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과 신부가 토종닭 백숙을 뜯으며 이것은 내 다리 저것은 내 다리 하면서 두 다리를 갈랐다. 두 다리가 나눠지면서 혜공(惠空)과 원효(元曉)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똥을 누었더니 때마침 두 마리 물고기가 헤엄쳐 나왔다 한 마리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한 마리는 물을 가로질러 내려갔다 올라가는 고기를 보고 서로 내 고기라고 우기는 동안 신랑 신부는 토종닭 백숙 한 접시를 다 비웠다.
사라져간 내 시 속의 여자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내 짝이었던 이혜정이 생각난다. 그녀는 아마도 내게 있어 첫 이성이요 여자였다. 그녀에 대한 내 이미지는 당시 이수인 교감 선생님의 딸이라는 것, 그리고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간다는 말을 못해서 목조 교실바닥에다 옷 입은 채로 오줌을 싼 뒤 눈물을 흘리던 영상으로만 남아 있다. 그렇게 시작된 내 마음 속의 ‘이성’은 초등학교 내내 담임선생이셨던 몇몇 여선생님들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역시 나를 좋아했던 여자는 있어도 내가 좋아했던 여자는 특별히 기억에 없다. 대학교 때의 이성 역시 뚜렷하게는 없다. 아! 나는 왜 그렇게 ‘건조’하게 살았던가.
내 삶에 있어서 여성은 어머니로부터 누나와 누이 그리고 아내로 전이되었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 고향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내게 내내 남성성으로 다가왔다. 가장이셨으니까 말이다. 나이든 누나들도 여성성으로 별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미들도 거의 가장들이었으니까.
모든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결혼 전의 아내는 여자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결혼 뒤의 아내는 동지요 친구며 도반이 되었다. 때문에 뭇남자들은 동지와 친구와 도반으로서의 아내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 한다. 그 일탈 끝에 만나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여성성이요. 아내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이성’이자 ‘여자’다.
시 「오어사에서」는 결혼 전의 ‘여자’가 결혼식을 거치고 신혼여행을 가서 ‘동지’ 혹은 ‘도반’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혜공과 원효의 천진행 게임 설화를 여자에서 도반으로 전이되는 과정으로 차용한 것이다. 나는 부석사 밑 호텔에서 ‘여자’를 맞아 첫날밤을 보낸 뒤 오어사 밑 토종닭 백숙 집에서 ‘동지’로 맞는 의식을 치렀던 것이다. 내 시 속의 여자는 그렇게 사라져갔다.
미당은 「내 아내」라는 시에서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이라고 했던가. 나는 시 「오어사에서」 ‘여자’를 잃어버리고 ‘동지’를 만났다. 미당은 평생 아내를 여자로 알고 살았지만 나는 너무 일찍 동지가 되어버렸다. 때문에 나는 아직도 동지나 도반이 아닌 ‘여자’를 만나고 싶다. 토종닭 백숙의 두 다리를 나눠먹을 수 있는 ‘여자’를 말이다. 내 시 속에 여자가 다시 등장하는 날 나와 나의 시는 보다 젊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