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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강원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12)
오늘 『증도가』는
獅子吼 無畏說이여
(사자후무외설이여)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사자후무외설(獅子吼無畏說)심차몽동완피달(深嗟懞憧頑皮靼)이라 여기 부터 할 차례입니다.
사자후 무외설 『증도가』가 이제 끝으로 접어들어서 결론적으로 영가스님 자신이 그 당시로서 얼마나 고준한 그런 지견을 가지고 있는가, 지견이라 하면 뭐 지혜와 같은 뜻으로 그런 아주 고준한 지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소소한 그 당시 여러 계율을 위시해서 천태학이라 할까 화엄학이라고 할까 등등 많은 경전을 연구해서 그 경전을 소의 경전으로 해서 이루어진 그런 역사에 드러난 학파나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학파나 뭐 종파라고도 부르고 그러는데 그런 종파들이 상당히 많은데 영가스님이 스스로 자부하기를 당신의 깨달음, 다시 말해서 선종에서의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 것이고 최고봉에 있는 것이고, 이것은 동물로 치면은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사자후 무외설이여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많은 짐승들이 있지만은 사자와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자하고 코끼리 하고 가끔 같이, 같은 격으로 이야기 할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사자는 사자 나름의 뛰어난 어떤 위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코끼리는 그 거대한 몸과 아무도 덤빌 수 없는 그런 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사자와 코끼리, ‘사자가 더 위다 코끼리가 더 위다’ 이런 말은 없어요, 사자하고 코끼리 하고 똑같은 격으로 동물중의 왕이다 그렇게 이제 보기 때문에, 그러고 우리 용상방 그러잖아.
용도 이제 그런 뜻으로 쓰지만은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니까. 이제 그렇게 하는데.
부처님을 사자, 이렇게 표현하고 부처님이 앉는 자리를 사자좌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요. 그래서 사자로 표현할 때도 많고 간혹 코끼리로 표현 할 때도 많아. 그러니까 제일 끝에 줄에 가면 ‘대상은 불유어토경하고’ 그런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큰 코끼리는 토끼의 길에서 놀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듯이 역시 내용은 그런 뜻입니다.
사자후 무외설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소리여
深嗟懞憧頑皮靼이로다
(심차몽동완피달이로다)
어리석어서 마치 완악한 가죽과 같음을 슬퍼하도다.
심차(深嗟)라 몽동완피달(懞憧頑皮靼)이라
그 정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 사자후와 같은 그런 가르침 그런 사상을 설한 이것이 『증도가』 인데, 도대체 이런 것을 듣고도 너무 둔하고 너무 굳어져 있고, 너무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 아견에 사로잡혀 있어서, 자기가 조금 익힌 것 가지고 그만 그것이 최상의 사상인냥으로 그렇게 집착을 하니까 그것을 빗대서 표현하는 것이 이런 표현이예요.
심차, 매우 슬프다. 심차라 아주 슬프다. 몽동 완피달. 몽동이게 몽동이란 말은 멍텅구리 또 흐리멍텅한 뭘 도대체 분별할줄, 무엇이 차원이 높은 소리고 뭐가 차원이 낮은 소리인지.
예를 들어서 선을 이야기 하면서도 기초교리를 설명 하고 앉았거든. 그게 이제 기초교리인지 무슨 선인지 선도리 인지 도대체 분별이 없는 거야.
자기 마음이 가는 소리라고 선법문을 이야기 하면서 기본 교리를 이야기 하는거야.
선인지 기초교리인지 보통 기본적인 상식적인 교리인지 그게 분별이 안되니까 몽동완피달이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야. 멍텅구리.
말하자면 아주 가죽이, 동물의 가죽을 벗겨가지고 그대로 내팽개쳐 놓으리면 그걸 이제 어떻게 가공을 하지 않고 내팽개쳐 버리면 그게 빳빳하게 굳어가지고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그래 이걸 약품을 처리해가지고 가공을 해야 좋은 가죽이 될 텐데.
그러니까 우리가 소견을 불교에 대해서라든지 인생에 대해서라든지 너무 일찌기 설정을 해 놓는것, 별거 있냐 이런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조금 아는 것 가지고 미리 설정을 딱 해놓고 그 설정된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건 아주 참 곤란한 거예요.
여기서 이제 영가스님이 빗대어서 하는 소리가 천태학에 종사하다가 말하자면은 선문에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천태학파들의 아주 좁은 소견, 그 외에 다른 학파들의 불교에 대한 좁은 소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우리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너무 일찍이 그래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입장이 되면 아주 곤란합니다.
소견을 만들지 말아야 돼요 절대. 어떤 사상과 소견을 말들지 말아야 해요.
만들지 말고 아주 공부 많이 한 다음에 정말 이것이다 미리 그렇게 사상을 정해놓고 하는게 아니예요. 그래놓으면 손해가 많아요. 특히 불교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只知犯重障菩提하고
(지지범중장보리하고)
다만 중죄를 범하면 보리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만 알고
지지범중장보리(只知犯重障菩提하고 하나의 그런 예로써 예를 들어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앞으로 이제, 지지범중장보리(只知犯重障菩提)하고 불견여래개비결(不見如來開秘訣)이로다
다만 중죄를 범하면은 보리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만 알고 아주 무거운 십중대계(十重大戒)있죠, 살도음망(殺盜婬妄) 이라든지 이런 것들, 그런 것들을 범하면은 보리에 장애 되는 줄만을 알고
不見如來開秘訣이로다
(불견여래개비결이로다)
여래가 열어놓은 그 비결을 보지 못하더라.
여래가 비결(秘訣)열어 놓은 것은 보지를 못했도다. 여래가 비결을 열어 놓은 것에 대해서는 보지를 못했더라. 여래는 중죄를 아무리 범해도 거기에 얼마든지 또 헤어날 길이 있고, 중죄를 범한 것 하고 관계없는 또 차원의 길이 있다 하는 거예요. 그게 여래의 비결이야. 예컨대
有二比丘犯淫殺에
(유이비구범음살에)
두 비구가 있어서 음행과 살인을 범하고
유이비구범음살(有二比丘犯淫殺)에 파리형광증죄결(波離螢光增罪結)하고 유마대사돈제의(維摩大士頓除疑) 환동혁일소상설(還同赫日銷霜雪)이라.
이제 이제 고 앞에 두 구절을 갖다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두 비구가 옛날에 있었는데 음행과 살생, 살인을 범했어, 살생정도가 아니고 살인을 범했다고.
어떤 이야긴고 하니 『유마경』에 보면은 유마거사가 병이 들었는데 부처님 제자들이 쭉 이제 가서 위문을 해야 되는데 부처님이 제자들을 시켜서 하나하나 ‘네가 가서 위문을 해라’ ‘너가 가서 위문을 해라’ ‘너가 가서 위문을’ 이렇게 이야기 할 때마다 가섭존자도 ‘옛날에 내가 유마거사에게 당한 일이 있어서 나로서는 도저히 가서 병문안을 못합니다. 병문안 잘못 했다가 또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모릅니다’ 수보리도 마찬가지예요, 사리불도 마찬가지 목건련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우바리 존자에게 돌아왔는데 ‘우바리 그러면 네가 가서 병문안을 해라’ 그랬단 말이야.
우바리는 지계제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바리 존자가 하는 말이야.
‘내가 그전에 말하자면은 어떤 비구들이 두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고백하기를 두 사람이 토굴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탁발하러 나갔어. 시내에 이제 탁발해서 이제 돌아올거라고 나갔는데 그 사이에 산에 나물 뜯으러 왔던 어떤 여자가 잠깐 또 한 비구가 남아 있는 비구가 졸고 있는 사이에, 졸고 있는 사이에 그 여자가 강간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비구승이 이제 남자가 강간당한 최초의 역사야 이게 그것도 비구승이.
그러니 그 인도라고 하는 나라의 옷을 입고 있는 형체가 다 잘 알지만은 사리라고 하는 하나 그거 걸치고 있는 정도야. 승려들도 어름한 가사, 사리가 이게 저 가사나 별로 다른 바 없어.
가사가 이제 가만히 보면은 남방불교에서 입고 있는 그거 가사가 사리야, 인도 사람들이 입고 있는 사리하고 같은 거라. 그거 뭐 가사, 포대기 하나 이렇게 걸치고 있고, 그러다가 벌렁 누워서 낮잠을, 곤해서 낮잠을 자고 있는 그런 상황이니까 이게 강간이 가능한거야 여자가.
여자가 나물하러 왔다가 그렇게 비구를 강간한거지.
그렇게 해서 이제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런 상황이 벌어져 버렸거든. 그런데 마침 그 순간에 탁발하러 나갔던 도반이 돌아왔어요.
도반이 돌아와 보니까 얼떨결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
도반이 화가 나가지고 ‘저 여자가 말이야 우리 도반을 저렇게 파계를 시켰다’ 이렇게 해가지고는 그 여자, 화가 나가지고는 그 여자를 그 좀 화난 김에 좀 때려 주려고 막 그냥 뭐라고 고함을 치면서 쫓아갔어요.
그러니까 이 여자가 안 맞으려고 막 도망을 가다가 낭떠러지에 잘못 헛디뎌 갖고 떨어져 죽었어.
그래가지고 두 비구가 한 사람은 살인을 범하고 한사람은 이제 음계를 범하게 된거라.
아주 그거 무거운 죄거든. 살도음망 아니야? 또 이제 비구계로서는 음살도망이거든. 음행이 먼저 있다고.
그만치 중요하게 다루는 계인데 두 사람이 가장 무거운 죄를 범했으니까 이거 어떻게 하면 참회를 하겠는가? 이래가지고는 부처님 제자 중에서 제일 계율에 으뜸인 우바리 존자한테 가 가지고 참회를 하는 것이 우리가 죄가 씻어지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우바리 존자한테 갔다고.
가서 우리가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우바리 존자께서 우리의 참회를 받아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니까 우바리 존자의 자기 생각으로는 절대 이거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이거야. 이거는 완전히 파면형 죄다 이거지. 그래서 안 받아준거라. ‘느그는 이제 성불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한다. 느그는 승단에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나가라.’ 이렇게 했다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얼마나 낙심했겠어.
‘야 이제 우리는 크게 죄를 범해가지고 이 길이 마지막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래도 유마거사 같은 이들이 부처님 못지 않은 훌륭한 분이니까 거기 가서 참회를 하자 하는 그런 그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이제 그 무렵에 말하자면 유마거사가 온거야.
우바리 존자가 그렇게 사정없이 꾸짖고 축출시키는데 유마거사가 그 상황을 보게 되고 그 스님들이 유마거사를 만나게 된 거라. 그래서 유마거사가 있다가 이제
‘그대들이 죄를 지었는데 죄를 가져오너라’ 그런 대화는 선문에 와서 많이 있죠. 죄를 한 번 찾아보아라, 그래서 이제 죄성이 본공하다 이걸 가르친거야. 죄의 성품이라는 것이, 우리가 마음으로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고, 정말 어찌 할 바 모르고 자살밖에 남지 않은 그런 정도의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지만은 그러나 그 죄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뭐가 있어서, 어떤 알맹이가, 어떤 실체가 있길래 우리를 그렇게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 부담을 주는 것인가? 한 번 찾아봐라.
죄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 한 번 찾아봐라. 찾아보니 없거든. 그래서 죄의 성품은 본래 공한거야.
죄의 성품은 본래 공한거야. 이렇게 설법을 해줘서 이 사람들로 하여금 환하게 아주 마음이 그냥 수행정도가 아니라 참회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마음을 깨달아 버리는 그런 상황에 이르렀다고.
그건 이제 달마스님하고 혜가스님하고 대화에서도 있고 그 외에 스님들도 승찬대사도 그러한 대화가 있고 아주 그 후로 그와 같은 그런 대화가 많이 있고 그로 인해서 깨달음을 성취한 그런 사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여기서도 이제 그렇게 되어서
波離螢光增罪結하고
(파리형광증죄결하고)
우바리존자의 반딧불 같은 소견은 죄의 매듭만 증장시키고
파리형광증죄결(波離螢光增罪結)이라, 파리의 우바리 존자의 반딧불과 같은 광명은 죄의 매듭만 더욱 더 크게 한다. 증죄결(增罪結).
維摩大士頓除疑가
(유마대사돈제의가)
유마대사는 몰록 의심을 제거한 것이
그리고 유마대사(維摩大士)는 돈제의(頓除疑)라, 유마대사는 몰록 의심을 제거해 줬다, 의혹을 제거해 줬다. 요건 이제 의심이라기 보다는 의혹을 제거해 줬다 이말이야.의혹이라고 혹자를 붙이는 게 좋아요.
혹,업,고(惑,業,苦)니까, 의혹을 제거해 줬다 그런 뜻이라.
유마대사의 그런 아주 뛰어난, 그래서 우바리 존자가 ‘나는 그러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유마거사한테 가서 위문을 좀 할 자격이 없습니다.’
얼마나 그 출가승려로서 부끄럽겠어? 죄 지었다고 무조건 ‘너희들은 불통참회고 또 승단에서 나가야 되고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만 이제 강압적으로 했으니 그게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어?
더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는 길이다 이거야. 그 얼마나 좁은 소견이야?
불교라고 하는 게 사람 살리자고 하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자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게 좁은 소견이야. 소견을 잘 가져야 돼요. 소견이라는 게 사상이고 자기의 생각이고, 자기의 안목이고 이제 그렇거든요.
유마대사가 몰록 의심을 제한 것이
還同赫日銷霜雪
(환동혁일소상설)
뜨거운 태양이 서리나 눈을 녹이는 것과 같네.
환동혁일소상설(還同赫日銷霜雪)이라, 마치 뜨거운 태양, 혁일(赫日)이라고 하는 것은 벌벌 끓는 태양이라 여름날 아주 그 뜨거운 태양이 상설을 녹이는 거와 같다.
서리와 눈을 녹이는 거와 같다.
얼마나 시원하게 그렇게 의혹의 덩어리를 녹여버리고 그런 중죄를 범하고도 마음은 환하게 태양처럼 밝고 그래서 아주 훨씬 더 그 전보다 더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됐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不思議解脫力이여
(부사의해탈력이여)
불가사의한 해탈의 힘이여
그런 것이 우리 마음의 해탈의 힘이라. 부사의해탈력(不思議解脫力)이야, 불가사의야 이거는 참.
마음의 이치라는 것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해탈의 힘이다.
妙用恒沙也無極이라
(묘용항사야무극이라)
묘한 작용이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아 다함이 없네.
묘용항사야무극(妙用恒沙也無極)이여, 그 묘용, 신통묘용, 우리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 미묘한 작용은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애.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다고.
우바리 존자는 그 자기 그 알고 있는 소견대로 그저 안 된다고만 하는 그 원칙주의자, 그래서 사람을 이제 더 파멸로 이끄는 그런 소견인데, 그러면서 자기는 모범이다 모범생이다 이렇게만 생각 하고 있는 거지.
그 참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찌 꼭 그 길 뿐인가 말이야. 정 반대의 길도 있는 거예요. 팔만사천 길이 있어,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거에는.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가 이 마음이야. 부사의 해탈력이지.
묘용항사야무극(妙用恒沙也無極)이라 신통묘용, 미묘한 작용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애. 사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다 다르거든, 전부 다르다고.
야무극(也無極)이야, 또한 그 다함이 없다.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우리들의 마음작용은 다할 길이 없다.
거기서 한 생각 깨달으신 입장에서라면야 깨닫지 못한 우리의 입장도 하물며 그렇거든 깨달은 사람의 입장이야 오죽하겠어? 그 마음의 무애자유하고 활달무애한 그런 그 정말 자유자재한 그런 그 마음작용이 오죽 하겠어 깨달은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 우리도 엇비슷하잖아, 상당하거든 우리도.
四事供養敢辭勞아
(사사공양감사로아)
네 가지의 공양을 감히 수고롭다고 사양할 것인가
사사공양(四事供養)을 감사로(敢辭勞)아 만냥황금(萬兩黃金)도 역소득(亦銷得)이라, 사사공양, 근본적으로 우리 수행단체에다가 공양을 제공하는 것이 딱 네 가지로 정해져 있어 옛날에는. 그래서 이제 방사(房舍) 우리가 거주, 주거할 그런 공간이죠. 그다음에 의복, 그 다음에 음식, 그 다음에 의약품 요게 이제 사사야, 네 가지 일, 네 가지로써 공양 올리는 것을 감히 수고롭다고 사양할 것인가.
그거 뭐 우리 수행하는데 필수품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거 뭐 ‘아이구 내가 이게, 이거 받아서 되겠냐’고 이렇게 감히 사양할 것인가, 수고롭다고 사양할 것인가, 사양할 필요 없다 이거예요.
萬兩黃金亦銷得이라
(만냥황금역소득이라)
하루에 만 냥의 황금을 쓴다 하더라도 다 녹일 수 있다.
만냥황금(萬兩黃金)도 역소득(亦銷得)이라, 하루에 만 냥의 황금을 쓴다 하더라도 또한 그거 다 녹일 수 있는 법력이 있다 이거죠.
그런데 이제 ‘금생(今生)에 미명심(未明心)하면 적수(滴水)도 야난소(也難消)라’ 그런 말도 있죠. 금생에 우리가 마음의 도리를 밝히지 못하면은 한 방울의 물도 녹이기 어렵다, 그런 표현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양면으로, 깨닫고 나면은 만냥황금도 역소득이야 깨닫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그거 갚아야 돼 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 또 그런 말도 많이 들었죠, 일미칠근이라. 쌀 하나에 일곱근의 이자가 붙어서 갚게 되는 그런 일도 또 벌어진다 이거야.
우리가 이자 안 붙는 거 같지만 이자가 붙게 돼 있어. 세월이 가면 이자가 붙는다고. 우리가 세속적인 이자도 은행이자라든지 개인 사채이자라든지 이자라는게 그게 그냥이 아니야.
어떤 원리에 의해서 생긴거라고. 많이 붙이느냐 적게 붙이느냐 그건 이제 우리가 사람들이 알아서 조절하는 거지만은 어쨌든 이자가 있는가봐.
사람이 그렇게 정해놓고 붙이지 아니해도 이자는 있게 마련인거야.
불국사가 창건된 것도 소설에 보면 ‘모량리 그 해 봄에 세 두둑 베푼 것이 만 냥의 황금 되어 무엇을 거뒀네’ 그런 표현이 있는데 천수답, 천수답이라고 비가 와야 비로소 이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산골짜기 조그만 논들이 있잖아.
그 조그마한 논 그 세 두둑, 세 마지기도 못 되고 세 두둑을 베푼 것이 그걸 시주를 했다고, 시주를 했는데 그것이 이제 불어나가지고 전생에 그것을 시주를 했는데 그것이 이제 불어나 가지고, 아주 재상이 된 거야. 김대성이라고 아주 훌륭한 재상이 되어가지고는 말하자면은 불국사를 창건하고 석굴암을 창건할 수 있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그런 게 다 이자거든. 좋은 것도 이자가 붙고 나쁜 것도 이자가 붙고 다 그렇게 이자가 붙는가봐.
粉骨碎身未足酬요
(분골쇄신미족수요)
분골쇄신한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하면 족히 갚을 수가 없으나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도 미족수(未足酬)요, 그런데 깨닫지 못하면 분골쇄신해도 족히 갚지를 못한다.
만 냥 황금도 역소득이지만은 분골쇄신해도 이 우리 몸뚱이를 다 부서뜨리면서 까지 노력을 하고 봉사를 한다 하더라도 족히 갚을 수가 없다 그런데
一句了然超百億이라
(일구요연초백억이라)
한 구절에 환히 깨달으면 백억 배를 초과하여 은혜를 갚으리라.
일구요연(一句了然)은 초백억(超百億)이라, 한구절에 깨달아 버리면은 요연(了然), 한 구절에 깨달아 버리면은 백억을 뛰어넘는다.
초백억이라 ‘백억을 뛰어넘는다’ 라고 하는 말은 만냥 황금도 녹일 수 있는 정도로 그렇게 아주 천양지차의 어떤 것이 전개된다는 거지.
한 구절에서 깨달아 버리면은, 육조스님 같은 이도 또『금강경』 한 구절에서 깨달았고, 영가스님 같은 이도 『유마경』 한 구절에서 깨달은 거야. 영가스님은 『유마경』에서 깨달았어요. 그리고 보조스님 같은 우리 나라 보조스님 같은 이도 『서장』을 읽다가 안목이 달라진거지.
그런 예들이 아주 워낙 많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法中王最高勝이여
(법중왕최고승이여)
법 가운데 왕이 가장 뛰어나니
법중왕최고승(法中王最高勝) 항사여래동공증(恒沙如來同共證)이라, 법 중에 왕이 최고로 수승하다는 이거예요.
무슨 왕, 무슨 왕, 왕이 많지만은 법에, 진리에 있어서의 왕, 존재의 실상과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 확연히 꿰뚫어 본 그런 지혜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 법중의 왕이라, 법왕이야 그게 법왕이라고요.
법왕이 최고로 수승하다 어떤 왕보다도, 어떤 왕보다도 법왕이 제일이야.
그런데 그 경지는 깨달은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恒沙如來同共證이라
(항사여래동공증이라)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여래들이 다 함께 증득하였네라.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여래들이 다 같이 함께 증득한 경지다 그거야.
깨달은 사람은 다 같이 여래고 다 같이 부처님이야. 그 대표로서 우리가 석가모니를 ‘부처님 부처님’ 하지만은 이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은 사람은 무조건 부처님이야.
거기에서 더 한 걸음 나아가면은 깨달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사람까지도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그렇게 말해버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그러지. ‘마음이 곧 부처다’ 그러면 사람이 마음 없는 사람이 어딨어? 마음 통채로 사람이고 사람 통채로 마음이야. 즉심시불이라 그런다고.
또 어떤 이들은 또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그런 표현도 해요. 이 몸에서, 이 마음에서가 아니고, 이 몸에서 그대로 성불이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이고 마음이 곧 그대로 사람이다, 사람덩어리 그대로가 마음이고 마음 덩어리 그대로가 사람이기 때문에 ‘즉심시불’이라는 말은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 하는 말 그대로예요.
그래서 항사여래동공증이라. 그래 꼭 이제, 여기선 이제 깨달은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그런 표현이 선가에서는 아주 뭐 전부 그 얘기죠.
대승불교 경전도 거의 그 얘기야.『화엄경』이나 『법화경』은 전부 그런 이야기예요.
뭐 꼭 깨달아야 부처다 이런 표현이 아니예요.
심지어 『법화경』 같은데서는 어느 정도로 이야기 하고 있는고 하면은, 부처님 앞에서 망상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산란한 마음으로 합장 한 번 떡 해도, 합장 한 번 하면은, 지나가다가 부처님 탑에나 부처님 앞에서 합장을 떡 하면은 불상 앞에서 그것도, 한 번 하면은 전혀 무슨 신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정을 닦아서 마음이 안정된 것도 아니고, 그냥 ‘산란심으로’그랬어, 산란심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망상이 꽉 차 있는 그런 마음이라.
그러한 마음자세로 합장 한 번 떡 하는 것도 개이성불도(皆已成佛道)라 이미 다 성불해 마쳤다 그랬다고요.
그것을 성불의 조건으로 말하고 있어. 성불의 조건.
그게 무슨 성불의 조건이 되겠어?
또 어떤 경우는 어린 아이들이 모래를, 그것도 오줌을 싸가지고 모래를 뭉쳐치는 거야, 어린아이들이 오줌을 싸가지고 모래를 뭉쳐놓고, ‘이게 부처님 탑이다’ 라고 한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개이성불도라, 다 이미 성불해 마쳤다 그런다고.
그게 무슨 성불의 조건이 되겠어?
그게 무슨 육바라밀이여, 선정이여, 참선이여, 염불이여, 간경이여? 아무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은 무슨 뜻인고 하면은 성불에는 조건이 없다 이말이요.
성불에는 조건이 없어 본래 성불이야. 철저히, 철두철미 본래 성불이야. 『법화경』이 그런 수준이라고.
철두철미 본래성불을 말하는 거야. 그래서 그 안에는 쭉 보면은 나중에는 상불경 보살이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래서 부처님으로 수기를 주는 그런 내용으로까지 나아갑니다.
꼭 그런 내용에 까지는 우리 불교인으로서 공부를 해서 지견을 소견을 확실하게 그렇게 이제 넓혀 갈 필요가 있는 거예요.
我今解此如意珠하니
(아금해차여의주하니)
내가 지금 이 여의주를 풀어 놓았으니
아금해차여의주(我今解此如意珠) 신수지자개상응(信受之者相應) 내가 지금 이 여의주를 해설하노니
信受之者皆相應하리라
(신수지자개상응하리라)
믿고 받아 가지는 사람들은 다 상응할 것이다.
신수지자(信受之者)는 개상응(皆相應)하리라, 믿고 받아 가지는 사람은 다 상응할 것이다, ‘그래 그래’ ‘맞아 맞아’ 하고 전부 고개 끄덕 끄덕거리면서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이해할 것이다.
了了見 無一物이여
(요요견 무일물이여)
밝게 보고 밝게 보아 한 물건도 없으니
요요견무일물(了了見無一物)역무인혜역무불(亦無人兮亦無佛)이라, 환하게 모든 존재를 이 세상에 있는 삼라만상과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니 한 물건도 없어 무일물이야.
그렇게 보인다고, 그런 안목이 있어.
우리는 지금 그 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안 보이지. 우리가 엑스레이 그 사진기를 이용을 하면은 어떻게 해? 이 살 같은 거 옷 같은 거 안보여. 뼈만 나오게 할 수 있다고. ‘엑스레이적 안목’이라고 내가 그런 표현도 쓰는데 엑스레이적 안목만 가져도 어느 정도 영 공하게, 무일물로는 안보여도 어느 정도 공하게 반은 공하게 보인다고.
엑스레이 사진기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자꾸 성인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은 우리에게 그런 안목이 생겨.
현실을 보통 사람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만 보이지가 않고 그 보는 안목이 다르다고. 차츰차츰 전문가적인 안목이 돼 가는 거야.
‘전문가적인 안목이다’ 내가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예를 들어서 여기 컵이 하나 있다. 그러면 이게 이제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까 그냥 무슨 ‘유리나 크리스탈로 된 하나의 컵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용하지만은 이 소재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만들었다, 이건 불량품이다, 이건 뭐 안에 만들 때 무슨 다른 좋지 아니한 것도 섞어 넣었다, 이런 것을 환하게 꿰뚫어 보는 거야. 그래서 ‘이거 뭐 별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안다고.
전문가, 어느 분야든지 전문가적인 안목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는 것 하고 전혀 달리 보인다고.
우리는 중에 대해서 전문가니까 저기서 떡 이렇게 객이 걸어오는 모습만 척 봐도 아 저거는 전국구구나, 저 사람은 독살이 중이구나 저 사람은 대중처소에서 산 사람이구나.
절하는 거 떡 보면, 저거는 행자교육원에서 제대로 배운 절이구나, 아니면은 제멋대로 익힌 절이구나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은 그게 환히 보이잖아.
비전문가의 눈에는 그게 전혀 안 보이는 거야.
마찬가지로 존재의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안목을 딱 가지면은 무일물로 보여. 무일물로 보인다니까, 그게 이제 어떤 지혜의 눈인 거지.
우리가 불교에서 깨달은 분들의 그런 안목에, 말씀해 놓은 내용들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면은 뭐 이런 내 설명이 어찌 보면 뭐 얼토당토 않을지도 모르지만은, 그 안목을 이해하려고 분석해 보려고 파헤쳐 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거지 이런 것들이 다.
이런 표현들이 무슨 뭐 엑스레이적 안목이니, 전문가적인 안목이니, 하는 요요견무일물(了了見無一物)하면 아는 사람은 요요견일물하면 아 그래? 요요견무일물이야,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 입장이니까 그걸 어떻게 하더라도 가까이 근사하게 접근해 보려고 별의별 그런 수단을 강구해 가면서 발버둥치는 그런 어떤 그 하나의 모습이다 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그거라 또, 그 이상은 없어요.
亦無人兮亦無佛이라
(역무인혜역무불이라)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더라.
역무인혜역무불(亦無人兮亦無佛)이라, 사람도, 또한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다, 전문가적인 안목에서 보면 그렇다 이거야. 존재의 실상에 대한 전문가적인 안목.
大千沙界海中漚요
(대천사계해중구요)
삼천대천세계가 바다 가운데 물거품이요
대천사계해중구(大千沙界海中漚)요 일체성현여전불(一切聖賢如電拂)이라, 삼천대천세계, 대천세계가 사계(沙界)라고 하는 것은 모래와 같은 많은 세계, 항하강의 모래와 같은 많은 세계가 바다 가운데 물거품이요
一切聖賢如電拂이라
(일체성현여전불이라)
일체의 성현들도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이로다.
일체성현(一切聖賢)도 여전불(如電拂)이라, 모든 성인과 현인도 번개불 번쩍 하는 거와 같은 것이다.
그래 영가스님의 안목에서 보면 전부 이렇게 비친다 이거예요.
假使鐵輪頂上旋이라도
(가사철륜정상선이라도)
가령 쇠바퀴가 내 머리위를 지나가서 나는 산산조각이 난다하더라도
가사철륜(假使鐵輪)이 정상선(頂上旋)이라도 정혜원명종불실(定慧圓明終不失)이라, 가사(假使) 철륜이 쇠로 된 바퀴가 큰
쇠로 된 바퀴가 우리 머리 위를 뭉개고 지나간다 하더라도 그러면 이 몸이 산산조각 나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定慧圓明終不失이라
(정혜원명종불실이라)
내가 깨달은 정과 혜는 원명해서 마침내 잃지 않도다.
깨달은 사람의 선정과 지혜는 뚜렷이 밝아서 마침내 흩어지지 않는다. 몸뚱이는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깨달은 그 정혜는 원명해서 마침내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몸뚱이 잃어버렸다고 공부한 것이 다 없어지느냐? 천만에, 공부한 것 그대로 있어요.
업도 따라오는데 업도, 우리 업이 따라와 가지고 지금 각자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소질이 다르잖아.
업이 따라와서 그러는 거예요. 전생의 업이 따라와 가지고 전부 지금 각자의 다른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능력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그런 거예요.
업도 따라오는데 공부한 게 왜 안 따라 오겠어? 나쁜 업도 따라 오는데 공부한 게 안 따라 올 리가 없어요. 다 공부한 게 따라온다고요.
그러니까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공부하라, 삶은 영원한 것이고 젊음과 늙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면은 그 다음에 죽어서 바로 태어나면은 천재가 되는 거지.
늙었다고 공부 안 한 사람은 놓아버리잖아? 나중에 늙었다고 공부 안 하고 놓아버리면 그 사람은 이제 그동안 그게 10년 기간이 되었든, 20년 기간이 되었든, 놓아버린 기간이 한 10년 20년 딱 되면 그동안 이제 그게 희석이 돼 버리는 거야. 공부 좀 한 것이 다 사라지는 거야.
그 사라진 상태에서 죽잖아? 죽어서 태어나면 어떻게 되겠어? 그냥 보통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좀 머리가 둔한 사람이 되거나 그렇게 된다고.
그런데 죽는 순간까지 공부를 계속 하던 사람은 어떻게 해? 다음 생에 태어나면 천재가 되는 거야.
머리 좋은 사람들은 전부 그런 상태예요. 그런 상태에서 새로 몸 받은 사람이라.
우리가 잘 때에, 잘 때에 뭔가 문제를 가지고 골똘히 생각하면은 자고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이 나잖아.
어제 저녁에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자고 일어나면 바로 그 생각이 온다고. 화두를 들어보면 알아.
화두를 들어보거가 아니면 어떤 경전 문제 가지고 생각을 해 보거나, 아니면은 누구하고 되게 대판 싸웠다 이거야 그날.
싸우고 자기 잠들기 직전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잤는데 어떻게 해? 자고 일어나면 바로 그 생각이 오잖아 오게 돼 있잖아. 이치가 그래.
그건 당연한 이치지 이건 부처님이 만든 것도 아니고 누가 만들어서 집어 넣어준 것도 아니야. 그래 나쁜 것도 그렇거든 좋은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어.
좋은 것을 우리가 열심히 하고, 하다가 죽으면은 그 다음 생에 바로 그 공부하던 업이 따라와 버려. 그래 천재가 되는 거야.
어느 분야든지 자기가 뭐 잘하겠다 싶은 것은, 금생에는 그것을 빛을 못 보더라도 열심히 죽는 순간까지 그것을 해야 돼요.
그것을 하다가 죽으면은 다음 생에는 태어나자마자 그쪽으로 아주 소질이 아주 뛰어나지.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이게.
정혜원명종불실(定慧圓明終不失)이라, 이 스님이 전생애를 바쳐서 성취한 정혜는 원명해서 마침내 없어지지 않는다, 이 몸뚱이 다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日可冷 月可熱이언정
(일가냉 월가열이언정)
해가 차갑게 되고 달이 뜨겁게 되는 그런 세상이 온다하더라도
일가냉월가열(日可冷月可熱)이언정 중마불능괴진설(衆魔不能壞眞說)이라, 차라리 저 뜨거운 해가 차게 되고, 또 차가운 달이 뜨겁게 된다손 치더라도, 그럴 일이 없는데 그렇게 된다 손 치더라도
衆魔不能壞眞說이라
(중마불능괴진설이라)
뭇 마구니는 능히 이 진리의 설법을 능히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중마(衆魔)는 불능괴진설(不能壞眞說)이라
뭇 마구니들은 능히 이 진설(眞說)을, 참다운 이 주장, 만고불변의 진실한 가르침, 진실한 주의주장은 무너뜨리지 못한다.
천태종이다 무슨 종이다, 이건 지금 천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무슨 영가스님으로부터 영가스님이 비난을 그렇게 받았던 그런 천태종이다, 또는 무슨 율종이다 그 외 무슨 화엄종이다 무슨 별별 그 종파가 있었지.
그런 주의주장들이 결국 나의 이 깨달음에 대한 안목에 대한 설명은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象駕崢嶸慢進途라
(상가쟁영만진도라)
코끼리에 수레를 매어 아주 위풍당당하게 끌고 가는데
상가쟁영만진도(象駕崢嶸慢進途) 수당랑능거철(誰螳螂能拒轍)가, 코끼리가 아주 위풍당당하게 쟁영(崢嶸) 이건 아주 위풍당당한 모습이야. 그래서 만진도( 慢進途)라, 자랑스럽게 도의 길에 나아가는데
誰螳螂 能拒轍가
(수당랑 능거철가)
어떤 당랑이가 능히 그 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당랑이가 능히 그 수레바퀴를 막는 것을 누가 보았는가?
조그마한 버마재미, 조그만한 버마재비가 수레가 이렇게 굴러오면 조그마한 것이 수레바퀴 밑에서 딱 버티고 그것을 못 가게 막는다는 거야.
그 못 가게 막는다고 수레바퀴가 거침없이 지나가버리면은 지는 가루가 돼버리잖아, 그걸 비유하는 거야.
자기 자신의 이 깨달음에 대한 안목과 이 주장은 코끼리가 정말 당당하게 길에 나아가는 것인데, 그 나머지 소소한 주의주장과 소견들을 가지고, 그 소견들을 가지고 나의 그 주장을 막으려고 하고, 비판하고 거부하고 하는 그런 상황인데 그거 다 버마재비처럼 깔아뭉개서 가루가 되고 만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당당하고 얼마나 자신 있고, 참 정말 하늘을 찌를 듯한 그런 어떤 긍지와 자부심입니까? 이게 대단한 거예요.
자기 깨달음에 대해서 자기 어떤 소신에 대해서 이렇게 당당하게 안하무인이라, 천하에 사람 없는 거야 이 앞에는.
이렇게 까지 지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표현이예요. 그래서 선가에서는 이 영가『증도가』를 ‘선시의 백미’고 일본사람들은 이것을 ‘『대승결의경』이라’ 이렇게 표현해요. 경전이라고 해, 바로 경전이라고.
大象不遊於兎徑이요
(대상불유어토경이요)
큰 코끼리는 토끼의 길에 놀지 않고
대상(大象)은 불유어토경(不遊於兎徑)하고 대오(大悟)는 불구어소절(不拘於小節)이라, 큰 코끼리는 토끼 길에 놀지를 아니하고
大悟不拘於小節이라
(대오불구어소절이라)
크게 깨달은 사람은 작은 절개에 구애받지 않는다.
크게 깨달은 사람은 작은 절개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것도 이제 내가 뭐 왕년에 천태종에 있었어. 물론 있었지만은 그렇다고 그거 무슨 뭐 어떤 의리나 절개 그거 굽혀서 내 큰 깨달음을 갖다가 숨기고, 그 사람들 옳다고 그렇게, 이 진리를 논하는 마당에서 까지 그렇게 할 까닭이 없다.
대오(大悟)는 불구어소절(不拘於小節) 나는 이렇게 확철대오를 한 사람인데 그 뭐 소소하게 이론 그저 책 보고 주장하는 그 이론, 앞도 뒤도 분별 못하고 그저 글 구절에 이렇게 얽매여서 하고 있는 그런 그 문제에 내가 뭘 그렇게 연연해 할 게 있겠는가? 그 말이예요.
대오(大悟)는 불구어소절(不拘於小節)이라 큰 깨달음은 작은 절개에 구애받지 않는다.
莫將管見謗蒼蒼하라
(막장관견방창창하라)
좁은 소견을 가져서 창창히 비방하지 말라
막장관견방창창(莫將管見謗蒼蒼)하라 미요오금위군결(未了吾今爲君訣)하리라
관견(管見)을 가져서 대쪽같은 소견을 가지고서 하늘을 보고, 하늘이 동그랗게 조그맣게 보이니까 저것이 하늘이다 라고 하는 그런 좁은 소견, 그게 관견이야.
그런 소견을 가지고 비방하지 말라 말이야. 혹독하게 죽일 놈 살릴 놈하고 창창(蒼蒼)은 아주 혹독하게 비방하는 거야. 창창히 비방하지 말아라.
未了吾今爲君訣이로다
(미요오금위군결이로다)
깨닫지 못했으니 내가 지금 그대들을 위해서 해결해 주노라.
미요(未了)에 오금(吾今), 그대들이 모르니까, 그대들이 깨닫지 못하므로 알지 못하므로 내가 지금 그대들을 위해서 알려주노라, 그대들을 위해서 이렇게 알려 주느라고 하는 거다.
내용이 뭐 내 자랑하는 것 같이 들리기도 했지만은 사실은 이 『증도가』를 지어서 천하에 유포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내가 그거 알려주느라고 그렇게 한다.
그러니까 그대들 절대 비방하지 마라, 괜히 비방하면은 비방하는 사람만 죄가 더 무거워진다.
이런 내용으로 결론을 맺어서 이렇게 해서 『증도가』가 다 끝났습니다. 『증도가』는 우리가 이렇게 한 번 슬쩍 이렇게 공부하는 것 가지고 안돼요.
이건 다 쓸 줄 알아야 되고, 외울 줄 알아야 되고, 안보고 쓸 줄 알아야 되고, 『신심명』 『증도가』는 그냥 『천수경』보다 더 잘해야 돼.
『반야심경』정도 『반야심경』우리가 외우는 정도로 익숙해야 돼. 그러면은 이 불교에 대한 소견이, 또 인생에 대한 소견, 모든 존재를 꿰뚫어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확철대오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근접합니다.
깨달은 사람의 소견에 상당히 근접할 수가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구절에 깨달을 수도 있고, 얼마든지 깨달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 점을 꼭 중시해서 이렇게 공부한 게 이게 뭐 몇 푼어치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더욱 더 깊고 널리 다른 이들의 참고도 찾아봐 가면서 좀 보다 더 확실하게 공부해두기를 바랍니다.
오늘 『증도가』 여기까지 입니다.
첫댓글 _()()()_
假使鐵輪頂上旋이라도 定慧圓明終不失이라...쇠로 된 바퀴가 우리 머리 위를 뭉개고 지나간다 하더라도, 이 몸이 산산조각 나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깨달은 사람의 선정과 지혜는 뚜렷이 밝아서 마침내 잃지 않느니라...꽃물들다님! 수고하셨습니다.._()()()_
獅子吼 無畏說이여 (사자후무외설) :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還同赫日銷霜雪 (환동혁일소상설) : 뜨거운 태양이 서리나 눈을 녹이는 것과 같네.
萬兩黃金亦銷得이라 (만냥황금역소득) : 하루에 만 냥의 황금을 쓴다 하더라도 다 녹일 수 있다. 一句了然超百億이라 (일구요연초백억) : 한 구절에 환히 깨달으면 백억 배를 초과하여 은혜를 갚으리라. 我今解此如意珠하니 (아금해차여의주) : 내가 지금 이 여의주를 풀어 놓았으니 信受之者皆相應하리라 (신수지자개상응) : 믿고 받아 가지는 사람들은 다 상응할 것이다.
了了見 無一物이여 (요요견 무일물) : 밝게 보고 밝게 보아 한 물건도 없으니 亦無人兮亦無佛이라 (역무인혜역무불) :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더라. 大象不遊於兎徑이요 (대상불유어토경) : 큰 코끼리는 토끼의 길에 놀지 않고 大悟不拘於小節이라 (대오불구어소절) : 크게 깨달은 사람은 작은 절개에 구애받지 않는다...... 항상 가슴이 탁 틔워지는 증도가.... 큰스님 감사드립니다! _()()()_ 꽃물들다님 감사드립니다!_()()()_
쓸 줄 알아야 되고, 외울 줄 알아야 되고, 안보고 쓸 줄 알아야 되고, 『신심명』 『증도가』는 그냥 『천수경』보다 더 잘해야, 외우는 정도로 익숙해야 돼. 그러면은 이 불교에 대한 소견이, 또 인생에 대한 소견, 모든 존재를 꿰뚫어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확철대오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근접합니다. 외워 보는 원을 세우겠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삼배 올립니다
가사철륜(假使鐵輪)이 정상선(頂上旋)이라도 정혜원명종불실(定慧圓明終不失)이라.ㅡ가령 쇠바퀴가 내 머리위를 지나가서 나는 산산조각이 난다하더라도 내가 깨달은 정과 혜는 원명해서 마침내 잃지 않도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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波離螢光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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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