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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학원공부에 과부하가 걸리고 말았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이물질(?)이 들어간 것이었다. 조금은 자신감이 결여된 틈에 인생의 반항기마저 겹쳤다. 머리가 너무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무작정, 일단은 며칠만 이라도 고향으로 피신을 하고 싶어졌다. 고향의 더운 아랫방 구석에 누워 천정을 바라다보았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내 삶, 내 인생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무작정 지독한 무더위 속을 지칠 때까지 걷고만 싶어졌다.
1974. 7. 26(하동 → 진주, 40km)
무더위의 절정기다. 우선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보기로 마음을 먹고 장도에 오르기로 했다. 오래된 검은 고무신과 검은 소매긴 옷을 찾아 입고 신었다. 여차하면 노숙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었다.
겉모습을 보아서는 영락없이 가출소년(Begger)쯤 되어 보임직하다. 7월말의 무더위는 기온 상황판에 더욱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34∼5도의 온도로 달구어진 지온이 얼굴을 향해 반사되어 온다. 이쯤에서 내가 왜 이런다지? 이 나이면 인생의 황금기란데 소위 이게 뭔 시추에이션(Situation)인가? 정말 그 이유 없는 반항이란 것일까?
오후 2시 주머니에 약간의 돈만을 넣은 채 집을 나섰다. 길을 걷는 나의 기분은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원하는 일이고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기를 절실하게 바랐기 때문이다.
시골들판을 지나 자갈 깔려진 도로를 묵묵히 걷고 있다. 건너편 시냇가에는 방학을 맞은 꼬마들이 시원스레 물장구를 치고 놀고 있다. 당장 뛰어들어 같이 물장구라도 치고 싶도록 무척이나 시원해 보인다. 황토 재를 넘어 북천에 다다랐다.
산비탈에서 소에게 풀을 먹이던 여학생들이 나의 모습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다본다. 당연할 것이다. 이 한여름에 검은 옷과 고무신을 신고 웬 걸인 같은 젊은이가 산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다솔사, 완사를 지나니 해가 어느새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오늘 안으로 진주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나는 잠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었다. 제법 긴 여행이 될지 모르니 경비를 우선 아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진주에 큰집 누님 댁이 있지만 주소도 모르고 가보지도 않았다.
나는 부산이나 대구에는 어릴 때부터 자주 가기도 하고 방학이면 그 곳의 학원도 다녔었지만, 가까이 있는 진주는 차를 타고 지나칠 정도이지 구체적인 지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목이 타기 때문에 길가의 보이는 우물이란 우물은 모조리 거쳐야 했다. 자처하고 나선 고행길이지만 그래도 살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물통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목이 마를 때는 그때마다 해결해야 했다.
유수를 지나고 나니 날은 아주 캄캄해졌다. 낯선 곳이라 기분이 별로였다. 도로 근처엔 인가도 전혀 보이지 않고 먼 곳에 외딴집이 보일뿐이고,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무심코 얼마를 걸었을까? 앞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이 캄캄한 밤에 무엇일까? 나는 순간 방어 자세를 취했다. 두 눈이 치 뜨이고 기분이 으시시하였다. 그러나 막상 마주쳐진 것은 소복을 한 중년 여인이었다. 어두운 밤에 어딜 다녀오는 것일까? 여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우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재빨리 멀어져 갔다.
얼마 후 진주 시내가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나동을 지나니 학생들이 과외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었다. 이젠 불빛이 많아졌고 가까이서 남강의 물결소리가 들려온다.
진주시내에 접어들어 칠암동을 찾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하고 집 찾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 진주처럼 작은 도시에서 누님 댁을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아홉시 반이다. 누님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시켜주시고 과일도 주셨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냥 학원이나 열심히 다니지 무엇 하려 고생을 하느냐고 하신다. 당연히 맞는 말씀이라 할 말이 없었다. 피곤하고 시장했던 탓에 나는 저녁밥과 과일을 맛있게 먹고 텔레비젼을 잠시 보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7. 27(진주 → 마산, 62km)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피곤한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다. 여행의 즐거움 때문인가? 그런데 거울을 보니 이건 또 웬일인가? 얼굴이 온통 모기물린 자국이다. 더위 때문에 밖에서 잣더니 이놈의 모기들이 오랜만에 잔뜩 몰려들어 아예 회식을 하였구나!
아침밥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침햇살에 묻힌 진주시가지를 멀리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를 가다가 냉차장수 아저씨가 오르막길에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리어카를 밀어 주었더니 냉차를 한 컵 준다. 매우 시원하였다.
문산 고개를 올라간다. 경사가 심하고 꼬부랑길이다. 내 또래나 됨직한 청년 두 명이 리어카를 끌고 간다. 알고보니 고물도 줍고 엿장수를 하는 청년들이다.
내가 그들을 한참동안이나 뒤따라가니 아무래도 갈 곳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그 중 한명이 같이 장사를 하자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호의는 고맙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라고 정중하게 사양했다.
문산을 지나 지름길을 찾기 위해 고속도로 공사장 길을 따라가다가 오히려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했던 교훈도 얻었다. 진주 → 마산 62km, 하동 도로와는 달리 이곳에는 포장도로라서 걷기가 조금 나은 면이 있다.
자갈이 깔려진 도로는 발이 아파서 지면을 골라 걷기가 힘이 들었었다. 더욱이 좋은 건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느 듯 반성에 접에 들었다. 농촌은 다들 비슷한 풍경이나 낯선 곳에서 바라다보는 모습은 더욱더 정겨워 보이기 마련이다. 방학이 시작되어도 고학년들은 학교를 가고 있다. 길가엔 코스모스가 줄지어 심겨져 있고, 여기저기에 칸나도 심어 놓았다.
진북면에 접어들자 모내기를 하고 있다. 모내기철은 훨씬 지났는데 아마도 물 사정 때문에 모내기를 이제야 하는가 싶다. 새참이라도 좀 얻어먹고 싶건만 체면이 말이 아니리라 싶어 그만두기로 했다.
길가 좁은 도랑에는 더위를 못이긴 여중생들이 웃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갔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서는 부끄러워 풀숲에 몸을 숨기느라 바쁘다.
진동면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어릴 적 진동고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고 자랐다. 고개가 험하여 교통사고가 많이 나서 사람이 많이 죽기도 하였고, 산세가 험하여 옛날에는 소금장수가 마을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었었다.
오후의 햇살은 매우 뜨겁다. 길가 마을을 지니다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아가씨에게 염치불구하고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했더니 집안에서 숭늉을 떠나 준다. 참 고마운 처녀이다. 고사에 우물물에다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는 이야기와 같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어떻게나 무더운지 아스팔트가 녹아서 끈적거린다. 검은 고무신이 아스팔트의 끈적거림에 동조(?)하여 나의 발걸음을 붙잡으려 한다. 그래도 비오는 듯한 땀 흘려가며 걷다보니 해가 서산에 걸려있다.
이제부턴 고개를 올라간다. 고개 정상에서 절반이나 왔을까? 생각하고 걷는데 3륜차 한 대가 올라가다가 내 옆에서 선다. 운전수 아저씨가 마산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였지만, 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노라고 하였다. 내 처음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짙은 어둠에 깃든 진동고개는 정말 어시시하다. 이곳 주변에는 인가가 없다. 마산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만 할 것 같아 보인다. 나의 결심이 조금씩 흔들렸다. 괜스런 고생을 하는 걸까? 조금 전의 그 차를 얻어 탈걸 그랬나? 그러나 어차피 내가 선택한 길이니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참의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은 그래 뛰자! 지친 몸이라 힘들지만 그래도 달리다 보면 무서움도 좀 덜할 것이고, 시간도 단축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다음순간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인적이 없어 불빛도 전혀 없는 길이라 힘들기는 하였지만 멀리 도심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어스름을 위안으로 삼으며 달렸다. 20여분을 달리자 저 멀리 고개위에 한 점의 불빛이 보인다. 아마 고개정상의 주막집인 것 같아 보였다.
고개만 넘으면 마산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에 도착했다. 이젠 두려움도 사라지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비탈길을 내려간다. 시내의 훤한 불빛이 모두 시야에 다 들어왔다.
10시 가량이나 되어서 쯤 큰집에 도착했다. 큰집식구들은 밤중에 이상한 차림으로 온 나를 보고 의아해 했으나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해를 하는 눈치다. 저녁을 먹고 동생과 같이 근처에 있는 용마산고원으로 올라갔다.
바다에 떠 있는 배에서 나오는 불빛과 공단의 불빛이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다. 동생과 같이 밤이 늦도록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7. 28(마산 → 부산, 84km)
6시경 잠에서 깨어났다. 이젠 제법 피곤하다. 더운 날씨에 이젠 그만 하라는 동생의 권유를 물리치고 아침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동생이 고맙게도 멀리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시내를 벗어나 창원군으로 접어들었다.
길가에서 물을 긷는 할머니에게 부산까지의 거리를 물었더니 160리라고 하신다. 창원 시내를 벗어나 김해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20대 중반의 청년과 아가씨 그리고 여고생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는 나를 유심히 바라 보다가 자기들끼리 무어라 수군대더니 나를 불러 세운다.
내가 왜 그러냐고 했더니 차비가 없으면 자신들이 주겠노라고 했다. 내가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처녀는 무엇 하려 그러한 고생을 하느냐고 했고, 청년은 자신도 예전에 무전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그들을 뒤로 하고 걸음을 계속했다.
오늘도 무더위는 계속되었다. 김해에서 부산을 가는 길은 도로도 넓고 차가 무척이나 많이 다닌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를 걷다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점점 지쳐간다.
이곳은 들판이 넓어 도로가 마을과 많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갈증이 나도 먹을 물을 구하기가 어렵다. 정오가 가까워졌는지 날씨가 매우 덥다. 멀리 도로 위에 물이 고여 있는 듯하다.
기쁜 마음으로 다가가 보면 그것은 물이 아니라 아스팔트가 끈적거려서 그렇게 보인다. 신기루 현상이라는 걸 생각해 보았다. 그러기를 몇 번씩 이젠 더 이상 속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을 얻어먹기가 힘들어 하는 수 없이 논에 있는 물로 목을 축여보고자 하였으나 입에 닿는 순간 물이 매우 뜨겁게 느껴진다. 역효과만 났다. 그리고 만약에 논에 농약이라도 쳤다면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별로다.
이젠 발바닥이 따갑다. 그래서 양말을 벗어보니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걸음을 걸으려면 발이 편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발이 아프니 진행 속도는 더 느려지고 햇볕은 더욱 따갑게 느껴진다.
발이 아파 뒤꿈치를 이용하여 달려 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거다. 시원한 김해평야를 달린다. 미친놈처럼...
발뒤꿈치를 이용하니 달리는 속도는 느려도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다. 진영읍을 지나면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었다. 점심을 먹고 한 시간쯤을 더 걷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보슬비가 오더니 점차 빗줄기가 강해진다.
비가 내리니 우선은 시원하긴 한데 옷은 어느새 다 젖어 버렸다. 비를 맞으며 계속해서 달리다 걷기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달린 탓으로 밤 9시경에 부산 누님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무척이나 많이 걸은 것이다. 그래도 저녁밥을 먹고서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 제목은 '여고 선생' 이었다. 이틀 반 동안 무지하게 걸었는데 잠이나 잘 것이지 무슨 영화까지 본답시고 나도 웃기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째든 나는 이틀 반 만에 180여km를 걸어 온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젠 더 이상 걷는 건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발에 물집이 생겨버려 걷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늦게 잠이 들었다.
7. 29(부산 → 여수 → 하동)
정확히 6시 30분에 잠이 깨었다. 매우 피곤함을 느꼈다. 걸음도 많이 걸었지만 어제 비를 맞고 걸은 것이 더 피곤한 요인인 것 같았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초량에 있는 연안부두로 달려 나갔다. 제주도를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두에 도착하니 제주도행 배가 벌써 떠나고 저녁이 되어야 배가 있단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를 고심했다. 그러다 차츰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하나 없는데 제주도의 무전여행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돈도 제법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 목포까지 가 보기로 하고 매표소로 갔다. 그런데 목포까지 가는 배는 없고 여수가 종착지란다.
하는 수 없다. 이래저래 나의 의지가 약해지고 여건도 좋지 못했다. 에라! 될 대로 되어라 하는 심정으로 여수행 배에 몸을 실었다. 300톤급 배에는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떠나고 있었다.
나는 우두커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뱃길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며, 뱃전을 따라 나는 갈매기들 다들 제 할 일이 주어져 있는 것 같았다. 가끔씩 조그만 배들의 근처를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지나칠 때면 큰 물살이 생겨난다. 작은 배들은 그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사공이 노를 열심히 젓는 것을 바라본다.
남해안에는 아름다운 작은 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나는 어릴 적 꿈은 선원이 되어 세계 각국의 너른 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은 도대체 뭘 하자는 상황인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는 거제, 충무, 통영을 거쳐 가고 있었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충무 항은 정말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충무 항에 배가 정박해 잇을 때 할머니가 이고 온 충무김밥을 사먹었는데 그 맛이 매우 좋았다. 새우랑, 오징어가 곁들여진 충무김밥은 마침 배도 고픈 참에 꿀맛이다.
삼천포항을 지나자 남해가 가까워진다. 남해는 하동과 가까워 차라리 남해항에서 내릴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래도 최종목적지인 여수까지는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여수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반이었다, 서둘러 순천행 기차에 몸을 싣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실 여수에서 순천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는 교통편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순천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하동 행 열차를 바꾸어 탔다.
열차 안 의자에 몸을 기대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엄습해 왔다. 하동읍에 도착하니 일곱 시였다.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거울을 보니 이것 참 가관이다. 내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껍질이 벗겨져 있다. 더운 날씨에 탄데다 뱃전에서 연기를 뒤집어 쓴 때문인 것 같다.
자리에 누웠다. 내가 목적한 것이 무엇이었으며, 나는 그 목적을 달성하였는가? 피식 웃었다. 아무튼 고생은 하였지만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다시는 오지 않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