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이 고문사한 현장,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남영동 고문 피해자가 중심이 된 인권기념관을 세우자!
최근 개봉되어 7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1987>은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의 지울 수 없는 과거를 만천하에 다시 드러냈다.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그곳은 만 21세의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쓰러져간 현장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고문을 받은 사람은 박종철만이 아니다. 전민노련, 전민학련(‘학림’) 관련자들은 1981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불법 구금된 상태로 전기고문, 물고문 등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31년 지난 2012년에 학림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고문당한 그들의 삶은 이미 철저히 파괴된 후였다.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관련자들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참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특히 고(故) 김근태 의장은 죽음 직전까지 가는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각 열 차례 정도 당하였고,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으로 널리 알려진 ‘김제가족간첩단’ 조작 사건이 벌어진 곳도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최을호 씨를 잔혹한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한 이 사건은 2017년 재심으로 34년 만에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이미 최을호 씨는 사형 집행, 조카 최낙교 씨는 수감 중 사망, 조카 최낙전 씨는 복역 후 자살하는 등 일가족이 몰살당한 후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런 곳이다. 수많은 민주인사와 학생, 시민들, 그리고 ‘조작된 간첩들’이 고문에 짓이겨지면서도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소망을 꿋꿋이 지켰던 처절한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이곳은 야만적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해 온 우리 역사의 참모습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보존되고 복원되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민의 공간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2005년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에게 내 놓겠다”고 했지만, 대공분실 기능을 홍제동으로 이전한 이후 이른바 ‘경찰청 인권센터’가 들어서면서 이곳은 여전히 고문가해자였던 경찰의 수중에 놓여있다. 과연 경찰청은 이곳을 “인권센터”에 걸맞게 운영하고 있는가?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 옆에 그보다 2배나 더 크게 만든 ‘경찰 인권 교육 전시관’에는 “인권옹호에 기여한” 경찰을 치하한 박정희의 표창장과,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표창한 박근혜의 표창장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이 고문 건물을 만들고 인권을 유린한 장본인들이 박종철을 이용하여 인권의 수호자인 양 자처하면서, 고문피해자들과 국민들을 능욕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는 누가 기억하고 누가 기록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가해자가 기억의 주체가 될 때 기억과 기록은 윤색, 축소, 왜곡되는 것이다. 경찰청 “인권” 센터에는 가해자인 경찰의 진정어린 사과도 뼈저린 반성도, 그리고 “인권경찰”로서의 준칙과 약속도 찾아볼 수 없다. 경찰청 “인권” 센터는 또 다른 ‘축소·은폐’의 현장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요구한다. 고문, 폭력, 조작의 산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가해자인 경찰은 손을 떼고, 고문 피해자가 중심이 된 남영동인권기념관이 들어서야 한다고.
남영동인권기념관은 한국의 ‘아우슈비츠’ 기념관이 될 것이다. 전 세계 각국이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고, 악랄한 독재를 경험한 남미의 여러 나라가 ‘기억과 진실, 인권광장’ 등을 세우듯이, 이곳은 밀실에서 자행된 국가 범죄와 인권유린의 고통스러운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지면서 체감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 오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반인권적 범죄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인권의 보루를 만드는 길이다.
남영동인권기념관은 자라나는 세대들과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박제된 역사의 박물관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인권 교육 강좌, 전시회, 인권영화제, 인권콘서트 등의 기획을 통하여, 시민들이 자유로이 만나고 대화하는 광장, 학생들이 인권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터전으로 이곳을 변모시킬 것이다.
남영동인권기념관은 고문피해자들의 치유와 위로의 공간이 될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뿐만 아니라 남산 안기부, 보안사 서빙고분실 등 수많은 고문시설에서 국가폭력에 희생된 분들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지금도 계속되는 그분들의 고통을 치유하며, 그 고통을 모두가 함께 기억하고 위로하는 공동체의 산실을 우리는 만들어 갈 것이다.
1. 고문가해자 경찰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즉시 떠나라.
1. 경찰청인권센터는 이전하고, 남영동 고문 피해자가 중심이 된 인권기념관을 세우자.
1. 국가와 경찰은 반인권적 고문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
남영동 대공분실 30년, 불의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권의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칭)남영동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에 폭넓은 참여를 요청 드리면서
2018. 2. 5
남영동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준)
(김근태재단,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민청련동지회, 서울대민주동문회, 서울KYC, 인권재단 사람, 인권정책연구소,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전국역사교사모임, 전대협동우회, 학림동지회, 한국청년단체협의회전국동지회) 남영동대공분실 고문 피해자(권오헌 김경중 김부섭 박미옥 권영근 곽선숙 민인기 최광운 김특진 민동곤 김종삼 신영종 김희택 최민화 권형택 박계동 박우섭 연성수 윤여연 이을호 장영달 이선근 민병두 이덕희 유해우 윤성구 이종구 양승조 김진철 박동선, 이상 3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