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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가 저의 회갑으로 뭔가 행사를 할려하다
그만 건강이 나빠 몇개월 누워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하고 지내다
마침11월11일이 결혼31주년으로 이기간을 이용하여
올해 아들들이 일본이나 보내준다고 하여 준비하여 다녀왔답니다.
우리가 가는 관서지방은 간사이로 칭하며 일본의 행정구역중
1都 1道 2府 43縣 중
(1都:동경도, 1道 : 북해도, 2府 : 오사카 교토와 43 縣:우리나라의 도보다 비슷하거나 좀작은규모)
중요한 우리의 관역시에 해당하는 부가 2개나 있으며 인구는 전체의 20%수준인 2,400만 으로
우리의 수도권 수준이고 생산량은 나라로치면 우리나라보다 많은 세계의 6위수준이라니...
놀라지 않을수없다.
우선 출발에 앞서 '여행박사"에 가입하여 일본의 관서지방을 다닐수있도록
간사이 드루우 패스를 두개 구입하고 여행은 5박6일 계획으로
전에 비행기로 가본적이있어 이번에는 팬스타 페리호를 타고 가기로 하고
배에서 2박 일본에서 3박4일 보내기로 하고 호텔은 1조식에 3박하기로 하였으며
경비는 광명에서 부산까지 KTX를 이용하고 한달전에 예약했드니
20% 할인하여 1인당 35,200원씩 148.000원이 소요되고
여행비는 1인당 225,000원으로 배삸과 호텔비가 들어간 셈입니다.
11월8일(목) 10 :17분에 출발하여 11월13일(화) 도착하며
광명역까지 아들이 태워주어 처음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하니 13:00경 택시로 기본요금거리인 국제터미날에 도착하여
승선확인과 출국수속을 마치고 가까운데서 점심을 먹고 15:30분에 부산항을 출발했답니다.
팬스타호는 우리나라 현대조선에서 만든배로 22,000톤 급으로 550명의 정원에
종업원은 중요한부분은 우리나라사람이고 식당같은 잡일은 거의
필리핀 사람들이 고용되어 있더군요.
배길이가 170m로 상당히 큰배에 속해있으며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
우리내외는 4인실의 침대칸에서 둘만이 갈수있었답니다.
부산항은 37년전 월남으로 갈때와 올때에 들렀든 항구로 수많은 컨터이너와 물자들
큰배들이 오가는 모습이 너무 흐뭇하기도 했답니다.
보통 큰배는 예인선이 당기고 밀고 하는데 이배는 혼자서 방향돌리고 속도도 빠르더군요.
시속 25놋트로 달린다니 한시간에 46km를 달린다고 보면 되겠지요.
출발한지 2시간이 못되어 휴대폰의 안테나가 보이지않고 대마도 근해를 지나간다는
안내방송과멀리 산도 보이고 이어 2시간 30분 정도 더가니
비로서 일본 본토인 시모네스키로 알고 있는 간몬대교를 통과하게 되드군요.
역사에 보면 대마도가 우리땅일때도 있었다는데 그때 국력이 강했다면
우리와 더 가까운 대마도가 우리땅이 되었드라면 ... 하고 혼자서 생각도 해 보았답니다.
배에서 일몰도 본다고 하였으나 그날 날씨가 흐려 일몰은 못보고 겨우 구름사이로 흐르는
햇살만 보았을뿐 배안에서 따뜻한 물에 찜질도 하고 드려누워 사워하며
흐르는 바다를 바라보는 망중한을 보냈으며
배는 계속질주하여 새벽이되어서야 일출과 함께 세토대교를 지나게 되고 좀더 가서 08:00쯤
세계최장의 현수교라는 아카시해협을 지나게 되드군요
이다리는 고베와 이와지시미를 연결하는 다리로 그동안 산만 보이든 것이
이제는 빌딩도 보이고 도시의 냄새가 물씬나드니 오사카에 도착했다고 야단들이더니
벌써 19시간의 긴여로를 통과한 편이니 일본본토에 들어와서 몇시간을 더온것인가?
섬과 섬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파도도 높지않고 불빛만간간히 보이고 간혹 배가 지나가는 모습과
밤고기잡는 어선도 많이 보이고 우리의 서해와 달리 깨끗한 바다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
한없이 부러움의 대상이되기도 했답니다.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은 11:00 에 오사카에 도착하니 아들의 여자친구가 나와 함께 바로
전철이있는 코스모스쿼어역 까지 걸어가서 난바역에 네려 아로우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라에 가기로 하였다.
나라는 오사카에서 전철로 40분정도 소요되며 1.300년전 이지역 수도로 왕궁터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으면 면적이 넓어 다볼수는 없고 우리는
동대사와 사슴공원과 박물관만 보기로했다.
東大寺(도다이지)는 세게최대의 청동불상과 목조건물 이라는것이 특징이고
처음에 건립된게 760년대 이고 현재 보는 건물은 1692년도 증수하였다니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스기나무로 높이지을수 있었고 그재목의 날렵함이
우리의 울퉁불퉁한 절집의 재목과는 예술적 극치성은 없으나
일관성의 미려함이 돗보였다.
볼만한건 제 개인적으로 절의 위용보다는 그절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부근에
수많은 사슴들이 그대로 방목되어 사람들과 호흡하며 지낸다는 것이였다.
관광객들이 주는 옥수수같은 모이를 달라고 애교부리고 손을 핣고
밤이 되어도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쉬고있으며 그들의 배설물이
곳곳에 있었지만 누구하나 기분나쁘다 하지않고 절입구의 계단까지 있었다는게
놀라움을 주더군요.
동물들은 다 인간이 길들이기 나름이구나...하고..
오늘따라 이곳나라 공원내 국립박물관에서 중요한 전시회가 있다하여 입장하여 보았다.
입장료는 1,000엔으로 좀 비싼편이 였지만 길게 줄을 서고있는 그들을 따라 들러가보니
고대의 일본문화가 전시되고 있는데 이 어찌된 일인지
신라시대의 비파와 그상자가 아주 귀하게 전시되고있어 우리의문화가
일본으로 전수 되었다는걸 실감할수있었다.
일본은 택시비 기본료가 660엔으로 환율이 1:8.2 정도되니
우리의 1.800원의 3배정도 이며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수도 거의150엔 정도니
물한병에우리나라돈으로 1,200원이라니 물론 소득도 우리의 배 이상되니 그렇치만 ...
박물관앞의 정원에 촛불향연을 하고있었으며 푸라스틱통에 촛불의 커놓아 질서정연은 하였으나
운치는 좀못해 보였다.
일본회....
우리는 구경을 마치고 시장기도있어 가이드언니친구가 한다는 횟집에 택시로가서
일본식 회를 먹었는데..
전부터 들은 애기로 일본사람들은 회가 비싸서 혀로 먹으며 향기를 맡으며
우리는 입으로 덩벙덤벙 베어 먹는다는 애기가 있었는데....
그들은 생선을 그대로 금방 먹지않고 어느정도 숙성시켜 먹기에 맛이 좀다르더군요.
그전에 오징어를 지금처럼 산채로 잡지못하든때 시절 주문진과 남항진에서 배에서 잡아온
오징어횟맛이 지금보다 좋았다는걸 이때에야 비로서 느끼었지만...
쫄깃쫏깃 하든 그 맛....
요게 그집의 주방이구 머리를 맨사람이 주인이며 친구언니는 고등학교선생으로
퇴근후 가게일을 돕고 있더군요.올때는 택시로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드군요.
전철로 와서 보니 우리가 있는 호텔이 전에 재래시장견학차 출장왔던 곳으로
도톤보리라는 시장이기도 하드군요. 그때는 아케이트를 잘하였다고 왔었으며
운영을 상인들 스스로 하고 있어 왔었지만...
오늘은 구경하러 왔으므로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드군요.
오사카는 유명한 상업지역으로 도톤보리시장만 하드라도 골목길이가 2KM 이상이나 되며
가게마다 활기가 넘처 라면집 같은데는 줄을서고 미리 밖에서 티켓을 끈고 기다려야 하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있지요.
호텔은 아로우호텔 이라고 우리의 모텔수준이나 시내속에 있어 이용하는데
편리하였으며 작지만 그속의 내용이 알차고 감동준게 많아 팀까지 주게 되드군요.
정리된 이부자리와 욕실 그리고 잠옷까지 챙겨주는 그들
냉장고에는 한번꺼내면 도로 들어갈수없고 프론트에서 재고 파악할수있는 장치와
하루밤에 물두컵만주니 우리내외는 가지고간 물을 다먹고 몇병이나 더 사먹었는지..
물이 너무 귀한 일본 그러나 언제나 뜨거운물이 콸콸쏱아 나오는
목용탕물은 우리를 즐겁게 하였지요.
TV도 좀 야한프로는 모두 유로로 해놓고 조선족이 한명있었지만
우리와 말이잘 통하지않아 불편할뿐 다른것은 아무도 없었다.
골목은 거의 일방통행이고 골몰길에는 차한대도 불법주차한거 없으니 얼마나 쾌적한지 가게주인마다 물뿌리고 청소하고 물론 청소부가 있었지만
그들만의 문화인 배려하는 정신이 몸에 배여 남들한데 어떻게 보일까?
그게 더중요한 작용을 하나보입디다.
오늘은 09:00 부터 교토를 가기로 했답니다.
교토는 나라다음의 수도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와 조선의 상반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볼거리가 많은곳
저는 전에 가보았지만 옆지기는 처음인지라 금각사에 먼저갔지요.
이절은 1397년도에 건립한절로 3층짜리 누각의 2,3층이 금색으로 도색되어있어
물과 조화롭게 보인다하여 유명하게 되었지요.
옆지기도 금각사 경내에들어거며
마침 저녁노을이 물에 반사되는 금색의 반영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더군요.
너무나 황홀하다고....
환한 골짜기....부근이 온통 금색으로 채색된 느낌이 들었답니다..
전에는 6월달에 갔었는데 날씨가 흐려 별로였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날씨도 좋고 저녁때라 반영이 좋더군요.
제가 사진실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모습을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운집한 사람들 사이에 겨우 몇장찍고 말았지만
점차 외국인들이 많이 찻는가 봐요....
위의 소나무는 몇백년된나무로 옆가지가 커서 더욱 매력이 있는 나무입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동전을 던지는 습관이있어 여기에도 동전을 마구 던지고있다..
금각사가 있다면 은각사도 있다.
지붕에 은색을 칠했다는데 이제는 퇴색되어 색상은 알수없으나 정원은 좋았다.
마당에는 은빛찬란한 모래를 쌓아두었는데 이유는 알수없고
우리는 정원만 구경하고 왔다.
780년에 세웠다는 청수사 전경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물로 교토하면 제일먼저 생각난다는 절이고
그 규모도 웅대하고 위치도 좋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들어가는 입구의 좁은 상점들은 옛날건물 그대로 존속하고 있어
보는이의 실감을 더 자아내고 있다.
같은 실수를 두번은 하지않는다는게 인간인데
오늘도 작업하다 너무 긴탓인지 모두 날아가고 다시쓰고 있답니다.
먼저는 무엇을 쎴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새로쓰려니 힘이 배로 드네요....ㅎㅎ
어쩌리 내잘못을...
일본의 제2도시 오사카는 나라와 교토에이어 수도가 된 도시로
인공으로 방조제를 10Km 이상 쌓아만든 도시로 사방이 평평하고
강물과 바다물이 빠지도록 수로가 형성되어 배가 내륙깊숙히 드나들수 있도록
계획된 도시입니다.
일본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사카성을 상기하곤 한답니다.
그만큼 우리눈에 많이 익은 탓도 있겠지만 우리와는 끊을수없는
숙명이 이안에 있으니 역사가 말해줄겁니다.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도미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자
그여세를 몰라 조선을 침략하고 오사카성도 쌓아 국력을 내외에 과시하였으며
사용한돌이 인근에는 없는 멀리서 운반한 돌로 적게는 맷돌만한 돌에서 부터
큰것은 바위보다 큰돌을 운반하여 쌓았기에 현재도 그방법을 이해할수없다니
그독재의 힘을 짐작할겁니다.
돌을쌓고 물길을 만들어 내란과 외침도 막고 성을쌓아 관망도 하면서
지켜나갔지만 그의 사후 17년만에 전투로 소각되고 1620년경 다시개축하여 오다
36년뒤 벼락으로 불타 다시1931년도 엘리베타까지 설치한 현재의 모습으로
변하여 오고 있다합니다.
도톤보리 시장상가
무려 2키로 이상되는 골목시장으로 온갖 잡화가 다있으며 특히 먹거리가 유명한곳이기도 하다.
천장은 모두 아케이드를만들어 날씨에 구애됨이 없이 언제나 쇼핑하는데 지장이 없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흥청대고았다.
일본은 오락의 첨단국가 답게 온 국민들이 오락을 즐기고있는데
가장인기가 있는곳이 빠찡꼬이다. 발 디딜틈도 없이 남여노소가 한데 어울려
담배를 피우며 게임에 몰두하는장면은 과간이다.
요즘에는 경마하는게임도 있어 한참보고 나왔지만 신기하기만하다.
일본라면
라면이 얼마나 인기있기에 미리 식권을 구입하여 줄을서고 있다가 자리가 나면들어갈까
가격도 만만치 않다 1인분에 700엔 정도니 우리돈으로 6천원
우리도 줄을 서서기다리다 한번 먹어보았다.
돼지국물에 돼지수육 몇절음 계란한개 넣은라면으로 맛은정갈하고 개운하였지만 별거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기있는운동선수들이 사인이 벽에온통 먹칠을 하고있으니
이번 일본여행 하면서
또 한번 느낀것은 그들의 정갈함이 였답니다.
도로에 불법주차가 없고
도로위에 브레이크 자국이 없는 나라
간판이 크면 남에게 누를 끼친다고
간판이 아주 적은나라
띄는 색을 쓰면 남에게 피해를 준다하여
붉은색이 없는 도시와 붉은옷이 눈이 띄지 않은 의상들
그래서 도시가 희색바탕의 은근한색으로 되어있어
활기가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나라
주차선도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하여
이중으로 그은선...
모든게 정찰제이며 구멍가게도 모두정찰로
신뢰를 바탕으로 삼는나라.
몇가지를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