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BK Magazine 2011-12-22 (번역) 크메르의 세계
[인물 인터뷰] 레드셔츠 핵심 지도자 짜뚜폰 프롬판
Red Shirt Leader Jatuporn Prompan on Politics, Thaksin and Fears of Assassination
인터뷰 및 내용 정리 : Monruedee Jansuttipan
최근 의원직을 박탈당한 레드셔츠 운동의 핵심 지도자 짜뚜폰 프롬판(46세)가 자신의 정치입문 과정과 암살에 대한 공포, 그리고 탁신 및 국왕에 대한 입장에 관해 입을 열었다.
[이하 짜뚜폰 전 의원의 발언 요지]
- 나의 부모님은 각자 홀아비와 과부로 살다가 재혼했다. 그래서 나는 이복 형제와 이복 자매들이 많다.
- 나는 겨우 8세가 되었을 때 집을 나와서, 나콘시 탐마랏으로 가 형과 함께 살았다. 3년 뒤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방콕으로 갔다.
- 이후 형들이 승려 생활을 하고 있던 방콕의 '왓 부원니엣' 사찰에 살았다. 그리고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할 기회를 얻어서 건축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다.
- 진업전문학교 재학 중에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다. 술도 마셨고, 언제나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움을 벌였다. 나는 그런 일을 멈추고 내 인생의 초점을 맞추기 위한 새로운 것을 찾을 필요를 느꼈다.
- 나는 치앙마이 근처의 산악지대로 가서 자원봉사 교사를 했다. 그곳은 정말로 오지였다. 머물 집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교사들이 한 동굴에서 잠을 잤다. 우리는 나중에 우리가 살 조그마한 집을 지었다.
- 원래는 그곳에서 5~6개월만 머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활은 3년이나 이어졌다. 급료도 받지 못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행복한 생활이었다.
- 자원봉사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더욱 고요하고 자각적으로 변하게 만들어, 내 자신과 타인들을 더욱 잘 이해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길 바란다면 어떤 것도 희생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 나는 공부를 계속 하고자 방콕으로 돌아왔다. '람캄행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릴 적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방콕이나 남부지방의 정치적 활동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대중연설을 듣곤 했던 것이다. 내가 들었던 많은 연설들은 끅릿 쁘라못(Kukrit Pramoj), 사막 순타라웻(Samak Sundaravej), 우타이 핌차이촌(Uthai Pimjaichon), 추완 릭파이(Chuan Leekpai) 같은 유명인사들의 연설이었다.
- 1992년의 '검은 오월'(Black May, 피의 오월) 이후 나는 유명해졌다. 시위 지도자였던 짬렁 시므앙 장군이 체포되고 국왕께서 폭력사태를 중단하라고 하며 개입하기 직전에 마지막 연사가 나였다.
- 나는 정치인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신 나는 정치인 동료 친구들이 자신들의 선거운동을 계획할 때 돕는 정도로만 기쁨을 느끼곤 했다.
- 하지만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넘겨 그들이 일을 해주길 바라기보다는 스스로 정치인이 되서 일하는 편이 더 쉽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랑탐 당'에 입당했고, 이후 탁신 친나왓의 '타이락타이 당'에 들어간 것이다.
- 좋은 연설가가 되기 위한 핵심 요소는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들이 정치인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 나는 휴대폰을 3대 갖고 있다. 나의 공식적인 전화번호가 도청당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번호 2개를 더 갖고 있고, 그 전화기들을 이용하여 동료들이나 지지자들과 통화한다.
- 내 인생은 오랫 동안 순탄치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만큼 공개적으로 나돌아다닐 수 없다. 그것은 신변안전 때문인데, 단지 내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한다.
-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이길 원한다면 나만 죽여라. 하지만 다른 이들을 여기에 끌어들이지는 마라.
- 나는 내 아내와 세 딸이 있어서, 내 가족을 보호하고자 한다. 나는 가족들이 가능한 한 내가 레드셔츠 활동을 하는 데서 떨어져 있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고, 그것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생명에 문제가 발생하길 원치 않는다. 따라서 나는 내 가족들이 대중의 눈 바깥에 머물도록 노력하고 있다.
- 세댕 장군이 암살당한 이래, 나는 언젠가 그런 일이 나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나의 느낌은 공포를 넘어선 것이다. 만일 저격을 당한다면 공포를 느낄 시간도 없을 것이다. 죽을 때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이다.
- 나는 탁신 전 총리에게서 돈을 받은 일이 없다. 생사의 문제나 자유는 돈과 맞바꿀 수 없는 것이다. 죽거나 교도소에 간다면 돈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 돈을 번다.
- 나는 탁신에게 "돈을 갖고 운동을 시작하지 말라"고 말했다. 만일 사람들이 돈 때문에 모여든다면, 첫번째 총성이 들리는 순간 그들은 도망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돈을 받고 모여들었다면, 지난 2010년의 투쟁 기간 중에 91명씩이나 사망자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 나는 단 한번도 왕정을 전복시키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종종 '왓 부원니엣' 사찰에 머물곤 하는데, 그곳은 국왕 폐하나 왕실 가족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나는 왕실에 대해 호감을 느꼈고 존경심을 가졌다.
- 내가 왕정 전복을 시도한다는 것은 레드셔츠 운동을 파괴하려는 자들이 쳐놓은 프레임이다. 심지어 나의 11세 된 장녀의 이름을 퍼피양(Porpiang)이라고 지었을 정도이다. ('퍼피양'은 '충족'이란 의미로서, 푸미폰 국왕이 주창했던 '충족경제론'과 관련이 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왕실 전복을 생각조차 할 수 있단 말인가?
-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과와 행복의 순간은 교사 생활을 할 때였다. 가르치는 일은 나눔(=주는 것)에 관한 모든 것이다.
- 내가 더 이상 국회의원을 할 수 없다면, 늘 해오던대로 레드셔츠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 정치적 관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적으로서 행동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마치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친구들 마냥,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재미있는 점은
레드셔츠 회원들은 북부와 북동부 지방 사람들이 주류지만..
지도부는 또 남부 지방 출신 인사들이 많다는 점이네요..
나타웃 사이끄어도 남부 지방인데 말이죠..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최신 버전을 반영해서
각주들도 첨부하고, 변동된 사항들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기사도 추가로 번역했습니다.
이제야 짜뚜폰이란 인물에 대해
좀더 이해를 하게 되네요..