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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닦인 고속도로와 창원의 밤
아무 거리낌 없는 여행은 언제라도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의 삶에서 쉽게 여행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모든 걸 잘 마무리 한 뒤에 남은 시간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도 철저한 계획 끝에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런 행운으로 돌아온 여행의 기회를 올해는 뜻하지 않게 자주 대하는 것 같다. 이른 봄에는 12년 동안이나 가보지 못한 구인사엘 다녀왔고, 외삼촌이 계시는 가평꽃동네도 대구 동생의 마음에 의해 어렵잖게 다녀왔다. 그리고 형님을 따라 가긴 했어도 산재전문병원이 있는 인천 중앙병원 재활공학연구소도 다녀왔고, 근육병전문의가 있는 연세대 영동세브란스 병원도 진료목적이 아니라 관광 차원으로 다녀왔다. 그렇게 장거리로 다닐 수 있는 조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데 여태껏 참고 기다려온 여행복(福)이 올해는 몰아서 주어진 모양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영덕의 대게축제도 복사꽃 축제에 앞서 다녀왔고, 청민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 대구도 다녀왔으며 딸내미를 태워 준다는 명목으로 경산에 가서 금춘카페 열성회원인 윤석수씨를 만나기도 했고, 한동안 뜸하던 후포항도 여름 휴가차 여동생을 데리고 함께 다녀올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여행기가 될 터인데 금춘카페를 개설한 이후 회원들의 요구로 만남이 시작될 줄은 정말로 몰랐었고 예상 밖으로 쉽게 이루어졌다. 지금부터 그 행복했던 남쪽 여행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이 여행을 하기위해 미리 예천의 이인구형과 의견 조율이 있었다. 인구형의 단짝 친구인 서울의 경남이형이 함께할 경우에만 성립될 수 있는 시간인 셈이다. 이 조건이 맞을 경우에 함께 갈 사람이 있는지 사전에 의견을 물어 봤지만 가장 쉬울 것 같았던 진균이도 집안일 때문에 합류할 수 없었다. 그래서 2박3일의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안동까지 내려온 경남이형은 인구형과 만났고, 서울서 함께 온 경남이형 일행과 함께 하룻밤을 안동시내서 보내고 11일 11시 무렵 인구형의 차로 경남이형이 정산으로 들어왔다. 지난 5월20일. 금춘가족 만남의날 행사이후엔 처음만나는 3인이었다. 반가웠다. 대략의 여행계획은 창원서 1박하고 2박째는 부산이거나 다시 창원으로 온다거나 포항 쪽일 거라고 잡았다. 그래서 창원서 만날 구인순님이 있는 곳을 인터넷 지도로 찾고, 다음날에 필요한 창원서 부산 다대포로 가는 길 지도를 찾아 인쇄했다. 연일 비가오고 일기예보에도 100밀리 안팍의 비가 올 거라고 예보하기에 운전을 해야 하는 인구형은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난 미룰 수도 없는 이 기회를 그대로 강행하기 위해 기도를 잘 해 놓았으니 우리가 가는 곳은 비가 멎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아내가 대충 차려주는 점심을 먹었다. 그때 아내에게도 이런 기회가 잘 없으니 웬만하면 함께 가자고 졸라보았지만, 이미 일을 맞추어 놓은 상태라 억지로 데려 갈수도 없었고, 아내도 남자들만 셋이서 잘 갔다 오라고 해서 더 이상 종용할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냉커피까지 타주는 걸 마신 다음 여벌 옷가지 등을 챙긴 가방을 싣고 오후 1시 48분에 정산 집에서 출발하였다. 안동까지 가는 길에 조카 기석이를 태워주고 남안동 나들목을 통과하여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동명 휴게소에서 차에 가스를 가득 채우고, 그대로 달려서 대구에서 연결된 구마고속도로로 접어든 다음 현풍휴게소에 가서 물 음료를 마시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는 곧 다시 달려서 칠원, 내서, 서마산을 거쳐 동마산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다음 창원시내로 쭉 나있는 큰 도로를 달려서 구인순씨를 만나기로 한 상남시장까지는 잘 찾아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차에 이상이 생겼다. 시동이 자꾸 꺼지는 거였다. 가속페달에서 발만 떼면 시동이 꺼진다고 인구형은 걱정이 쌓여갔다. 쉐르빌모텔. 그냥 찾아 가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모르는데 인순씨가 상남시장으로 나온다기에 차도 이상이 있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거기서 제법 생활했다는 인순씨도 길을 잘 몰라 몇 번 엇갈린 후에야 만날 수 있었고, 달리 계획을 세울 수도 없어서 일단 인순씨가 머무는 모텔로 갔다. 그리고는 차를 고치는 방법을 찾다가 보험회사와 정비공장, 현대차서비스 등등 통화를 한 후에 인구형과 경남이 형은 차를 몰고 고치러 가고, 나는 또 다른 손님과 함께 인순씨와 인순씨가 동생이라 부르는 분과 함께 만나게 된 인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 고치는데 시간이 걸린다기에 그냥 인순씨가 해 놓은 밥으로 저녁을 먹고 인구형이 빨리 차를 고쳐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9시가 넘어도 오지 않기에 인순씨가 가자는 용지 못으로 따라나섰다. 용지못에 도착하여 인구형께 폰 통화를 하니 주말이라서 차는 못 고치고 다시 모텔로 왔다기에 택시로 용지 못에 오라하여 만났다. 그때가 9시반쯤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용지못에서는 수중 분수레이져 쑈를 보여 주었다. 내생에 직접 그런 쑈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무슨 이야기로 연결된 듯 하였지만 내용보다 춤추는 분수의 물결이 아름답고 화려하여 폰사진을 찍느라 연속된 장면을 놓치기 일쑤였다. 20여분 정도의 쑈였지만 첨단 기술이 어울어져 빚어낸 걸작품이라 여기며 진작에 맛보지 못한 또 다른 예술을 경험하고 우리는 쉐르빌 모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주를 사오고 족발을 시켜 만남의 건배를 들고 술잔을 돌렸는데, 내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도 놓치고 구인순님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본래 대리운전 사업을 위해 창원으로 왔는데,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못하고, 여차하면 모텔영업도 꿈꾸고, 원룸임대사업까지 계획해서 시장조사차 그 모텔에 장기 투숙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사랑도 없는 남편과의 13년간의 별거 끝에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 즈음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10개월 정도의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불같은 사랑을 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그 괴로운 심정을 백세주로 달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 생의 마감까지 생각해 봤다는 인순씨의 마음을 우리들은 모두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조심스럽게 끼어들며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이미 마음의 장벽이 너무 단단히 쌓여 있어서 타인의 조언은 필요 없는 상태였다. 그 괴로움을 직접 당해보지 않은 우리로서는 사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에도 해결책을 말한답시고 그 속을 더욱 불질러 놓는 결례를 하고 말았다. 너무 믿었기에 그런 말도 할 수 있었지만 결국엔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밤을 새우고 있었던 것이다. 당사자도, 듣는 우리도 마음이 착잡하였다. 새벽5시가 되어서야 눈 좀 붙이자고 타일 바닥에 누웠지만 갖고 간 얇은 이불을 깐들 바닥의 냉기는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였고, 끄지 않은 에어컨 바람은 왜 그리 차가운지 내 생활과는 역기능을 하여 누워서는 3시간이지만 불과 1시간도 채 자지를 못하였다.
잠자지 못한 날의 내 건강을 나는 잘 알지만 천리 먼 타향에서 계획된 일정을 탈 없이 수행하자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행 끝에 인구형이나 경남이 형이 행복해져야 하는데, 구인순님도 함께 행복해야 하는데, 그런 아픔이 있는 줄도 모르고 섣불리 내 계획에 맞춘게 모두 내 잘못인양 싶었다. 그러나 저러나 잠 못 잔 것은 참더라도 실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미리 화장실을 점령하고 모텔 샤워기로는 도저히 머리감을 엄두가 나지 않아 세수도 흉내만 냈을 뿐이다. 이미 초등동창 옥이는 만남의 설레임으로 전화를 보내고 있지만, 인순씨와 함께 부산까지 가기로 했던 일정에서 그대로 가게 된다면 난 녹초가 되어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구형은 차가 시원찮아서 초행길인 부산까지 끌고 가기를 꺼려하는 눈치고 인순씨 작은차로 움직이면 옥이를 만난다 해도 한 차에 태워서 다닐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입장에서 인구형이 차를 갖고 가되 부산에서 곧장 안동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이끌어 내어 인순씨도 부산엘 가려면 따로 차를 갖고 가자고 제의를 했더니 그것은 재미없다고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경주서 온 손님도 있었기에 이왕에 함께 움직일 수 없으면 우리는 그만 따로 부산으로 간다고 인사하고, 인순씨는 안동으로 돌아오면 그때 좋은 이야기 하자고 얼버무리고 우리일행은 인구형 차로 그 모텔에서 빠져 나왔다. |
첫댓글 잘 쓴 기행문을 읽고 유식하게 답장을 하고 싶은데...유식하질 못해서 머리가 멍합니다..구인순님 사랑이야기가 걱정이됩니다..내가 싫어 떠나는 사람은 보내주야 그를 사랑한 내사랑이 아름답다고 전해드리고 싶네요..
글 쓰기 중에 제일 쉬운게 기행문인데, 있는 그대로 쓴 얘기가 무어 유식합니까? 옥이가 만남이나 친구들을 쓰는거나 별반 다를바 없는데요. 사랑이야기는 언젠가 집중적 토론을 해야할 일이구요...
주인장님! 상세하고 꼼꼼하게 한줄한줄 쓰신 기행문을 읽으면서 같이 동행한듯. 현장 장면들 하나하나가 눈 앞에 선하네요. 그리고 구인순님의 이야기는 가슴이 찡하네요. 하지만 빨리 힘내시고 계획하시는 꼭 성공하셨어. 희망찬 제2의 인생을 출발 하시길 빕니다. 주인장님. 긴 기행문을 쓰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구요. 덕분에 함께 여행한 기분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리며 즐거운 한주 되세요.^*^
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그렇지요. 사실 꼼꼼하게 쓴 기행문은 지루해서 잘 읽지 않아요. 모두 저를 생각하며 긴글 읽어 주심에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기억려도 참좋습니다 어찌그리 자세히도 펼치십니까 이러다가 혹 이상한 얘기 할까 걱정되는데 .... 저 이상한 짓 안했죠....
미리 겁내는 거좀 봐...ㅎㅎㅎ. 내 얘기는 다 소설이라 여기시구려...
하면 어때요......
사진으로 글로 이렇듯 소상히 알려주시니 가지않아도 갓다온듯하고 듣지않아도 들은듯 귓가에 선~~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구속받지 않고 구속하지 않는것이 사랑이라 생각 봅니다. 그렇지만 우린 늘 구속하려들고 자기 욕심만 챙기려 들지요. 혹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러고 있진 않은지 도리켜 볼일임니다. 분명 그러고 있을겁니다. 사랑이란놈은 고무줄과도 같은것이라 내게로 가까이 하기위해 잡아당기면 고무줄은 늘어나서 자꾸만 멀어지지요. 그렇지만 조금은 느슨하게 놓아주면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 주는 것이 사랑인듯 합니다. 사랑에 아픔은 시간이란 단 하나의 약만이 있지요. 아파해도 힘겨워해도 다 내가 안고가야할 고통입니다.
그날 내가 한 말을 쿨피스가 들은 것처럼 얘기해 놓았네. 우리가 사촌간이어서 그런가? 도저히 당시의 상황으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적어도 2,3년 후에 우리가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세월의 약을 강조했었는데...
산전수전 다 격으신 듯한 님의 이야기에 동감을 합니다.
힘내세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