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의 가난을 한탄하는
500억대 부자
오월도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동산의 수풀 속 바위에서 온 몸을 하얀 빛으로 감싼 아름다운 자매가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종알거렸다. “전 목사님이 참 부러워요.”
“왜?”
“주님과 사랑에 빠져 늘 행복하게 사시잖아요.”
“과거에 난 가끔씩 혜진이 같은 사람이 부럽기도 했지.”
“정말요?”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루어 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고, 가진 건 전혀 없고,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제가 나중에 엄청 많이 드릴게요.”
“하하! 참 귀한 마음이야.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에요.”
“뭘 원하시는데요?”
“혜진이가 날 부러워하지 않는 것!”
“$#%&^^*.”
분홍색 차림의 어여쁜 유진이 풀잎을 따서 손가락에 감더니, 혜진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혜진아, 솔직히 고백하는데 나도 네가 몹시 부러웠어. 하나님이 내겐 정말 무정하신 것 같았지. ‘왜 하나님은 날 홀대하시지? 내게는 왜 이렇게 적게 주지? 내 인생은 어째서 늘 힘들지?’ 이런 느낌이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어서 괴로웠거든.”
“언니가 날 부러워했다니 뜻밖이에요.” 혜진이 유진에게로 얼굴을 돌이키며 그녀의 손을 잡아 제쳤다. 베이지색 남자가 사족을 달았다.
“남을 부러워한다는 건 자기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주님의 은혜를 진짜 아는 사람들은 결코 남을 부러워하지 않아요. 늘 만족하죠. 몇 년 전에 어떤 목회자에게서 이런 이야길 들었습니다.”
자신의 지인 가운데 5백억 재산을 소유한 부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괴로운 한숨을 쉬면서, 수천억대 부자를 몹시 부러워하더랍니다. 그 목회자는 지인의 한숨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5백억 부자나 수천억 부자는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줄 아셨나요? 아마 당신은 그 수백억 부자에게, 그 정도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거예요. 그러나 그런 생각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웬만큼 사는 보통 사람들, 즉 살 집이 있고, 4계절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고, 자가용 승용차가 있는 사람들은 세계 몇 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부자라고 하죠?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하게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대단히 소박하지 않아요?
큰 부자 앞에서 기죽지 않으려면
“목사님, 그 부자 얘기, 저희 엄마 얘기가 아녜요?” 혜진이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유진 자매가 왜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진짜로 적게 가져서?”
“그보다는, 소유욕과 비교 의식의 발로였겠죠?” 핸섬한 준범이 유진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맞아요. 자신의 행불행,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기준이 잘못된 거죠. 불행히도,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 직업, 재물, 집 크기, 사회적 성공 등만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난한 자는 부자 앞에서 기가 죽습니다. 또 교회는 부자와 빈자를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사회적 지위와 돈 있는 자를 쉽게 장로로 세우고······.”
여기에 성도가 별로 없는 개척교회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가 큰 교회 목사님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고 합시다. 그런 한탄이 어디서 나오는 거죠? 성도수가 적은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는 생각과 탐욕에서.
자신은 스스로가 남보다 신령하다고 생각하겠지만(‘나 같은 신령한 종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적게 맡기시다니 너무하신다!’), 그의 이런 불만 자체가 신령하지 못한 거죠.
단언하는데요, 교인수의 많고 적음은, 큰 목사인가 못난 목사인가를 알려주는 풍향기가 아닙니다! 대형아파트에서 사는가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가는, 사람의 크기와 결단코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유진 자매는 아주 크고 높고 부유한 소수 특권층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네?”
“하나님과 천사들이 볼 때.”
“사람들은 우습게 알잖아요?” 혜진의 말이다.
“무슨 소리? 난 그렇게 보지 않아.” 준범이 히죽거렸다.
“세상 사람들은 가짜 가격표에 속은 도선생 같으니 당연하죠. 진짜 골동품을 우습게 알아요. 우리만큼은 멍청하게 가짜 가격표에 속지 말아야겠죠. 이 세상 100년은 무한대의 영원과 비교하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잠깐 살면서 남보다 좀 적게 누린다고, 실은 세계인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엄청 많이 누리고 있는데도, 그렇게 괴로워할 이유가 없지 않아요?”
“이젠 부자들이 부럽지 않아요.” 유진이 배시시 웃으며 준범을 쳐다보았다.
“하나님이 유진 자매에게 은밀히 주신 수조경해··· 무량대수 원 상당의 최고가 골동품들을 발견했기 때문일 거예요. 겸손, 평화, 거룩함 등. 사랑이 가득한 자가 가장 부유하고 높고 큰 사람입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보면, 비까번쩍 잘나가는 사람들이······.” 혜진이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서는 눈에 보이는 게 최고죠. 그러나 잊지 마세요. 가장 무서운 건, 마지막 뚜껑을 여는 순간입니다. 그날에 골동품 가게 주인이 진짜와 가짜를 분리시킬 겁니다.”
성도 수천 명인 큰 교회 목사님과 교인 수 30명도 되지 않은 작은 교회 목회자가 있습니다. 세상과 교계는 전자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알아줍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존경스러운 분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그러나 만일 후자의 거룩함, 겸손과 사랑, 영적 지식, 지혜 등이 전자보다 훨씬 더 탁월하다면(제가 알기로,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하나님과 천사들은 후자를 더 존귀한 사람으로 인정해줍니다. 천국에서도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높은 지위와 귀한 보화를 누립니다!
“천사들에게 인정받으면 진짜 좋겠다!” 갑자기 혜진이 얼굴을 활짝 펴고 소리쳤다.
“혜진이도 이젠, 거룩함의 추구에서, 즉 주님 닮기를 얼마나 사모하느냐에서 자부심과 존재가치를 찾아야 해요.”
그가 혜진의 반응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예수님은 가장 존귀하고 부유한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을수록 존귀해지며 부유해지죠.”
그리고 고개를 돌려 준범에게 물었다. “지구 전체 가격이, 현재 시가로 얼마나 될까요?”
“네? 지구 전체요?”
“그 가격으로도 천국의 집 한 채 살 수 없어요. 천국의 집에 비하면, 이 세상의 가장 값비싸고 화려한 궁궐도 쓰레기통과 같아요.”
“하지만 천국은 천국이고, 세상은 세상이잖아요.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고.” 혜진이 다시 볼멘소리를 했다.
“참 좋은 지적이에요. 그러나 현세와 내세는 종이 한창 차이죠? 지금 죽으면 바로 내세니까. 또, 천국과 세상, 그 때와 지금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구분은 되지만. 세상 속에 천국이 내려와 있고, ‘지금’ 속에 ‘그 때’가 들어와 있어요. 그러므로 둘을 분리시켜, 천국 따로 세상 따로, 신앙생활 따로 사회생활 따로 생각하는 건······.”
“눈멀고 위선적인 삶이겠죠?” 준범이 혜진의 눈치를 살피며 거들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세상과 지금은 잠시, 천국과 그 때는 영원이라는 걸.”
혜진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땅에서 가진 것, 맡은 것, 누리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재지 말고, 저 하늘과 새 하늘 새 땅에서 가질 것, 맡을 것, 누릴 것으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헤아려야 해요.”
세상은 불공평한가?
“목사님, 그래도 외적으로 적게 가진 게 괴로울 때가 간혹 있어요.” 유진의 솔직한 고백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보다 백만 배 더 진하게 우릴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약간이라도 안다면, 결코 괴로워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단언합니다. 유진 자매는 지금 분에 넘치는 사랑과 은혜와 복을 하나님께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네, 그건 사실인 줄 아는데······.”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무섭고도 큰 죄인들인 우리가 언감생심 천국을 꿈꾸다니요? 천국에서, 새 땅에서 왕 노릇하다니요? 주님이 친히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영적으로 길러주시다니요!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산길에서 이름 모를, 아주 작은 들꽃 몇 송이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찬탄을 금치 못하며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느 날은, 황홀한 꽃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내가 천국에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솔로몬의 화려 찬란한 의복도 이 꽃 하나만 못했다 하신 주의 말씀이 실감났습니다.
우리는 주의 큰 자비로 주님을, 천국과 지옥을, 말씀과 기도의 영성적 부귀영화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의 놀라운 편애로 우리는 신적인 인격이 점점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총애를 받고 있는 우리가 왜 세상에서 편히(?) 잘 사는 듯한 이들과 자신을 비교해야 합니까?
우리 주님이 몹시 안타까워하십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네게 얼마나 잘해주고 있는데. 장차 받을 저 하늘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니? 너는 그 때 가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한없이 감격할 것이다! 아, 너는 아무 것도 모르고, 세상의 썩을 것만 좋아하고 있으니, 내 속이 타는 것 같구나! 네게 부족함이 있었느냐?
“목사님, 하지만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아요.” 혜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풀잎을 질겅질겅 씹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건 아니고?”
중증 장애우 송명희 시인은 “공평하신 하나님”을 노래했죠? 이 세상만을 보면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것 같지만, 사실은 다릅니다(눅 16:25 참조).
불공평한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겔 33:17). 제가 증명해볼까요? 매일 호화 파티를 열며 최상의 행복을 누리는 듯한 엄청난 부자. 최악의 불행 속에 갇힌 듯한 병든 거지. 이 둘이 서로 멀리 타국에 떨어져 있었던 게 아니죠. 그 부자는 대문을 열기만 하면 병든 거지 나사로가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공평한 상황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불공평한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요? 하나님이? 사람이! 부자에게 공평, 정의, 자비 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병든 거지 나사로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그의 몸을 치료해 주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 십 년 동안 예수를 믿었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제게 잘못하신 적이 없고, 제게 원망 들을만한 일, 실망스러운 일, 불공평한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하나님을 향해 괴로워하거나 낙심하거나 죽고 싶어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과 배려에 대한 저의 전적인 몰이해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주님의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크나큰 죄악이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클수록, 그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의 아픔은 큰 법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므로 당신이 주님을 원망하면, 주님의 가슴은 칼로 난도질당하듯 아픕니다! 아, 사랑하는 자매여, 주님의 마음을 헤아립시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거나, 혹은 나보다 남에게 잘 대해주신다거나,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느끼는 건 엄청난 착각입니다.
혹시 당신에게만큼은 하나님이 잘못하셨나요? 그러면 하나님을 용서하십시오! 말이 안 된다고요? 그러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말 1:2).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그 증거를 대보라(미 6:3).
가난과 고난 속에서 남의 가정에 더부살이를 했던 성녀 젬마(1878-1903)는, 받은 은혜가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되어, 주님께 이 은총을 거두고 더 낮은 단계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자주 간청했습니다. (우린 남보다 더 큰 은혜를 못 받아 배 아픈데!)
이때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네게 주어진 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내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보잘 것 없고 가련하여 너를 나의 도구로 써보려는 거다”(장면 편역, <성녀 젬마>. 이하 젬마 관련 인용은 모두 같은 책에서).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보다 목사님을 더 사랑하시지 않나요?” 혜진이 물었다.
“아니오! 똑 같이 사랑하십니다(행 15:9).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이에요. 획일적인 방식으로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이나 우리나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사실, 세상 만물이 모두 똑 같은 한 종류뿐이라면, 세상이 존속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 사랑의 방식이 각자에게 다르니까 우리가 서로 의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방식이 다르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지위, 혹자에게는 재물, 어떤 이에게는 특이한 영적 은사······. 그 밖의 다양한 인생 경험들이 하나님 사랑의 상이한 방식들이에요.”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는 딸 하나와 두 아들이 있습니다. 큰 아들을 저는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하게 사랑합니다. 그 애의 아름다운 찬양 소리를 듣고 있으면 참 행복합니다. 저는 그 아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둘째 아들을 저는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하게 사랑합니다. 그 아이는 매사가 치밀하고 정확합니다. 그 아이는 영적인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많은 책을 섭렵합니다.
막내인 딸은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하게 사랑합니다. 그 아이의 노래 소리는 저의 심금을 울립니다. 효성이 지극한 그 애의 행동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때로 나를 울립니다. 생각만 해도 사랑스럽습니다. 지상과 천상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특별하게 사랑하십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고백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산등성이로 태양이 넘어갈 때 네 남녀는 잔디 위에 엎드렸다.
주님, 저는 분에 넘치는 축복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게 너무나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것 줄까, 저것 줄까’ 헤아리시며 좋은 것은 죄다 내려주시니, 눈물 뿌려 감사드립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저를 이렇게 큰 사랑으로 세심하게 보살피고 인도하시며, 이토록 행복한 천국을 제 가슴에 내려주시는데, 저는 주님의 가슴에 실망과 아픔만 안겨드리니, 죄송함과 미안함,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오, 사랑하는 아버지여,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어,”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아버지, 저를 아버지의 집에서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
내 딸아, 내가 너를 아주 많이, 많이, 많이 사랑한단다. 네게 너무나도 주고 싶어서 네가 보면 기절할 정도의 값진 보물들을 예비해 놓고 있단다!
오, 주님,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팔푼이, 얼간이 같은) 저를 왜 이다지도 사랑하십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니, 전 너무나 행복하며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적게 가져서 괴로운 당신께. 당신이 소유한 최고로 값진 보물(그리스도 닮기), 당신이 하나님께 받는 분에 넘치는 복, 그리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애독자님, 죽음의 방을 지나면서 당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문제, 육적 탐욕의 실체를 발견하셨나요? 이제 어디로 갈까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행복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얼굴은 미남이었을까요, 추남이었을까요? “사랑의 방”으로 애독자님을 안내합니다.
*********
(다음 장으로 계속됨)
샬롬.
2020. 9. 12.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