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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문내용
-방거사 일가족의 깨달음
상당하시어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법상을 한 번 치신 후 이르시기를,
산승이 방금 대중 전에 이 주장자를 들어보였습니다.
이 주장자를 들기 전에 진리를 알아가도 거리가 먼데, 들어서 알아가지고는 더 십만 팔천 리다, 거리가 멀다 그 말입니다.
이 주장자를 들기 전에 진리를 알아가더라 해도
모든 대중은 동쪽으로 향하는데 산승은 서로 향한다.
이 말의 낙처를 여러분 집에 가시거든 마음에 잘 새겨보십시오. "어째서 주장자를 들기 전에 문득 알더라 해도 대중은 동으로 향하고 산승은 서쪽으로 향한다 하는고?"
홍하(紅霞)는 천벽해(穿碧海)하고, 백일(白日)은 요수미(繞須彌)라.
붉은 안개는 푸른 바다를 끼고 밝은 해는 수미산을 돈다.
우리가 각자 화두를 아주 간절히 들어서 일념삼매가 지속이 되어야 됩니다. 일념이 쭉 지속되는 과정이 오면 모든 마음 가운데 보고 듣고 하는 분별식이 싹 없어져버립니다. 마비가 되어 바위와 같이 돼버립니다. 바위는 감각이 없거든요. 모든 감각이 다 끊어지고 오직 간절한 화두가 밤낮으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흘러가다가 나중에는 모든 몸뚱이의 의식 분별이 다 없어지고 간절한 화두만 흘러가고 흘러가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날 때 바른 진리의 눈이 열립니다.
그러면 천사람 만사람이 화두를 한다고 흉내는 많이 내는데 간절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안 챙기기 때문에 일념이 지속이 안 됩니다. '일념이 지속'이라는 것은 비유하면, 흐르는 시냇물은 밤낮으로 한 모양으로 쭉 흐르듯이 이렇게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아주 간절한 화두가 흘러가면 바위덩어리가 돼버립니다. 모든 분별이 다 없어진다. 이러한 일념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지속되는 과정이 오면 도가 열립니다. 자기의 참모습을 본다 그 말입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땅기운, 물기운, 불기운, 바람기운 이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때문에 이것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지 못하면 본고향으로 다 돌아가 버리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부처님 법은 ‘참나’를 아는 여기에 모든 진리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참나’를 아는 이는 억만 년이 다하도록-자기의 본래신이 있습니다. 이 몸뚱이는 허망해서 다 없어지지만 본래의 몸은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 그러한 본래신이 있습니다. 그 본래신을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참나를 알 때 본래신을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뜻은,
“인인개개에 나고 죽음이 없는 본래의 몸[本來身]이 있으니, 너희가 생활 속에 수행을 잘 해서 그것을 바로 볼 줄 알면 너와 내가 동등한 지위에 있다.”
했습니다.
그러니 본래 나고 죽고 무너짐이 없는 이 본래신을 찾는 이것이 참선수행입니다.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참나의 본래신을 알면 거기에 모든 진리가 다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사업은 생활을 하기 위해 생각하지마는- 쓸데없는 남의 시비장단에 시간을 뺏기지 마시고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 간절히 쭉 밤낮으로 흐르는 물과 같이 화두가 흘러가는 여기에, 수행이 자리를 잡으면 편안한 마음이 항시 흘러갑니다. 그러면 마음의 근심·걱정 오만 가지 분별심이 다 없어지고 편안한 낙(樂)이 흘러가는 고로 건강도 좋아지고 장수도 누리고, 또 이 진리에 계합하는 인연이 곧 닥쳐오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수행법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여건을 금생에 만났다는 것은 다행 중에 아주 다행입니다.
이러한 참선수행을 모르면 쓸데없는 허송세월에 어느새 백발이 되는지 모르고 세월이 다 갑니다. 이 부처님 법을 만나서 바른 법문 듣고 생활 속에 바른 참나를 찾는 이 선수행에 꾸준히 맛을 들이면 이 이상 더 값진 여생을 보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라는 것은, 아주 좋은 조건에서 기도를 하면 부처님 가피를 십분 발휘합니다. 해운정사 도량은 신라 고찰을 능가하는 대명당입니다.
신라 천년 고찰을 가 봐도 이러한 웅장한 법당, 삼층 관음보궁, 만불 지장보살을 모신 이렇게 웅장한 법당 장엄을 해 놓은 데는 여기뿐입니다.
이런 대명당이 산승의 눈에 띄어서 절을 잡아놓으니 이 도량이 근 3천평 확장이 되었습니다. 또 구름다리 장엄을 해 놓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 절터는 앞으로 해운대 일등 관광지가 되어서 천년만년 흘러갈 것입니다.
개개인이 이러한 명당을 만나서 부처님의 큰 법력을 받기 위해 지극정성 기도를 하면 다 이루어집니다.
풍수지리를 보더라 해도,
뒷산이 잘 내려오고 좌우가 아주 조화를 이루고 전면에 무변대해가 일자로 놓인 여기는 만 사람의 소원을 다 성취하고 인재가 난다.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마음에 간절히 우러나는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지극정성 절을 하면서 소원을 발원을 하면 다 이루어집니다.
세상 소원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님 견성 도(道)도 다 성취가 됩니다. 이 부처님 법은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마음의 갈등을 다 놓아버리고 지극정성 기도하고 지극정성 참선하는 여기에 지혜의 눈이 열리고 소원이 다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약사재일 3월 8일 날은 금천사 대방생법회를 하고 또 큰 종이 완성이 되어서 그날 타종에다가 천불 점안식을 합니다. 그때 시간이 있는 분은 같이 참여를 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마조 도인하면 84인의 도인 제자를 두었는데, 그 위대한 소문을 듣고 아주 신심 있는 방거사란 이가 ‘위대한 마조 도인을 친견하고 나도 도인이 되어야겠다.’ 해서 수백 리를 걸어가서 인사를 올리고 물었습니다.
“만 가지 진리의 법으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한 자, 이 누구입니까?”
천상천하에 이 부처님의 고준한 진리는 가장 높아 더 높음이 없는데, ‘만 가지의 그 고준한 진리의 법으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한 자, 이 누구입니까?’ 하고 아주 고준한 일문을 던지니 마조 도인께서,
“네가 서강수(西江水:중국의 강 이름)의 물을 네 입으로 마셔 다해올 것 같으면 그대를 향해 일러주리라.”
하니 방거사는 이 말 한마디에 진리의 눈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찌 된 것이냐?
과거 전생에 많은 선지식 스님네를 가까이 모시고 법문을 듣고 해서 수행을 잘 닦고 닦은 그러한 인연공덕으로써 금생에 고준한 법문 한마디 토해내는 거기서 눈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금생에 아주 열심히 참선하고 참선해서, 금생에 설사 도를 못 이룬다 해도 다음 생에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또 사람의 몸[人身]을 받을 것 같으면 전생에 닦고 지은 인연으로써 좋은 여건에 태어나고, 또 이렇게 불법을 알고자 하는 신심을 돈발해서 밝은 스승을 만나 법문 듣는 그러한 인연이 도래하면 방거사와 같이 밝은 진리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의 법은 사람 사람의 심성리(心性裏)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으로 더불어 모든 중생들이 다 똑같이 갖추어져 있건마는 닦지 못한 고로 그것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닦아서 지혜의 눈이 열리면 억만 년이 다하도록 수용을 할건대 밝은 지혜를 닦는 일에 등한히 하고 중생의 놀음놀이 습기에만 젖어왔기 때문에 항시 진리와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신심을 발해가지고 법문 듣기를 좋아하고 생활 속에 참나를 밝히는 참선명상에 몰두할 것 같으면, 일구월장으로 악업은 멀어져 버리고 지혜가 무럭무럭 자라게 되면 세상 출세는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내 것입니다. 만 사람에게 지혜가 앞서는 고로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지혜는 만복(萬福)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만 닦아서 만 사람에 앞서 놓으면 대통령, 온갖 높은 자리는 생각만 내면 내 것이다.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도를 알고 보면 세상의 높은 자리는 콧구멍의 때와 같다. 그것이 값어치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도가 얼마나 고준해야 그것을 콧구멍의 때와 같다고 하느냐, 우리가 생각해 볼 점입니다.
방거사가 마조 스님 언하(言下)에 도가 열려가지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무르익어졌는데, 하루는 마조 도인을 친견하러 갔습니다. 가서 인사를 올리고,
“스승이시여! 본래의 몸을 매(昧:어두워 잃어버림)하지 않고 눈을 높이 뜨소서.”
그 위대한 마조 도인에게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러니 마조 도인이 눈을 크게 떠서 아래로 내려다보거든요. 아래로 내려다보니 방거사가 하는 말이,
“줄 없는 거문고를 대선사님이 튕기니 그 묘함을 얻었습니다.”
그 묘한 소리가 염출(捻出)이 되어 천지를 진동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마조 도인이 눈을 또 크게 떠가지고 위를 쳐다보니까 방거사가 큰 절을 한 자리 했어요.
큰 절을 나붓이 마조 도인을 보고 한 자리 하니까 마조 도인이 일어나서 당신 조실방으로 가 버리시거든. 조실방으로 가니 방거사가 뒤를 따라가서 하는 말이,
“대선사님, 오늘 재주를 피우다가 졸함을 이루었습니다. 옹졸함을 이루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이 방거사는 거사 중에 아주 훌륭한 진리의 눈을 갖춘 분입니다. 그러니
이 부처님 법은 승속이 따로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른 법문 듣고 바르게 참선해서 바른 진리의 눈이 열리면 너도 도인이요 나도 부처가 되는 것이 이 부처님의 진리의 법입니다.
이러한 좋은 법을 안 믿고 어린 아이들 종교를 믿어서 되겠느냐 그 말입니. 그래서 한국 사람은 한편으로는 영리하면서 한편으로는 우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도 방거사가 이렇게 멋진 법을 깨달아 멋지게 쓰고 해서, 내가 그 방거사가 가족들과 참선공부한 장소를 5년 전에 한번 답사를 했습니다.
하루는 방거사가 방에서 앉아서 정진하고 있다가 딸이 들어오니,
“오늘 정오에 이 몸뚱이를 벗고 열반에 들리니 정오가 되었는지 네가 한번 밖에 가서 해를 보고 오너라.”
딸을 보고 그러거든요.
그러니 딸이 밖에 갔다 들어오더니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일식을 해서 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나가서 한번 보지.”
방거사가 밖에 갔다 들어오는 사이에 아버지 좌복 위에 가부좌를 해가지고 애착의 이 몸을 싹 벗어버렸거든요. 정말 장합니다. 이것은.
그러니 방거사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요 물건이 나를 속였구나. 그러나 장하다, 내 딸이여!”
했습니다. 밖에 갔다 들어오는 사이에 애착의 이 몸주머니를 앉아서 휘딱 벗어버리니, 정말 장하고 장한 일입니다.
사람 사람이 죽을 때 한번 보세요. 이 목숨이 떨어질 때 아주 온갖 고통을 당하고, 그 죽음에 들락날락하는 그것은 눈뜨고 못 봅니다.
그러면 이렇게 자재하게 하는 저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이 정안(正眼)이 열림으로써 정진 힘으로 자재하게 애착의 주머니를 벗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화장하기 위해서 나는 천성 일주일 후에 가야되겠다.”
그리고는 딸 화장을 다 하고는 일생 도반 보살이 있건마는 간다온다 소리 안 하고 딱 앉아서 가버렸거든요.
이웃집 노보살이 와서 노크를 해도 인기척이 없어 열어보니 앉아서 딱 가버렸거든요. 그러니 밭을 매고 있는 방거사 보살에게 가서,
“처사님이 열반에 드신 것 같다.”
하니 한 손으로는 호미를 걸고 한 손으로는 풀을 뽑는 그 자세에서 벗어버리거든요.
부처님 이후로 온 가족이 도인이 되고 온 가족이 이렇게 멋지게 열반에 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방거사 일가족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높이 평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도 갈 때 장하게 가서 내가 5년 전에 중국에 정진한 굴이 있다고 해서 가 보니까, 그 산이 큰 들에 함지 덮어놓은 듯이 생겼는데, 다 밭을 일궈서 보리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 굴 속을 가보니, 입구에 굴이 있는데, 굴이 아마 이 법당의 4분의 1쯤 될 겁니다. 거기다 방거사 사진하고 부처님을 모셔놓고 보살들 서너 분이 항시 기거를 하고 있었어요.
돌아보니 굴을 있는 그 산이 백토산이라, 백토가 되어서 비가 아무리 와도 굴에 물방울이 없어요. 그러니 습기가 없으니까 그 안에서 얼마든지 온 가족이 참선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어요. 거기서 공부를 잘 해가지고 유사 이래 한가족이 도를 깨닫고 유사 이래 열반의 멋진 모습을 보인 것은 방거사 일가족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선을 잘 하면 다 그러한 저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 꾸준히 참선을 잘 해서 이렇게 방거사 일가족과 같이 자유자재한 분(分)을 가지면 천상 인간에 비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대중께서는 방거사와 마조 도인의 주고받는 그 살림살이를 아시겠습니까?
일등몰현상(一等沒絃上)에, 일등의 줄 없는 거문고 위에
한 사람은 줄 없는 거문고를 멋지게 튕기고,
한 사람은 창(唱)을 아주 멋지게 주고받고 하니,
천지가 진동하고 초목이 춤을 춘다. 그렇게 천지와 초목이 감동을 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경지를 수용하는 이는 어느 곳에서 머무느냐? 필경에 이 도를 깨달아가지고 모든 불조들이 어느 곳에 머무느냐 그 말입니다.
부수상장귀고국(扶手相掌歸古國)하니
백화쟁발자고제(百花爭發자고啼)로다.
깨달은 사람들이 손을 서로 잡고 마음의 고국에 돌아가니
백가지 꽃은 아름답게 피고 있는데 그 가운데 또한 자고새가 멋진 소리를 내면서 울고 있더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하시다.
불기2550(2006)년 음력 3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