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틀어주는 음악을 즐기고 싶을 때
오디오도 기계다. 최상의 음질을 위해서는 전원을 켠 후에도 얼마간 워밍업을 해야 최상의 음색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재생하는 음악을 ‘원하는’대로 듣기 위해 소스(CD, LP 등), 앰프, 스피커 등이 상성이 맞도록 일일이 매칭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과 노력이 오디오의 매력이자 기계 작동의 묘미라 하겠지만 가끔은 제아무리 오디오 마니아, 음악 애호가라 할지라도 그저 편안히, ‘내가 트는’ 소리보다 ‘누군가 틀어주는’ 음악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을 게다. 이 순간, 라디오의 존재가 빛을 발하게 된다. 온갖 도구와 격식을 갖춘 ‘다도茶道’가 좋긴 해도 때로는 머그로 간편하게 마시는 커피가 더 맛날 때가 있는 것처럼 라디오는 아름다운 소리를 간편하게 들려주는, 그야말로 대견하고도 대단한 기계라 할 수 있다.
깊이와 감성이 다른 재즈가 가장 잘 어울리는 라디오 헨리 크로스야말로 이러한 라디오의 진면목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닐까. 오디오계의 신화적인 존재이며 스피커 개발에 최고 권위자인 그가 40여 년에 걸쳐 라디오, ‘티볼리 오디오Tivoli Audio’를 개발했다. 여기서 궁금한 사실 하나. 분명 라디오임에도 ‘오디오’라 불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오디오적 라디오’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티볼리 오디오는 폭 12.7cm, 높이 10.2cm, 깊이 12.7cm로 오디오보다는 작고, 라디오보다는 큰 상자 사이즈. 튜너, 앰프와 스피커가 내장된 라디오 전용 오디오로 오디오 전문가들은 이 박스 자체가 ‘음향적인 요소를 고려한 스피커통’이라 말한다. 하나의 상자가 뿜어내는 소리가, 오디오보다 낮은 등급인 줄만 알았던 라디오의 전파를 통해 전해지는 음악이 그만큼 아름답고 풍부하기 때문이다.
오디오 전문가 김남 씨는 오디오 전문 잡지
<하이파이 저널>에서 티볼리 오디오의 음색을 ‘몹시 깊숙하다’, ‘마치 자그마한 흙동굴 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처럼 부드러우면서 찰기와 온기가 있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혹자는‘깊이와 감성이 다른 재즈가 가장 잘 어울리는 라디오’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는 라디오가 아닐까. 티볼리 오디오라 해도 라디오 전파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는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 아닌가. 하지만 티볼리 오디오는 거칠 것이 없다. 티볼리의 FM 튜너에 적용된 갈륨비소화 금속 FET가 웬만한 난청 지역에서도 거뜬하게 신호를 잡아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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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티볼리 오디오의 음색 티볼리 오디오는 오디오 전문가는 물론이고 특히 시각적인 이미지에 예민한 디자이너들에게 인기가 높다. 깔끔하고 단순하며 담담한 듯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빈티지의 감성이 느껴지면서도 모던한 스타일, ‘보는 눈 있는’ 사람들이라면 단박에 그 매력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드라마, 영화 속에서, 무언가 창의적이고 도회적인 직업을 지닌 주인공의 방에는 어김없이 티볼리 오디오가 등장한다. 어찌나 그 모습이 매력적인지 티볼리 오디오 디자인을 흉내 낸 소위 ‘짝퉁’ 티볼리가 시중에 나돌 정도.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명품 가방, 명품 구두가 그러하듯 명품 오디오로서 그 값을 치르고 있는 듯. |
눈썰미가 없다면 이 가짜 티볼리 오디오에 속을 법도 하겠지만, 소리를 듣게 된다면 더 이상 헷갈릴 수가 없다.
제아무리 겉모양 그대로를 따라 했다 하더라도 헨리 크로스가 환생하지 않는 한 깊고 풍부한 티볼리 오디오의 음색은 그 어느 누구라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