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15. 금
노태인 : 29개월
노강인 : 19일
약할 때 강함 되시네
강인이 젖을 주면서 찬양을 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눈물이 났다.
선풍기 바람에 에어컨 바람에 심한 재채기는
쉴 사이 없이 나오고 콧물도 줄줄, 코는 간지럽고 덥고
강인이는 젖이 모자라 2시간이 넘도록 젖만 물고 있고...
그러다가 찬양을 하니 나의 기도가 되었다.
강인이 낳기 전에 교회에서 늘 부르던 찬양이었다.
심한 재채기로 코도 목도 너무나 아프고 정신이 없었다.
나의 한계를 느끼면서 예수님께서 약한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울 때는 내가 그렇게
약한 존재인지 그다지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
내 힘으로 숨 쉬기 조차 힘들 때에
그때에야 예수님의 사랑이, 능력이 내 안에 있었다.
지금까지 아픈 몸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난 기억이 났다.
아픔은 나의 가장 큰 복이 되었다.
끊임없이 나의 한계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잘 먹고 편안하니 건강도
점점 회복이 되어 갔다.
살만 해지니 내가 잘난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 믿음이 탄탄하지 않은가 보다.
약해져야 하나님을 깊이 만나니 말이다.
나에게 주신 것들에 감사하려고 노력해도
남편이 미워지면 감사는 커녕 화만 안내도 다행이다.
늘 약했을 때는 얼마나 감사가 넘쳤던가.
저녁에 눈을 감을 땐 오늘 저녁이 마지막 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다시 눈을 뜨면 다시 하루를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격하며 감사했다.
그러니 다른 모든 일들은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야단을 맞아도 꾹 참으며 감사했다.
나를 성장시켜 주려는 마음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고통이 오면 더욱 감사했다.
고통을 통해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난이여 오라.
고통이여 오라.
외로움이여 오라.
모두 와서 나를 단련해 다오.
하나님께서 나를 마음껏 쓰시도록.
지금 나는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
남편이 내 수준만큼 아이를 다루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자녀 양육을 사명으로 한다면서 공부하나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러나 요즘 남편은 도서관에서 자녀에 관한 책도 빌려 오고
책도 산다.
그리고 태인이에게도 부쩍 신경써서 대한다.
그런데 나는 강인이에게 말도 잘 안해주고 젖만 주기 바쁘다.
남편은 점점 변화 되는데 나는 불평과 오만으로
쇠퇴해 가고 있다.
심한 재채기로 나의 한계를 느끼면서
나를 위해 인류를 위해 영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본을 기억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살렸다.
나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 왔다.
지금은 그 사랑에 이끌려 많은 복을 받았다.
모든 것은 안정되고 점점 더해져 가기만 하고 있다.
태인이 강인이를 키우는 일이 하나님 일이고 예배이다.
나는 그 일에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 헌신했듯이
그렇게 헌신 할 것이다.
또한 사랑에 예수님을 기억하고 끝까지 본을 보이신 예수님처럼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을 위해 헌신할 것이다.
지금의 내 주변 이웃은 동네 아이들과 그의 부모들이다.
이제 나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할 생각이다.
그들은 자녀 양육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가을학기 때는 그들에게 영어와 요리놀이, 오르다, 가베, 독서지도를 할 생각이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다.
내가 더 공부하고 긴장하고 태인이, 강인이에게 더 보탬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을 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남편은 도서관에서 요리책도 빌려 왔다.
표현을 잘 안하는 남편이 요리책 빌려 온 걸 보면
나에게 맛있는 걸 많이 해주려고 하나 보다.
표현도 함께 해 주면 금상첨화련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