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동지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날은 음의 기운이 강하다고 하여, 양의 색깔인 붉은 팥으로 죽울 쑤어 집 주위에 뿌리고, 먹었지요. 물론 팥죽은 이외에도 이사를 하거나, 새집을 짓고 집들이 할 때도 쑤어 먹었습니다.
제가 살던 시골에 서양식 집이 처음 들어선 것은 7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직업 군인으로 24년을 봉직하시다가 제대하시고, 작은 부인을 대동하고 마을에 들이닥친 집안의 당숙은 곧장 집을 짓고, 막 전기가 들어온 마을에 TV를 사다놓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의 혼을 다 빼놨지요.
저녁밥 먹고 동네 마실에 가 고구마 쪄서 푸근히 나누던 대화도, 그냥 무료하게 이야기하느니 짚푸라기 물에 추겨서 새끼를 꼬던 노릇도 TV하나 들어오니 사라지더군요. 논 밭의 대화도 모두 TV 이야기뿐이니 뭐 재미가 없지요. 수백년 동안 내려오던 마을의 문화를 깡그리 그 TV 한대가 깨버리더라구요.
이야기가 옆으로 흘렀는데, 새집을 지어놓고 외장을 깔끔하게 페인트칠 했는데, 그 위에 팥죽을 뿌려대니, 그 당숙 걸레 들고 닦으며 다니셨지요. 24년 간의 찌든 군사문화가......
팥죽은 양기 보양의 음식입니다. 아들 낳았다고 임줄에 꽂는 붉은 고추처럼, 태양을 닮은 음식!
올해는 애동지랍니다. 애동지는 음력 11월 10일에 못미쳐 오는 동지를 말하지요. 그러면 농사철이 빨라지고, 빨리 서두르니 풍년이 들지요. 내년을 운수 대통하시려면 팥죽을 꼭 드셔야 합니다. 애동지 팥죽을...... 참, 늦동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음력 11월 20일 지나서 동지가 오는 경우입니다.
우리 문화에 관해서 알아야 월드컵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도 잘 차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