十五尺瀑布泉
中有文章又寄絶 地鋪白煙花簇雪 織者何人衣者誰 越溪寒女漢宮姬
去年中使宣口勅 天上取樣人間織 織爲雲外秋雁行 染作江南春水色
廣栽衫袖長製裙 金斗ㅇ波刀剪紋 異彩奇文相隱映 轉側看花花不定
昭陽舞人恩正深 春衣一對直千金 汗沾粉汚不再着 曳土踏泥無惜心
繞綾織成費功績 莫比尋常繒與帛 絲細繰多女手疼 札札千聲不盈尺
昭陽殿裏歌舞人 若見織時應也惜
[해설]
같은 여자이면서 이렇듯 불공평하고 서로의 처지가 다르다.
비단을 짜느라 고생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땀에 젖고 粉에 얼룩지면 그대로 버리는
여자들도 있다. 봄옷 그 한 벌 값이 천금을 넘지만 말이다.
우리는 비단의 고운 숨결, 아름다운 무늬만 보고 탄성을 자아내지만 실로 그 이면에는 가는 실을
비비 꼬아 짜는 직녀들의 손은 다 부르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 번이라도 그들이 짜는 과정을
보았다면 그렇게 함부로 버리지는 않을 것이 라는 백거이의 우울하고 안타움이 배어 있다.
참으로 평이하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을 너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시다
나의 초상화[自題寫眞]
내 모습 나도 몰랐으나
李放이 나의 초상화를 그렸네
조용히 신기와 골격을 살펴보니
마땅히 산중에서 살 위인이니라
냇버들의 약질이라 이내 시들겠거늘
마음만은 뿔사슴 같아 길들이기 어렵네
어쩌다가 대궐에 드나들며
오 년간을 시신으로 봉직하나
억세고 고집 세고 고고한 성품이라
세속의 무리들과 어울리기 어렵노라
귀골의 상이 아닐뿐만 아니라
화를 초래할까 두렵노라
모름지기 일찌감치 벼슬 사직하고
산과 물 따라 보신함이 좋겠노라.
我貌不自識 李放寫我眞 靜觀神與骨 合是山中人
蒲柳質易ㅇ ㅇ鹿心難馴 何事赤ㅇ上 五年爲侍臣
況多剛堅性 難與世同盡 不惟非貴相 但恐生禍因
宜當早罷去 收取雲泉身
[해설]
한림학사로 있을 때, 李放이란 사람이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그것을 보고 자기의 성품을 말한 시다.
어느모로, 아무리 보아도 자기는 산속에 숨어 살 사람인데 어쩌다가 궁중에 들어가
侍臣노릇을 한다고 했다. 워낙 고고한 성품이라 남들과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그의 성품을
그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保身하는 길은 일찌감치 물러나 '마음 닦는 일'에
나머지 인생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시다.
첫 벼슬에 올라[初授拾遺]
조명 받들어 좌액에 등청하여
속대하고 조의에 참석하게 되었노라
첫 벼슬 낮아도 아무 말 않고
우선 입에 풀칠 할 벼슬을 살리라
두보와 진자앙 두사람의
재능과 명성이 천하에 넘쳤으며
당시의 임금도 모르지 않았거늘
벼슬은 역시 좌습유에 불과 했으니
우둔하고 박식한 나같은 자로써는
뜻하지 않게 내려진 은총이리라
송구스럽게 날빛 가까이 모시면서
청운의 그릇 못 됨이 부끄러울 뿐
천자는 너그럽게 간언을 받아주시나
조정에 잘못된 일이 없으니
몸 돌보지 않고 충간 올리려 해도
태평성세를 만나 할 일이 없네
그러므로 명을 받은 지 한 달이건만
뒷자리에 끼여서 녹만 축내노라
한편 상자에 가득한 남의 간서를
대하며 스스로 무능함이 부끄럽구나.
奉詔登左掖 束帶參朝議 何言初命卑 且脫風盡吏
杜甫陳子仰 才名括天地 當時非不遇 尙無過斯位
況予ㅇ薄子 寵至不自意 驚近白日光 慙非靑雲器
天子方從諫 朝廷無忌諱 豈不思匪躬 適遇時無事
受命已旬月 飽食隨班次 諫紙忽盈箱 對之終自愧
[해설]
이 시는 백거이가 37살 때, 처음으로 벼슬에 올라 지은 시다.
그는 당시 儒家의 가르침에 따라 나라와 임금에 충성하고 청렴결백한 성품이었다.
그가 맡은 간관(諫官)이라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임금에게 아랫사람의 딱하고 억울한 사정을
알려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글을 많이 올렸다. 그것이 바로 풍간시(諷諫詩)다. 즉 간관이라는
직책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현실에서는 있는 그대로 모든것이
정당하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도 강주로 쫒겨나고 말았다.
누구든 일을 맡으면 처음에는 의욕에 넘쳐 잘해 보겠다는 각오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처럼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시도 그가 처음으로 벼슬에 올라 모든 일을 정당하게 처리하려는 의욕에 가득 차 지은 시다.
학을 대신하며[代鶴]
나는 본래 바다를 나는 학이었거늘
우연하게도 강남에서 나그네를 만나
나를 불러준 은혜에 감동하여
함께 낙양의 거리로 왔노라
낙양에는 나의 동족들이 드물었고
오직 희맑은 두 날개만 가졌을 뿐
모습은 천부의 고결한 품을 지니고
빛깔은 해에 거슬지 않아 희노라
참으로 주인을 곁에서 모시고 싶으나
집채와 뜰안이 좁아 들 수가 없노라
닭들 틈에 섞여 마시고 먹으며
늙은 나이에 품격만을 손상했노라
아득히 먼 나의 고향은
구름과 물에 겹겹이 막힌 채
깊숙히 새장에 갇혀 칠 년간을
날개 털 바꿀 줄 누가 생각했으랴.
我本海上鶴 偶逢江南客 感君一顧恩 同來洛陽陌
洛陽寡族類 皎皎唯兩翼 貌是天與高 色非日浴白
主人誠可戀 其奈軒庭窄 飮啄雜鷄群 年深損標格
故鄕渺何處 雲水重重隔 誰念深籠中 七換摩天膈
[해설]
학을 대신해서 자신을 푸념한 시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백락천은 학을 무척 좋아했다.
학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지었지만 이 시는 자기의 불평을 학을 빌어 털어놓은 것이다.
이 때는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에 와서 7년이 지난 다음에 지은 시다.
그러니 62세쯤으로 짐작이 된다. 역시 백거이다운 발상이 재밌다.
내 집에 돌아와[出府歸吾廬]
퇴청하여 내 오두막 돌아오니
조용히 편하고 마냥 한가로워라
더욱이 찾아와 만나자는 손 없고
이따금 절에서 중이 병문안 올 뿐
집에는 머슴아이 십여 명이 있고
마굿간에는 말이 서너 필 있네
게으름 피면 십여 일을 누웠고
흥이 나면 매일같이 나가노라
좋아서 찾아 나서는 곳은
푸르름이 짙은 숭산이니라
더욱이 고르고 맑은 날씨에
마침 한가로운 계절과 겹쳤네
몸을 한적하게 지니면 스스로 기품도 고귀하게 될 것이니
어찌 반드시 영화를 누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할 건가
마음이 흡족하면 가난하지 않으리니
어찌 황금을 집에 가득 채워야 하리
오늘 권세를 부리는 자들 보니
자신을 물질의 노예로 삼고 있으며
밖으로는 훨훨 타오르는 세도이지만
내심은 부들부들 얼음 밟듯 떨면서
아침에는 배 고파도 입맛이 없고
저녁에는 자리 잃을까 마음 쓰노라
오직 부귀의 이름만이 있을 뿐
실제로 부귀는 누리지 못하노라.
出府歸吾廬 靜然安且逸 更無客干謁 時有僧問疾
家童十餘人 ㅇ馬三四匹 ㅇ發經旬臥 興來連日出
出遊愛何處 崇碧伊瑟瑟 況有淸和天 正當疎散日
身閑自爲貴 何必居榮秩 心足卽非貧 豈唯金滿室
吾觀權勢者 苦以身徇物 炙手外炎炎 履氷中慄慄
朝飢口忘味 夕ㅇ心憂失 但有富貴名 而無富貴質
[해설]
이 시도 마찬가지로 벼슬을 그만두고 난 다음 62세 때 지은 시다.
모든 것을 떠나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자기가 보는 세도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밖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항상 불안한 마음이다. 자나깨나 항상 욕구불만과
초조 불안에 젖어 음식맛도 모르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이름만 부귀영화지
실제 생활은 그게 아니다. 결국 부귀는 겉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곧
부귀요, 행복이라는 것이다.
옛말에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파행[琵琶行]
심양 강가에서 밤늦게 나그네를 전송할 때
단풍잎 갈대꽃 위로 가을바람 소슬하니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 안에 있고
술잔 들어 이별주를 마시지만 풍류는 없네
취한 마음 감흥도 없이 이별의 슬픔만 처절하고
헤어질 때 망망한 강에는 달빛만 어려 흐르네
홀연히 강물 타고 흐르는 비파소리 들려오니
주인은 돌아오는 것 잊고 나그네도 뱃길 멈추네
소리를 타는 이 누군가 물어 찾았으나
비파소리만 끊기고 대답이 없네
배를 옮겨 서로 가까이 가서 불러 만나니
술 더하고 불 돌려 다시 주연을 베푸네
천 번 만 번 불러서야 겨우 나왔건만
여전히 비파 안에 얼굴 반을 가리고 있네
꼭지를 틀어 두 세 번 줄을 퉁기니
곡도 타지 않은 소리건만 벌써 정이 담겼네
네 가닥 줄을 손끝으로 타니 그 소리가 처량하여
마치 한평생 못 다한 애절한 정을 호소하는 듯 하네
눈썹 떨구고 손 가는 대로 줄줄이 타고 퉁기고
가슴 속에 사무친 무한한 정을 덜어놓고서
가볍게 눌렀다가 살짝 꼬집듯이 소리 죽였다가 둥둥 퉁기며
처음에는 '예상우의곡'을 타고 뒤이어 '육요'를 연주하니
큰 줄은 소나기 쏵쏵 쏟아져 내리는 듯하고
작은 줄은 애절한 사연을 절절히 속삭이듯 하네
목 쉰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가냘픈 소리 엉켜 있고
크고 작은 진주가 옥쟁반에 떨어져 구르는 듯하네
때로는 꽃 사이를 나는 앵무새 노래같이 부드럽다가
간간이 힘겹게 얼음 밑 흐르는 개울물같이 목메어 흐느끼듯
마침내 물줄기 차갑게 얼어붙은 듯 비파줄이 굳어지며
굳어 얼어붙은 비파는 소리내지 못하고 잠시 죽은 듯
새삼스레 가슴깊이 묻혔던 슬픔과 원한이 복받쳐오르는 듯하네
이 순간 소리 없음이 소리있는 것을 이기네
은 항아리 홀연 깨지고 물줄기 쏟아지듯
철갑 기병 돌연히 나타나 창칼을 울리고
곡이 끝나자 채를 거두어 가슴 앞에 그리고
네 줄을 한꺼번에 퉁기니 비단폭 찢는 듯하네
동쪽 서쪽 배 숙연히 말이 없고
오직 강물 속 창백한 가을 달만 보이네
침울히 채를 거두어 줄 속에 꽂고
옷을 가다듬고 일어나 용모를 살피네
스스로 하는 말이 본래 경성여인으로
하마릉 아래 살았네
열 세 살에 비파를 배워
이름이 교방에서 제일이었네
곡을 끝내면 스승도 뛰어난 재주에 탄복했고
예쁜 모습에 기생들의 질투도 받았네
오릉의 젊은이 다투어 예물 내었고
한 곡조마다 붉은 비단 헤아리지 못했네
금비녀 은비녀 가락 따라 부쉈고
붉은 빛 치마 술 쏟아 얼룩졌네
올해도 즐겁게 웃고 또 다음해도
가을 달 봄바람 따라 한가히 보냈네
남동생 군대 가고 계모 죽고
밤 지나 아침되니 얼굴색도 시들고
문 앞 썰렁하고 말 탄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네
늙은 이 몸 시집 가 상인 아내 되었는데
상인은 이로움만 중히 여기고 이별을 가벼이 하니
지난 달 부량으로 차 사러 떠나
강가를 오가며 빈 배 지키고
배를 맴도는 밝은 달빛 강물 차갑다
깊은 밤 홀연히 젊었을 때를 꿈구고
꿈속에서 우니 화장과 섞인 눈물 붉은 뺨으로 흐르고 있네
나는 비파소리 듣고 이내 감탄했고
또 이 말 듣고 거듭 탄식했네
똑같이 하늘가에 떨어진 사람이
서로 만났으니 이 어찌 지난 날을 서로 알아 무엇하리
나는 지난 해에 장안을 떠나
심양성에서 귀양 사는 병든 몸이건만
심양은 벽지라 음악도 없어
끝내 관현소리 듣지를 못했네
분강가의 낮고 습한 곳에 살며
누런 갈대와 억센 왕대가 집을 에워싸고 자라니
아침 저녁으로 무슨 소리를 들으리
피 토하며 우는 두견새와 애절히 우는 원숭이
봄 강물에 꽃 핀 아침 달 밝은 가을 밤
때때로 술 사다 홀로 비스듬히 기울였네
어찌 산 노래와 마을 피리 없었으랴만
구슬프고 탁한 소리 듣기 어려웠네
오늘 밤 그대 비파소리와 말 들으니
신선의 음악 듣는 듯 잠시 귀 밝았네
사양하지 마시고 다시 한 곡 더 타시면
그대를 위해 비파의 노래 지으리라
나의 이 말에 감동되어 오랫동안 서 있다가
다시 앉아 줄을 조이고 급히 타니
처절하기가 이전 소리 같지 않아
앉아있는 모든 사람 얼굴 묻고 울면서 듣네
그 중에서 누가 많이 흘렸냐면
청삼을 흠뻑 적신 강주의 사마였네.
[해설]
이 시는 <장한가>와 함께 장편 서사시로써 백거이 시의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명작중의 명작으로
꼽힌다. 다소 길지만 한꺼번에 다 옮겨 보았다. 2번으로 나누면 흐름이 끊어지고 또 시의 긴장감을
잃을 것 같아서다.
백거이는 강주의 사마(司馬)로 좌천되었다. 이듬 해 가을에 손님을 전송하다가 그날 밤에 배 안에서
어떤 사람이 타는 비파소리를 듣게 되었다. 너무 애절하여 그 소리를 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본래 장안의 창녀였는데 일찍이 목(穆)과 조(曺)라는 뛰어난 재주꾼에게 비파를 배웠다고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아름다움이 사라지자 몸을 낮추어 상인의 아내가 되었다고 했다.
술상을 차리고 빨리 몇 곡조를 타라고 재촉하니 곡을 끝내고 너무도 슬퍼하였다. 그러면서 스스로
술회하기를 "젊었을 때는 즐거운 일에만 종사했는데 지금은 몰락하여 이런 꾀죄죄한 모습으로
강호(江湖)사이를 떠돌아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백거이 또한 귀양살이 2년 동안을 그저 담담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나니
그도 서러움이 복받쳐오르며 무한한 감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서 이 <비파행>을 지어
그녀에게 바쳤다고 한다.
비파 타는 여인은 마치 백거이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곧 자기자신의 투영인 것이다.
이 시는 백거이 시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느껴 볼 수 있는 만고의 절창으로, 후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시에서도 그렇듯이 불쌍하고 약한 사람을 동정하고 같이 눈물을 쏟는 백거이의 심성을
잘 알 수가 있다.
어리석게 살리라[養拙]
쇠가 휘면 칼을 만들 수 없고
굽은 나무는 멍에로 쓰지 못하리
이제 내가 바로 그렇듯이
어리석어 쓸모가 없나니라
달갑게 명리를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숨으리라
띠풀 지붕 밑에 앉아다 누웠다 하며
오직 거문고와 술잔을 마주 대하리
몸을 고삐의 구속에서 빼고
귀를 막고 속세의 소요 안 듣고
하는 일 없이 소요하며
이따금 노자의 말을 읽노라
걱정 없으니 본성은 바탕에서 즐겁고
욕심 적으니 마음은 뿌리에서 맑아지네
비로소 재주없이 어리석은 나는
도의 근원 찾아야함을 깨달았노라.
鐵柔不爲劍 木曲不爲轅 今我亦如此 愚蒙不及門
甘心謝名利 滅跡歸邱園 坐臥茅茨中 但對琴與尊
身去ㅇ鎖累 耳辭朝市喧 逍遙無所爲 時窺五千言
無憂樂性場 寡欲淸心源 始知不才者 可以探道根
[해설]
젊은 시절 진사까지 오른 백락천이다. 한 때는 간관(諫官)으로 국가를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혼탁한 정치세계와는 맞지 않은 사람이었다.
차츰 밀려나기 시작하다가 결국은 지방으로 쫒겨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백낙천은 도가와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 때 이 시를 지었다.
달통한 백락천[達哉樂天行]
깨닫고 달통한 백락천은
낙양에 파견된 지 13년
칠순이 되자 이내 벼슬을 사직하고
봉록이 반감되기 전에 관에서 물러났네
봄에는 놀이꾼과 짝지어 행락하고
밤에는 스님 따라 좌선했노라
2년간 집안일을 돌보지 않으니
뜰에는 잡초 자라고 부엌 불 꺼졌네
아침에는 머슴아이 쌀 소금 떨어졌다고 하고
저녁에는 계집종 입을 옷이 떨어졌다 이르니
처자는 걱정하고 생질들 근심하나
나는 도연히 취해 누웠노라
이윽고 일어나 처자와 생질 위해 생활대책 설계하노니
얼마되지 않는 재산일망정 선후를 따져 처리하노라
먼저 남쪽의 열 무의 동산을 팔고
다음에 동곽의 오 경의 밭을 팔고
아울러 살고 있는 저택까지 팔면은
어렴풋이 이삼천 관의 돈이 되리니
반은 그대들의 생활비로 충당하고
반은 나의 술과 안주값에 쓰리라
지금 내 나이 이미 71세로
눈 어둡고 수염 희고 정신 흐리니
아마도 내 몫 다 쓰지 못하고
아침 이슬보다 빨리 황천에 가리라
허나 죽기전까지는 더 산다고 나쁠 것은 없으니
허기지면 먹고 즐거우면 마시며 조용히 잠을 자리라
사나 죽으나 별반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노라
깨닫고 달통했노라 백락천은 달통했노라.
達哉達哉白樂天 分司東都十三年 七旬ㅇ滿冠已掛 半祿未及車先懸
或隨山僧夜坐禪 二年忘却問家事 門庭多草廚少烟 包童朝告鹽米盡
侍婢暮訴衣裳穿 妻子不悅甥姪悶 而我醉臥方陶然 起來與爾劃生計
薄産處置有後先 先賣南坊十畝園 次賣東郭五頃田 然後兼賣所居宅
ㅇㅇ獲ㅇ二三千 半與爾充衣食費 半與吾供酒肉錢 吾今已年七十一
眼昏鬚白頭風眩 但恐此錢用不盡 卽先朝露歸夜泉 未歸且住亦不惡
飢餐樂飮安穩眠 死生無可無不可 達哉達哉白樂天
[해설]
칠십을 넘은 백거이는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에 대해 태연하게 맞이할 준비를 한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것이고, 죽음이 無라면 삶 또한 無인 것이다. 즉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본 것이다.
본성이 인자하고 자상한 백락천은 항상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성품이었다.
처자식은 물론 자기주변의 머슴이나 계집종들까지도 생활대책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경지가 바로 달통한 경지 아니겠는가.
늙은 몸을 보며 스스로 노래함[自詠老身示諸家屬]
칠십 오 세로 수를 누리고
오만 금의 봉록을 받으며
부부해로 하고 생질들과 함께 지낸다
햅쌀죽이 맛있고 새로 지은 솜옷이 포근하고
집안은 텅 비었으나 가족들이 단란하게 지낸다
흰 병풍 앞에 걸상을 놓고
푸른 방장 앞에 화로를 놓고서
아들의 책읽는 소리를 듣고
또한 머슴아이 탕약 달이는 것을 본다
나는 붓을 빨리 놀리어 시채(詩債)를 갚고
옷을 벗어 잡히어 약값을 치룬다
모든 일을 처리하니 한가롭기만 하고
등을 긁으며 양지에 누워 잠이 든다.
[해설]
이 시는 그가 75세로 죽기 바로 얼마 전에 지은 시다.
사람이란 누구나 이처럼 깨끗하고, 한가롭고, 맑고, 조용하게 늙을 줄 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까.
이로써 백거이의 시를 끝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