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이후 경제학자들은 무엇이 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 왔다. 특히 인간자본(human capital), 연구개발(R&D),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s), 외부경제효과(externalities) 등이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으로 논의되었다. 그 가운데 교육수준과 경제발전의 상관관계가 인적자원 이외에 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가장 주목을 끈다.
하버드대학의 바로(Barro) 교수는 경제성장 요인에 관한 시계열분석(‘경제성장론’, 1995)을 통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 참가율 등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인간자본의 질이 높아져서 결국 경제성장률 또한 높아지게 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도 확인해 주었다.
교육과 경제발전 경제개발연대를 시작하던 해인 1962년 80달러 수준에 불과 했던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40 여 년 만에 1만6000달러 수준에 이르고 경제규모가 세계 10 위권에 도달하게 된 배경에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높은 교육열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제외하고 변변히 내세울 자원이 없는 우리 한국이 오늘날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이만큼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는 자식교육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친 부모들의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이 뒷받침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의 어머니 또한 한국전쟁 끝 무렵 남편이 군인으로 전사하게 됨으로써 전몰군경 미망인이 된 이후 홀로 아들인 동시에 남편이자 평생 프로젝트였던 외아들을 키우는데 당신의 전부를 바치셨다. 현재까지도 자식교육 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우리 삶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니,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기러기’ 가족 출현 또한 그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
워싱턴의 기러기 미국의 유명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초 자녀들의 조기 유학을 위해 떨어져 사는 이곳 워싱턴 근교의 한 한국인 가족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고통스러운 선택 (A Wrenching Choice)’이란 제목하에 특집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전통적으로 결혼의 상징이 되어온 기러기들이 새끼들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기위해 장거리를 여행한다는 점에서, 자녀 교육을 위해 부부가 떨어져 사는 이러한 한국의 가족들을 기러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한국의 왜곡된 교육제도가 낳은 이러한 기러기 가족들이 수년에 걸친 높은 교육비용에 의해, 종종 가족 붕괴를 경험할 수도 있다고 보도하였다.
한편 작년 10월에는 한국에서 부인과 함께 자녀를 유학 보내고 6년이나 홀로 지내 던 한 50대 ‘기러기’ 가장이, 숨진 지 닷새 만에 발견되었다는 가슴아픈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전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하다는 한국의 ‘기러기’ 가족 출현의 배경에는 비단 워싱턴포스트지가 꼬집은 국내 교육 정책의 파행에 따른 우리의 왜곡된 교육제도 뿐 아니라, 국가적 경제성장과 세계화 추세, 경쟁사회 생존전략으로서의 차별화된 교육의 필요성, 고학력 386세대 부모들의 변화된 세계관과 이에 따른 자녀교육 선택에 대한 시각과 폭의 확대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통합적 시각에서 ‘기러기’ 가족의 출현배경을 들여다 본다면 이는 당장의 대안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개인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양질의 교육에 대한 초과 수요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문제는 ‘기러기’ 가족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의 답답한 현실과 가족적 아픔은 잠시 접어 두고라도, 앞서 워싱턴포스트지가 지적했듯이, 가족 희생이 동반된 수년에 걸친 엄청난 비용의 유학자금 출혈이 과연 내 자녀를 위하고, 또 우리 가정을 위한 것이며, 더 나아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더 많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기러기 가족의 사회 경제적 비용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조기 유학 때문에 생겨난 ‘기러기 가족’이 5만여 가구로 추산되고, 그 비용이 한 해 2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일부 사례이긴 하지만 최근 ‘비동거 가족 경험-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란 제목의 한 논문(최양숙, 2005)에 따르면 2003년 이후 40~50대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기러기 아빠 20명의 심층면접결과 이들은 짧게는 8개월, 길게는 11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으며, 1년에 8000만~1억 원의 돈이 드는 비용을 월급은 물론 빚까지 내서 필요 자금을 보내는 회사원도 셋이나 된다고 하니, 여기서 조기유학에 따른 이들 가족의 사회 경제적 기회비용이 엄청남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경기영어마을이 여론조사기관인 현대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과 전국 5개 광역시에 살고 있는 주부의 40%가 자녀 조기 유학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42%가 주된 이유로 자녀의 '영어학습을 위해서'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내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생의 동반자와, 내 인생과, 또 가족전체의 인생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단지 자녀의 영어학습을 위해서, 또는 ‘막연히’ 자녀에게 경쟁력을 갖게 해주려고 분에 넘는 자녀교육 올인을 결정하는 일은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바람직한 자식사랑은? 자녀에 대한 참된 애정과 관심은, 비록 기러기가 되더라도 우리 가족의 모든 걸 바쳐 ‘하나뿐인’ 우리 아이를 위해 가족 전체의 인생을 올인하기에 앞서 내 아이가 평생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또 무엇을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는지를 자기 스스로 찾게 만드는 데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해 보지 못한 것, 또는 현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라, 자녀가 사회에 나설 때 변화될 미래를 내다보고, 내 아이가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게 준비 시켜주는 부모가 되는 일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성장한 자녀에게 더 이상 우리 노후를 담보할 수 없게 된 이 시대에, 부모의 삶이 자녀교육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희생 되어야 하는 것일까, 바람직한 자식 사랑은 과연 어디까지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1952년생. 1975년 서울대 법대 졸업, 17회 행정고시 합격. Southern Methodist Univ.(SMU) 경제학박사. 통계청장 역임. 현 국제통화기금(IMF)이사. 주요저서로 전환기의 한국경제, 경제계획 및 거시경제정책의 역할, 한국인 당신의 미래 등 다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