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1) 안식일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는 안식교, 하나님의교회(안상홍, 장길자), 엘리아선교회(박명호)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자생적인 안식교로서 각 교회마다 잡지나 문헌 자료를 보내는 생애의 빛(강병국)등이 있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제 4계명인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하는데, 특히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 뿐 아니라 구약의 모든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신천지는 유대인들의 3대 절기인 무교절과 칠칠절(맥추절), 초막절(수장절)을 착각하여 유월절과 초막절과 수장절을 지켜야 한다고 성경적으로 무지한 주장을 하고 있으며, 유대력을 현재 양력으로 환산하여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안식일이란 어떤 날이며, 오늘날 우리는 과연 4계명에 있는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성경적인 안식일은 토요일이며, 유대인들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를 안식일로 지켰다. 그러나 안식일은 예배를 드리기 위한 날이 아니다. 십계명중 4계명을 성경대로 보면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며 "종도, 육축도, 손님까지도 일을 하면 안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8-12)
2) 성경적인 안식일이란 무엇인가?
- 아들, 딸, 여종, 남종, 객, 육축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날 (출20:10) - 처소에서조차 나오지 못하는 날(출16:29) - 불도 피울 수 없는 날(출35:3) - 스스로 괴롭게 하는 속죄의 날(레23:32) - 장사를 할 수 없는 날(느10:31) - 성문을 닫으므로 성문 밖에 나갈 수 없음(느13:19) - 오락을 하지 못함(사58:13) - 짐을 지지 못하는 날(렘17:21-22) - 정해진 거리를 갈 수 없는 날(행1:12)
가장 극적인 사항은 “안식일을 범하는 자를 죽여야 한다”(출31:15)는 구절로, 이러한 끔찍한 일들이 안식일을 성경대로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과연 누가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을까? 성경은 반드시 죽이라고 말하고 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출31:15)
즉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현재 교회를 다닐 수도 없다. 안식일에는 처소에서 나오지도 못하였으며, 먼 거리를 갈 수도 없고, 짐을 들지도 못하며, 불도 피우지 못하므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일을 하지 말고 쉬어야 하니 교회 봉사도 하기 어렵고, 매우 불편한 일이 될 것이다.
더욱이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것은 신구약 성경전체를 찾아 보아도 단 한구절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안식교가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근거로 다음 성경을 제시하고 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레23:3)
위 성경본문만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면 정말로 일곱째 날 안식일은 성회를 드리는 날로만 해석되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인용은 부분적인 성경인용이 되어진다. 앞뒤의 본문을 보면 엉터리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레23:2-6)
이 성경본문은 일곱째 날 안식일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번 있는 절기안식일(무교절기)을 가르킨다. 안식교는 원래 안식절기는 폐하여졌으므로 지키지 않지만, 일곱째 날 안식일은 폐하여지지 않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에서 다음 구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레23:7-8)
즉 일곱째 날만 성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첫날에도 성회로 모이라는 구절로서 안식일에 성회로 모이라는 구절이 아니다.
3) 예수와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켰다?
안식교회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예수님과 바울도 안식일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바울이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눅4:16. 행17:2)는 성경구절을 제시한다. 즉 예수님과 바울도 율법과 규례대로 안식일이면 회당에 감으로서 안식일과 율법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본문에서 ‘규례’(헬라어: 에토)는 ‘전례, 습관, 관습’이라는 해석이 올바른 번역이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과 바울이 율법대로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전례나 습관대로 회당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예수와 사도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간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함 때문이며, 그 회당에 그리스도인이 예배를 드리던 경우는 성경에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오직 유대인들이 있었을 뿐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면 안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회당에 나가서 성경을 강론하였다. 즉 많은 유대인들을 동시에 만나기 위하여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며, 전도하기가 가장 쉬운 곳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이나 바울의 경우, 안식일에 회당에 가는 것은 늘 해오던 습관적인 전도사역이었던 것이다.
성경에서 그 ‘에토’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보면, 마태복음 27:15에서 “명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에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안식교의 주장대로 ‘에토’가 ‘율법’이라고 해석하면, 본디오 빌라도마저 유대인의 율법을 지켰던 것이 된다. 본문에서 ‘에토’(전례)는 유월절과 같은 명절이 되면 죄수를 풀어주는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또 사도행전17:2에서는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일 ‘에토’라는 단어가 율법의 규례를 말한다면, 바울은 ‘자기 자신의 율법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이 된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에토)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행17:2)
즉 사도바울은 안식일만 되면 회당에 가서 전례와 습관대로 유대인들을 전도하였던 것이다. 또한 마가복음10:1에서도 예수님은 모여드는 무리들을 위하여 "다시 전례(에토)대로 무리를 가르치셨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전부터 자주 모여드는 무리들을 가르치셨던 전례와 습관대로 가르치셨음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즉 ‘에토’라고 하는 헬라어는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나 습관, 관습등을 의미한다. 실제로 행18:4를 보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기독교적인 예배를 드린 적이 없다. 또 예배란 십자가 사건 이후 기독교인에 의하여 드려진 것이다. 유대인들의 예배는 짐승을 드리는 희생 제사였으며 그것은 성전에서 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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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약적인 안식일의 재조명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가하다고 말씀하셨는데(마12:12),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파격적인 주장이 된다. 또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재해석하시는데 이것도 유대인들에게는 파격적인 가르침이 된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야만 하며,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죽여야 하였기 때문이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7-28)
즉 안식일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과 같은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관점이 아니다. 특히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 되어진다. 성경은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여섯 번째 날에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사역을 멈추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에 들어가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직도 일하고 계신다고 말한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까지 섭리하고 계신다.
히브리서에는 참 안식은 궁극적이며 종말적인 개념으로서,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4:9)라고 기록하였으며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히4:11)라고 말하고 있다.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4-11)
즉 신약에서 안식일의 참 의미는 미래적이며 종말적인 참 안식으로 재조명 되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다. 안식일은 문자적으로 일곱째 날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날이다. 구약성경의 안식일은 종말적이고 궁극적인 참 안식의 그림자이며, 예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모형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4-17)
신약에 와서 안식일이란 문자적이며 숫자적인 일곱째 날이 아니며, 모든 구약의 명절과 절기는 신약에서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장래일의 그림자가 되며 몸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
예를 들면 구약의 유월절은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예표한다. 즉 유월절(페싸흐)은 장래의 그림자였으며, 예수님이 그 몸의 실체가 되신다. 출애굽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집은 하나님의 진노를 건너 뛰게(pass-over) 되었다. 신약에서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심판을 pass-over 시키는 실체가 되어진다. 또 오순절(칠칠절, 맥추절)도 장래의 그림자였으며, 신약에서 오순절은 성령의 강림과 성령의 열매맺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또 안식일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그림자였고, 안식은 바로 예수 안에서의 구원을 상징한다. 또 초막절(수장절)은 마지막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창고에 저장하는 장래의 그림자를 예표한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5:4)
캘빈은 안식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 4계명에는 모형적(typical) 요소들이 있다. 캘빈은 안식일 계명을 ‘예표’(figure)라고 부른 초대 교부들에게 동의했다. 그 분(예수) 자신이 진리이며, 그 분(예수)의 임재로 모든 모형들이 사라진다. 예수가 몸체이며, 예수의 출현으로 그림자는 뒤로 제쳐진다. 예수는 감히 말하건데, 안식일의 참된 성취이시다.”
구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안식을 예표한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통하여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적으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안식일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천국에서의 안식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히 4:9).
5)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갈라디아교회에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믿음뿐 아니라, 할례를 행하여야만 하며, 유대인의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혼합율법주의자들이었다. 오늘도 그러한 혼합율법주의자를 ‘갈라디안’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할례와 유대인들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하는 갈라디아의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하노라"(갈4:10-11)
만약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구원에 중요한 일이었다면 신약성경은 몇번이라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강조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단 한마디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구절이 없다는 사실이며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지 말라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주일은 안식일과 달리 예배를 위한 날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기념하여 공식예배일로 지정한 것이다. 안식일과 주일은 그 개념이 다르다. 안식일은 쉬어야 하는 날이지만, 주일은 예배를 위하여 만들어진 날이다.
안식교나 하나님의교회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면 구원을 잃는다고 말하며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안식일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인을 받으며 남는 자손이 된다고 주장을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 준수는 구원과 멸망의 조건이 되어진다는 것에 그들의 이단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구원이 오직 믿음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6) 초대교회는 안식일을 지켰는가?
안식교와 하나님의 교회는 초대교회에서는 모두 안식일을 지켰는데, 콘스탄틴황제 이후부터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된 문헌이 남아 있음으로 인하여, 그 문헌을 참고할 수 있는데, 그 문서를 보면 안식교와 안증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➀ 이그나시우스의 편지
이그나시우스는 안디옥의 감독이었으며 속사도 교부로 불려졌다. 그는 죽음에 임박하여 각 교회에 7개의 서신을 보내었는데, 그는 트라쟌 황제 통치시기인 AD98-117년 사이에 순교를 당하였으며, 그 중에서 ‘마그네시아인들에게’(To the magnsians) 이라는 서신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잘못된 가르침이나 오래된 이야기로 인해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하십시요. 우리가 아직 유대주의의 관심을 계속 지킨다면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옛 관심에 따라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에 의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 날에 그들의 생명과 우리의 생명이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나쁜 누룩을 피하십시요.....” (The Christianity of Ignatius of Antioch, 1935, 5page: 초대교회의 형성, 성광문화사 66쪽))
‘주의 날’은 계시록 1:4의 ‘주의 날’을 뜻한다. 특히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라는 구절이 뜻하는 것은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초대교회에서 말하는 ‘주의 날’ 즉 주일에 대해서 초대교회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➁ 12사도의 교훈
12사도의 교훈은 그 유명한 ‘디다케’라고 불려진다. 그것은 속사도들의 작품이며, 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에 수리아 지방의 초대교회의 교리문답과 교회규범을 한데 묶어 놓은 문서로서 초대교회를 연구하는 귀중한 문헌이 되고 있다.
“‘주의 날’은 특별한 날이므로 ‘주의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감사를 돌릴 것입니다. 먼저 죄를 고백함으로서 제사를 깨끗하게 드려야 합니다. 이웃과 불의한 사람은 화목할 때까지 여기에 참석하지 말 것입니다.”(기독교 고전전집 1권, 초기기독교교부 171-179, 초대교회의 형성, 성광문화사 77-78쪽)
이미 이그나시우스의 서신에서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의 날’을 지키자는 내용이 있음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으며, 그 날이 분명히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이 된다. 그런데 그 ‘주의 날’에 함께 모여 떡을 뗀다는 내용이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떡을 떼다”라는 구절은 성찬식을 뜻하며, 곧 예배를 드린 것을 말한다. (행2:42, 행20:7, 고전11:23-26) 성경은 주간 첫날에 떡을 떼려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
➂ 바나바의 편지
주후 70-13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 바나바의 서신은 반유대주의적 입장을 말하는 내용인데, 그 편지 15장에는 히브리서의 내용과 같이 안식일을 종말적으로 해석하며 기록하고 있었다.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라면, 여덟째날은 주일을 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때에 가서야만 우리는 참으로 쉴 수 있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다. 의롭다함을 받은 후에 그리고 약속을 받은 후에만 참으로 안식할 수 있다. 여덟째 날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인 바 천년왕국의 안식 후에 마지막 영광을 바라본다.”(바나바서신 15장)
➃ 순교자 저스틴
“이 음식을 성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성찬을 아무나 취할 수 없고, 오직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참되다고 믿는 사람들..... 거룩하게 된 그 음식물은 바로 성육하신 예수님의 살이요,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예식 후에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은 것들을 서로 기억하도록 합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부족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모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인하여 우리는 인류의 주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송축을 올립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한 곳에 모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글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오래 읽습니다. 독경자가 읽기를 마칠 때에 사회자는 강론을 통해서 그 고상한 교훈들을 모방하도록 권면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서서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말한대로 기도가 끝나면 빵과 물 탄 술을 가져오고, 그리고 사회자가 높이 들고 그 거룩해진 음식물을 나누어 주어 모두 받게 하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집사들이 가져다 줍니다.....” (쇼트웰의 순교자저스틴의 성서강해, L.C.C. 66절 286page, 저스틴의 제1변증서)
저스틴은 아예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에 성찬을 나누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일요일에 ‘빵과 물 탄 술’을 나누었다는 기록까지 있다. 이러한 역사와 년륜이 오래된 문헌적인 증거들이 19-20세기의 안식교나 21세기의 안증회의 교리를 대비하기 위하여 조작된 것일까? 과연 초대교회에서 말한 ‘주의 날’이 언제였을까?
➄ 제롬
제롬도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교도들이 이 날을 태양의 날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도 그 호칭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세상의 빛이 나타나시고 공의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신 날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이다.”(Jerome, In die dominica Paschae Homilia, CCL 78. 성경의 27가지 미스테리, 생명의 말씀사, 261쪽)
➅ 이레니우스의 주해서
초대교회의 어느 교부는 이레니우스의 저술에 대해서 주해서를 썼는데, 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일요일 예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요일에는 무릎을 꿇지 않는 관습은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부활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하게 되었다. 리웅의 감독인 순교자 이레니우스가 부활절에 관해라는 논문에서 밝혔듯이, 이 관습은 사도 시대부터 생겼다. 여기서 그는 오순절에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사실을 언급한다. 오순절에는 주의 날과 같은 의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Iranaeus, Fragments from Lost Writtings of Irenaeus-Ante-Nicene Fathers)
➆ 일요일 휴업령
안식교와 하나님의 교회는 초대교회는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는데. 콘스탄틴황제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라고 강제로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초대교회는 이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며, 콘스탄틴황제는 321년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이미 일요일에 드려지고 있는 예배를 위하여 일요일 휴업령을 내린 것이며, 이런 교회사에 대한 문제는 교회사 서적을 확인하면 곧 밝혀질 것이다.
“콘스탄틴 치하에서 기독교의 공인은 몇 가지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콘스탄틴은 일요일이 로마의 다른 공휴일과 비슷한 공휴일이 되도록 칙령을 내렸다. 이로써 예배는 폭넓게 발전할 수 있었고 교회에는 더 많은 회중이 모일 수 있었다”(생명의말씀사, 교회사핸드북 144쪽).
“321년 교회들에게 유산을 물려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였고, 그로써 합법적인 법인 자격을 부여하였다. 태양의 날(일요일)이자, 기독교의 첫날을 휴일로 정하고 그 날은 노동을 금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기독교회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49-150쪽)
다시 말하여, 콘스탄틴이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어 예배일을 변경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콘스탄틴황제는 교회에게 각종 혜택을 주었고, 그 혜택의 일부로서 이미 예배를 드리던 일요일을 편리하게 하도록 휴일로 정하여 준 것이다.
“기독교의 예배일인 주일은 기독교회의 초기부터 성수되었다. 그것은 안식일(주간의 일곱째 날)을 지키는 유대교로부터의 이탈이었다. 한 주간의 첫날로 옮긴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마다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4세기초 콘스탄틴의 시대까지는 주일(일요일)이 공휴일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의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예배모임을 가졌다.” (생명의 말씀사, 라이온사, 교회사 핸드북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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