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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 廟"와 "昌 慶 宮" 둘러보기
宗 廟
종묘(사적 제125호)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으로 가장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종묘는 태조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 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환조(桓祖)의 신위를 모셨다. 현재 정전(正殿)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永寧殿)에는 16실에 3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功臣堂)에는 조선시대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의 정문격인 외삼문(外三門) 또는 외대문(外大門)이라고도 한다.
정문은 다른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간결하고 단순하다.
창경궁 안의 춘당지 연못 옆에 세워져 있는 팔각평면의 7층 석탑(七層石塔)으로,
중국 명나라 때에 만들어졌던 것을 우리나라로 옮겨와 조선시대 성종 때 세운 것이라고 한다.
기단부는 가장 아래에 네모진 바닥돌이 놓이고 그 위로는 8각으로 된 2단의 댓돌이 놓여 있다.
여기에는 각 면마다 무늬곽이 얕게 새겨져 있으며 그 위로는 기단 몸돌을 받는 연꽃장식
받침돌이 놓여 있다. 팔각의 기단 몸돌에는 각 면마다 꽃무늬들이 장식되고 가장 윗돌인
덮개돌에도 역시 연꽃무늬와 무늬곽이 장식되었다. 그 위로는 높직한 연꽃잎 장식 괴임돌과
2단의 낮은 괴임대를 두어 모두 3단으로 된 탑신괴임대가 별도로 놓여 탑신(塔身)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1층탑신이 불룩하고 돌을 짜맞추는 기법도 벽돌탑쌓기식으로 되어 있어 그 형태가 중국에서
유행한 라마탑에 가까운데 탑신 뿐만 아니라 팔각형의 기단부, 그리고 2층 이상의 지붕돌의 모양 등
탑신부 전체에 흐르는 조형성도 역시 라마탑의 형태에서 응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석탑은 한국 전통의 석탑이 아니라 중국의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석탑의 1층 탑신에는 4각형의 대리석이 끼워져 있고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3자씩의 글귀가
넉 줄로 새겨지고 다섯째 줄에는 만들어진 해가 기록되어 이 석탑이 중국에서 제작된 것과 그 시기를 밝히고 있다.
“요양중(遼陽重), 개산도(開山都), 강연옥(綱挻玉), 암수탑(巖壽塔),
대명성화육년경인세추칠월상한길일조(大明成化六年庚寅歲秋七月上澣吉日造)”
이 글귀 가운데 성화 6년은 조선시대의 성종 원년(1470)에 해당되므로 이 석탑은 중국 명나라 때의 석탑임이 확실하다.
또한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창경궁 안에 조선왕궁박물관을 만들면서 만주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사들인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중국 석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댓글 종묘 창경궁 직접 가서 보는것 이상 구석구석 잘 구경 했습니다 **** 우리나라 한옥의 건축미 정말 멋있네요***** 한복의 앞섭의 모양과 같은 추녀의 곡성미는 세계어느 나라도 찿아볼수 없다는군요 *****외국인들이 보면 감탄하지요*****부라보님의 사진 건물이 날아가는 기상입니다 ****설명 내용 글 색이 노랑색 이라서 컴에서 희미해 잘보이지 않는게 흠이네요
정말 가본거 이상으로 느낌이~~~아즉 안가봤는디 함 가야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