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만두 가게
一 松 韓 吉 洙
필자는 33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나서도 무료하거나 허탈하고 따분한 감을 느끼지 못하고 뜻있는 생활을 하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것은 구의역 부근 동부법원 앞에 있는 법무사 조중환, 나희숙사무소에 매일 출근하면서 정식 사무원의 신분으로서 새삼스럽게 세상의 물정도 익히고 법무사 일도 거들면서 2017년 2월 말일까지 20여 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라, 사람이 가는 곳마다 푸른 산은 있다더니 이곳 법무사 사무소에서도 필자가 하여야 할 업무가 있었다. 그 일이라는 것은 주로 민원인이 상대방에게 보내는 내용증명서 작성이나 합의서 작성, 이의서나 진정서 작성 등 문인으로서 적성에 맞는 내용을 주로 맡아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따른 수수료는 단 한 푼도 필자가 직접 챙기지는 아니했다. 그 덕택으로 법원의 배심원 후보로도 참여를 했고 법원조정위원으로 추천도 받은 일이 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글을 읽고 식당개도 3년이면 나면을 끓인다.’는 말이 있는데 필자도 인간사 희로애락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다 보니 나름대로는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법무사 부재중에 찾아오는 민원인의 애타는 이야기를 듣고 체증이 뚫리는 시원한 답변을 해 줘야 하는데 그것을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또한 쉽게 방안이 떠오르지 아니하여 민원인을 옆 사무실로 안내해 주곤 하면서도 세상사 밑바닥의 실상을 많이 터득했었다.
강변역 부근에 있는 필자의 집에서 사무실까지 1km의 거리를 오가는 길가에 어느 때 보니 손바닥만 한 공간에 누가 기묘하게 만두 가게를 오픈하였다. 이 건물은 2층 건물인데 장성루라는 중화요리점이 2층에 있어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밑에 약 1평 내지 1.5평정도의 공간이 있는데 이곳을 잘 활용한 명작이 이 만두 가게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솥을 걸고 20대의 젊은이가 서서 만두를 찌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곳은 앉아서 만두를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공간은 없고 손님은 그냥 길가에 서서 만두를 사가지고 가는 포장판매행위를 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퇴근하면서 만두를 사가지고 가는데 왕만두 1개에 1.000원이라 값도 아주 저렴했다. 이곳에서는 박리다매를 하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만두 값은 싸고 맛이 있어서 필자의 단골가게가 되었다.
하루는 필자가 만두를 사면서 물었다.
“이곳 장소로 보아 이 만두는 공장에서 만든 것을 받아다가 찌기만 하는 거요?” 하였더니 주인 왈
“아니요 여기에서 반죽도 하고 만들기도 해요.” 하면서 몸을 약간 비껴서니까 주인 몸으로 가려졌던 뒤쪽이 보이는데 20여세의 젊은 여자가 바닥에 앉아서 밀가루반죽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생존경쟁의 한 장면이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젊은 남녀가 몸이 부딪치는 좁은 공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저렇게 애를 쓰고 있는 현실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젊은이들의 땀이 섞여서 이집 만두는 맛이 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는 필자가 조금 많은 양을 주문했더니 덤으로 1개를 더 준다고 하기에 그만두라면서 받지를 아니했다. 그 애틋한 현장을 보고서 사람으로서 어떻게 덤을 받을 수가 있는가 이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만두를 사가지고 단골이발관에 들려 이발을 하려는데 이발사가 오늘은 너무나 바빠서 점심을 굶었다고 하기에 만두 2개를 주었다. 그랬더니 이발사가 그걸 베어 물면서 이발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맛이 있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물론 맛도 있겠지마는 점심을 굶은 뒤인지라 더 맛이 있었을 것이다.
어데서 샀느냐고 묻기에 여기에 오는 길가에서 샀다고 했더니 자기는 그곳을 벌로 그냥 지나다녔는데 그 집 만두 맛이 이렇게 좋은 줄을 몰랐다면서 집에 가면서 사가지고 가야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필자가 우연히 단골을 한 사람을 맺어준 꼴이 되었다.
이 이발관은 필자의 20여년 단골인데 처음에는 남자분이 조발을 하고 부인은 면도와 세발을 했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드니 남자 주인은 2선으로 물러나 집에서 밥을 짓거나 빨래 등을 담당하고 면도를 하던 부인이 아예 전부를 맡아 혼자 이발관을 운영함으로서 역할이 뒤바뀐 곳이었다.
그 뒤로 꾸준히 만두거래를 해 왔다. 하루는 만두를 사려고 갔었는데 젊은이가 담배를 피우다가 필자를 보더니 얼른 담배를 감추고는 한숨을 쉬고 서 있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집 주인이 가게 세를 올려 달라고 하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도 타산이 맞지 않아서 이를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 중이요”라고 하며 시름에 젖어 있었다. 아닌 말로 미친년 볼기짝만한 곳에 세를 놓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아니한 노릇인데 거기에다가 세를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는 치사한 짓이 모기낯짝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뒤에도 만두가게는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인가 퇴근하면서 만두를 사려는데 남자주인은 없고 젊은 여자가 떡 아기를 안고 만두를 팔고 있기에 어떤 아기냐고 물으니 자기가 나았다고 한다. 그 좁은 공간에서 밀가루반죽을 하여 만두를 빚어 찌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아이를 갖고 낳아서 이제는 세 식구가 생활전선에 나섰으니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만두가게에 또 큰 시련이 닥친 것 같았다. 하루는 아침에 출근을 하다 보니 부인은 애를 업었는데 두 내외가 솥을 뜯어서 길가에 내다 놓고 코를 빠치며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는걸 보았다. 그래서 이건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현장에 다가가서 물어 보았다.
“왜 장사를 접으려고 하나요?”
“집 주인이 재건축한다고 나보고 이사 가라고 그래요.”
“그러면 이 근처로 옮기나요?”
“이 근처는 싼 가게가 없어서 상계동으로 이사 가려고 해요.”
“이 근처로 이사를 하면 나는 계속해서 단골을 삼으려고 했는데 . . . .”
하는데 아이를 업은 부인은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서 울고 있었다. 두 젊은이가 살려고 애를 쓰는데 하늘은 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시련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를 본 필자의 마음도 짠해서 더는 말이 나오지 아니했다. 차라리 이 현장을 보지 아니했거나 그냥 지나칠 것을 하는 후회도 했다.
그때에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요, 지불생무명지초地不生無名之草라 하늘은 녹이 없는 사람을 낳지 않았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저 젊은이들의 앞날에도 화사한 꽃이 피는 날이 꼭 오리라는 생각이 들자 언짢았던 마음이 약간 풀리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두 젊은이에게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사노라면 반듯이 쨍하고 햇볕 드는 날이 있을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봐요.” 그랬더니 젊은이도 눈시울을 붉히면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하며 필자에게 고개를 꾸벅하는데 곁에서 눈물을 훔치던 애 엄마도 필자에게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사람은 젊음이 자본인지라 지금쯤 어느 곳에서 지난이야기 나누며 세 식구가 오순도순 잘 살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아니 지금쯤은 네 식구인지도 모른다.
만두가게가 있던 그 자리에는 요즈음 너무 흔해서 발에 밟히는 오피스텔을 지어 놓았으나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가 없고 부동산 중개소 하나가 문을 열었으나 썰렁하게 찬바람만이 안부를 전하고 있으니 따라서 주변도 음산한 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필자는 그곳을 지날 때 마다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 그 젊은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데 이것은 마땅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한맥문학 2019년 12월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