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꽃이 피면
한 미 경
개망초 꽃을 보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원산지가 국내가 아닌 개망초 꽃처럼 이국적인 모습의 여인… 그 친구와 헤어진 지 십년이 넘었건만 일상에 매달려 전화로 그리움을 달랠 뿐, 지척이 천리라고 버스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어쩌면 전화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보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길섶이든 어디든 지천으로 피어있어 개망초라 명명했음인지 몰라도, 그날 이후 보잘 것 없는 개망초 꽃이 좋아졌다.
그 무렵 나는 가정사로 마음이 몹시 황량했다. 그는 내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가끔씩 친구 차에 나를 태우고 바람 쐬러 가곤 했다.
그 날도 우리는 달빛이 좋아 저수지 둑을 거닐다 하얀 개망초 꽃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달빛에 어려서인지, 벗이 좋아서일까 개망초 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효석의 글 속에 달빛 아래 메밀꽃이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다고 했듯이 무리 져 피어있는 개망초 꽃이 달빛 아래 옥양목 필을 펼쳐 놓은 듯 눈부셨다.
그녀가 내게 다가 온 것은 문학동네에서다. 노래면 노래, 그림이면 그림, 그곳에서 백일장을 비롯해 문학상까지 휩쓴 것도 모자라 어느 결에 권사가 되어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까지 한다니, 안 보아도 건반을 두드리는 아담한 모습이 박꽃처럼 순박해 보이리라.
“언니, 언니” 하는 그가 혈육처럼 정다워, 내가 살던 삼천동 호수 주변이나 어린이 회관 뒷동산을 자주 오르내렸다.
봄날이면 노란 개나리 만개한 왕바위골 산에 올라, 봉의산 아래로 오순도순 모여 있는 마을과 도심을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애잔한 그리움도 실어보내기도 하면서서, 공지천을 지나 문화방송국 언덕길로 올라서 어린이 회관 주변에 놓인 벤치에 앉아 중도를 붉게 물 드리는 황혼을 바라기도 했고, 집 앞 샘터가 떠날 듯이 울어 제키는 개구리 소리 들으며, 여름을 식히고, 코스모스 피는 길 따라 서성이며, 어린이 회관 레스토랑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따끈한 커피 한잔으로 겨울을 녹였다.
그와는 다른 하늘 아래 살아온 지 십 여 년이 지났지만 변치 않는 우리의 우정처럼 개망초 꽃은 어김없이 피었다.
어느 날 찾아온 그녀는 비보를 전한다. 개망초 꽃길을 함께 걷던 그녀의 친구가 저승으로 떠났노라고…
다음 해 그는 내게도 이별의 슬픔을 안겨주고 춘천을 떠났다. 그래도 전화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서 위안을 삼았는데 전화마저 불통이니 몹시 외로웠다.
부재중인 전화를 몇 번씩 돌리다 그녀가 그의 친구처럼 잘 못된 게 아닌가 라는 불길함까지 들던 차에 꿈길처럼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너 살아있었어? 살아 있어서 고마워.” 라고 반색을 하며 덥석 안자, 쓸개를 떼어내고 나니 언니 전화번호가 생각 안 났노라며 “언니, 나 쓸개 없는 여자야.” 하면서 웃는다.
그렇게 아픈데도 몰랐던 게 미안했다. 나는 버스 종점까지 따라가며 당부했다. 이제부터는 어디 있든지 안부는 전하며 살자고.
그녀가 타고 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불가에서는 전생에서 500회를 만나야 이승에서 옷깃을 스칠 정도의 인연이라는데 그게 참이라면 그와의 인연은 전생에서 어떤 관계였을까 라고.
일상을 스쳐 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는 만나면 피곤한 사람과 만나면 유쾌해지는 사람이 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비포장 길도 되고 고속도로도 될 수 있다고 본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듯이 친구란 인생길에 외로운 갈증을 씻어주는 청량음료며 삶의 의욕을 돋구어주는 윤활유며 인생길에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토닥거리며 다투다가도 얼마 후면 풀려지는 형제와 달리, 친구란 사소한 일로 틈이 생기면 회복되기 어려웠다.
얼마 전 이십 년이 넘는 우정이 주도권 다툼을 하는 문학동네에서 무너지던, 그 일 이후 꼭 잠근 외투에 단추 몇 개 떨어진 듯 허전하여 주변 사람에게 칭찬도 하고 싱거운 소리도 해봤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고 돌아서면 더욱 외로워질 뿐 긴 세월 속에 쌓아올린 우정이 무너진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순수함을 읽고 자리다툼을 한다는 게 나를 더 괴롭혔다.
그럴 때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같은 추억 속을 헤메며 속마음 펼쳐놓고 뒤적이며 즐거워하고 다시 수집한 이야기를 둘만의 사물주머니에 채우며 보석처럼 꽁꽁 가슴에 간직하노라면 통화료 많이 나온다고 하는 그에게 나는 차비보다 적다고 하고 그래서 또 한 번 웃는다.
지금은 비록 내 옆에 없어도 마음이 통하면 멀리 있어도 옆에 잇는 듯 숨결을 느낀다. 객지 벗 십년이라고 세대 차야 있어도 그는 내 삶의 뜨락에 피어있는 만리 향 같은 친구였다. 만 리까지 향기가 날아간다는 만리 향 꽃처럼 그는 멀리 있어도 나를 즐겁게 하는 소중하고 귀한 벗이었다.
아무 때든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 찾아가도 반기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인생길은 외롭지 않으리라. 황혼이 드리워지는 내 뜰에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벗이 있어 내 인생길이 그리 삭막하지 않았구나 싶으니, 내 인생 사의 한 부분은 성공한 게 아닐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