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굿은 제주도 해녀들이 힘을 모아, 바다의 해산물이 잘되고 풍요한 삶을 기원하기 위해 벌이는 마을굿이다. 제주도에는 신과세굿(정월), 마불림제(7월), 시민국대제(가을) 등의 마을굿이 남아 있는데, 오늘까지 가장 활발한 전승을 보이는 것은 신과세굿과 더불어 2월 초부터 중순까지 전 지역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이다.
영등은 비바람을 일으키는 신이다. 우리나라 중부지방 이남에는 흔히 영등할머니 신앙이 보이는데, 이 신은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20일 경에 올라간다고 믿는다. 영등할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해에는, 비를 맞아 초라하게 보이도록 하려고 비를 몰고 오기 때문에 풍년이 들고, 딸을 데리고 오는 해에는, 치맛자락이 나부껴서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바람이 불기 때문에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등은 2월 초하룻날 한림의 수원당으로 들어와 보름에 성산 소섬을 거쳐 연평으로 빠져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원당에서는 영등신 환영 굿을 크게 해왔다는데, 현재 많이 남아 있는 것은 13일부터 보름 사이에 행해지는 송별굿이다. 초감제로 시작하여 요왕맞이를 벌이고, 씨드림ㆍ지아룀ㆍ액막음 등을 거쳐, 마지막에 바다에 모형 배를 띄우면서 마무리된다.
제주시 건입동에서 벌어진 속칭 칠머리 당굿은, 해마다 2월 14일에 하는 영등 송신제의 하나로서, 1980년 12월 21일 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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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하는 시기와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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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은 영등굿을 하는 당이다. 그러므로 칠머리당굿은 마을의 수호신인 본향당신을 모시고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마을굿(당굿)이며 영등굿이다.
당에서 하는 영등굿이기 때문에 칠머리당 영등굿에 모시는 신들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칠머리당에 모시는 대상 신위는 영등신, 해신, 본향신의 3종 6신위이다. 굿을 할 때 일반적으로 모시는 신들, 멀리서 제주를 찾아오는 신, 하늘 옥황에서 내려온 신, 산신과 해신 등을 일반신이라 한다면, 칠머리당에서 모시는 영등신과 해신은 일반신이고, 마을 지키는 본향신은 당신이므로, 일반신을 모시고 하는 일반굿과 당신을 모시고 하는 당굿의 제차(제차)가 섞여, 동시 진행으로 이루어지는 굿이 칠머리당 영등굿이다.
칠머리당 위패는 서쪽에 영등대왕, 해신선왕을 모시고, 중앙에 도원수, 감찰지방관, 용왕부인을 모시고, 동쪽에 남당하르방과 남당할망을 모신다.
영등굿의 날짜는 이미 음력 2월 14일로 고정된 것이어서 바뀌지 않는다. 칠머리당을 모시는 마을은 건입동과 용담동인데, 굿의 주축은
녀(해녀)들이다. 건입동에는 배가 많아 선주의 부인들도 적잖게 오는 편이지만, 가장 굿에 열심을 내는 층은 직접 바다에 생명을 맡기고 있는
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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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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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 혹은 소미(小巫) 라고 한다. 심방은 굿을 주재하고 연행하는 큰 무당을 일컫는 것이고, 소미는 굿에서 심방을 돕는 작은 무당을 일컫는 것이다. 심방 중에서도 굿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이를 수(首)심방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특별한 악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보통 소미가 무당의 노래와 춤을 반주하는 역할을 한다.
제주도 심방은 기본적으로 집안 대대로 무업을 잇는 세습무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여성무당인 육지의 세습무와는 달리 제주도에서는 남성이 심방이 되는 경우도 많다. 대개 한 집안에서 무당 ‘끼’라 있는 사람에게 신이 내려 무업을 잇는 강신무적인 요소를 가진 세습무가 제주도의 심방이다.
칠머리당굿의 명인은 고인이 된 안사인이었다. 안사인은 선생인 이달춘의 뒤를 이어 30년 동안 칠머리당의 당메인 심방이었는데, 굿은 열아홉 살부터 시작했다. 22대째 내려오는 명도를 물려받은 심방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손꼽히는 유능한 사제자이며, 특히 드라마틱하게 춤추는 굿은 아무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2005년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 칠머리당굿의 기능보유자이자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펼치는 심방은 김윤수이다. 김윤수는 1946년 제주시 출생이다. 어려서부터 큰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굿을 배우고 굿에 필요한 북, 대영, 설쇠, 장구를 배웠다. 이 외에도 제주 칠머리당굿을 지키는 이는 양창보(1935년생, 남, 고문), 김윤보(1933년생, 남, 고문), 진부옥(1922년생, 여, 고문), 고순안(1947년생, 여, 전수조교), 이용순(1947년생, 여, 전수조교)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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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당과 상차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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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굿이 가까워지면 하루를 떼어 공동 작업을 하고 그 날의 수입을 기금으로 한다. 하루 전날 탈의장에 모여서 용왕상에 낼 제물을 장만하고, 각자는 다시 집으로 가서 조상을 위하여 상을 마련한다. 굿날 아침이면 구덕에 음식을 담아 등에 지고 한 손에는 상을 들고 와서 정성껏 차려 놓는다. 메 6그릇ㆍ떡ㆍ생선ㆍ나물ㆍ술ㆍ물ㆍ돈 천 원을 얹은 쌀ㆍ향과 초를 놓는 것이 보편적이다. 굿당은 각자의 집에서 차려 내온 상으로 가득 찼다.
낮은 돌담을 10여 미터 사방으로 두른 칠머리당에는 도원수 감찰지방관, 요왕, 해신서낭의 3위가 모셔져 있다. 제물진설이 끝나자, 왼쪽에는 장고ㆍ설쇠ㆍ북ㆍ징을 든 악사들이 앉고, 물론 사이사이 구경꾼들이 빈틈없이 차 있다. 굿당 배경에는 병풍이 놓이고, 창호지를 모양 있게 오린 살장과 발지전이 살짝 드리운 가운데, 사해용왕신위ㆍ용왕대신신위ㆍ용왕부인신위ㆍ용왕서낭신위ㆍ영등대왕신위ㆍ영등부인신위ㆍ용왕사자신위ㆍ각본향신위가 모셔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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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복/무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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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관디(관대)’와 ‘섭수’의 두 종류가 있다. 관디는 홍색의 도포를 입고 머리에 검정 갓을 쓰며, 무릎 밑에는 행전을 치는데, 이것은 큰굿을 할 때 차리는 복장이다. 섭수는 남색 쾌자를 흰 두루마기 위에 입고 머리에 송낙이라 하여 백지 고깔을 쓰며, 가슴에 폭 12cm의 홍띠(또는 노란 띠)를 띠고 무릎 밑에는 행전을 치는데, 이것은 보통 굿을 할 때 차리는 복장이다.
제주도의 심방은 신단은 없으나 무점구(巫占具)를 조상이라 하여 주력(呪力)이 있는 성물로 신성시한다. 굿을 하러 가면 심방은 굿상을 차린 앞 좌측에 빈 소반을 놓고 그 위에 무점구를 놓은 다음 술 한 잔을 부어 놓는다. 이 상을 ‘공시상’이라 하며, 이것은 굿에 들어가기 전에 무조(巫祖)에게 굿하는 것을 알린다는 뜻이다. →그룹3-7.무복, 8.무구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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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무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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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굿의 특징 중의 하나가 본풀이 무가가 많다는 것이다. 본풀이란 ‘본(本)을 푼다’는 의미로서 신의 내력을 노래하는 서사무가이다. 이 외에도 신을 놀리는 오신무가로 <서우제소리>가 많이 불린다. 제주도 굿에서는 악기를 ' 연물(演物)'이라고 하는데, 이는 장구, 북, 설쇠, 대영의 네 가지이다. →그룹2-5.무가, 6.무악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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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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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군청의 단속반을 피해 가며 치러지던 1970년대의 칠머리 당굿은 이제 어엿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가 되어 있다. 1980년의 일이니까 다른 굿들에 비해서도 다소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심방들은 문화재로서의 자긍심 이상의, 심방 본연의 사명에 아직도 철저하다. 3월 초순의 바다 바람이 아직 차건만, 굿당을 차린 다음에는 한시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 옛날만큼 구경꾼이 모여들지 않는데, 그들은 신이 내린 곳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회장 김윤수)는 이 굿의 국내외 홍보에도 열심이다. 2004년 10월에는 서울의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리는 ‘2004 아시아전통예술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마련한 이 행사는 샤머니즘을 통해 아시아의 전통문화를 조명하는 종합축제였다. ‘아시아의 뿌리를 찾아서’를 부제로 내건 이번 축제엔 한국을 비롯, 인도네시아 몽골 중국 러시아 미국등 9개국 공연팀과 전문학자들이 대거 참여, 아시아 샤머니즘의 공연, 전시 ,학술 행사들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칠머리당굿의 무적(巫的) 예능적 요소를 한껏 과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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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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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준,「제주도의 영등굿」 김수남,『한국의 굿-제주도 영등굿』 -----,『아름다움을 훔치다』 황루시,『한국인의 굿과 무당』 -----,『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 문무병,『바람의 축제 칠머리당 영등굿』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