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마당 깊은 집 (문지클래식)
저자: 김원일
발제: 이정심 (고마리)
장소: 김해 다어울림 문화센터. F4/워킹룸
일시: 2024년. 5월 24일. 금요일 저녁 7시.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무언가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이가 아직 존재하는가? 떠나는 이들로부터 남겨진,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되는 반지와 같이 견고한 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오늘날 격언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벨터 벤야민, 경험과 빈곤 중에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고대 페르시아 전쟁사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 전쟁사의 한 토막에 페르시아에 성이 함락되어 포로가 된 비참한 이집트 왕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포로가 된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토스를 성문 밖에 앉혀 놓고 왕의 딸들에게 노예 복장을 입혀 물동이를 아고 지나가게 하자 왕은 무슨 상황인지 알았지만, 고개만 숙입니다. 계속해서 페르시아 왕 캄뷔세스는 이집트 왕의 아들들의 목에 밧줄을 채우고 입에 제갈을 물린 후 처형장으로 끌고가는 모습을 프삼메니토스에게 보여주지만, 왕도 굳건히 고개만 숙이고 쳐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치욕의 행렬이 모두 끝나자 왕은 고개를 듭니다. 그 때 왕은 군중 속에서 구걸하는 중늙은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립니다. 심지어 자신의 머리를 치면서 옛친구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통곡합니다.
어떠신가요? 우리에겐 생경한 2500여 년 전, 고대 전쟁사의 한 부분이기도 해도 이집트 왕과 중늙은이의 조우 장면은 읽는 이를 슬프게 만들고 연민을 불러 일으킵니다. 영광과 굴욕이 찰나하는 순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화양연화'가 가슴을 탁 막히게 만듭니다. 이야기의 전모를 몰라도 배경지식이 없어도 사람이라면 응당 지녀야할 '인간적인' 면모가 가슴에 그려지는 것이지요.
5월 독토는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대구로 몰린 피난민들의 이야기는 한 겨울 입김처럼 길고 하얗게 내뿜어 지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처럼 마당이 깊다는 집은 삶의 바닥조차 찍지 못하는 군상들의 깊은 골짜기인가 봅니다.
작가는 작품의 7할은 실제의 사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허구의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생각할 독자는 없겠지요. 기본적으로 소설을 읽는 독자는 사실과 허구를 분석해 보겠다며 텍스트를 접하지 않을테니까요. 작품은 1954년, 대구 어느 동네의 한 집에 모여 살았던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전쟁 휴전 후 빈번했을 이데올로기에 관한 갈등도 또한 충분히 있을 법한 계급에 대한 적개심도 시대에 대한 울분도 딱 그 분량만큼, 커피에 타는 설탕처럼 알맞게 섞여 있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시절의 살림살이가 오히려 담박하여 제가 겪어왔던 세월의 표준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행간에 서려있는 작가의 과잉되지 않는 감정은 읽는 이들의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똑바로 날아오는 화살을 아프지만 견뎌야하는 과녁처럼 말이지요.
금번 발제는 고마리 이정심 님이 선뜻 맡아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텍스트 [마당 깊은 집]은 TV 문학관을 볼 때 덮어 쓴 낡은 담요처럼 몸들이 모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요.
많은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