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보는 방법
최근 100년여 동안 빨리빨리를 외치며 우리들은 정신없이 서구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반대로 서구에서는 물질문명과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동양의 선불교가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고, 인테리어까지도 「Zen(禪)」바람이 불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동양고전인 ꡔ주역ꡕ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어 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눈을 돌리게 했는지,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우리들에게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선(禪)불교가 수행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각성이라는 점으로 특징지어 진다면, 족보는 관계항 속에서의 자아의 발견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혈통과 세대로 이어지는 시공간적 관계항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ꡔ논어(論語)ꡕ 학이편(學而篇)에 「유자(有子)가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됨됨이가 효성스럽고 공손하면서도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적고,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어지러움을 일으키길 좋아하는 자가 있지 아니하다.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기나니 효제(孝弟)라고 하는 것은 인(仁)을 하는 근본일지니라.」고 하고 있다. 부모에게 효성스러운 사람이라야 나라에 충(忠)을 할 수 있고, 형제간에 우애있는 사람이라야 마땅히 웃어른을 공경할 수 있는 것이다. 대개 공자의 가르침에 평생 동안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서(恕)」가 있다 하였다. 가까운 것을 미루어 먼 것을 알고, 보이는 것을 미루어 보이지 않는 것을 짐작하는 것이니, 「其所不欲 勿施於人」이라, 자신이 하고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논어 전반에 나타난 공자의 사상이 이러한데, 대학에 있어서도 三綱領(明明德, 新民, 止於至善)과 8條目(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관계가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혹 족보나 종친회에 대하여 급변하는 정보화시대에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현세에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고 일에는 좋고 나쁜 것이 있듯이 어느 한 면만을 들어 그 전체를 미화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매도하는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가령 위대한 문화유산인 ꡔ조선왕조실록ꡕ이 신분차별과 남성위주의 가부장제 등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여 분서(焚書)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 마음과 몸의 관계에서 보면, 마음이 몸을 주재하게 하는 자도 있고 몸으로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이도 있다.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고달픈 세상살이에 마음먹은 대로 살기 쉽지 않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대개 처음에는 시간을 정해 자율적 조절을 하지만 어느새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지고 만다. 도(道)는 平常日用之間에 있다고 했던가.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고 똑똑한 자는 넘어서는 것이니, 중용의 길은 멀고 험하다. 대부분의 경우에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의지가 약해질 때는 간혹 주변의 규율에 통제를 받는 것도 큰 잘못은 아니다. 세상살이에 있어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주변에는 친지들이 없는 곳이라고 해서 남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몸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종친들의 존재를 느낀다면 어디고 우리 종친들이 보고 있으니 몸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역사의 목적은 대체로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는 법칙성의 발견이며, 둘째는 포폄의 기능이다. 법칙성의 발견이란 우주와 만사의 움직임을 미리 알아서 자신의 안녕을 도모하고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포폄이 기능이란 역사 속에서 훌륭한 인물을 찾아 거울로 삼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알아 경계로 삼는 것을 말한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나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 이런 것들이다. 가족과 가문의 역사인 족보를 통해서 이런 의문에 대한 일단의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려대장경 그 자체가 외적을 물리칠 수 없었듯이, 족보 그 자체만으로는 이런 것을 얻을 수 없다. 후대에 기리 남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족보가 불필요하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문화인 이상 좋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족보나 고려대장경은 그런 노력의 소산일 뿐이다. 그것은 다른 어느 누가 아닌 바로 우리의 몫인 것이다.
☞뿌리를 찾는 방법
1)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문의 웃어른들께 여쭤보거나 직접 족보를 뒤져보는 방법이 있다.
2) 가능한 오랜 조상들의 항렬자를 찾아내어 각 파별 항렬자와 비교해 보는 방법이 있다. 항렬자를 모를 경우에는 동사무소에 가서 제적등본을 떼면 고조부까지의 제적자들에 대한 기록을 얻을 수 있다.
3)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조상께서 사시던 곳에 있는 종친회를 찾아가 문의하든가 인터넷에 문의하는 방법이 있다. 해당지역 분들이나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 뿌리를 확인해줄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불가능하다면 모든 대동보를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다. 다음은 이를 순서도로 표현해 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