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이야기소리로 시끌시끌하던 전주 덕진노인복지관이 음악과 함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이 음악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하고 그 끝을 따라가보니 그곳에 '덕진노인방송국'이 있다. '방송중'이라는 빨간색 글자가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을 준다.
그곳에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를 살고 계시다는 어르신들이 있다. 어르신들의 ‘제2의 삶’이 안팎으로 이슈인 요즘, 스스로 원하는 일을 찾아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다른 어르신들에게 뿐만 아니라 시대의 불운을 탓하며 아파하고 있는 우리 청춘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
덕진노인방송국은 2010년 4월 1일에 개국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 방송을 하고 있다. 방송 앞뒤로 30분씩은 음악만 방송되고, 12시부터 약 30분동안은 어르신들의 방송이 진행되는데, 그 내용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세상의 새로운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고, 노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건강상식이 방송되는가하면, 시를 읊어주기도, 우리의 흘러간 옛 가락들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 모든 내용은 15명으로 이루어진 덕진노인방송국의 어르신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것들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젊었을 때 방송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동경했었죠.
그러다보니까 교육을 받는게 재미있었고, 욕심도 생기더라구요.
-덕진노인방송국 편집부장 문장화
덕진노인방송국은 2008년 전주시민미디어센터(이하 영시미)의 공동체 미디어 교육 이후 개국되었다. 처음부터 라디오 방송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전주 내에 노인 1인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자 사는 노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혹은 노인들의 인권을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신문을 먼저 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문이 ‘솔래복지저널’이었다. '솔래복지저널'은 노인 인권신문이 부재한 상황에서 다방면으로 영향력을 떨쳤다. 자녀들에게 학대받는 등 불우한 노인들을 취재하기도 했고, 복지관 주변 시설과 관련한 건의를 적극적으로 하기도 해 상당부분 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2년간 매 분기별로 만들어지던 신문이 조금 더 발전한 형태가 오늘의 '덕진노인방송국'이다.
'덕진노인방송국'의 든든한 초석이 되었던 영시미의 '나도 라디오 스타다!'는 10주가량의 라디오 제작 교육과정이다. 과정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이를 통해 라디오라는 매체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하고, 그 제작과정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특히 현직 라디오 제작자, 아나운서, 기자 등의 특강과 직접 원고를 쓰고 녹음까지 해보는 실습과정이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년 정도 노인인권신문을 만들었었는데, 그게 어느 순간이 되니까 한계가 오더라구요.
매 호 1,000부 정도 발행을 했었는데, 그 파급력이 어르신들이 애쓰시는 것에 못미치는것 같기도 했고요. 그 때 영시미에서 '공동체 라디오' 교육을 먼저 제안해왔고, 그것을 계기로 과감하게 라디오로 전환하게 됐죠. 하다보니까 이게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 덕진노인복지관 김성준 팀장
영시미는 라디오를 통한 퍼블릭 엑세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2005년부터 시민라디오를 통해서 각 연령대별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없는거예요. 마침 복지관과 활동을 하면서 노인복지신문을 알게됐고, 이분들이 라디오를 진행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드렸었죠.
- 영시미 고영준 팀장
하지만 단 10주만의 교육과정으로 오늘의 '덕진노인방송국'이 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아니었다. 라디오 제작 교육과정 후 다양한 방식의 퍼블릭 엑세스 활동을 펼쳤고, 어르신들이 직접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면서 방송국을 개국하게 되었다. 그러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방송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벽보를 보고 발을 디디게는 됐는데, 아무것도 할줄아는게 없었죠. 처음에는 목소리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작가도 있어야하고, PD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많은 역할들이 필요하더라고요.
우리는 전문가가 없으니까 각자 자기가 기획하고 원고도 쓰고, 자기 목소리로 녹음해서 방송을 내보내고 있어요. 여기 있는 모두가 작가이자 DJ고, PD인 셈이죠.
- 덕진노인방송국 박춘미
방송국을 개국하고도 한참동안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젊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개국 5년차인 지금은 녹음, 송신, 송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작과정을 덕진노인방송국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체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죠. 특히 원고 작성하는 게 힘들어요. 그치만 자꾸 하니까 되더라구요. 용기도 생기고. 이 나이에 뭔가 한다는 자부심도 생기고요.
- 덕진노인방송국 편집부장 문장화
내 방송을 누가 듣는거지, 누군가 듣고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더라구요. 청취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는 우연인지 조회수도 상당히 많아졌어요. 요즘은 이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많다면 '일생을 걸어도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 덕진노인방송국 기술부장 조흥만
누군가는 고작 30분 방송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300분 이상의 노고가 필요된다. 실로 덕진노인방송국의 어르신들은 출근하듯 이 곳, 덕진노인방송국을 찾는다. 박춘미 선생님은 "내 집처럼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게 제일 좋은거죠"라며 방송국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노인들이 할 게 별로 없다.
장기나 바둑말고 뭔가 새로운 것을 접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수 있는 '新노년문화'를 일구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방송은 거기에 목표를 두고 있다.
-덕진노인방송국 국장 윤무영
라디오방송만 진행하던 덕진노인방송국은 앞으로 영상방송도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상방송은 라디오방송보다 훨씬 더 많은 노고가 들겠지만, '하고자하는 의지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어르신들은 빛이 났다.
각 지역, 각 상황, 각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때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진정성의 힘이다. 덕진노인방송국 이전에는 전주 지역에 노인 라디오 방송국이라는게 없었다. 그야말로 어르신들이 그네들의 이야기를 직접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서 덕진노인방송국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덕진노인방송국의 방송은 덕진노인복지관 관내에 송출하는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언제든 인터넷을 통해서 다시 들을 수 있다. 어르신들의 오늘을 들으며, 우리의 오늘을, 또 내일을 상상해보는건 어떨는지.
글 _ 인터뷰팀(김명아, 문연옥, 박찬선)
첫댓글 우리 덕진노인방송이 서울까지 소문이 나서 서울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직접 찾아와 인터뷰를한 내용을 미디어스코프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생각되네요. 열심히 노력합시다. DSB 화이팅!!!
서울까지소문이났어요? 열심히 하다보니 이런일도 있네요.더 열심히 해서 우리도 서울 한번 가요 모두가 국장님의 리더십 덕분이지요 지난번엔 mbc 에서도 나왔는데ᆢ더 열심히 하라는교훈으로알고 재미있고알찬내용으로진행하겠읍니다.dsb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