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가입한 운동클럽의 잔칫날이었다,
나는 ~~~회등의 행사란 말이나 파티란 말보다 잔치란 말을 이제 좋아한다,
행사는 너무 딱딱하고 치뤄내야하는 의무감내지는 '일'이란 뉴앙스가 강하고
파티란 말은 나도 외국의 건전한 파티문화를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래도 아직은 좀 우리정서랑 안 맞고 조금은 속물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삶이 잔치라면... 우리의 의미있는 만남과 맛난 음식,흥겨움이 있는 자리는 당연히
잔치마당이 되어야하고 또 그러해야 하지않을 까 싶다.
그런 잔치준비를 위해서 누군가가 무엇을 계획하고 일을 해야하는데
음식부분에서 아무도 손을 선뜻 들지 않았다, 앞장서서 일하는 분이 약간 난감한 표정...
내가 젤 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누가 힘들어하면 그것이 내게 굉장한 압력으로
다가와 정말 못 해도 고오~!하며 밀려나가는 체질적 약함이 있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대신 무대 뒤 조연이나 사이드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스타일인데...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내가 해야한다는 사명감?내지는 의무의식이 있나보다.
또 다른 이유는 내 심리저변에는 이런 경우 거의 매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원칙이 적용하기도 한다. 어차피 돌아가며 할 거면 먼저 하는 게 낫다,
아님 나 아님 누구라도 해야하는데..차라리 내가 하고말지 뭐~
그리고 여자들이 요리를 거부하는 것은 남자들이 힘든 일을 거부하는것과 비슷한데...
좀 보기가 안 좋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한다.
물론 요리란게 단순한 노가다다식의 일만은 아니다.
그래도 머리와 가슴이 함께 따라줘야 하는 일이고 이 때 가슴이란 말은 정성이란 뜻이다.
어쨋든 다들 잘 하실 것같은 분들이 손을 안 드는 바람에 그 침묵,공백기간을
못 참는 내가 번쩍 손을 들고... 졸지에 70인분 잡채를 떠 맡아 하게 되었는데...
덩치로 보나 무얼로 보나 잘 할 것 같지 않은 내가 미심쩍은지 총무는 도대체 양을
어느정도로 할려고 하냐?고 물어오길래 체구는 작아도 기본단위는 한 다라이죠^^
야무지게 말은 해 놓고 왔다.
당일 날 아침 정말 세탁실에 내어놓았던 큰 다라이 서너개를 씻어 엎어놓고
일을 벌렸다. 시금치 4단, 양파 열서너개, 당근, 표고버섯, 고기등 순서데로 내어놓고
다듬고 데치고 썰고 난리부르스를 치면서 장난은 아니었다.
양파는 까면서도 썰면서도 울어야하지만 그래도 썰기는 쉬운데
당근은 만만치가 않다. 군기가 팍 들어간 것 처럼 일렬로 줄 세워놓고
똑같이 균일한 두께와 크기로 그것도 빨리 썰려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잡채에 들어가는 야채는 국이나 찌개처럼 묻혀서 잘 안보이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며 눈에 뛰기에 되도록 이쁘게 썰어줘야하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내 요리철학? 내지, 기준은 그러했다. 속전속결이다.
요리라곤 제데로 형식갖춰 배워본 적이 없는 나다.
결혼 전에는 그 잘난 공부하느라꼬.... 그리고 결혼 후에는 직장 다니면서
아이낳아 키우느라 그야말로 내 원칙은 항상 맛과 영양만 있다면
속전속결의 스피드요리식이었다. 그래서 첨엔 가끔식 기발하기도한 나의 퓨전요리에
이 무슨 국적없는 ...운운하며 웃던 남편도 조금씩 상상,추측..
그리고 책보고 이제는 인터넷 뒤져가며 해대는 내 스피드,맛,영양에 만족하는 편이다,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재료이상으로 정성이다.
그러면서 양념을 아끼지 않으면 맛은 나게 되어있는 것이
정석데로 요리를 배우진 못했으나 내 짧은 경험상 얻은 결론이다.
양념을 아끼지 않고 정성을 쏟으면 맛은 이미 보장받은 것이다.
암튼 내 잡채요리는 썰고 다듬고 무치고의 사이사이 시간차공격으로
그 많은 당면들을 삶아 행구어 밑간해가며...
울 집에서 젤 큰 후라이팬 두 개를 놓고 갖은 야채와 당면을 다시 볶아서
큰 다라이에다 무치는 걸로 이어져갔다.
시간에 맞추느라 진땀을 빼면서 에고~! 증말 내가 겁도 없이 왜 이 사서하는 고생이냐며??
순간 후회하다가도 맛있게 먹으면서 즐거워할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니
그냥 힘이 나기도 한다. 설탕, 참기름, 마늘, 깨소금등을 팍팍 치면서
이러고도 안 맛있을 수가 있어?, 이 정도인데 지가 안 맛있고 배겨?
나 혼자 속내말로 중얼거리며 웃어가며 한다.
....
그 와중에서도 이런 음식에 대한 이런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잠시 짧은 향수에 젓기도한다 ^^
사실 잡채란 음식이 우리음식이긴 하나 김치찌개, 된장요리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해도 잡채는 무슨 잔칫집이나 생일 때서라야 만들어먹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잡채한다 하면 그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었고,
아니면 내 유년시절 방안에 석유곤로를 두고 식구들이 도란도란
잡채 만들어 먹는 일은 별미였고 재미였다.
그리고 보니 내 잡채경력은 적어도 다른 것보다 훨 앞서는 것이...
공부하러 밖에 나가 있을 때 친구들에게 한국요리를 맛 보여줄 대표음식이
그래도 잡채,불고기,김밥정도였는데 그 중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것이 잡채였고
난 그 바람에 즐겨하게 된 추억도 있다.
우선 골고루 들어간 재료들의 색깔이 이쁘고 먹음직스럽고 푸짐하다.
그리고 손 맛이란 게 있는 지...아님 정성,센스인 지 결혼하고 나서도 다른 것은 몰라도
줄줄이 시누이들이 생신때면 내가 잡채하기를 은근히 독촉하고 기다렸다.
그래서 정말 대식구 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한 다라이수준으로 하고나면 먹고서
봉지봉지 사 갖고 가기도 했다. 나는 이런저런 음식이 풍성하다못해 넘쳐나는
가족행사뒤면 다른 음식은 뒤로하고 잡채 한 그릇으로 때우며 뒷마무리를 하곤 했었다.
그 때 부엌 한 구석에서 혼자 먹는 한 접시의 잡채 맛은 정말 별미였다.
사람이 먹을 때 만큼 마음이 열리는 때도 없다고 한다.
먹는다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즐거운 일이기에~!...
또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그 즐거움은 더 큰 것이고 나눔도 큰 것이다.
좀 서먹하고 껄끄럽던 이들도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면 그 마음이 무장해제되어
대화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결과적인 것을 생각하면 음식을 잘하든 못하든 준비하는
마음도 설레인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 음식이 맛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식구들이나 친지들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고생이라 생각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다 좋은 것 같다.
물론 사는 게 매 번 다 그럴수 잇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첫댓글 재밌게 읽었습니다...성경말씀도 결국 먹는 이야기니까요^^
김응남님처럼 재밌게 읽었네요^^ 우물님 글 정말 잘쓰신다~ 따로 공부하셨나바요? 암튼 귀한 잡채 오랜만에 잔뜩 먹었네요. 아~ 맛나다.
보낼 수 있음 택배로 부치겟나이다....~!!!, 글 쓰는 것은 생각할 힘을 주니까 좋은 것 같아요, 쓰는 것도 음식처럼 전 철저히 비주류파입니다~!.. 담장너머파, 어깨너머파인 거죠..^^ 아하~! 홈스쿨인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