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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148) - 설레는 봄날에 찾은 명소들
'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서도 꽃샘추위가 남아 있더니 이제 가슴 설레는 봄이다. 화창한 봄날, 아내와 함께 가벼운 행장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행선지는 대구, 2박 3일 예정이다.
1. 한국의 아름다운 길, 한티재와 팔공산자락을 휘돌아
목요일 오전에 광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대구터미널에 내리니 처제가 마중 나왔다. 승용차로 금호강변과 동화천을 지나 팔공산 자락으로 향하였다. 광주의 무등산처럼 팔공산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이 여러 종류의 음식점들이다. 파계사 입구의 운치 있는 식당에서 가벼운 한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들고 팔공산을 휘감아 도는 한티재를 넘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뽑힌 한티재는 칠곡군과 군위군의 경계에 있는 꽤 높은 고갯길이다.
첫 번째 찾은 곳은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동에 있는 제2석굴암이라고도 하는 미타삼존석굴이다. 1500여 년 전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수행했다는 삼존석굴은 경주의 석굴암보다 100년 앞선 석불로 국보 109호다. 아내가 중학생 때 이곳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떠들썩하였다는데 현장에서 살피니 발견한 것은 1927년이고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기록이다. 아마 국보지정이 큰 뉴스였나 보다.( * 우리가 찾은 다음날 저녁, 대구의 지방뉴스시간에 3존석굴이 제2석굴암으로 일컫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담은 르포가 방영되었다.)
석굴에서 되돌아 한티재를 다시 넘었다. 산자락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덩이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고개 마루 휴게소에 이르니 팔공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차를 멈추고 등산로를 따라 산책을 하며 아스라이 펼쳐지는 군위군과 칠곡군의 경관을 감상하노라니 젊은 시절 애틋한 감정을 느꼈던 칠곡 처녀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여인이여, 행복하시라. 군위는 작년에 걸었던 서울 - 부산 행로에 들렸던 고장, 그때 이곳이 아버지의 고향인 재일교포가 부른 ‘타향살이’가 생각나는구나.
한티재에서 내려와 찾은 곳은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송림사, 통일신라시대에 세웠다는 5층전탑이 이색적인 모습이고 평지에 넓게 자리 잡은 절터가 넉넉한 느낌을 준다. 멋지게 뻗은 소나무가 인상적이라 말하니 아내가 절 이름이 송림사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라고 말하여 나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칭송하였다.
송림사에서 대구시내로 향하니 동구에 접어든다. 처제가 가는 길에 있는 고려개국의 충신 신숭겸의 사당인 표충사로 안내한다. 왕건이 이곳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 때 사경에 처한 것을 구하려 옷을 바꿔 입고 대신 죽었다는 충절이 서려 있다. 그의 순절이 아니었다면 고려의 역사가 바뀌었을 터, 천고에 길이 남을 장렬한 죽음이로다.
2. 대게의 고장 영덕해안과 고즈넉한 품위를 지닌 인흥마을을 찾아서
둘째 날인 금요일, 오전 9시에 대구를 출발하여 경상북도 동북지방에 있는 영덕군 강구항 주변 해안으로 향하였다. 대구 - 포항간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목적지인 영덕군 축산면 경정마을까지는 약 150여 km, 대구 - 포항 고속도로에 10여 개의 터널이 있고 포항 -영덕 국도 서쪽으로 백두대간이 뻗어 내린 산세가 우람하다. 어시장의 규모가 큰 강구에서 경정에 이르는 20여 km의 해안도로 ‘영덕블루로드’는 전날 달린 ‘한국의 아름다운 길’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시원한 경관이다. 도중의 전망 좋은 곳에서 여러 대의 관광버스에서 내린 일행들과 함께 등대를 겸한 전망대에 올라 살펴보는 동해의 푸른 물결, 멀리 굽이도는 해안선의 정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목적지인 경정마을은 조그만 어촌, 널따랗게 쌓은 방파제에서 낚시꾼 서너 맹이 바다낚시를 즐기는 한적한 포구다. 방파제를 돌아 식당 쪽으로 나오니 20여 마리의 갈매기가 창공을 선회하며 퍼레이드를 펼친다. 멀리서 온 손님을 바닷새들이 환영하누나.
여러 차례 이 집을 찾은 처제의 안내로 ‘이장댁’이라는 간판이 걸린 조용한 식당에 음식을 주문하고 동네를 한 바퀴돌았보았다. 인근의 언덕받이에 있는 효심사라는 작은 사찰은 대웅전 지붕위에 황금색 불상을 얹은 특이한 모습이다, 식당 앞에는 수백 년 자라고도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낮은 오매향이라 이름붙인 특수수종의 나무가 눈길을 끈다. 나름대로 전통이 있는 어촌인가보다.
영덕대게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동해안의 명산물이다. 명불허전이랄까, 속살이 잘 여문 대게의 맛이 고소하고 담백하다. 아내가 동생 덕에 동해의 특식을 맛본다며 좋아한다. 얼마 전에 칼럼니스트 조용헌이 동서의 게 맛을 비교한 글을 읽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한반도의 동해안과 서해안은 조류의 흐름도 다르고, 수심과 바람도 다르고, 뻘밭도 다르고, 어종(魚種)도 다르다. 풍토가 다르니까 맛도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동해안의 게(蟹)와 서해안의 게가 확연히 다르다. 동해안의 게가 영덕 일대에서 나오는 대게라면 서해안은 꽃게인 것이다. 영덕대게 중에서 암게를 '빵게'라고 부른다. 지금은 이 '빵게'가 보호어종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잡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서해안의 꽃게 맛만 알았던 내가 빵게 맛을 처음 본 것은 10년 전쯤 대구의 약전골목에서였다. 이 골목에는 유명한 칼국수 집이 하나 있었는데, 빵게를 같이 넣고 끓인 칼국수였다. 한마디로 서해안 사람이 맛보지 못했던 시원한 맛이었다. 2~3월에 빵빵하게 알이 찬 빵게는 동해안 최고의 맛이다.그런가 하면 꽃게는 간장에 담가서 먹는 '꽃게장'이 일품이다. 말기 암환자도 마지막까지 먹고 싶은 음식이 꽃게라고 들었다. 빵게는 담백하게 쪄서 먹어야지 게장(醬)으로 만들기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에 꽃게는 양념을 해서 무침도 해먹지만, 간장에 발효시켜서 먹으면 더 깊은 맛이 난다. '좌빵게'와 '우꽃게'를 보면 동쪽과 서쪽이 요리재료도 다르고, 조리법도 다르고, 음식 취향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조선일보 2012. 3. 4 조용헌 칼럼 ’좌빵게, 우꽃게‘ 중에서)
점심을 들고 다시 영덕블루로드를 되짚어 강구항의 어시장에서 차를 세웠다. 대게는 물론 각종어류들로 어시장이 번잡하다. 장삿꾼은 큰 대게 네다섯 마리에 십만 원을 부른다. 저녁 먹거리로 멍게와 해삼을 사들고 시장을 나섰다. 강구수협의 수신고가 2000억을 넘었다는 포스터의 문구가 어촌의 경제력을 알려준다.
오후 들어 비가 내린다. 갔던 길을 되돌아 대구에 들어와서 인근에 있는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마을의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를 찾았다. 고려말의 충신 문익점(목화씨를 들여온)의 18세손인 문경호가 1840년에 터를 잡은 이 마을은 조선말기의 전통가옥들과 재실, 문중문고 등이 격조 높게 들어서 있다. 마을 입구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고 안내문에는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고 적혀 있다. 마을을 하나로 이어주는 흙과 돌로 쌓은 높은 돌담, 세거지의 좌우 양면을 둘러싼 천연보호림의 노송들이 운치가 있다. 세거지 건너편에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추적을 봉안한 인흥서원(1825년에 창건)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3. 면면히 이어진 예학과 충절의 터전들
셋째날인 토요일 오전, 서울의 처남이 KTX 열차로 내려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인근에 있는 대구 두류공원을 찾았다. 넓은 공원의 한 복판에 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서 있다. 대규모의 전시관에 들어서니 이 주간의 전시로 낭만포토클럽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4개의 전시관을 꽉 매운 작품들이 유려하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전문가의 카메라에 잡힌 국내외의 명소들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음이 가외의 소득이다. 전시관에서 나오니 대구의 명소인 앞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안개자욱한 앞산의 풍광이 전시관의 사진보다 멋진 한 폭의 그림이다.
오전 11시경에 처남과 합류하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도동서원으로 향했다. 낙동강을 낀 비슬산 기슭에 자리 잡은 도동서원은 조선 5현(* 이곳 설명문에는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5현으로 들고 있다.)의 하나로 알려진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서 16세기에 세운 제향(선현을 추모하는 제사)과 강학(후학들의 교육)공간을 겸비한 서원이다. 정면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만큼 몸통이 큰 은행나무, 자연스런 품위를 갖춘 중정당의 대들보 등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도동서원은 '도가 동쪽으로, 서원건축의 백미'라고 소개한 유인물의 표현이 적절하게 여겨진다. 어릴 적에 장인을 따라 이곳의 낙동강변에 와서 낚시를 배웠다는 처남은 옛날이 그리운 듯.
조선조의 5대 서원으로 영주 풍기의 소수서원,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안강의 옥산사원, 달성의 도동서원을 꼽는다는데 도산서원은 여러 번 찾았고 작년에 소수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을 둘러본 바 있어서 이번 탐방으로 다섯 서원을 두루 섭렵한 셈이다.
탐방을 끝내고 서원을 나서 달성군 현풍, 위천을 지나 낙동강변에 있는 화원유원지의 식당을 찾았다. 이곳에서 먹을 만한 메뉴로 권하여 처음 먹어본 어탕의 맛이 깔끔하다.
식사를 마치니 오후 2시가 지났다. 오후에 찾은 곳은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에 있는 육신사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한개민속마을이다. 이에 앞서 육신사로 가는 길목의 낙동강변에 있는 하목정(* 인조가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는 의병장의 후예가 살던 집이다.)이라는 곳을 들렀으나 주변이 어수선하여 별로였다.
육신사는 사육신의 하나인 박팽년의 후손이 절의묘라는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곳인데 그 현손이 고조부인 박팽년의 제삿날 꿈에 사육신들이 밖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다섯 분의 제물도 함께 차려 제사를 지내고 하빈사를 세워 사육신을 함께 배향한데서 유래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훼절된 사당을 1979년에 '충효위인유적정비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조성하였다고 한다.
사육신의 후손들은 모두 끊겼으나 박팽년의 둘째아들 박순의 아내 성주 이씨가 임신 중인 채 관비가 되어 친정동네로 내려왔다. 아들을 낳으면 죽임을 당하는데 해산을 하니 아들이었고 그 무렵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서 아기를 바꾸어 길러 목숨을 보전하였다. 박비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키워진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은 묘골마을 순천 박씨의 입향조가 되었고 그 후손들이 이곳에 절의묘를 세운 것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 씨가 박팽년의 18세손이요 이병철의 아내 박두을 여사의 생가도 이곳에 있다. 박두을 여사의 생가입구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어느 유명한 관상가가 젊은 시절의 박두을을 보고 "왕비가 되거나 거부의 아내가 될 상이다."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금까지 서울의 사육신묘를 찾지 못했는데 뜻밖의 기회에 충절의 터전을 찾게 되어 감사하다. 젊은 시절, 사육신의 대표인 성삼문과 그의 반대편에 섰던 신숙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아내에게 쓴 편지글에)
'성삼문과 신숙주.
다 같이 집현전 학사로 세종의 총애를 받던 그들은 하나는 사육신으로, 하나는 세조의 공신으로 갈라섰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총명했던 신숙주보다 절의를 지킨 성삼문에게 더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요? 나도 성삼문 편에 섭니다.'
아내는 젊어서 오태석 희곡의 '태'를 보면서 박팽년 후손의 애절한 사연이 가슴 아팠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사실로 드러나는 현장을 찾는 감회가 새롭다고 말한다. 함께 그 연극을 본 내게는 희미한 기억인 것이 부끄럽다.
육신사에서 나와 이웃고을 성주군에 있는 한개마을로 향했다. 전국의 많은 지역을 돌았으나 성주군에 발걸음 하기는 처음이다. 참외로 유명한 고장답게 온실재배지가 자주 눈에 띠고 길가에는 '성주참외'라고 쓴 판매장이 여럿 보인다. 월항면 대산리에 터를 잡은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조에 이우가 입향한 이후 560년을 이어온 성산 이씨 집성촌으로 조선후기에 다수의 인물을 배출한 영남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이다. 마을의 한식기와, 초가, 변형가옥 등 75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대감댁, 교리댁, 진사댁 등 품위와 여유를 갖춘 집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새로 보수를 하는 집들도 여러 채다.
오후 5시 넘어 한개마을를 출발하여 서대구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6시가 지났다. 예매한 고속버스 편으로 광주에 이르니 밤 10시가 가깝다. 우리가 갈 곳들을 세심하게 미리 선정하여 차질 없이 안내한 처제가 수고하였고 가족들의 문화탐방에 뒤늦게 동참한 것을 아쉬워한 처남이 반갑다. 집에 도착하니 처제가 보낸 메일이 사진과 함께 먼저 와 있다. '즐거운 봄여행을 하고보니 남은 봄을 한층 더 신나게 보낼 것 같습니다!'
남평 문씨 세거지 등 여러 곳에 매화 꽃이 피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활짝 핀 꽃동산이 곳곳에 펼쳐지리라. 가족, 친지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우리 고장을 찾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2박3일의 알찬 봄나들이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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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봄내음이 물씬 납니다. 정말 아름다운 삶을 열어가시는 부부 !! 짝짝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