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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람 봄바람>에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의 열정을 지닌 "심작가" 역을 맡아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충무로에서 장현성은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그의 닉네임은 "마이너 설경구’로, 이것은 장현성에 대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아직 뜨지는 못했지만, 대단히 좋은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인 것이다. 하지만 ‘뜨지 못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연극계에서 그는 알아주는 스타였으므로. 그러니 장현성을 몰라보는 건 스스로 ‘문화 무지랭이’라는 걸 자백하는 꼴인 게다. 영화 데뷔 전 장현성은 설경구와 무려 7년간을 ‘붙어먹으며’ 연기에만 미쳐 살았다. 그 열정에 힘입어 몸치였던 그는 불과 몇 달 만에 ‘비’처럼 날렵한 춤꾼이 될 수 있었고 몇 십만원의 월급으로 추운지 배고픈지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연극계를 벗어나 영화에도 나오고 드라마에도 나온다. 그러나 그 행위에 ‘외도’란 이름을 붙이기는 어쩐지 머쓱하다. 외도는 ‘메이저’ 배우만이 할 수 있는 것. 장현성은 아직 ‘마이너’ 배우이지 않은가. 통장에 잔고가 쌓이면 그는 아마 주저 없이 본향으로 돌아가 연극 시나리오를 뒤적이리라. <비디오를 보는 남자>에서 그가 연기한 비디오맨처럼 장현성은 편하고 따뜻했다. 종종 재치 있는 입담을 부려 웃음을 주는 것 까지 비슷했다. 다만 비디오맨이 무기력한 룸펜이었다면 장현성은 조용하지면서도 역.동.적.인. 사람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행복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영화가 기획된 지 8년 만에 개봉을 하는데 감회가 어떠세요? 감사하고 좋죠. (웃음)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어서 그 동안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엄밀히 얘기하면 <나비>가 첫 주연작이지만 그 때는 세 명이 공동 주연을 맡았던 거라 원톱으로 간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죠. 음…. 그런데 배우는 한 작품을 끝내고 난 후 그것을 빨리 잊어버려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비디오를 보는 남자> 이후에 계속 다른 작품을 해왔고, 그래서 그다지 마음고생은 없었어요. 우문입니다만 1년 반 만에 보는 필름에서 아쉬운 점은 없으셨나요? 지금 하면 더 잘 할 것 같아요. 게다가 제가 이 영화의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끝까지 참여를 했거든요. 제작 과정 전부를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배우에게는 그게 별로 좋지 않은 같아요. 연기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자본 때문에 부득이 바뀔 수 밖에 없었던 장면들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마지막 즈음에 제가 실연 당하고 바닷가에서 캔맥주 마시는 장면이 있잖아요? 원래의 콘티는, 바람이 스산하게 불고 낙엽이 막~ 떨어지는 유원지에 제가 앉아있어요. 그리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유원지 나무 꼭대기에 으레 달려있는 세 개짜리 음질 엄청 안 좋은 스피커. ‘흑석동에 누구 엄마, 지금 아기를 보호하고 있으니 어서 오세요’ 뭐 이런 방송 나오는. 그 치직 거리는 스피커에서 패티김씨의 노래 "이별"이 흘러 나와요. 그 노래가 휩싸고 도는 휑한 유원지를 카메라가 부감으로 잡아내죠…. 저는 그 장면이 시나리오상에서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콘티가 바뀌었죠. <비디오를 보는 남자>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재작년 12월에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나비>를 봤는데, 줄 게 있으니 잠깐 보자고요. 그래서 대학로 ‘학림’이라는 제 단골 카페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감독님을 만났어요. 시나리오를 전해주시면서 ‘굉장히 환경은 열악할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나비>를 그런 환경에서 찍어봤기 때문에 사실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 이미 몇 편의 시나리오를 받아 둔 상태라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했죠. 그런데 감독님이 갑자기 제 손을 덥석 잡으시면서, 영화 제작사에서 지금 송년회를 하고 있으니 함께 가자는 거에요. 하도 막무가내로 저를 이끄셔서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함께 갔어요. 시즌이 시즌인지라 길은 막히고 거리는 굉장히 쓸쓸한데 크리스마스 캐롤이 그 황량한 거리에 울려퍼지고…. 그 때 감독님이 예의 그 패티김씨의 노래를 틀어주셨어요. 스피커가 좋아서 그랬나? (웃음) 여하튼 그 순간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에서 내리기 전에 한다고 했죠. 송년회 파티에 가서는 술 진탕 마시면서 ‘이 영화 잘 될 거에요’ 큰소리 뻥뻥 쳤고요. (웃음) 영화를 보면서 참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였겠다 싶었어요. 결혼한지 두 달 째 되는 때에 이 영화를 했는데 준비하면서 이혼당할 뻔 했어요.(웃음) 주인공이 워낙 가족에 대한 애정도 없고 경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회화 되기 힘든 사람이라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어디에 기댈 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이 사람처럼 한번 지내보자 하고 있었는데, 와이프가 사람이 변했다고, 결혼하기 전에는 잘해주더니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매사에 심드렁하다고 굉장히 서운해 하더라고요. (영화가 끝난) 지금은 다시 착해졌어요. (웃음) 비디오맨이 의욕이나 욕망하는 것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끈적하게 버리지 못하는 게 있는 미묘한 사람이던데 연기 포인트는 어디에 두셨나요? <비디오를 보는 남자>는 일상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그 동안 관객들이 본 연애담들은 한결같이 예쁘고, 깔끔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고, 애절하고, 비장했죠. 멜로 영화의 대부분이 그런 쪽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연애라는 게 으레 그래야 하는구나 강요 당하고 있지 않나 싶었어요. 하지만 연애라는 게 소심하고 유치하고 쪼잔한 구석도 있잖아요. 그런 면을 부각시키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던데요? (웃음) 비디오맨의 매력이 있다면요? 보시다시피 제가 유난히 매력적인 얼굴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비디오가게에는 장동건이나 정우성 같은 사람보다는 저처럼 동네 서점 주인이나 고깃간집 주인 같은 느낌의 사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편안해 보이잖아요. 인기가 있었다면 그것 때문이지 않을까요? 주인공이 심지가 굳은 사람이거나 비장한 결단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싶었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원작자이신 임영태 작가님과 캐릭터에 대해 상의한적이 있었는데, 그냥 고요하고 일상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는 사람으로 가기로 했어요. 존재감이 희박한 먼지 같은 사람으로. 결국 비디오맨은 성장하나요?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연애 몇 번 해보셨어요? (돌발 질문이었지만 솔직히 대답했다.) 매번 한 번의 연애가 끝날 때마다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잖아요. 하지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면 거리의 꽃송이들이 나만을 위해 방긋방긋 웃고 햇살이 나만을 향해 비추는 것 같죠. 매 순간이 나에게 너무 안타깝고 절실하긴 하지만 연애는 그것의 단순한 반복일 뿐인 것 같아요. 때문에 비디오맨도 앞으로도 커다란 변화 없이 그렇게 계속 살아가겠죠. 비디오맨 생활이 굉장히 익숙해 보이던데 혹시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뇨. 저는 여러 가지 생활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게으를 땐 너무너무 게으르고, 바쁠 땐 너무너무 바쁘게 지내지만 일반적으로는 저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스타일이에요. 다만 역할을 위해서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면밀히 관찰을 했죠. 배우 이전에는 뭘 하셨나요? 직전엔 군인이었고, 그 전엔 학생이었죠. (웃음) 그 당시엔 연기가 아닌 연극연출을 전공하고 있었어요. 연기자로 전업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나요? 연기를 잘해서는 아니고 연출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음…. 한국 사회에서 연극연출가나 영화 감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존경 받아 마땅해요. 그분들은,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작업하고 있어요. 배우의 경우는 작품이 엎어지면 다른 걸 하면 되지만 감독은 한 작품에 2-3년 이상, 김학순 감독님 같은 경우는 7년 이상을 매달려 왔는데 그게 엎어지면 오갈데가 없거든요. 저는 그렇게 지낼 자신이 없었어요. 연기자로는 어떻게 데뷔하셨나요? 제 첫 작품은 뮤지컬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요. 당시 군대 갔다 와서 복학을 한 후 뇌수막염에 걸렸어요. 학교에서 연극 연습을 하다가 어느날 상대배우에게 토사물을 쏟아 붓고는 기절을 했었죠. 병원에 갔더니 학교를 휴학하고 장기간 치료를 받자더군요. 그런데 열흘 만에, 병이, 별다른 치료를 받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나아버렸어요. 하지만 죽네사네 하도 수선을 떨어놨던 터라 쪽팔려서 학교에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저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울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웃음) 군대까지 갔다 와서 놀 수는 없고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되었고, 무턱대고 찾아갔다가 덜컥 합격을 했죠. 그 당시 제가 지금의 비 만큼 춤을 잘 췄다니까요. (웃음) 춤을 전혀 안 배우셨는데도요? 그 당시 ‘뮤지컬 전문배우’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었어요. 그날 오디션에 온 사람들이 다들 멋있고 잘하는데 저는 사실 춤을 하나도 못 췄거든요. 후문을 들으니, 뮤지컬이 몇 명의 배우들이 드라마를 끌고 가다가 중간에 코러스들이 나와 춤을 추는 형식이잖아요. 연출 하시는 분이 저는 춤이 안되니까 드라마에 투입 시키려 하셨다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대본이 바뀌었고 오갈데 없어져버린 저는 코러스 라인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제가 하도 못하니까 안무 선생님이 ‘넌 제일 구석에서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날부터 잠도 안자고 매일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막상 공연이 열렸을 때는 제가 제일 앞에서 춤을 추었죠. 운명적이네요. 운명은 너무 거창하고 그냥 제 팔자죠. 하지만 저에게는 썩 좋은 경험이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연극, 영화, 드라마는 모든 것이 섞여 있어야 하는 건데 뮤지컬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관객이 좋아할 만한 장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 이거 그 당시 팀원들이 들으면 섭섭해 하겠네….(웃음) 그걸 끝내놓고 나니 ‘학전’이라는 극단에서 <지하철 1호선>을 하고 있더군요. 주연 배우였던 설경구씨가 제 군대 고참이었는데, 포스터를 보니까 떡하니 이름이 있더라고요. 반가운 설경구 병장님 만나러 갔다가 그때부터 함께 연기를 하게 되었죠. 설경구 병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웃음) 술 많이 먹는 병장. (웃음) 경구형이랑은 학전에서 7년을 붙어먹어서 그렇지 사실 군 생활을 함께 오래 하진 않았어요. 저는 포병이고 경구형은 보병이었는데, 경구형이 그 당시 문선대에 있다가 제대하면서 후임병으로 나를 추천했던 거였어요. 문선대에서 일주일에 두 편씩 연극대본을 쓰고 일년에 두 번 촌극을 공연했어요. 처음 들어가니까 선임하사가 역대 고참들이 써 온 눈부신 대본을 보여줬는데 사과상자로 몇 상자나 되더라고요. 그것들 중 한 20% 정도는 경구형이 썼는데 제목이 <희망찬 병영> <그래 우리 이제 시작하는 거야> 등등이었죠. (웃음) 내용은, 주로 망나니 졸병이 무적의 태풍 용사로 거듭나는 거였어요. 연극판이 배고픈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고생도 많으셨겠어요. 고생이라는 건 상대적인 것 같아요. 행복의 기준이 참 애매하잖아요. 처음 연극 했을 때 30만원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 먹고싶은 거 다 먹고 사고싶은 거 다 사고 다니고 싶은 데 다 다녔어요. 와, 그러니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얼마나 많이 버는 거에요. 되게 많이 벌고 있는 거죠. 그때 생각하길 한 달에 백만원만 주면 평생 연극만 하며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고생, 안 했어요. 7년이나 한 연기하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서 서로들 무척 좋으셨겠어요. 매일 술 먹고 공연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황정민, 조승우 이런 배우들도 함께 했는데 승우는 시작한지 5년쯤 후에 합류해서 나와 더블로 공연하곤 했어요. 슬럼프는 없으셨나요? 장기공연을 하다 보니까 한 배역을 4,5개월씩 연기하게 되거든요. 직장인처럼 아침에 나와 몸 풀고 공연하고가 매일 반복되니까 신선도가 떨어지죠. 그래서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했어요. 심지어 여자배역도 했으니까요. (오, 몸매가 좋으셨나봐요) 아니, 몸매가 안 좋은 여자 역할을 맡았어요. (웃음). 많은 작품을 하셨지만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작품은 <불어라 봄바람>이라 할 수 있겠죠. 우정 출연하셨단 말씀이 있던데요? 장항준 감독과 우정이 있어요. (웃음) 장 감독하고는 대학 동긴데, 서울예전에서 몇 안 되는 빨갱이 였죠. 사실, 서울예전 연극과라고 하면 다들 예쁘고 잘생기고 멋졌거든요. 노는 곳도 카페나 나이트클럽이었고. 나도 그런데 가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안놀아줬어요.(웃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문창과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 사람들과 막걸리 마시면서 친해졌죠. 그리고 장항준 감독과는 은근히 서로에게 기대는 친구가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나는 연극계로 갔고 장항준은 방송작가 하면서 시나리오도 쓰곤 했는데 <라이터를 켜라> 전까지는 참 어려웠어요. 원래 <라이터를 켜라>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안 맞아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만 잠깐 나왔던 거고 <불어라 봄바람>은, 시나리오가 굉장히 좋아서 출연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영화가 더 잘됐으면 좋았겠지만…. 장항준 감독은 원체 해맑은 친구라 잘 될 거에요.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보다 백 배는 더 잘 나가는 친구한테….(웃음) <나비> <파괴> <거미숲> 등 실험적인 영화작업을 많이 하셨는데, 비상업적 배우로 고착될까 우려되지는 않으세요? 상업영화에서 저를 안 불러줬을 뿐 작정을 한 건 아니었어요. (웃음) 더러 상업영화에서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건 저랑 코드가 안 맞았고요. 코드가 맞는 작품이란 어떤 건가요? 뭐 특별한 건 없어요. 시나리오에 진정성이 있으면 그걸로 오케이에요. 다른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며 탐이 났던 배역이 혹시 있으셨나요? <라이언 킹>에서 스카 역할이요. 목소리 연기를 제레미 아이언스가 했는데 그렇게 우아한 악당일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겨울 나그네>의 강석우씨 역할. 고등학교 1학년 올라가지 전에 명동에 있던 코리아 극장에서 본 영화인데 그 암울한 시절에 강석우씨가 보여준 퇴폐미가 너무 아름답게 보였어요. 그거 중학생이 볼 수 있는 영화였던가요? 아뇨,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어요. 고등학교 시험에 낙방한, 그 당시 최신 유행이었던 듀란듀란 머리를 한 친구와 함께 간 덕분에 볼 수 있었죠. (웃음) 최근 드라마에까지 영역을 확장하셨는데요. 안성기 선배님 같은 분들은 영화만 해도 생활이 되시지만, 저는 시나리오를 쌓아놓고 골라가면서 생활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연극은 하고 싶으니 통장에 좀 잔고가 쌓이면 연극 시나리오를 유심히 뒤적이는 거고, 잔고가 떨어졌다 싶으면 다시 다른 일을 하는 거죠. 현재 촬영 중이신 <거미숲>은 어떤 영화인가요? 스릴러에요. 장항준 감독처럼 송일곤 감독에게도 우정이 있어 출연하게 되었죠. 내용은, 한 남자가 있어요. 굉장히 끔찍한 살인사건을 목격을 하고 뛰쳐나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코마 상태에 빠지죠. 간신히 깨어나긴 하지만 기억이 왔다 갔다 끊겨요. 그의 유일무이의 절친한 강력계 형사 친구가 더듬더듬 기억하는 파편들을 토대로 사건을 파헤쳐 나가요. 그 형사가 바로 저에요. <거미숲> 이외에 또 다른 계획들이 있으시다면요? 연말까지 드라마 <로즈마리>하고 짬짬이 <거미숲> 촬영하고, <비디오 보는 남자> 홍보하고…. 어휴, 이것만 해도 제 스케쥴은 지금 효리에요, 효리. (웃음) 마지막으로 혹시 지금 "멀리"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으세요? (웃음) 기적이 우네. 이것밖에 없네요. (웃음) 난 구세대인가 봐요. 인터뷰, 정리| 조영주 gobayasi@joycine.com 동영상| 윤현호 |
첫댓글 이 인터뷰도 저기 뒤에 있는건데요...사진이랑 같이 올리면 더 보기가 좋을거 같아서 올렸습니다. ㅎㅎㅎ
언니~ 더 좋아요. ㅋㅋㅋ 근데 어쩌다 지금에서야 보게 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