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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상황으로 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大義
1. 들어가는 말
지난 세기에 게오르규 신부와 토인비를 비롯한 다수의 세계 석학들은 ‘홍익인간’ 사상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또는 ‘될 것’이라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인류사회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에 UN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발표했다. 서구의 선진국을 뒤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민족저력을 가진 나라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난 세기에 우리가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과 한류에 이어 최근 코로나19 대응 현장을 본 많은 세계 국가들이 우리나라와 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석학들의 말처럼 민족재도약의 호기가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민족저력의 뿌리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이다.
그런데, 2020년 새로 나온 우리나라의 국사교과서에서는 ‘홍익인간 할만하다’는 내용은 없어지고, 일본인의 잘못 해석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하다’는 내용만 싣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 번역본 모든 책이나 사전, 공문서 등에서도 똑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이 1910년대 일본인의 잘못된 해석을 지금도 따르고 있는 한심한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기본법 등에 규정된 홍익인간이라는 용어가 너무 추상적이니 그 용어 자체를 없애자’는 공무원, 학자, 국회의원들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홍익인간의 의미도 바로잡지 못하다보니 지난 세기 세계 석학들이 전망한 ‘with 코로나 시대’의 인류사회를 어떻게 주도해나갈 수 있는지 그 구체적 방안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민족재도약의 호기를 맞은 겨레의 미래와 관련하여 매우 중대한 시점이다. 그래서 지금 여러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새 시대 새 역사를 외치지만, 정작 그런 새 시대, 새 역사에 적용되어야 할 새로운 정신과 지혜를 내세우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민족재도약이 어렵다. 잘못된 의미로 해석된 홍익인간 사상은 세계 지도이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弘益人間’이라는 말의 의미부터 바로 잡아야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대책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런 민족저력을 되살리는 데 기여하고자 사)한배달에서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유라시안네트워크, 대한사랑 등과 공동으로 오늘 이렇게 ‘홍익인간의 바른 의미 찾기 학술발표회’를 하게 된 것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기록된 우리 겨레의 시원(始原) 역사인 단군사화(檀君史話)에서 환인이 환웅을 내려 보낼 곳을 찾기 위해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면서 ‘홍익인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삼위태백은 지형이다.
지금까지 그 내용을 잘못 해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이 ‘지형을 보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형을 보면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왜, 지형을 보고 홍익인간 할 만하다고 했을까? 그 당시의 식량 부족에 따른 부족 사이의 갈등 상황을 고려하면 바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다. 이런 기본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일연이 쓴 ‘弘益人間’이라는 한자 해석에만 매달리면 바른 답이 나올 수 없다. 당시의 상황과 지형을 보고 한 말이라는 것과 연결시켜 홍익인간의 의미를 추적해보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가 아니라 ‘그 지형이 비옥하므로 식량을 많이 생산’하여 부족 간 식량 갈등을 없애고 함께 어우러져 잘 사는 ‘우리’가 되게 할 만하다.”는 정도의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민족정신이 되어 우리 겨레의 역사 전개와 고유문화를 형성해 왔으므로 홍익인간의 바른 의미를 찾으려면 가장 먼저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창세신화와 천부경 등 다른 민족정신 자료, 역사 속의 각종 제도와 문화 등과 연결되는 공통점을 찾아내어야 하며, 한자의 뜻(字義)도 일본 자전이 아니라 우리 자전(字典)에 맞춰 해석해야 한다.
오늘 학술발표회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하려고 노력해온 여러 분들이 분야별로 발표를 할 것이다. 나는 그 첫 번째로 당시의 상황에 따른 홍익인간의 의미를 추적한다.
2. 세계 석학들이 본 21세기 인류사회와 홍익인간
현 인류사회는 1%:99%라는 극단적 양극화 현상에 직면하여 세계 여러 나라와 함께 미국까지 정부 부도를 우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라는 책에서는 “빈부 격차가 극대화 되면 하나의 위대한 문명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 근본 원인을 모르다보니 근원적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세기에 많은 석학들은 ‘미래 인류사회는 경쟁 아닌 하나 됨의 사회가 도래한다. 그 사회의 지도이념은 홍익인간 사상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인류사회의 발전에 대한 우리 겨레의 기여를 예언 내지 전망한 것이다. 간단하게 살펴본다.
1) 토인비는 1973년 1월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1세기 세계가 하나 되어 돌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 중심은 동북아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핵심사상은 한국의 홍익인간 사상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으며, 그 후 임덕규 전 의원과의 만남에서는 "한국의 효 사상은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상이다. 중국에는 개념으로만 남아있는데, 한국은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함으로써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사회들을 견고하게 유지하여, 사회를 안정되게 유지했다. 따라서 문명사회의 기준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인터넷 서핑, 임덕규 전의원>
2)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신부는 1977 방한 시 및 1984년에 나온 『한국찬가』라는 책에서“홍익인간 이념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법률로서 21세기 인류 구원 사상이다. 물질문명이 한계에 달하는 절망의 시간이 24시라면, 25시는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시간이며, 그때 그 주역은 중국이 아닌 한국이 될 것이다.”고 했으며, 1992년 사망 직전에는 “한국인들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잃어버린 영혼이니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에 밝은 빛을 던지는 영원한 미소, 인류의 희망”이라고 했다.
3) 20세기 전반기의 유명한 예언가 로돌프 슈타이너는 우리 민족을 “유대민족에 이어 인류사회의 새 삶의 양식을 결정할 원형을 제시하는 성배의 민족”이라고 말했다.<인터넷 서핑>
4) 오랫동안 주한 미상공회의소장을 지냈으며,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제프리 존스는 2000년에 펴낸 『나는 한국이 두렵다』는 책에서 “2025년 미국을 위협할 유일한 국가는 한국이다. 그 이유는 IT산업 최강국이 될 것이기 때문인데, 한국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 삭막한 사이버 세계에 인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정(人情)’은 너와 나를 우리로 만들어주는 어울림 에너지, 즉 ‘풀’이다.
5) 러시아 사학자 U.M.푸틴은 “동북아 고대사에서 단군 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만큼 단군조선은 아시아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했다.<인터넷 서핑>
6) 이홍범은 그의 책 『홍익민주주의』에서 “극단적 양극화는 ‘우주의 본성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몰라서 생긴 현상이다. ‘우주의 본성이 하나라는 홍익인간 이념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7) 탄허 스님도 “21세기에 한국에서 세계 인류를 구할 정신문명이 일어나 꽃을 피울 것”이라고 전망했다.<인터넷 서핑>
여기서 석학들이 말하는 새 문명 즉, 새 삶의 양식이란 바로 그들이 내세우면서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경쟁과 투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닌 ‘세계가 하나 되어 돌아가는’ 문명이며, 그 시대를 주도해나갈 사상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지적들이다.
그런데, ‘弘益人間’을 현재처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추상적으로 해석해서는 그 속에서 미래 인류사회를 구원할 구체적인 대책 방안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바른 의미를 찾아내어야 인류사회 구원할 새로운 문명의 주도 이념이 되어 우리 민족재도약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오늘 우리는 그것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3. ‘홍익인간(弘益人間)’ 의미의 혼란 실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새로운 해석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홍익인간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혼란 실태를 알아야 한다. 지금 초‧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 중 한 개 교과서를 제외한 전 교과서에서 작년 교과서까지는 있었던 ‘홍익인간’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식민사학 교재를 따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일본인의 잘못된 해석 내용만 기술하고 있다. 사전이나 많은 학자들의 『삼국유사』 해석 책자 등에서도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왜곡하는 반민족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상당히 많은 학자들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은 원전(元典)의 의미에 맞지 않는 잘못된 해석이므로 당시의 상황과 ‘우리나라와 중국 자전(字典)의 한자 자의(字義)를 확인하여 재해석해야 한다’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1) 현 해석과 유사한 해석들
① 안경전·임승국 :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로다.”<환단고기 주해>
② 단학회 : “널리 인간을 보람 있게 할 만하였다.”<환단고기 주해>
③ 이근창 : “사람을 크게 유익하게 한다.”
2) 현재와 다른 해석들
① 조소앙, 안재홍, 정영훈 : ‘대중공생(大衆共生) 만민공동(萬民共同)의 균등 사회 이상’이다.
② 김영돈 : “‘새로운 신천지에서는 부족 간에 싸움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라’는 환인의 당부로서, ‘사람 사이를 크게 도와 다투지 말고 서로 화목하게 어울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평등, 자유, 평화의 이념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것은 일본인이 일본 사전의 한자 뜻에 따라 잘못 해석한 것이다.”
③ 이홍범 : “‘사람과 자연을 포함하는 우주는 하나’라는 것이 홍익인간 이념이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극단적 양극화가 생겼고 그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④ 김상일 : “너와 나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함께 가야 한다’는 원리로, ‘益’자를 유익하다고 해석을 하더라도 ‘弘益’은 너나 나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뜻한다. 인간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 사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한배달 시민강좌에서)
⑤ 최민홍 : “사익(私益), 공익(公益)과 비교하여 홍익(弘益)은 ‘우리의 이익’을 말한다.”
⑥ 박상림 : “홍익인간은 서로 다툼이 없는 어울림을 통해 모두 하나 되는 이념으로, 바로 화백제도가 그 실천’이다. ‘인간’은 인간 사회를 뜻한다.”
⑦ 윤여덕 : “홍익인간 사상은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가 하나 되어 공생‧공영(共生共榮)하는 공동체 윤리다.”
이렇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겨레의 민족정신이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해석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크게 나누어보면 ‘弘益人間’의 한자 의미를 클 弘, 더할 益 또는 도울 益으로 보는 사람과 ‘하나로의 어울림’을 중시하는 해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는 세계 석학들의 “미래 인류사회가 ‘하나로의 어울림’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 양극화를 맞은 21세기 인류사회의 구원 사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도 연결되는 해석이다.
3) 역사기록과 무관한 ‘단군의 건국이념’이라는 오류
2019년까지의 모든 국사교과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책자에서는 홍익인간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단군 조선의 건국이념’이라고 설명했고, 다수의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으며, 많은 공적 서류에서도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의 단군사화에서는 홍익인간과 단군이 연결되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 환인이 혼자 생각한 내용으로서, 환웅에게 말했을 수 있고, 환웅이 단군에게 얘기했을 수 있으며, ‘단군이 신시의 옛 법규를 이어받았다’는 기록도 있지만, 원전(原典)인 ‘단군사화’에는 그런 기록은 없고, 환인이 환웅을 내려 보낼 곳을 찾는 과정에서 고려한 개천이념이므로 환웅의 건국이념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기록에 어우러지는 해석일 것이다.
4) 한문 원리에 맞지 않는 해석
한문에서는 ‘사람’을 지칭할 때는 대부분 ‘人’이라고만 하지 ‘人間’이라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삼위태백(三危太伯)과 태백산정(太伯山頂)의 ‘백(伯)’자는 백두산(白頭山)의 ‘백(白)’자와 다르다. 그런데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삼위산과 태백산(白頭山)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대해 김종서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을 ‘삼면이 험하고 큰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원’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그곳이 현 요하문명이 있는 적봉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5) 중국 기록에 나타난 우리 겨레의 홍익인간 실천 행동
① 『설문해자』 : 오직 동이(東夷)만이 위대함을 따르는 대인들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고(仁), 어질면 장수하므로 군자가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군자는 동이인들과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동이인들과 같은 행동을 해야 복을 받는다.
② 『산해경』 : 군자국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여 서로 다투지 않는다(君子國…其人好讓不爭)
③ 『신이경』 : 서로 범하지 않고 서로 기리며 헐뜯지 않고 우환이 있는 사람을 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준다(不相犯 相譽而 不相毁 見人有患投死救之).
④ 『후한서』 : “동이인(東夷人)들은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는 것(仁而好生)이 마치 만물이 대지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이 천성이 훌륭하여 도덕이 펼쳐지기 쉬워 급기야는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동이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
이런 내용을 전체적으로 종합해보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상황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잘못된 해석을 추종하다 보니 ‘인간’이라는 단어를 빼고 ‘홍익사상’, ‘홍익사회’라는 엉터리 말을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잘못을 재생산하고 있는 모습이니 말을 섞기도 창피한 우스운 모습이다.
이래서는 홍익인간이 민족재도약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홍익인간 이념을 미래 인류 구원사상으로 발전시켜 민족재도약을 성취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홍익인간의 뜻부터 바르게 해석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당시의 상황과 기록에 맞추어 바른 의미를 찾아내고, 우리의 민족정신, 전통 문화, 우리 한자 자전(字典) 등에서 옳은 해석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발표하게 되었다.
4. 당시의 상황에 따른 홍익인간의 의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弘益人間’이라는 말이 나온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 기록상의 내용과 맞아야 한다. 그리고 민족정신, 역사 속의 실천 사례, 고유문화, 우리나라 자전(字典)의 한자 자의(字義) 등과도 연결되어야 한다.
오늘 네 분들이 이런 내용의 각각 다른 주제를 가지고 홍익인간의 바른 뜻에 대한 발표를 하므로 나는 당시의 상황에 맞는 의미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오늘 발표에서 빠진 창세신화 등 일부만 보충 설명을 한다.
1) 당시의 시대적 상황
지질학적으로 5차 뷔름 빙하기가 12,000년쯤 전에 끝나고,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면서 농경을 시작했다. 그 후 지구 기온이 점점 올라가 7,000년 전에 최고로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지기 시작하여 3,000년 쯤 전에 지금과 같은 기온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6,000년 전쯤인 당시는 인류가 농경을 하면서 정착생활을 시작한 지 4,000~6000년 정도 지난 때로서 기온 상승에 따라 인구는 크게 증가했으나 주거지의 농지는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식량생산이 인구 증가에 따르지 못해 부족 간에 식량 갈등이 자주 일어나던 때였다. 그래서 식량 부족으로 인한 부족 간의 다툼을 해소하기 위해 식량 생산을 많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당시의 상황이 아래와 같이 묘사되어 있다.
‘(조대기에서 말한다)때에 사람은 많고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서자부(庶子部)에 환웅이라는 대인(大人)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을 실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 위에 하나의 광명세계를 열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시점에 환웅이 인간세상을 탐구했다는 것은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며, 환국의 제석이 이를 알고 개척할 땅을 찾기 위해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식량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을 만한 넓은 옥토 지역으로 보였으므로 이곳이 ‘홍익인간 할 만 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환웅이 내려왔다는 백두산의 산꼭대기(山頂)를 보고 식량생산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을 수는 없다. 바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그리하여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같이 가는 3,000무리 사람들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하여 그곳으로 보낸 것이다. 당시에 3,000무리라면 매우 많은 숫자다. 따라서 전체 국가의 식량부족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사람을 이동시켰다고 볼 수 있다.
마침 내가 2016년에 바이칼 호수를 여행하면서 사얀산맥의 퉁킨스키 국립공원에 갔었는데, 길이 180㎞, 폭 18~24㎞의 이 엄청 넓은 평원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DNA가 한국인과 동일하다는 서울대학병원 연구팀의 발표도 있었다면서 이곳을 백악산 아사달이었다고 했다. 호이또 민속박물관에는 12환국의 신표가 있다고 했는데, 방문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곳 동쪽에는 이곳에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죽이는 마을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볼 때는 이곳은 백악산 아사달이 아니라 환인이 살았고 환웅이 떠난 환국의 중심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웅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요서의 삼위태백(三危太伯 ; 김종서가 말하는 적봉 지역)에 자리를 잡고 식량생산을 많이 할 수 있는 주변의 중원과 만주‧한반도 지역으로 주거지역을 확대하면서 식량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삼위태백은 식량생산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이 상황에 맞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단군사화(檀君史話)에 나타난 상황
단군사화는 식민사학을 벗어나지 못한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화’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포함한 환국-신시-조선으로 이어지는 축약된 우리나라 원시시대의 역사다. 그 중 가장 이른 『삼국유사』 기이편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고, ‘홍익인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제왕운기』의 전조선기, 『단종실록』, 『응제시주』 증주(增註) 등의 내용도 참고하여 분석해본다. 『삼국유사』의 해당 부분 기록은 아래와 같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국(桓国)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 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在世理化)하였다.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위의 단군사화에 나오는 홍익인간 관련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환인이 환웅을 내려 보낼 곳을 찾기 위해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면서 ‘홍익인간 할 만하다’고 했다. 따라서 교과서를 비롯하여 일반적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단군의 고조선 건국이념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기록은 없다. 기록상 홍익인간은 단군과는 무관하고 환인이 지침을 주었다면 환웅의 건국이념이 되었을 수는 있으며, 단군의 건국이념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기록상 단군의 건국이념이라고 하는 해석은 역사기록을 완전히 왜곡하는 범죄행위라고 볼 수 있다.
② 환인이 내려다 본 곳은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지형이다. 따라서 홍익인간은 지형과 관련 있는 의미여야 한다. 당시의 식량갈등 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식량을 많이 생산할 만한 곳’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환웅이 내려온 곳은 태백산정(太伯山頂)이었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三危太伯’을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이라 해석하고, 태백산정(太伯山頂)을 태백산(太白山) 꼭대기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太伯’은 백두산을 일컫는 태백산(太白山)과는 ‘백’자의 한자가 다른데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伯’자를 ‘白’자와 같은 글자로 해석을 한 것이다. 따라서 삼위산과 태백산(太白山), 태백산정(太白山頂)이라는 일반적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이 간다.
이와 관련하여 김종서 박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삼위태백(三危太伯)은 삼위산과 태백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삼면이 험한 산으로 둘러싸인(三危) 크게 드러난 넓은 평원(太伯)’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3,000의 무리가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는 기록도 공간적 여건으로 볼 때 현실성이 떨어지므로 ‘산정(山頂)’이라는 말은 삼위태백(三危太伯)의 태백(太伯)을 태백산(太白山)이라고 생각한 뒷사람의 가필일 가능성이 많다. ‘태백(太伯)은 크게 넓은 평야‧구릉지대로 해석해야 하며, 대흥안령산맥, 소흥안령산맥, 백두산맥으로 둘러싸인 적봉시의 홍산이 가장 가깝다. 환웅천왕은 이곳에 내려와 땅에(下) 신단(神壇)을 세우고(樹) 그곳을 신시라 불렀던 것이다.’”
옛날에 신단을 세웠다는 말은 나라를 세웠다는 의미이므로 이어지는 ‘신시라고 했다’는 문장과 문맥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③ 3,000 무리는 당시의 인구로 보아 매우 큰 집단이다. 당시까지는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라 연맹형 정치체제였으므로 한 부족(?) 전체가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집단이 산꼭대기(山頂)에 내려왔다고 하는 것은 공간이 좁으므로 납득하기 어렵고, 식량생산이라는 목적과도 부합되지 않는 기록이다. 따라서 김종서의 해석에 무게가 더해진다.
④ 일반적으로 ‘在世理化’는 ‘환웅이 인간 366사를 주관하면서 세상을 다스렸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 해석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어지는 곰족과 호랑이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 나오므로 식량 부족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 해석은 당시 상황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잘못된 해석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에서 을지문덕이 “(道의 중요함은) 날마다 염표를 생각하며 실천하기에 힘쓰며(在世理化) 조용히 경도(境途=감식촉 삼도와 18경)를 닦아 홍익인간 함을 간절히 생각함에 있다.”고 했다.
케인즈는 ‘효(孝)를 중국에는 개념으로만 남아있는데, 한국은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런 내용들을 감안하여 해석하면, 재세이화(在世理化)는 ‘서로 싸우지 말고 함께 잘 살라’는 환인의 가르침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치(理致)를 ‘실천했다’는 내용으로서 실천을 강조한 의미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정신과 문화는 그 후 실학(實學)과 의병대처럼 실천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역사 전개와 고유문화 형성의 뿌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리할 수 있다.
⑤ ‘弘益人間’을 한자의 뜻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환인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으니 환인도 ‘弘益人間’이라는 한자로 생각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순수한 우리말로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 때 일연이 적어놓은 한자의 뜻에만 매달려 해석을 하면 식량 갈등이라는 당시의 상황이나 단군사화의 기록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나올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자전(字典)이 아닌 일본 자전의 한자 의미로 해석하면 더욱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당시의 상황에 맞는 우리말을 찾아내고, 우리나라 자전(字典)의 한자 의미로 해석해야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3) 당시 상황으로 본 홍익인간의 대의(大義)
이처럼 당시의 인류사회 상황과 단군사화의 기록으로 비추어 볼 때, 홍익인간 할 만하다(可以弘益人間)는 기록에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은 나올 수가 없다. 잘못 해석인 것이다. 따라서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바른 해석을 시도해본다.
① ‘가이홍익인간(可以弘益人間)’이라는 생각을 한 당시의 상황은 환국의 인구가 너무 많아 현재 주거지역에서의 식량생산 만으로는 전체 요원들의 식량을 충분히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당시에 내분을 일으키고 있던 식량 갈등을 없앨 수 있을 정도로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을 만하다’고 보고 환웅을 그곳으로 내려 보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상황과 어우러지는 해석일 것이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지만, 일연이 한자로 적어놓은 弘益人間이 한자이므로 한자의 뜻에 따라 해석한다고 해도 당시의 상황과 연결이 되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일본식 한자 자의(字義)여서는 안 된다.
우리 한자 자전의 가장 많이 쓰는 자의(字義)를 보면, ‘클 弘, 더할(도울) 益, 사람 人, 사이 間’이다. 이런 의미에 따라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글자대로 직역하면, ‘사람 사이(人間)를 크게(弘) 더한다(益)’ 또는 ‘사람 사이를 크게 돕는다’로 해석된다. 여기서 사람 사이를 크게 ‘더 한다’와 ‘돕는다’는 의미를 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결국 식량을 많이 생산하여 식량 갈등을 없앰으로써 ‘(식량 갈등이 있던 부족 간의)사이가 두텁게 된다’ ‘친하게 된다’ 정도로 볼 수 있으며,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게 된다’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다.
② 삼위태백(三危太伯)의 해석도 이런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일단 삼위산과 태백산(太白山)이라는 해석은 옳지 않다. 백(伯)자와 백(白)자를 같은 글자로 해석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식량 생산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과 연결하면 ‘넓은 평원’이라는 김종서의 해석이 더 상황에 맞는 해석이 된다.
따라서 환웅이 식량생산을 많이 하기 위해 처음 신시를 건국한 곳이 백두산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산꼭대기에 3,000무리가 자리 잡고 식량 생산을 많이 했다고 보기에는 농사를 짓기 편리한 물의 량이나 땅의 넓이로 보나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신시(神市)에 이어 고조선이 서고 그 이후 삼국 등의 역사로 이어지므로 신시와 고조선 및 우리 고유문화와 민속 등의 문화유산이 함께 있어야 하는 지역이어야 하는데, 요서의 요하문명 지역이 우리 겨레 문화가 집중되어 있으므로 김종서의 해석에 무게가 더해진다.
③ 재세이화(在世理化)는 ‘실천을 강조’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황과 어우러지는 해석이다. 현재 한국사데이터베이스나 교과서 등 일반적으로는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라고 하여 ‘理’자를 다스린다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전에도 그런 뜻이 있으므로 ‘理’자를 ‘다스린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치(理致)’라고 보면, ‘환웅이 인간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치(理致)대로 되도록(化) 실천했다’는 의미가 되므로 훨씬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한자 없던 시절, 말로 했던 얘기로서 현장감이 더해진다.
뿐만 아니라, 재세이화(在世理化)라는 자구(字句)는 머리로 아는 것보다 실천을 더 중시하는 우리 겨레의 ‘실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구다. 환웅이 새로운 천지를 개척하여 식량 다툼이 없는 세상 만들기를 ‘실천’했으며, 단군-삼국 등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 전개와 고유문화의 내용을 ‘홍익인간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 광개토호태왕비문에 나오는 유리왕의 이도여치(以道輿治), 화랑의 세속오계, 한글 창제의 정신, 고대 화백제도로부터 항상 언로를 개방한 것, 유학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왔으나 결국 조선 후기에 실학(實學)으로 재탄생 시킨 것도 그런 문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일본 사람의 해석을 그대로 인용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교과서 등의 홍익인간 해석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사서 기록의 내용과 전혀 맞지 않으므로 잘못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이런 기록과 당시 인류사회의 상황, 우리 겨레의 민족정신과 민속 등의 고유문화와 연결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되도록 전반적인 재해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5. 창세신화‧천부경‧고유문화와 홍익인간
오늘 나는 당시의 상황과 연결되는 내용만 발표하고자 했으나 홍익인간 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겨레 창세신화와 단군사화에 나오는 우리 겨레의 민족정신과 연결키거나 우리 문화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중요한 문화 속에서 홍익인간의 의미를 도출하여 발표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내가 최소한으로 요약하여 간단히 설명함으로써 새로운 홍익인간의 뜻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 민족 창세신화와 홍익인간
신화학자들은 민족마다 다른 ‘민족 창세신화에 그 민족 고유의 생각의 틀인 사유체계(思惟體系)의 원형이 있다’고 한다. 창세신화는 500만 년 전쯤 인간이 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5,000년 전쯤 문자가 만들어져 역사를 기록할 때까지 그 민족이 살아온 생활 체험이 말로 전해져 축적된 것이므로 거기에 민족 사유체계의 뿌리가 있다고 보는 것은 일리가 있다.
따라서 생활환경이 민족별로 모두 달랐을 것이므로 민족 신화라고 할 정도로 민족별로 그 내용이 다르고, 거기서 나온 민족정신도 나라마다 다르게 된다. 우리 민족정신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의미도 우리 민족의 창세신화에 그 원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신화학자들은 우리 민족 창세신화를 무당들의 노래(巫歌)에서 찾고 있다. 박제상의 『부도지』에 나오는 마고신화가 그들이 중시하는 신화소(神話素)가 훨씬 풍부하지만, 진본(眞本) 여부에 대한 의문 때문에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숙명여대 도서관에 보관 중인 『부도지』에 대한 손보기 등 문화재위원들의 ‘진본 확인’이라고 검증한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고신화를 대표적 우리 민족 창세신화로 보고 그 속에서 홍익인간의 원형이 될 수 있는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마고신화는 ‘캄캄한 가운데 태초부터 있었던 빛과 율려(소리)에 마고가 실달대성을 천수에 빠뜨리니 땅과 산천이 생겨나고, 함께 나온 기화수토(氣火水土)가 서로 어우러져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기독교 창세기는 창조주 혼자서 모든 것을 창조한다는 창조론이고, 민족별로는
진화론도 있지만, 우리 겨레의 창세신화인 마고신화에서는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조화론적(調和論的) 사유체계’인 것이다. 이런 ‘어우러짐’의 원리는 당연히 홍익인간의 의미와 연결된다.
2) 단군사화(檀君史話)의 내용과 홍익인간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단군사화의 줄거리는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신인(神人)이라고 할 수 있는 환웅과 동물인 곰이 변해 태어난 웅녀(熊女) 사이에서 사람인 단군이 태어났다’는 내용이다. 사람을 창조주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신(神)과 동물과 사람을 혈연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천지인(天地人)의 현묘한 어우러짐’ 속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너무 멋진 발상이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신과 동물과 사람을 같은 레벨로 보지도 않는데, 우리나라는 그것을 같은 혈통으로 만들어놨으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사람이 신적‧동물적 속성을 가진 이유도 설명이 된다. 나는 이것을 우리 겨레의 ‘천지인(天地人)의 어울림’에 바탕을 둔 훌륭한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홍익인간의 핵심 의미와 같을 것이라고 해석하고자 한다.
3) 천부경과 홍익인간
천부경(天符經)은 정규 역사기록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강단 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 내용이 우리 민족정신과 연결이 되므로 재야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민족경전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천부경을 처음으로 소개한 『환단고기』에 의하면, ‘천부경은 환인 때 말로 전해지다가(말 천부경), 환웅 때 신지 혁덕에게 시켜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되었고, 신라 때 최치원이 신지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보고(篆字 천부경) 81자의 한문으로 갱부작첩(更復作帖)하여 세상에 전했다(서글 천부경)’고 한다.
따라서 천부경에는 말 천부경, 전자(篆字) 천부경, 서글 천부경이라는 세 가지 천부경이 있으며, 그 원형은 말 천부경이다. 그러므로 서글 천부경을 해석할 때도 그 전신인 말 천부경과 전자 천부경의 의미와 맞도록 해석하여야 한다. 최치원은 그런 의미를 알고 서글 천부경을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한배달에서는 2017년 토론회와 학술대회에서 이 세 가지 천부경의 의미를 발표하고 그 연결 관계를 찾고자 했으나 말 천부경과 전자 천부경 연구자가 너무 제한되어 있고, 서글 천부경 연구자들은 앞에 있었던 두 가지 천부경을 무시하고 서글에만 매달려 해석하다 보니, 천부경 본래의 뜻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천부경이 우주의 원리라는 설에서부터 수련법, 인간의 생활 자세라는 등 여러 가지의 해석이 나와 있지만, 그 대의(大義)를 알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것이 사용된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즉, 『환단고기』「단군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1세 단군) 46년(서기전 1846) 3월에 산의 남쪽에서 술과 음식을 갖추어 삼신에게 제사 올리고, 그날 밤 특별히 널리 술을 하사하시어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술잔을 돌려가며 술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재주들을 관람하셨다. 이 자리가 끝나자 마침내 누각에 오르셔서 천부경에 대해서 논하시고 삼일신고를 강연하셨다.”
여기서 천부경은 단합행사였던 제천행사의 일부였으며, 밤이 되어 수많은 별이 ‘어우러져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여러 재주들을 함께 보면서 즐겁고 신이 난 상태에서 론(論)했다면 심오하거나 추상적인 도(道), 또는 우주원리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천제의 목적인 하나됨(祭祀爲一)에 맞게 ‘우리는 싸우지 말고 단합하자’는 단합 내지 결속을 위해 백성들의 여론(단군이 말한 天符)을 듣고 토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태백일사」 삼한관경 본기에는 단군이 천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단군 왕검이 취임한 초기에) 앞으로는 백성의 뜻을 물어 공법을 만들고 이를 천부(天符)라 할지니, 그 천부란 만세의 강전(綱典)이며, 지극히 존중하여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는 것이라고 약속했다.”
단군왕검은 ‘백성들의 뜻’을 천부(天符)라는 공법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천부경은 ‘백성을 하늘(天)로 보아야 한다’는 백성 중시 사상의 경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정신은 우리 역사에서 그 실례가 매우 많다. 그 내용들 중 일부를 다른 분들이 발표할 것이다.
여기에서 천부경의 대의(大義)는 ‘천지인(天地人)의 어우러짐 원리’로서 우주의 모든 존재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 같아도 어떤 끈(나는 이것을 ‘풀’이라고 본다)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초끈 이론과 연결되는 의미이면서, 그 중 천부(天符)가 백성 중시 사상이라면 그 후 세종의 한글 창제 목적 등 우리 역사에서 많이 등장하는 ‘백성(人)을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는 실천적 행동의 근거가 된다. 바로 ‘서로 싸우지 말고 하나 되라’는 홍익인간과 그 의미가 연결되는 것이다.
4) 주요 문화유산과 홍익인간
우리 고유문화는 모두 홍익인간 사상에 따라 형성되었으므로 잘 살펴보면 그 속에서 홍익인간의 바른 뜻을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학자들이 발표하지 않는 내용 몇 가지만 소개한다.
① ‘우리’라는 말과 홍익인간
우리나라 말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우리’라는 말은 너와 나의 관계가 서구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생존경쟁, 무한경쟁 등 경쟁이나 투쟁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하나 되어 공존(共存)과 상생(相生), 공영(共榮)을 추구해야 하는 관계임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영어의 ‘we’라는 복수가 아니라 family, person등과 같은 집합명사로서 집단 전체를 하나로 보는 단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겨레는 이처럼 너와 나를 둘로 보기도 하지만, ‘우리’라는 하나로 보는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온 말이다. 제프리 존스도 처음 ‘우리 마누라’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② 제사(祭祀)와 홍익인간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우리 문화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하나가 제사(祭祀)다. 일부에서는 제사가 유교의 풍습으로서 ‘조상들에 대한 예우’라고 알고 있지만, 이암은 「태백진훈」에서 ‘제사는 하나 되게 하는 단합 행사(祭祀爲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의 제사는 우리 겨레의 고유문화로서 국가 차원의 단합행사인 천제(天祭), 지역 단위의 단합 행사인 동제(洞祭)라는 마을제사, 문중의 단합행사인 가정 제사가 있다.
당시와 같은 연맹형 정치체제에서는 연맹 간의 단합을 위한 행사로서 제천행사가 추진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김대성 등은 제사를 순 우리말로 ‘차레’라고 했다고 한다. ‘차’는 물이 꽉 찼다고 할 때의 ‘차다(滿)’, ‘채우다’ 등의 의미이고, ‘레’는 수레나 쓰레기 등에 사용되듯이 ‘버린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차레라는 말 속에는 ‘비우고(反省) 채우는(計劃) 행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상을 모시는 것은 그분을 중심으로 단합대회를 하므로 그 후손들은 모두 참석하라는 명분이며, 축문을 통해 참석자들이 그간의 행동을 반성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상호 단합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하여 채울 것은 채우자고 다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집의 차레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
③ ‘어른’ 문화와 홍익인간
우리 겨레의 리더, ‘어른’ 문화는 세계에서 아주 독특하다. 서구나 중국의 리더, 황제(皇帝) 등은 법에 따라 주어진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른도 없나?’하는 말에서 느끼듯이 우리나라 리더인 ‘어른’은 스스로 기존의 조직에 ‘어울리기’를 잘 해야 하고,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 목표 달성에 헌신하도록 ‘어우르기’를 잘 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어울리기와 어우르기를 통한 자발적 참여를 만들어 조직이 단합되어 하나 되도록 함으로써 ‘함께 번영’하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리더에 비해 격이 한 차원 높다.
④ 의식주 문화와 홍익인간
우리의 의식주 문화는 ‘우주 자연과 어우러지는 것’을 매우 중요시 한다.
대부분 나라의 단품식사(한 가지 음식만으로 식사가 됨)에 비해 우리 음식은 국과 밥, 여러 가지 양념과 섞어서 발효시킨 김치와 장, 나물 등 반찬이 한꺼번에 어우러져야 한 상의 식사가 된다.
우리나라 한복바지는 클라인 병의 원리에 따라 4차원의 세계를 3차원에 구현한 세계에서 유일한 차원 높은 옷이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가장 넓은 수용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므로 입으면 아주 편하다. 요즘 과학으로도 생각하기 어려운 멋진 자연융화 사고체계다.
그리고 자연적인 물과 공기의 흐름에 맞추어 습기가 차지 않게 한 석굴암이나 새나 곤충은 물론 이끼조차 끼지 않게 건설되어 대장경(2007, 국보 32호)보다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장경각(1995, 국보 52호)과 같은 건축 기술은 서구의 가장 앞선 현대과학 기술로도 복원하지 못하는 특이한 우리나라의 고대 건축술이다. 조선 때 7회의 화재와 일본인들의 집요한 요구, 6.25 때의 폭격을 견뎌내었으며, 1974년 정부의 개축 지시에서도 살아남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한 고도의 과학적 소산물’로 높이 평가하였다
이 모두가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고 지배받는 관계가 아니라 사람도 자연과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그 원리에 따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보는 우리 겨레 사유체계의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홍익인간의 의미와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⑤ 음주가무(飮酒歌舞)와 홍익인간
한‧중 여러 책에서 우리 겨레가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좋아했다는 기록이 많다. 음주가무를 ‘하나 됨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아리랑과 강강수월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나는 1999년에 위암이 발병하였으나 위 절단 수술을 하지 않고 ‘근본 원인인 미움을 없애면 낫는다’는 우리 민방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용서명상으로 두 달 만에 종양이 없어졌고,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있다. 서로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와 내가 어우러지는 것을 방해하므로 이를 없애는 어울림 원리에서 나온 생활의료 요법이다. 요즘의 코로나19 사태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회포를 푼다’는 회포풀기 문화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힌 감정을 그대로 두면 서로 어우러지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면서 그런 응어리를 풀어야 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⑥ 배움보다 깨침을 중시한 문화와 홍익인간
그리고 또 있다. 우리 겨레는 가르치는 것보다 스스로 깨쳐서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문화를 중시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응용하는 법을 깨쳐서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지식은 학교나 책과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을 수가 있지만 깨침은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실생활에서 자신이 그것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이렇게 지식 배움과 깨침이 합쳐져서 믿음이 가야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나는 그것을 ‘지혜(智慧)’라고 부르고 지식도 이처럼 실천으로 이어져야 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바로 그 실천 문화가 우리 고유문화 속에 있다.
따라서 여러분이 가진 지식도 중요하지만 깨침이 가미되지 않는다면 죽은 지식이 되고 만다. 청소원이 되려면, 청소도구를 가지고 청소를 하는 기본은 배운다. 그러나 오래 청소를 하다보면 보다 빨리, 보다 깨끗하게 청소하는 비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이것이 깨침이고, 그래야 청소 베테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깨침은 가만히 있어도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도 6년 동안 자신의 몸을 괴롭히면서 고행하며 수행하여 지식은 얻었으나 더 깊은 곳에 있는 지혜는 미처 깨닫지를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산속에서 거리로 내려왔을 때, 소녀가 준 산양 젖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여 마침내 보리수 아래서 깨쳤다고 한다. 이처럼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행동화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깨우침도 왔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역사 공부를 하다가 우리 겨레의 문화에서 조상들이 지식 그 자체보다는 깨쳐서 실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증거를 발견하고는 환호했다.
그 첫째가 소도(蘇塗)였다. 소도(蘇塗)를 처음 만든 아주 옛날에는 한자가 없었으니 ‘蘇塗’라고 하지 않고, 순수한 우리말로 했을 것이다. 뭐라고 했을까? ‘소도(蘇塗)’의 한자 의미에서 그 내용을 쉽게 추리할 수 있다. 옥편을 찾으면 ‘깨 蘇’ ‘칠할 塗’라고 나온다. ‘깨치는 곳’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해석을 하지 않았지만, 그곳은 배우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깨치도록 도와주는 것을 함께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요즘 그냥 배우기만 하는 학교(學校)와는 그 역할의 격이 다르다. 이것이 실천을 중시한 우리나라 고유문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화랑들의 수련법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 조에는 화랑들은 ‘혹은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써 서로 즐겨서 산과 내를 찾아 노닐며 멀리까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했다. 울주군 두동면 내곡천 중류의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장에서 깨닫게 하기 위해 산천유람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花郞世記)』에는 “현명한 보필자와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에서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이 이로부터 생겨났다.”라고 하였다.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내용을 가르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깨치게 했다는 말이 된다.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에는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는데, 풍류라고 이른다. 교화를 행하는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자세하게 갖추어 있는데, 실로 이에 삼교를 포함하여 중생들을 접하여 교화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냥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화(敎化), 즉 가르쳐 행동으로 옮기도록 했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젊은이들이 ‘배움’을 넘어 ‘깨침’을 얻도록 ‘교화(敎化)’하는 제도를 개발하여 운영함으로써 실제 생활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인재를 육성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참으로 앞선 생각이다.
현대 우리 사회에는 지식이 넘쳐난다. 책과 인터넷 등을 통해 그런 지식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을 가벼이 여겨서도 안 되지만, 지식에 얽매여서 지식이나 학문의 노예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따라서 실용적인 인재를 만들려면 소도(蘇塗)나 화랑들처럼 그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습득하여 지혜를 만들어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깨침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학교를 배움의 장소만이 아니라 이렇게 깨침의 장소가 되도록 발전시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겨레 문화 역시 천지인(天地人) 하나 됨의 원리에 따라 너와 내가 ‘우리’로 하나 되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홍익인간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골목까지 들어온 대기업의 가게는 이러한 우리 민족 사유체계의 뿌리조차 모르고 흔드는 한심한 사람들이 만든 졸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조선에 걸쳐 외래의 불교와 유교가 사회를 장악했었는데, 홍익인간 정신이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바로 외래 사상들을 ‘배척’하지 않고 ‘하나됨’으로 받아들여 유불선 회통불교, 호국불교, 이기일원론 등 실천(在世理化) 이념으로 받아들였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이런 어우러짐을 홍익인간의 대의(大義)의 실천이었으므로, 현대 인터넷 시대에도 제프리 존스의 말처럼 ‘어울림 에너지’인 정(情), 풀(생기?)을 살려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홍인인간의 의미부터 바로잡아야겠지요.
이상의 우리 민족 사유체계와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화를 종합해보면, 우리 겨레는 ‘우주는 천지인(天地人)이 큰 하나로 어우러져 돌아가는 유기체’라고 보는 기본적인 ‘어우러짐’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서는 한철학(관념적 바탕), 인간 세상에 적용했을 때는 弘益人間(인간화)이 되고, 그것을 꼭 실천으로 옮겨야 함을 재세이화(在世理化)로 강조함으로써 역사 속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스스로 깨쳐서 실천 의지를 강화하는 수련과 극기를 통한 자기 계발로서는 풍류도(개인 修行化)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6. 마무리
홍익인간(弘益人間)은 환인이 환웅에게 내린 지침(開天理念)이므로 우리 겨레 최초의 국가인 신시(배달)의 건국이념이 되었고, 환웅이 그런 이념으로 새 땅을 개척하여 실천(在世理化)한 후, 단군왕검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전달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전개와 고유문화 형성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강령에도 들어갔고, 현재의 교육이념으로 법규화 되어 있는 민족저력의 핵심이 되었다.
따라서 민족재도약의 호기를 맞은 현 시점에서는 그 바른 의미를 찾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미래 인류사회를 주도해나갈 대책들을 찾아낼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와 학계에서는 잘못된 일본인의 해석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바른 해석과 그에 따른 실천적 대안을 찾는 내용을 중심으로 발표를 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최초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잘못 해석한 사람은, 1915년 『삼국유사』를 일본어로 번역(和譯)한 일본인 靑柳綱太郞(아오야기 쓰나타로)이다. 일본의 자전(字典)에 나와 있는 ‘넓을 弘, 이익 益’, ‘인간=사람’이라는 자의(字義)대로 번역을 했으므로 그 뜻은 당시의 상황이나 우리 민족 정신체계, 전통문화, 우리 자전(字典) 등과도 맞지 않는 매우 잘못된 해석일 뿐 아니라 人間을 ‘사람 사이’라고 보지 않고, 그냥 ‘사람’이라고 한 해석은 한문 어법과도 맞지 않는다. 한문에서는 대체로 사람을 ‘人’이라고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문제는 앞에서 대략 살펴봤고, 자세한 내용은 뒤에 다른 분들이 발표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당시의 상황과 단군사화 기록 내용으로 본 바에 의하면, 홍익인간 이념의 바른 뜻은 ‘사람 사이를 크게 더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사람 사이가 돈독해져 식량 갈등과 같은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어우러져 하나 됨’의 원리는 우리 민족정신의 뿌리인 창세신화와 천부경, 단군사화,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 등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것도 확인했다. 서구의 ‘생존경쟁’의 논리와는 기본이 다르다.
이렇게 명확한데도 정부와 학자들은 바른 해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잘못 해석된 일본인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을 따르고 있으며, 심지어 2020년 새 교과서에서는 ‘홍익인간’이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고 일제의 식민사학 교재에 나와 있는 대로, 잘못 해석한 내용만 게재했다. 또한, 모 정당의 국회의원들도 ‘구체성이 없다’면서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단어를 없애려는 법률안을 제출했다가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철회했다.
그 전에 정부기관에서 그 부분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했다는 자료도 나오고 있다. 소위 지도자급에 속하는 우리나라 인사들이 민족정신이나 민족저력의 뿌리인 ‘홍익인간’의 의미는 물론, 가치 자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100여 년 전 일본인의 잘못된 해석을 믿고, 따르고 있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국민들이 볼 때는 참으로 황당한 모습이다.
세계 석학들의 말처럼, 홍익인간이 21세기 새로운 인류사회의 주도 이념으로서 민족재도약을 이룰 민족저력이라면 이렇게 뺄 것이 아니라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 인류사회를 새롭게 이끌어갈 구체적 실현 방안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루빨리 홍익인간의 바른 의미부터 찾아내어 현대화‧세계화시켜야 한다. 당연히 현재의 모든 대선 후보들도 이것을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수많은 외국인들이 BTS의 노래와 춤 등에 열광하면서 따라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가사의 내용도 제대로 모르면서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를 잘 모른다. 한류스타 본인들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역사 속 음주가무의 혈통을 이어받은 그들의 DNA에서 나오는 노래와 춤에서 무한 경쟁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바라는 ‘하나로의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처럼 홍익인간은 현재 서구 자유주의에서 너와 나를 생존경쟁의 관계로 보고 무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너와 나의 협력과 화합’을 통해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공존(共存)‧공영(共榮)을 강조하는 의미이므로 미래 세계의 지도이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코로나19의 백신이 강대국에만 몰리는 현재의 문제점을 우리나라가 해결함으로써 민족재도약을 이룰 기회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겨레가 민족저력의 핵심인 홍익인간의 뜻을 제대로 알고, 극단적 양극화를 비롯하여 인류사회가 당면한 여러 분야의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면 민족재도약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런 일을 추진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발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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