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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작곡가 김순애와 박은희가 곡을 붙인
김남조 시인의 시 ‘그대 있음에’와 ‘사랑의 말’에 관하여
정 성 수(丁成秀)
(시인)
지난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잔상>을 발표하고 1953년에 첫시집『목숨』을 상재한 후 지금(2013년)까지 약 900여 편의 시를 발표한 대한민국 원로시인 김남조 여사의 가사에 곡을 붙인 가곡 <그대 있음에>와 <사랑의 말>에 대해 잠시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김남조 시인은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랑과 인생을 섬세한 감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일부 평론가는 김남조 시인을 ‘사랑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종교적 구원에 대한 갈망, 절제와 인내, 자아성찰 속에서 사랑의 원초적 힘을 노래하고 생의 존재론적 탐구를 위해 시적 투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여간 필자가 한 마디로 말한다면 김남조 시인은 여성적 감수성이 탁월한 ‘감성의 시인’이다.
그러한 김남조 시인이 쓴 가사 <그대 있음에>의 작곡과 관련된 상황에 대하여 시인 본인이 그 당시(2012년) ‘성 라자로 마을’ 주최 ‘자선음악회 30회 기념 공연’ 후기에 쓴 글이 있어서 여기에 그 전문을 소개한다.
어느 가곡의 가사이든간에 그 가사를 쓴 사람이 그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것이 그 어느 누구의 상황 설명보다 보다 더 확실하고 훌륭한 사실적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의 귀중한 이인칭을 “그대 있음에”에 담아
-김 남 조
성 라자로 마을은 가톨릭 정신으로 세워진 자선의료원이며 그 연륜이 반세기에 이르렀고, 본 자선음악회도 어느덧 30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 음악회가「그대 있음에」라는 표제로 이어져 오는 경위에 대하여 성 라자로 마을의 원장이신 조욱현 신부님의 청탁으로 본 지면에 그간의 과정을 간략히 서술하려 합니다. 「그대 있음에」라는 노래는 오래 전인 1964년 1월 1일에「한국일보」지면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독자 및 여러 가정에 새해 선물로 보내고자 한다는 신문사 측의 취지에 따라 쓰여진 이 가사는 김순애 작곡인 악보와 동일 지면에 실려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모든 이의 가슴 안에 소중하게 품고 있을 “그대”라는 이인칭에 기본을 둔 노랫말을 통해 사랑과 축복의 공감이 확산하기를 염원했습니다.
1976년에 성 라자로 마을의 초대 원장이신 이경제 신부님과 연극인 김성옥 씨 등이 논의하여 이 가사의 새로운 곡을 송창식 씨에게 위촉하여 송창식 곡으로 또 하나의 노래가 만들어졌고 음악회의 타이틀도「그대 있음에」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당시 송창식 씨는 나에게 새로운 작곡의 승인을 전화로 청했으며 나는 기쁘게 합의를 하였는데, 음악회 때마다 매번 너무 밝은 조명을 입는 듯하여 송구한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송창식 씨의 명곡과 열창은 경이로웠으며 더욱이 소담한 함박눈이 햇솜처럼 내려 쌓여 동화 속 같은 풍경을 자아냈습니다.
제1회「그대 있음에」가 그해 12월 29일에 덕수궁 옆 정동극장에서 성대하게 막을 올렸을 땐 참으로 많은 이들이 감동과 도취에 젖어들었습니다. 그(송창식)도 그날의 일을 감명 깊게 기억함을 최근의 통화로 확인하였기에 아마도 내년 음악회엔 다시 와서 여러 곡의 노래를 불러줄 듯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지나간 수십 년 동안 ‘성 라자로 마을’은 여러 탁월한 음악가를 초청하여 품격있는 음악회를 이루어왔고 청중이자 후원자인 귀한 손님들이 언제나 좌석을 가득 채워왔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특히 획기적인 오페라 공연을 펼치게 되었기에 이 뜻깊은 음악회를 경하드리며, 본 행사의 모체인 ‘성 라자로 마을’에 한없는 경의를 표합니다.’
위 인용글에는 김남조 시인이 가사 <그대 있음에>를 쓰게 된 동기와 작곡에 대한 경위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가곡과 대중가요로 작곡되었고 가곡은 김순애 작곡가가, 대중가요는 송창식 가수가 작곡을 했다.
가곡<그대 있음에>는 그동안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바리톤 최현수, 소프라노 최영식, 조수미 등 여러 성악가들과 가수 송창식이 노래했다. 그만큼 가곡<그대 있음에>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성악가와 가수,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김남조 시인은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무릇 좋은 시란 영혼성이 깃들어 있는 시, 예언적인 시라고 생각해요. 시의 하늘은 종국에는 그런 데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서울신문> 인터뷰(2009/3/27일)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영혼성이 깃들어 있는 시’, ‘예언적인 시’가 김남조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이상적 세계이다.
그렇다면 김남조 시인이 쓴 가곡 가사(시) <그대 있음에>와 <사랑의 말>은 어떤 작품들일까. 우선 가사 <그대 있음에>를 살펴보자.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삶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이 가사 속에서의 ‘그대’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인가? 이 가사의 화자가 가리키는 상대가 무엇일까?
‘그대’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지름길이다. 간단히 결론을 얘기하자면 여기서의 ‘그대’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구체적 대상, 즉 사람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추상명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움’이라는 심리 상황을 의인법을 사용하여 인격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이 가사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 사물(사람)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움’이라는 무형의 물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형상화되어 살아있는 생명체로처럼 피가 통하게 된 것이다.
시에서는 표현상의 필요에 따라 은유, 직유, 상징, 우의, 환의 등 온갖 수사법이 다 동원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 속에 등장하는 이 세상의 모든 무형 유형의 존재들을 보다 감각적이고 인간적인 생명체로 승화시켜주는 것이다. 그것이 각종 비유나 상징의 힘이다.
김남조 시인은 그러한 시적 힘으로 무형의 ‘그리움’을 유형의 ‘그대(사람)’로 형상화, 재창조한 것이다. 즉 무한대의 창조성이라는 점에서 시인은 또 다른 신이다. 무형을 유형으로, 그 유형에 새로운 생명과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초월적 언어예술가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가사 속에 등장하는 ‘그대’를 모두 다 ‘그리움’으로 바꾸어도 의미상 아무 하자가 없다. 아니, 이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가사의 첫행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는 ‘그리움의 근심있는 곳에’가 되고, 4행의 ‘그대 있음에’는 ‘그리움 있음에’가 되고,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는 ‘그리움 있음에 내가 있네’가 된다.
따라서 2연(2절) 첫행의 ‘그대의 사랑문을 열 때’는 ‘그리움의 사랑문을 열 때’가 되고, 그 이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가사 속 화자(나)는 ‘그대(그리움)의 근심있는 곳에/나를 불러 손 잡게 하라’고 ‘그리움’을 향해 일종의 명령을 내린다. 상명하복식의 구조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그리움’은 화자의 하위적 존재, 즉 명령을 받는 존재이고 ‘나’는 ‘그리움’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위적 존재이다. 서로 대등하고 평등한 수평 관계가 아니라 상하 관계이다. 이것은 ‘그리움’이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자의 수사법에 의해 가공된, 즉 허상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추상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리없이 가능하다. 만약 이 가사 속에서의 ‘그대’가 실제적 사람이라면 감히 ‘…하라’고 명령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가 아닌 현대의 일반적 언어 개념으로 보자면 ‘그대’는 분명히 ‘너’의 존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그대’는 ‘너’의 존칭 개념이 아니라 그냥 편의상의 부드러운 2인칭일 뿐이다. 일종의 개념적 착시 효과를 노린 셈이다.
‘그리움, 너에게 근심스러운 일이 생기거들랑 나의 따뜻한 손에 의지해서 그 근심을 함께 풀도록 하자’ 는 것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1~2행의 뜻이다.
자신의 ‘그리움’을 마치 일종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대상적 존재인 것처럼 객관화시킨 것, 즉 주관의 객관화가 이 가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 다음의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그대 있음에/내 맘에 자라거늘’은 객관화시킨 것을 다시 주관화시킨 대목이다.
이 내용은 ‘그리움 덕분에 기쁨과 갈망이 나의 마음 속에서 자란다’는 행복한 자기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 뒤 이 가사의 화자는 마침내 자기 내면의 본색을 드러낸다. 슬며시 감추어두었던 대상(추상적 존재)을 아예 표면화시켜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것이다.
‘오, 그리움이여/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나를 불러 손잡게 해’. 다시 말하자면 ‘그대’의 정체인 ‘그리움’의 가면을 활짝 벗겨내는 순간이다. 화자의 말은 ‘내가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나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리움이여, 나와 함께 한세상 손잡고 가자’는 것이다.
2연(2절) 1행~2행은 ‘그대의 사랑문을 열 때/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라고 역시 명령 화법을 쓰고 있다. 청유형이 아니라 명령형이다. ‘마침내 그리움이 실제의 사랑으로 현실화되면 내가 그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 사랑의 광채 속에서 살게 해 달라’는 명령적 부탁이다.
그 다음 행들,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그대 있음에/삶의 뜻을 배우니’를 보자. ‘사는 일이 고독하고 고단할지라도 내 가슴 속에 그리움이 존재하여 그 고독과 고단함을 잊고 살게 되므로 그리움 덕분에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즉 그리움에 대한 화자의 가치 부여이다.
마지막 3행을 보자. ‘오, 그리움이여/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그리움이 있어 나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리움이여, 내가 그 그리움의 광채 속에서 살게 하라’. 역시 끝까지 명령형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대 있음에>는 ‘그리움’을 노래한 가사(시)이다.
다시 말해 ‘그리움’에 대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가사이다. ‘그리움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니, ‘그리움’은 화자에게 있어서 마치 ‘생명’과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희망일 수도 있고 이상향일 수도 있다. 사실상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다만 ‘그리움’이 가슴 속에 살아있어서 고독과 고단함을 잊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큰 기쁨과 갈망을 누릴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것이 ‘그리움’의 절대적 가치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김남조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 <사랑의 말>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곡 <사랑의 말>은 박은희 작곡에 소프라노 최영식 성악가와 메조소프라노 김신자 성악가가 노래한 작품이다. 가사(시) 내용을 보자.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 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 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머
숨어 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실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 대로
세상 양 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 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 번 쏟아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이 가사(시)는 아름답다. 하지만 어찌보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숨길 수밖에 없는 은밀한 사랑을 읊고 있기 때문이다.
숨기고 싶은 사랑, 아니면 숨겨야만 될 사랑, 쉽게 이룰 수 없는(?) 사랑, 그 누군가에게도, 즉 상대방에게도, 자기 스스로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는(?) 그런 특별한 사랑이다.
하지만 독자들이시여,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랑을 쉽게 ‘불륜’이라고 판단하지 마시라. 숨기고 싶은 사랑이나 표현을 초월한 사랑에는 ‘불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다함없이 고결한 사랑도 숨기고 싶은 사랑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시(가사) 첫 1~2행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이라고. 그렇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차마 감히 입으로 표현조차 할 수 없이 너무나도 고결한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그대를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그 고결한 사랑에 그만 티가 묻고 누를 끼치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과 경건함이 앞서게 된다. 이것이 아름다운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다.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눈부셔 못 견딘/사랑 하나/입술 없는 영혼 안에/집을 지어/대문 중문 다 지나는/맨 뒷방 병풍 너머/숨어 사네’ 화자는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 ‘아침에 단잠을 깨우’는 햇살처럼 눈부신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 눈부신 사랑이 ‘입술 없는 영혼 안에/집을 지’었다.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속 깊이 숨어있다. 아니, 그 눈부신 사랑을 아무도 모르게 화자의 가슴 속에 자기 스스로 숨겨두었다.
화자는 이러한 사랑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는/맨 뒷방 병풍 너머/숨어 사네’라고 진술한다. 그 사랑을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은밀히 숨겨놓았다는 뜻이다. 누가 알까봐 고이 감추어둔 것이다.
그 다음을 보자. ‘옛 동양의 조각달과/금실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생각만이 깊고/말하지 않는 말/사랑 하나’. 우리 동양 여성의 일반적 전통, 특히 유교 사상이 넘쳐나던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조각달’처럼, ‘별들’처럼 사랑하는 ‘생각(마음)만이 깊고/말하지 않는 말’ 중의 하나가 남성과의 ‘사랑’이었다.
성에 자유로웠던 사대부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스스로 성을 억압하고 숨기고 말하지 못했다. 남편의 ‘불륜’을 질투하기만 해도 ‘7거지악’에 걸려 아내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판이었다. 대단한 성 불평등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화자는 어쩌면 외형적 이유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스스로 자기의 사랑을 마음 속 깊숙이 감추어두고 있다.
다음을 보자.
‘사랑을 말한 탓에/천지간 불붙어버리고/그 벌이 시키는 대로/세상 양 끝이 나뉘었었네’. 즉 잘 숨겨두었던 은밀하고도 고결한 화자의 사랑에 마침내 문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자신인지, 상대방인지, 아니면 두 사람 다인지, 하여간 숨겨놓았던 사랑을 누군가가 말로 표현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천지간 불붙어버’렸다. 한 마디로 그들의 주변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에 대한 세상의 ‘벌’로 인해 ‘세상 양끝이 나뉘었었’다. 즉 서로가 아득히 헤어지게 되고 만 것이다. 이 지상에서 사랑의 최대 비극인 이별의 순간이 펼쳐지고야 말았다. 그 까닭은 바로 숨겨둔 ‘사랑을 말한 탓’이다.
그 다음을 보자. ‘한평생/다 저물어/하직 삼아 만났더니/아아 천만 번 쏟아붓고도/진홍인 노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지 오랜 세월이 지나 이미 두 사람 모두 생물학적으로 늙어버린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화자와 옛 연인은 오랜 망설임과 생각 끝에 드디어 어느 날 ‘하직 삼아 만났’다. 즉 머지않은 죽음을 앞두고 더 늙기 전에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결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동안 다 식어버린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사랑’이 아직도 ‘진홍빛 노을’처럼 여전히 피가 끓듯 뜨거운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화자는 깨닫고 탄식한다. ‘사랑은/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즉 말하지 않고 가슴 속 깊이 잘 숨겨둔 사랑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말해버린 잘못을 저지른 사랑 역시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오묘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가사(시) <사랑의 말>은 노래로서 꽤 긴 편이므로 실제로는 그 내용이 많이 축약되고 변형되어 작곡되었다. 다음은 실제의 가곡으로 작곡된 가사 전문이다.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
눈부셔 못 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의 끝방 병풍 뒤에
숨어살았네
그러던 어느 날
해질녘
못 참아 고백한 사랑 하나
그 별이 시키는 대로 세상 양쪽 끝에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 삼아 만났더니
천만 번 쏟아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을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다워라
여기서 원래의 시(가사)와 다르게 표현된 대목은 우선 3행과 4행이다. ‘입술 없는 영혼 안의 끝방 병풍 뒤에/숨어살았네’가 그것이다. 표현만 다를 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상 처음에 발표한 시(가사)와 같은 것이다.
‘입술 없는(표면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영혼(가슴, 마음)의 끝방 병풍 뒤에(아무도 알 수 없는 아주 깊은 곳에) 숨어살았네(숨겨두었네)’가 그 내용이다. 그 다음 5행~7행이 또 원래의 시(가사)와 다르다.
‘그러던 어느 날/해질녘(노년의 나이, 인생의 황혼기)/못 참아 고백한 사랑 하나/그 별(사랑의 신)이 시키는 대로 세상 양쪽 끝에 나뉘었었네’가 그것이다. 고백하면 안 되는 특별한 사랑(그것이 개인적 문제이든 사회적 문제이든간에)을 고백한 죄(?)로 두 사람의 연인은 아득히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행 ‘사랑을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다워라’은 원래의 시(가사) ‘사랑은/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가 변형된 것이다. ‘사랑은’은 대상을 주격화시켜 의미 부여를 한 것이고, ‘사랑을’은 ‘아름다워라’의 목적격으로 쓰인 것이다.
‘아름답구나’를 ‘아름다워라’로 변형시켜 종결 처리한 것은 ‘아름답구나’보다 ‘아름다워라’가 시적으로, 음악적으로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답’의 받침을 없애고 ‘~구’의 기역 대신 그보다 부드러운 단음인 유성음 이응으로 바꿈과 동시에 ‘~나’를 ‘라(리을도 유성음)’로 바꿈으로써 좀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운율적(음악적) 발음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사랑’은 속으로 감추어도 말하는 잘못을 저질러도 모두 다 아름답다. 왜냐하면 ‘사랑’ 그 자체가 너무나도 뜨겁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가사 <사랑의 말>은 우리에게 속삭이듯 이런 메시지를 전해준다.
‘사랑하라, 그러면 그대의 생애가 아름다워질 것이다.’라고…!
- 일당산 곰지기 계곡에서
글쓴이 정성수(丁成秀)는
1945년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하였다/시집으로 중3때 낸 첫시집 <개척자>를 비롯하여 <사람의 향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누드 크로키> <기호 여러분 > 등을 출판하였다. 제1회 한국문학백년상, 제7회 앨트웰PEN문학상, 제4회 김우종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문단윤리위원,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문화정책위원장, 경기지역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평론까지 올려주신 정성에...
김남조!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인이지요.
지금도 다름이 없는...
시집이며 수필집이며
젊은 날부터 탐독하듯 가까이 했던 김남조.
글 한 줄에
시 한연에
얼마나 가슴을 떨며 끌려들었던지...
구사하는 어휘력이 가장 훌륭하다는 김남조 시인입니다.
젊은 날, 김남조 시인이 많이 아끼는
후배 시인과 참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분에게 많이 배우고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한 저이기도 합니다.
가까운 해외에서 살 때 이웃이던...
그래서 어쩌다 시낭송회에서,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되면
일부러 쫒아가
인사를 드리곤 했지요.
수필집도,
새로 출간한
시집도 보내주시던 김남조시인이셨습니다.
김남조의 ‘편지’가 너무 아름다워서
물은 적이 있었지요.
언제 쓰신 시냐고...
50대 초반이었다고...그토록 마음이 흔들리던 시절이었구나!
혼자 기쁨으로 상상을 했지요.^^
김남조의 시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오묘한 여인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깊이 출렁이지요.
저의 느낌일 뿐이지만...
여기<사랑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진하게 전해오는...
진하고 내밀하게 간직한 소중한 사랑의 언어들이...
얼마 전 첫 시집이후 60년의 세월,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출간했습니다.
독실한 캐톨릭 신자이신 시인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영성의 길로 접어들며
종교적 경건함과 신성함을 지상의 사랑으로 이야기 하십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한 편 소개할게요.
혈서
은밀한 혈서 몇 줄은
누구의 가슴에나 필연 있으리
시간의 시냇물 흐르는 동안
글씨들 어른 되고
늙었으리
적멸의 집 한 채엔
고요가 꽉 찼으리
너무 늦었다거나
아직 아니라거나
그런 말소리도 잦아들었으리
사람의 음성은
핏자국보다 선명하기에
김남조
이 노 시인(86세)의 은밀한 혈서 같은,
한세월 통해 오늘에 이르른 시론이 아닐까 합니다.
노병
나는 노병입니다
태어나면서 입대하여
최고령 병사가 되었습니다
이젠 허리 굽어지고
머릿결 하얗게 세었으나
퇴역명단에 이름 나붙지 않았으니
여전히 현역병사입니다
나의 병무는 삶입니다
나지막하고 섬세한 목소리로
아직도 현역임을 당당하게 선언하는
제가 좋아하는 노 시인 김남조입니다.
너무 길었네요.
김남조 평론에 끌려들어가...^^
이 좋은 시간,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많은 노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좋은 님!^^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