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기에 날자 정해서 먹거리 찾아 다닌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것이다.
오늘 여섯 노장은 평택의 석일 식당 이라는 30 년된 게장백반의 명가를 찾아
아침부터 용산역에 모여 나들이 길에 올랐다.
집에서 떠너서 종로 3가 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 용산에서 천안행 급행에
몸을 싣고 집을 떠난지 서너 시간만에 닿은 평택역,
효창 선생이 먼저와서 대기하고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집은 조남호 옹이 진작부터 추천하던 맛집이 었는데 이제야
그 소원을 프는 날이 택일이 되고 6 노장이 이 여행에 참여 했다.
많은 기차에는 여행의 즐거움이 있고 생활의 고달픔이 있고 헤여지는 슬픔이 있고
만나는 반가움이 있는 역의 플랫홈,
기차는 끊임 없이 달려 가고 들어 온다.
전동 열차 시간표다.
급행을 타려면 참고가 될것 같아서 한장을 올렸다.
빨간 글씨가 급행 시간이니 참고하면 시간 절약이 될것 같다.
평택 역에 도착한것은 12시 조금 지나서 였다.
이 역사의 크기가 옛날 추억속의 그 역사 하고는 사믓 달르고 현대 적이다.
역사에 백화점도 있고 극장도 있고 그 규모가 대단한데 광장에 나오니 스텐 판에
사람의 시루엣을 조영한 기둥이 수도없이 줄서 있는데 그것 특색이 있고 어떤 의미를
읽을것 같아서 한장을 살려 보았는데 광장의 부조물의 밀집으로 내가 그리는 그림은
표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역사의 에스카레터 상단 벽면에는 세계를 향한 도시 평택 이라고 쓰여 있는것이
요사이 유행하는 지자체 에서의 슬로간적인 구호 같았다.
시골 도시마다 전부 글로벌화 하면 도시나 지방의 특색은 어디서 찾아야 될까?
한참을 걸어서 평택 고교 근처에서 석일 식당을 찾았다.
석 순자 여사가 30 여년을 게장 식당을 하엿다는 명소 석일 식당
게장 백반, 주꾸미 볶음, 그리고 국순당 생 막걸리, 그런데 평택 쌀로 막 지은 밥을 대접에
듬뿍퍼 주고 묵은 김장김치, 파 김치, 열무김치, 너무나 맛이 있고 넓다란 김을 구워 접시에
올려주면 찢어서 먹는 이런저런 처음보는 그 맛이라니, 정말로 맛있는 점심이었다.
게장을 찾아 왔지만 쭈꾸미도 맛이 있고 김치의 그 신비한 우리의 맛 이라니,
정말로 우리의 음식은 이래서 너무나 맛이 있구나 생각을 하였다.
그 김치의 맛을 진정으로 아는 말년의 영감들이 모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다시 상경 길에 오른다
평택역 플랫트홈 이다
사연이 많은 기차는 또 떠나고 들어 오고
기차역에는 잠시의 휴식도 없다. 기차는 바쁘다.
플랫홈에서의 효창선생 모습
오늘 여기를 안내 하고 거금을 드려 식사 비용까지 쾌척해 주신
조남호 (청장) 님이시다.
오늘 저녁 카돌릭 대학 강의 시간을 변경 하면서 까지 우리들을 위하여 많은
희생을 치룬 이분의 얼굴이 그래도 밝고 미소가 일품이다.
많이 먹고 마시고 잘 떠드는 호천, 그는 언제나 즐겁다.
다른 세분은 다른 자리에 있어서 담지를 못했다.
청량리행 일반 기차가 들어 온다.
급행을 기다리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떡본김에 X X 한다고 그냥 타기로 했다.
각자 집에는 5시가 훨신 지나서 들어 갔으리라.
평택 맛 기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