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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본인은 인천에서 자란 인천 토박이 이다.
관광지를 조사해 자료를 만드는 화두에 문득 인천을 떠올린건 작은 축제를 조사 할 수도 있지만 발전해 가고 있는 고향 인천을 널리 알리고 멀지 않은 곳에 문화와 관광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본론을 통해 인천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소개하려 한다.
1. 인천 명칭과 유래.
물은 생명의 기원이자 인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물로 둘러싸인 성'을 뜻하는 '미추홀'이란 옛 이름을 간직한 인천에서 우리 역사의 수많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인천은 백제를 세운 비류(沸流)가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여 미추홀에 나라를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매소홀, 소성현, 경원군, 인주, 경원부 등의 이름을 거쳐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비로소 현재의 이름인 '인천'으로 바뀌게 되었다.
2. 인천의 수리적, 지리적, 관계적 위치.
국토 전체에서 보는 인천의 수리적 위치는 대략 동경 126' 37', 북위 37' 28' 에 해당되는데, 이는 한반도의 한 가운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황해에 접하여 있고 한강의 하류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로 보아 인천은 남쪽과 북쪽의 중간지대이며, 또한 우리나라 문화형성으로 보아 북방과 남방의 중간지대로서 가장 먼저 근대사의 여명을 맞이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인천이 서양의 문물이 이 고장을 통하여 전국에 전파하게 되었으며, 또한 우리나라의 문물이 이 고장을 통하여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 인천은 한국근대사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지정학적으로는 동북아의 중심도시로서 향후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 나갈 요충지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위도 상으로 인천시와 비슷한 도시는 스페인의 마드리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등이 있으며, 관계적 위치로서의 인천은 서해안의 경기만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한강하류 유역과 황해도 옹진반도의 장연군에 접하며, 동쪽으로는 서울시 강서구 및 경기도 김포군 고천면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서산군, 당진군과 접하고 있는 전국 최대의 행정구역 면적을 가진 광역시로서 강화 옹진군을 포함한 전체 면적이 955.00km2 에 이르고 있다.
3. 인천의 땅 모양 특색.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지형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면서 살펴보면 동고서저인 경동지형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인천은 가장 낮은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지형적인 특색은 황해의 영향이 크다. 인천의 산지는 높지는 않으나 해변에 접근해 있기 때문에 평야의 발달도 적고 산지와 산지사이의 저지대는 대부분 만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조건은 인천지방의 자연 및 인문경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4. 산지.
인천의 산지지형은 대체로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먼저 북부의 계양산(395m), 철마산(226.5m)으로 이어져 내려와 십정동, 간석동 일대에서 동쪽으로 뻗어 만월산(186m), 철마산(201m)에 이르는 북-남-동남 주향의 산지는 가장 규모가 크고 연속성이 뚜렷한 산지이다. 남-북방향 산지의 하단부는 평탄면을 이루고 있었으나, 만입부에 방조제를 구축하여 염전이나 농경지로 개발하였고, 최근 매립지가 근해의 섬들을 연결하여 구축되고 있다. 북-남-동남 주향의 산지 동쪽에는 규모는 작지만 굴포천과 청천천 등 하천이 관통하고 있으며 이를 따라 충적평야가 부평, 부천, 김포 일대에 넓게 발달하고 있다. 한편, 부평지역은 한때 부평평야라고 부를 정도로 대규모 곡창지대였으나, 부평과 부천의 경계선상에 일부 논농사가 진행될 뿐 대부분 택지지역으로 변경되고 있다.
또 다른 주향의 산지는 인천의 구(舊)중심지를 동서방향으로 가로지르는 구릉성 산지이다. 월미산(93.8m), 응봉산(81.6m), 송림산(59m), 도화산(51m), 수봉산(111.8m) 등 낮은 구릉이 구도심의 해안에서부터 간석동 일대까지 고립적으로 분포하여 상술한 북-남-동남 주향의 산지와 만나고 있다. 이 구릉성 고립산지 주변의 곡지는 갯골을 통하여 드나들던 작은 선박의 선착장이었다.
현재의 경인고속도로 가좌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만입하여 주안을 지나 간석동까지 이어져있던 이 거대한 갯골은 북-남-동남 주향의 산지와 구도심으로부터 동-서로 달리는 구릉성 산지 사이에 형성된 만입으로서 일대는 넓은 간석지였고, 이 갯골에 이어진 좁은 해도를 통하여 작은 배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곤 하였다. 동인천역에서 도원동 황골고개 사이의 배다리는 그 지명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만조시 해도가 열렸던 선착장이었다. 이 갯골 일대는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였는데, 간척에 의해 염전과 농경지로 활용되었고, 나중에 경제개발계획으로 경인 공업단지로 조성되면서 공업단지로 개발되었다.
5. 인천시 인구 개관.
인천은 개항당시(1883년) 불과 4,700명(외국인 348명 포함) 정도의 보잘것없는 포구(浦口)에 지나지 않았으나, 광복을 전후하여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1949년에는 약 26만 명이 되었다. 6 ·25동란 후 월남한 피난민의 정착과 계속된 전후 복구사업으로 공장이 재가동 되어지고 곡물 등의 수입에 따르는 하역물량 증가로 노동수요가 늘어나자 일자리를 구하려는 농촌 인구의 유입으로 1960년 인천의 인구는 4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1966 년 제6차 인구센서스 결과 인천의 인구는 50만 명에 이르렀고, 1975년에는 인구 8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인천의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여 1980년에 100만 명, 1987년에 150만 명, 1992년 5월에는 200만 명을 넘어서고, 1995년 3월 1일 종전의 경기도 관할구역이던 강화군과 옹진군 그리고 김포군의 일부(김포군 검단면)가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어짐으로서 인천의 인구는 231만 명이 되었으며1995년 말 인구는 약 240만 명이 되었다. 1995년 말 인천광역시 인구의 성별구성을 보면 남자가 1,193,395명이고, 여자가 1,168,737명으로서 남자가 여자보다 24,658명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인구의 급격한 증가요인은 강화, 옹진군 편입 등에 따른 광역화와 상공업 발전 추세에 따라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급증에 따른 대도시화 현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인천은 토박이 주민 층이 매우 엷은 편이며, 주민의 특성은 보수적인 면보다도 일반적으로 자주성이 강하고 진취적이며 개척적인 자활능력이 강한 편이다.
6. 인천의 모습들.
개항 전의 인천은 대부분 갈대가 무성한 해안저지의 습지였고, 약간의 천수답과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1883년 개항 직후 인천의 교통수단은 기차이외에는 별로 없어서 대부분 걸어 다녔고, 공장은 거의 없이 상업을 위주로 정미소나 양조장 같은 소규모 공업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후 점차 공업의 규모가 늘어나고 또한 1930년대에는 인천에 중공업과 군수공업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경인선을 중심으로 철도교통과 자동차교통이 확충되어 도시는 개항장 주 개항당시의 제물포항 변에서부터 멀리 용현동, 학익동과 부평지역에까지 확대되 었다.
현재의 인천 도심 현재의 인천항
8·15해방 이후, 특히 1960년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한 경인지구 특정지역 개발계획에 따라 공업단지가 건설되고 고도경제성장으로 산업구조가 변모하면서 시가지의 형태는 고속도로와 경인선철도 및 국도를 따라서 발달하여 구 시가지와 부평 시가지가 서로 결합되고 이웃 부천시와 연계되어 서울∼인천 간에 커다란 연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환황해권의 선도도시로 송도 신도시 건설,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북항 개발, 인천국제공항건설 등으로 세계화의 거점도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인천은 세계화에 부응하고 미래를 향한 광역시의 부푼 꿈을 이루기 위하여 구 시가지인 도심권은 상업·업무·행정·문화생활의 중심권으로 하고, 북부권인 강화는 통일거점의 도시 해양사적의 관광지로, 검단은 최첨단 무공해 공단과 전원도시로, 서부권인 영종 및 옹진은 공항 및 지원단지와 해양 등 천혜의 자연을 이용한 관광단지로, 남부권인 송도 신도시는 국제 무역, 금융, 정보통신서비스의 최첨단 도시로 중점 개발해 나갈 계획에 있다.
미래의 정보도시 송도신도시
7. 인천의 고지도들.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 인천 청구도 해동도 해동여지도
인천 부근 앞바다와 강화부근 인천 경기 19c초 인천 19c말 인천
8. 인천 공항.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미래를 향한 인천의 도전은 거침이 없다. 새 천년을 맞아 우리시는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섬을 메워 세계의 하늘(Air-port)을 건설하고 망망대해를 일구어 미래의 도시(Tele-Port)를 조성하며 물류의 중심지가 될 항만(Sea-Port)을 정비하는, 트라이포트(Tri-Port)가 바로 그것이다. 2001년 첫날, 하늘 문을 열 인천국제공항이 그 첫 번째 프로젝트이다. 영종도와 용유도·삼목도·신불도 네 개의 섬을 메운 1,700만평의 대지 위에 21세기 한국의 얼굴이 새겨진다.
92년 말 바다 막기 작업을 시작한 인천국제공항은 장장 10년에 가까운 공사를 끝내고 2001년 3월 드디어 역사적인 개항을 한다. 4000m급 활주로 2개와 여객터미널, 교통 센터 등의 시설을 갖추고 1단계로 문을 열 이곳은 해상공항이라 소음 피해 없이 24시간 깨어있는 전천후 공항이다. 여객터미널에는 대형항공기 44대가 동시에 접안할 수 있고 활주로에는 30초에 한 대씩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다. 불과 3시간 반의 비행만으로 인구 100만 이상의 동북아 주요 도시 43곳과 연결되는 인천국제공항은 이제 세계의 관문이 된다.
인천국제공항은 변화된 생활스타일과 경제활동을 위한 새로운 패턴의 공항이다. 첨단시설을 갖춘 업무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쇼핑하며 휴식도 취할 수 있게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한다. 축구장 크기의 60배에 달하는 제1여객터미널에는 패션부띠끄·백화점·칵테일 바·전자오락실·사우나·카지노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공항 배후에는 세계 경제인들이 첨단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국제업무지역과 주거시설, 각종 행정지원시설이 자리한다.
쪽빛 바다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인천국제공항은 인종을 초월한 5대양 6대주의 사람들과 푸른들, 바다가 맑은 하늘아래 어우러진 그린 에어포트이다. 주변에는 멋진 레저단지가 조성되고 곳곳에 공원이 들어선다. 세계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로 자리할 해당화 40리 길이 다듬어지고 잠시 머무는 환승객을 위해 다양한 테마관광코스가 만들어진다. 인천국제공항은 비즈니스와 레저가 조화를 이룬, 지구 위에서 가장 편리하고 아름다운 공항으로서 이제 세계로 가는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
9. 송도 정보 신도시.
바다를 메워 만든 거대한 땅위에 건설되는 송도신도시는 첨단지식산업단지인 미디어밸리와 함께 국제교역·금융·기술업무 등의 기능을 갖춘 새 천년형 자족도시이다. 기간통신망이 완벽하게 구축돼 첨단기술의 개발과 활용이 쉽고 누구나 홈뱅킹, 홈쇼핑, 원격진료 등 고도의 생활정보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구촌의 다양한 정보가 공유돼 원활한 국제 활동도 가능하다. 일과 생활, 휴식을 취하는데 최첨단 인프라가 제공될 이곳은 한 차원 높은 미래도시이다.
미디어밸리는 벤처기업의 요람이다. 유통단지와 벤처빌딩, 소프트웨어파크, 테크노파크, 미디어신도시 2, 4공구 106만평에 들어선다. 이 안에는 소프트웨어산업을 중심으로 멀티미디어 콘텐츠산업, 인터넷 기반산업을 다루는 첨단기업이 입주한다. 그렇다고 단순한 산업집적지구는 아니다. 사무공간과 함께 주거·교육기관·연구소·관공서가 입주하는 단일자족도시이다.
내일의 신화를 꿈꾸는 두뇌들에게 미디어밸리는 그 꿈을 실현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터전이 될 것이다. 입주기업들은 정부와 인천시의 지원, 그리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행정기관의 원스톱서비스와 최적의 사업 환경이 제공되고 뛰어난 고급인력이 공급된다. 이 안에서 벤처기업과 대학, 그리고 개인은 창의력과 모험정신을 발휘해 세계적인 지식상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동양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지식산업의 요람으로 송도 미디어밸리가 태어난다.
10. 인천의 가 볼만한 곳.
월 미 도
바람을 맞으며 난간에 기대거나
카페 창가에 그린 듯이 앉아 해를 보는 것도 좋지만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무렵
바다 위에서 맞아보는 것은 또 다른 맛이다.
인 천 대 공 원
흙이 그립고 숲의 냄새가 고픈 날이라면
가족과 함께 인천대공원으로 가자.
그곳에서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자연의 힘을 통해
잃어 버렸던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
송 도 유 원 지
맛있는 음식에서부터 놀이시설까지
송도에 오면 몸도 신나고, 덩달아 입도 즐겁다.
여행이 갖춰야 할 묘미를 두루 갖추고 있는 곳.
연 안 부 두
상인들이 쏟아내는 무수히 많은 삶의 언어와
고무함지에서 마지막 생을 불태우는
생선들의 분위기가 하도 치열해, 마음조차 덩달아 팔팔해진다.
소래포구
행여 해질 무렵 철교 위를 걷노라면,
경치에 넋을 잃어 눈치도 없이 자꾸 왔다 갔다 하게 된다.
해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 유 공 원
공원 광장에서 홍예문 쪽으로 내려가면 '작은 동물원'이 나온다. 공작새, 칠면조, 비둘기 등 10여 종류의 조류가 있는 야조사이다. 아이들에게 '동물의 왕국'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산보 나온 가족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북성동 차이나타운
한 세기 전, 원탁에 둘러앉아 요리를 먹으며
왁자지껄하게 떠들었을 누군가를 향해 문을 두드려본다.
그러자 그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 되어 가슴을 치는 것 같다.
배다리 전통 공예상가
손끝에서 민화 속 호랑이가 방긋 미소짓고,
풀 먹인 한지가 보석함으로 색을 입고,
죽어 있는 나무가 아름다운 펜던트로 살아난다.
§ 인천의 구별 행정구역.
중구, 동구, 남구, 서구, 연수구, 남동구, 부평구, 계양구, 강화군, 옹진군.
*중구의 유래
1982년 축구 보급지
1983년 개항
1884년 우편업무 시작
1885년 계신교 내리교회
1888년 서구식 공원 만국공원(자유공원)
1889년 서구식 호텔 대불호텔
1992년 서구식 초등하교 영화학교
근대화폐 제조지 (인천 전환국)
1895년 영화극장(협률사)
1897년 경인철도(인천역)
1903년 팔미도 등대
1904년 인천 기상 관측소
1905년 자장면 탄생지(차이나타운 공화춘)
1918년 동양최대 갑문항(인천항)
1946년 인천시립 박물관
1950년 인천상륙작전 전초지(월미도)
1970년 중구경동 쫄면 탄생지
2002년 동북아 최대 허브공항(인천공항)
< 의 료 >
․인하대학교 병원 : 경인 고속도로 이용
․중앙 길병원 : 국도 이용
․인천 중앙병원 : 국도 이용
․인천 세림병원 : 국도 이용
< 편 의 시 설 >
◆ 쇼핑 센터
․부평, 구월동 롯데 백화점
․부평 현대 백화점
․신세계 백화점 인천점(국도 이용 약 20분 소요)
․그 외 다수의 대형 할인 마트
◆ 극 장
․부평 키넥스 7
․부평 대한 극장
․CGV 인천점 (국도 이용 약 15분 소요)
◆ 위락 시설
․인천 대공원 : 국도 이용(약 15분 소요)
․월미도 : 고속도로 이용(약 40분 소요)
․송도 유원지 : 고속도로 이용(약 50분 소요)
․SBS 종합 촬영 세트장 : 국도 이용(약 10분)
첫댓글 도마의 능력이 어디까지 진행하는지, 긍금해 ! 덕분에, 인천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 스승를 잘든 덕분에, 아무조록 많이, 배운다. 사진 기대하며...
석철이 참여율 만땅이고 열심히하네
머리속을 다시 한번 되새기네 ..............인천은 짠물이여
나도 인천 토박이이면서 인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도마 덕분에 내고향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자료찿느라 고생많아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